| 이 음반, 이상합니다. 난리도 아닙니다. 굴드의 허밍이야 그렇다 치고, 의자인지 문인지가 삐그덕거리는 소리, 뭔가 부시럭거리는 소리, 부서졌다 고친 (그래서 스탭들 아무도 이 피아노를 쓰리라 믿지 않았다던) 피아노에서 나는 단속음, 심지어 짧게나마 누군가 궁시렁대는 소리까지, 굴드의 [인벤션]에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날 수 있는 잡음들이 죄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녹음 트릭의 귀재인 굴드가 이런 걸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텐데, 그렇다고 녹음이 안좋은 것도 아니고, 피아노의 음색은 담백하게 잘 잡은 걸 보면 프로듀싱에도 무척 신경을 쓴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녹음을 위해 각종 실험과 트릭을 마다하지 않았던 굴드는, 이번에는 소위 잡음- 즉 잡다한 소리들을 "이용" 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음반은 전무후무한 [스튜디오-라이브 앨범, 그것도 가짜] 가 되었습니다. 공연장에서의 자연스런 잡음인 기침 따위처럼, 굴드는 스튜디오에서 날 수 있는 잡음들을 그대로 집어넣음으로서 우리가 실황 음반에서 느꼈던 현장감을 재현합니다. 오직 음악만을 위해 프로듀싱과 재녹음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가공의 전당이 스튜디오일진대, 굴드는 거기에다가 실황의 특성을 가미시키고 스튜디오의 특성을 어느정도 배제함으로서 스튜디오를 그저 '하얗고 좁고 관객이 없는 공연장' 처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음이 뻗어나갈 공간도, 관객을 위한 의자도 하나 없는 이상한 공연장에서의 실황 공연. 우리는 이러한 특징에서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부조리극이나 비극적인 우화의 한 장면, 핑크 플로이드의 폼페이 콘서트, 아니면 오히려 따뜻하게 살아있는 스튜디오의 한 순간 등등.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두가 거짓이고 연출이라는 점입니다. 굴드이 다른 녹음들처럼 [인벤션] 역시 결벽증적인 녹음 과정을 거쳤으며, 잡음 역시 굴드의 치밀한 계산 하에서 살아남은 선택된 잡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 같지만 허구이고, 허구이지만 그 모든 요소를 실제 삶에서 끌어 온 연속된 술수.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이 모순을 떠올릴 때 마다 [스튜디오-라이브 공간]은 실재하는 공간으로서의 특성을 일어가며, 그 미묘한 공간에서 울려오는 가장 간결한 바흐의 멜로디는 수많은 "그저 좋은 연주" 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상한 감동을 안겨 줍니다. 그 감동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 서글픔으로, 처음에는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의 한 장면, 지하철 역의 시끌시끌한 소음 속에서 주인공이 샤콘느를 연주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선율은 일상의 삶에 파묻히거나, 아니면 그 틈을 힘겨이 뚫고 나왔으되, 갈 곳이 없는 듯 헤메는 카메라와 함께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가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한번 서글픈 기분이 듭니다. 스튜디오 안의 소음들은 진실도 거짓도 아니며, 그리하여 그곳은 스튜디오도 실황 장소도 아니며, 결국 우리의 논리체계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공간에서 연주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논리 밖, 우리가 생각하는 한계 밖의 우주에서 날아온 연주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결코 그 곳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벤션]은 접근이 불가능한 순수의 세계, 재현이 불가능한 꿈의 일종입니다. [인벤션과 신포니아]는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바흐의 특성을 드러내는 곡입니다. 굴드의 연주는 (여전히) 명확하고 또렷하며 (유난히) 조심스럽습니다. 그 조심성은 각기의 음이 자기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듯, 마치 악보의 순수함을 훼손하기 싫어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순수한 화음을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연주하는 그 순간, 진실과 거짓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특이한 시공간에서부터 날아오는 [인벤션]의 화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이며, 건반을 두드리는 방법 이외에도 음반을 통해 바흐를 형상화하고 그 위대한 순수함을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탁월한 시도입니다. 이 음반에서의 바흐는 [모순의 공간에서 날아드는 순수와 질서의 음계]. 정말이지 굴드는 해 내 버렸습니다... 이 음반은 감독이자 작가 겸 주연 배우를 맡은 "전방위 아티스트 글렌 굴드" 가 내놓은 역작으로서, 대사가 없는 라디오 다큐-드라마이고, 커튼이 드리워진 채 진행되는 무언극입니다. 문학적 상상력과 음악적인 명연주가 전무후무한 합체를 이루어 낸 놀라운 성과에 대고 누구누구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따위의 말은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과 (소위 말하는) 현대 예술의 놀라운 결합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말이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