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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럭셔리 예수 베르너 터키 퀴스텐 마허 저 / 유영미 역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4명의 멋지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귀족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귀족적인 분위기를 부러워하며 동경하던 청소년들이 참 많았다. “Luxury”라는 영어 단어의 뜻은 ‘사치, 호사, 쾌락, 만족, 유쾌, 사치품, 호사스러운 물건’ 등의 의미가 있다. ‘럭셔리 예수’ 라는 제목에서의 럭셔리는 호사스러운 삶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겸손이 낮아지심의 모습과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닌 섬김을 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왠 “Luxury”라는 단어와 어울린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베르너 터키 퀴스텐 마허’는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목사, 상담가, 작가, 저널리스트, 카투니스트 등, 전방 위에 걸쳐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예수님이 왜 럭셔리한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사시는 동안 넘치도록 선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셨다는 것때문이며, 무엇보다 영적으로 풍성하게 사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적으로 풍성하셨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바로 ‘Jesus Luxury’라는 말이다. Jesus Luxury는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풍성한 삶을 말한다. 1장, 시간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라, 18장, 인생의 칠흑 같은 밤에 희망을 보라, 20장, 삶이 관점을 불만 모드에서 감사 모드로 바꿔라, 등의 제시와 함께 모두 2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의 끝부분마다 짤막한「지저스 럭셔리」란을 통해 실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삶의 예를 들어 줌으로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음 마음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는 에필로그, 무조건적으로 절약하는 것만이 이덕이 아니라, 의미 있는 ‘낭비’는 우리를 변화시켜 새로운 것으로 만들 것임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자신을 결코 작게 만들지 말라 우리는 크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우리에겐 위대한 과거와 위대한 미래, 힘든 고난의 시간 우 풍만한 ‘지져스 럭셔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약속이 주어졌다. 아니 심지어 ‘고난의 한 가운데 에서도’말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를 큰사람으로 만드셨다. 그로 인해 우리를 신뢰하고 기대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관점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성공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 나 역시 아주 “Luxury”한 사람이 된 듯하였다. 아니 럭셔리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럭셔리하시니 그의 피조물인 나 자신도 예수님을 따라 럭셔리해져서 럭셔리한 삶을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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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상자에서 첫 출간한 <럭셔리 예수>를 보고 든 첫 생각은 빌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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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하면 물질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도 편견인거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관점에 의해서 럭셔리에 대한 기준도 다릅니다. 저자는 틀에 박힌 삶과 걱정 근심에서 해방되는 것, 그리고 정신적 풍요가 바로 럭셔리라고 말합니다. 정신적 풍요라는 말에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풍요를 누리가 위해서는 중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중심을 예수님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풍요로웠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에 넘쳐나는 존재이셨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도 언제든지 선택하실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풍요에 관심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럭셔리한 삶임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물질의 부족이나 넘침에 마음을 뺏기지 않습니다. 물질의 사용에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게 됩니다. 물질의 사용또한 우리의 정신적 가치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어집니다. 예수님 중심의 럭셔리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풍요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을 풍요속에 함께 할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그 부름에 순종할 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포기한 모든 것에 비교할수 없을 가치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궁극적인 럭셔리입니다. 기도의 생활을 늘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편에 서게 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해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풍요속에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은 우리의 삶을 럭셔리하게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닮게 됩니다. 럭셔리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그 자체로 럭셔리합니다. 우리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됨으로 세상의 가치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가 어딘지 매일 점검하여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수준높은 럭셔리한 삶을 배우기 위해서는 성경을 묵상하고 삶속에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우리 삶속에 초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다스리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배우게 되며,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 삶을 다스릴 때 진정한 럭셔리한 삶을 살게 됩니다. 진정 풍요로운 행복함 삶을 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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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처음에는 참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럭셔리라는 단어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이나 남들보다 많이 가진 부자들이게나 어울릴만한 단어가 아닌가...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병든자들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던 분인데 럭셔리 예수라니...그러나 이 책을 한장한장 읽고나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들은 럭셔리라고 하면 물직적인 것만 생각한다. 남들보다 돈이 많다거나 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다거나 각종 귀금속, 멋진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럭셔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퀘스턴마허 목사님은 진정한 럭셔리를 물질적 가치로 보지 않고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가치로 보았다. 그렇기에 정신적으로 풍요한 삶, 영적으로 부자였던 삶을 사신분 즉 예수님이 진정한 럭셔리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들의 삶은 늘 부족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을 보기보다는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기에 현재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먹을 것이 없는 그들에게 만나를 제공해주셨다. 애굽 생활을 할 때처럼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지 않고 그냥 주워담는 수고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나를 질려하며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였다.
무한히 공급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늘 불평하던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도 그런 모습이 아닌가 싶다. 먹고사는데 불편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한다. 더 많은 월급, 더 많은 복지...우리는 끊임없이 불평하며 주워담으려고만 하지 베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럭셔리한 삶을 살려면 물질적인 삶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다 하더라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절대로 감사하지 못한다. 우리의 시선이 물질로부터 벗어났을 때 남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그들을 도울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많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영적이고 정신적인 눈이 가려져 있기때문에 무엇이 좋은지 알수 없다. 거주할 집이 있고,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많은 부분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의 영적인 부분을 채워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돌볼수 있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평상시에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많이 연습하라고 말하는 부분에 동감이 됐다.
정신적으로 늘 풍요하셨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우리 또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 믿는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분의 성품을 따라 살아갈 때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고 삶의 기쁨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럭셔리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 그분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삶을 살다면 우리역시 럭셔리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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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럭셔리에 대한 생각은 나의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있는 사람들이 갖추고 사는 삶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자동차만 봐도 등급이 매겨진다. 보통이 있고 프리미엄이 있다. 고급 사양이 가득 든 차일 수록 비싸다. 아파트도 격이 있다. 살아보면 느낀다. 그래서 더 좋은 아파트로 옮겨 살려고 그렇게 끙끙대나 보다. 사는데 문제 없으면 될 것 같은데 더 좋은 거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려는게 인생들의 사는 모습인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선택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 까. 없다는 문제 앞에서 선택의 폭을 줄이고 또 줄이면서 살아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주변에 널려있다. 그런데 제목이 참 특이하다. 럭셔리 예수라니. 저자의 책을 쓴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단어 럭셔리, 예수. 두 단어를 너무 좋아해서 책을 썼단다. 럭셔리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고급스럽다란 뜻이 나왔다. 럭셔리와 예수님이 어울리는 제목일까 고개를 갸웃뚱하며 고민해 본다. 럭셔리 예수를 검색해 보니 결과가 없다고 나온다. 전에는 예수님의 이땅에서의 삶이 럭셔리 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공감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예수님의 삶이 럭셔리했다고 한 저자의 책 쓴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영적으로 풍성하게 살았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자는 뜻에서 지저스 럭셔리라는 말을 만들었다. 지저스 럭셔리는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풍성한 삶을 말한다.'(P.15) 예수님을 보는 시각이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의 시각도 참 독특하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속에서 럭셔리를 떠올릴 수 있다는게 놀랍다. 봄이면 아름다운 다양한 꽃이 피어나고 구경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구경다니는 모습이 부러울때가 많다. 저런 여유를 부려보고 싶은데 돈 벌어야 되고 딸린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러움을 삭힐뿐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아름다운 꽃들을 만드신 분이 아니신가. 아름다움을 좇아 다니는 사람들에게 멋진 꽃들을 피어나게 하시는 분이시지 않는가. 푸른 하늘 뜨거운 햇살 만난 과일들 우거진 산과 지저귀는 새들을 만드신 분이지 않는가.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있는데 그 세계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풍성함과 부요함을 누리기는 커녕 현실이라는 만만치 않은 벽 때문에 슬퍼하고 절망하며 힘들게 살때가 얼마나 많은가. 현실의 문제속에 살면서 예수님의 삶을 바라보며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없는 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가 아니라 없지만 주어진 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도하고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성경말씀대로 인생이 끼고 있는 안경은 벗어버리고 럭셔리 안경을 끼고 인생을 보는 법을 이 책을 통해 조금 배운것 같다. 예수님은 왕자와 거지란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거지의 옷을 입으시고 온갖 모욕을 받으셨는데 거지 같던 나는 여전히 왕자의 옷을 입고 있지만 거지처럼 살았던 모습으로 세상을 본다는 시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럭셔리 예수님을 보는 눈이 아직 내게는 없나 보다. 영적인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럭셔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럭셔리와 완전히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럭셔리와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는 걸 발견케 해준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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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럭셔리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아니라 영적인 충만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비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이 책을 보았고, 과연 예수님은 얼마나 관대하고 또 지혜로운가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복잡한 도시에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종교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경제적으로 만족하고 사는 삶일지라도 외롭고 삭막하며 고독하기까지 하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상 속에서 꿈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종교는 인간에게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알고, 더불어 타인까지 도우며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알차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나눔'과 '감사'는 그야말로 럭셔리한 삶이다. 부자이기 때문에 나누는게 아니라 부족하지만 나눔으로써 영적으로 더 풍족해지는 '진정한 나눔'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진정한 나눔을 가장 잘 실천하신 분이다. 광야에서 40일간 머물고, 결혼 연회에 참석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하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셨고, 산상 설교를 하실 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만으로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길 정도로 충분했다. 나누면 남게 되고, 부족한 것보다 가진 것을 먼저 보는 것이야말로 바라보는 관점만 바꾼 것일 뿐인데, 놀라운 희망을 갖게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아직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예수님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시지만, 때로는 한적한 곳에서 침묵의 시간을 갖기도 하신다. 우리는 모두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연구한다. 일반적인 성공은 물질적인 만족을 말하지만, 저자는 성공을 '부름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낌없이 쓰실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낌없이 쓰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두의 운명을 바꾸었을 때 그것은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의미 있는 '낭비'였다. 우리 삶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아낌없이 쓰실 것이다. 그것은 빛과 풍요와 충만과 찬란함으로 가득한, 완벽한 럭셔리다." (p.237)
럭셔리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곳곳에 요약되어 있어 이해하기 쉽고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텅 빈 교회를 좋아하고, 저녁마다 영혼의 축복 창고에서 좋은 생각과 기쁨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게 선사하고, 성경을 영화배우처럼 읽어보며, 자선과 기부도 구체적으로 하라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예수님을 깨닫는 일이 가깝게, 또 친근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