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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매스컴을 통해서 간혹 이름을 접하긴 했지만, 수전 손택의 저작을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은 수전 손택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고 있는데, 질병이 단순히 화자의 증상이나 질환이 아니라 일상에서 은유적 표현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질병이 은유적 언어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서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펼쳐지고 있고, 이제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나 ‘방역’ 등의 의학 용어가 너무도 당연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때로는 구체적으로 누군가인지 모르면서도 ‘확진자’나 ‘접촉자’ 등으로 표현되는 대상을 향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몇동 몇호인지 그 사람의 가족 관계에 대한 내용들이 금세 풍문으로 전해졌다. 전염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완치가 된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당사자와 가족들은 완치가 된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일종의 ‘낙인’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최근의 우리 상황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었을 때, 질병에 대한 낙인을 찍거나 그 원인을 당사자 개인에게로 돌리는 것에 대해 비판한 수전 손택의 관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와 편견으로 인해 당사자들에 대한 고통이 가중됨은 물론, 어쩌면 질병을 가진 이들을 위축시켜 재화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10여 년 사이에 저술된 두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고 있는데,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에이즈로 주변 사람들이 앓다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기술한 <에이즈와 그 은유>(1988)라는 글이 그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질병을 일종의 인과응보로 여기는 관념’은 오래되었는데, 과거에는 ‘질병에 걸리는 것이나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나 전부 불행한 환자에게 책임이 달려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한 관념은 그 대상자를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때로는 질병을 은폐하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러한 예로써 과거 문둥병으로 알려져 있던 한센병에 걸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특정 지역으로의 격리로 인한 차별을 떠올릴 수 있다. 지금도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질병은 사회가 타락했다거나 부당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고발해 주는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특정 질병의 경우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예컨대 ‘암적 존재’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손택이 <에이즈와 그 은유>라는 글을 저술할 당시에는, 각종 언론 매체에서 에이즈를 불치병으로 여기고 그 병에 걸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났지만, 이제는 코로나19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흔히 역병이라고 여겨진 질병은 유행병’이며, 그러한 질병은 ‘그저 참아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콜레라나 에이즈가 사회적 비난이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19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들에 이러한 ‘질병의 은유’들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으며, 이제는 사람들의 일상용어에서도 너무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우리는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부정적인 의미를 증폭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에도 이러한 점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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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래 각기 따로 출판되었던 두 권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에이즈와 그 은유(1989)>을 하나로 묶은 책입니다. 한국에서는 2002년에 이후출판사에서 번역출판했는데요. <해석에 반대한다>나 <타인의 고통>같은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이후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전 손택은 일관되게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해왔습니다. <해석에 반대한다>나, <사진에 관하여>같은 책도 같은 선에 놓여 있고요. 이번 책 <은유로서의 질병>도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같은 것으로 질병에 대해 사회와 대중이 만든 은유나 상상적 관념이 얼마나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수와 약자에 대한 폭력이 되는지 고찰합니다. 환자는 다만 고통받는 사람이며, 질병은 다만 고쳐야 할 병일 뿐 다른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 자신이 누구나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따라서 질병에 대한 은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구속하고 불평등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는 것이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고 계시죠. 그 전파력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1차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각종 행사들이 취소되고, 여행도 어렵고, 심지어 출근이나 출석도 어려워지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병에 걸린 분들이 고충이 더 심하겠지만 걸리지 않은 분들도 이 질병에 걸릴 거라는 공포감 혹은 이미 걸려서 남에게 옮길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이제 우리 모두는 잠재적 코로나바이러스 보균자 혹은 전파자가 된 것 같거든요. 바이러스 보균 확진자의 동선을 속속들이 파악해 보도하고, 신상이 공유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내 동선도 검열하게 되고요. 여행도 가면 안 될 테고, 사람이 많은 곳에도 가선 안 될 것이며, 남의 영업장에 괜히 들러 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이게 되는데요. 내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모든 활동이 움츠러들죠.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대체로는 집에 머물게 됩니다. 저부터도 오늘처럼 녹음이 있어 불가피하게 집 밖을 나서야 할때마다 마음이 무겁죠. 왜 이렇게 막연한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건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결국 우리가 바이러스를 완벽히 통제할 순 없지만, 이 막연한 공포감은 사실 우리가 떨쳐낼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수잔 손택이 잘 쓰여진 질병에 대한 사유가 이 시점에 우리에게 약간의 자유를 선물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신적 자유이긴 한데요. 일종의 정신승리를 돕는 지적 훈련을 시켜주는 셈이죠. 질병을 신비화하는 모든 언어를 쫓아내려는 수전 손택의 노력은 세상 모든 예술작품이나 사고방식에서 ‘투명성’을 찾으려는 자신의 노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손택의 대표저서인『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합니다. 손택에게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해요. 즉, 예술 자체 그리고 예술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제 경험을 우리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투명성입니다. 따라서 투명성이란 무절제와 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 과잉생산과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물질적 풍요를 낳은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버린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케 해주는 그 무엇이기도 하죠. 예술을 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손택은 질병도 그 자체로 투명하게 볼 것을 권하고 있어요. 이렇게 질병을 둘러싼 어떤 판단, 즉 인간의 은유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느끼게 하죠. 그 판단을 한 이도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어떤 질병에 걸려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은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이 놀라운 사고과정으로 서로에게 불필요한 굴레를 씌우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죠. 질병을 질병 자체로 투명하게 보지 않는 데서 질병보다 더 한 고통이 초래될 수도 있어요. 손택이 1978년에 <은유로서의 질병>을 쓸 때, 작가 본인이 이미 암이라는 질병을 이겨낸 뒤였어요. 암을 둘러싼 부정적인 은유와 싸운 본인의 경험이 녹아 들어간 에세이가 바로 이 책에 있습니다. 손택이 다시 1989년에 <에이즈와 그 은유>을 쓸 때는 뉴욕은 에이즈라는 질병과 싸우고 있었어요. 손택 역시 많은 친구를, 특히 예술가 친구를 이 병으로 잃었습니다. 사담을 좀 하자면, 폴 텍이라는 뉴욕미술계에 유명한 작가가 있었어요. 괴짜로 유명한 작가였는데요. 둘은 서로 오랜 친구였죠. 손택이 암에 걸렸을 때 폴 텍에게 결혼을 청했었대요. 텍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죠. 그때는 폴 텍이 거절을 했고, 후에 텍이 손택에게 결혼을 청하게 되는데 그때는 손택이 거절을 했다고 해요. 바로 이 친구이자 연인같았던 폴 텍을 에이즈로 잃습니다. 그래서 <에이즈와 그 은유>는 폴 텍에게 바쳐진 에세이기도 합니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78년작에선 본인이 결핵과 암이라는 질병을 통해 우리가 질병을 얼마나 은유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89년엔 에이즈가 가지고 있던 은유에 대해서 해석하며, 다시 그 해석을 반대합니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들은 어떤 질병에 낙인을 찍는데요. 거기에 더해 그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도 낙인을 찍습니다. 손택은 우리에게 거듭 말하고 있어요. 질병은 치료해야 할 질병일 뿐이고 그로 인해 사람에게 낙인이 찍혀서도 안되고 그 낙인으로 고통을 받아서도 안된다고요.
질병의 은유를 둘러싼 자신의 사색을 통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궁극적인 이미지, 즉 인간이라는 종의 종말을 암시하는 재앙의 이미지, 이런 이미지를 발생시키고 부추긴 사회의 현실에까지 눈길을 던집니다. 특히,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면서 "국가의 생존, 시민사회의 생존, 세계 자체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편집증적 사회가 손택의 공격 대상이다. '최후의 심판' 같은 재앙을 연상시키는 수사를 남발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손택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면, "에이즈는 신이 자신의 법도대로 살지 않은 사회에 가한 심판이다"같은 설교가 대표적인 예죠.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며 사회적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하죠.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기를 더 바랬던 손택은 자신의 바람에 걸맞게 미국 펜클럽 회장(1987∼89)을 맡을 당시인 1988년 서울을 방문해 김남주, 이산하 시인 등 구속문인의 석방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 바도 있습니다. 2004년 골수성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숱한 별명과 명성을 얻으며 행동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일단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당신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생명이라고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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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프면서 살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거라는, 가벼운 질병만이 나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나보다.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이다.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 법, 아무리 좋은 쪽의 여권만을 사용하고 싶을 지라도, 결국 우리는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우리가 다른 영역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곧 깨달을 수 밖에 없다... - <은유로서의 질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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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첫 책으로 은유로서의 질병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흔든 지금 읽기에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읽기에 아주 편안하기만 한 글은 아니었으나, 질병을 질병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인상적이었던 한 편 과연 내가 옆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이 코로나19 확진자일때 과연 그를 치료받아야 할 자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증상이 있음에도 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들 또한 상당수입니다. 확진자에게 '가해지는' 해석이 그 원인 중 하나이겠지요. 결핵과 암, 그리고 에이즈에 대해 말한 수전 손택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21세기를 목도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요. 발전하지 못하는 인류에 유감을 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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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저의 은유로서의 질병. 현재 한국와 전세계는 코로나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런 환경속에서 질병에 관심을 갖게된 나는 많은 책을 고민한 결과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책중에서 외국인이 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번역을 잘했다고 해도, 나는 번역체를 읽는 것을 정말 어려워하는 편이고, 책이 잘 읽어지지 않아서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점을 마다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나에겐 너무 읽기 어렵고 이해가 가지 않는 서술들이 많았지만,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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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 수전 손택 4.0 / 5.0
수전 손택이 1976년에 유방암 제 4기 진단을 받고 나서 질병 자체에 들러붙는 이미지와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책입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하나씩 꼬집어 설명하고, 그런 은유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요. 덕분에 1년 넘게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는 covid-19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