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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건이 혼인 정책을 통해 수많은 호족 세력들을 포섭했음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겠지만 이로 인해 왕건 사후 고려 사회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하겠다. 왕건은 장자로서의 정통성을 지녔음과 동시에 후삼국을 통일하는데도 적지 않은 공을 세운 왕무를 자신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점 찍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야망 속에 서로를 미워했던 박술희와 왕규는 왕요, 왕소를 지지하는 세력에 비해 너무도 미약했다. 반란을 일으키려 들었다는 죄목으로 왕규는 반역자의 대열에 합류했고, 박술희 역시 미심쩍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왕이었던 혜종 역시도 나날이 불안에 떨어야 했으며, 즉위 2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만다. 고려사에는 이를 병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며, 실제로는 혜종이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혜종의 죽음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 왕위에 오른 왕요 역시 혜종과 같은 미심쩍은 죽음에 봉착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왕이 된 인물이 왕소, 바로 광종이었다.
그는 매력적인 외모와 총명함을 겸비하였고 통치 초기에는 이를 백분 활용하여 많은 이들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왕으로서의 정당성을 은폐하고자 하는 일종의 분장술에 불과했다. 그는 지독히도 전략적이고 계산적이었으며,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행보는 시작되었다. 역사책에서 언급되어지는 노비안검법과 과거의 실시를 통해 우리는 광종의 정치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호족이 지방의 실세로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노비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관리는 호족 세력의 경제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중앙 정부의 재정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후주의 귀화인인 쌍기에 의해 건의되어진 과거에 의한 인물 등용은 학문적 소양에 근거한, 일종의 관료제적 질서의 확립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당대에 긍정적으로만 여겨졌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최승로를 비롯, 소위 지배층에 속한 호족들은 자신들의 신분적인 이익을 빼앗는 광종의 행태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광종은 여전히 강한 군주로서 남고 싶어했다. 칭제건원을 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등의 상징적인 행위는 그의 이러한 야망을 잘 드러내 준다. 무엇보다도 그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그 칼날은 너무도 날카로웠다. 그것은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발악과도 같아 보였다. 고려를 개국하는데 공을 세운 원로들을 처참히 제거했고, 지방의 유력 호족 세력들 역시 그 칼날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인물들을 많이 등용하였고, 인재 등용에 있어서 지역적 차별 역시 가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장점으로 거론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살인적인 행각은 어느 누구도 그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을 듯 싶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는 신하 뿐만 아니라 광종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숙청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 후계자로 지목한 왕주까지도 끊임없이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아무리 난폭하더라도 광종 역시 인간이었고, 백성들의 민심 위에 군림해야 되는 왕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불교 행사를 통해 흩어진 백성들의 민심을 바로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과도한 불교 행사로도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마음에는 상처가 많았다. 저자는 광종의 숙청 덕분에 고려 왕조가 500년 가까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지만, 광종의 정치를 성공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그는 폭력을 통해 또 다른 폭력을 불러 일으켰고, 폭력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자 대에서 왕의 자리가 배다른 동생 계열로 넘어가고 만 것을 그가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는 권력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외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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