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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인물과 사상>에서 한국문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그와 같은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비판을 요샌 못봤다. 그냥 그분이 한국문학판엔 관심이 사라진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말해봤자 별로 바뀌는 게 없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모처럼 한국문단문학에 대해 제대로 비판을 하는 듯한 책이 나와서 반가웠고, 이 책에선 진정한 비판이 있지 않을까란 작은 기대감에 사보았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한국문학`이란 허상을 만들어내는 현재의 한국문학 시스템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문단문학 체계에 대해서 비판한다. 국가와 밀착한 한국문단문학을 생각하면 최근 모 작가가 누구 여행 가는데 따라간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미 국가와 밀착한 문단문학에선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다만, 그게 국가권력이 좀 더 노골적으로 억압을 행사하는 현 상황이기 때문에 눈에 띈 것일 뿐이다. 과거 일어났던 문학권력논쟁에서는 비평이 주례사 비평으로만 그친 것에 대해 비판했던 게 떠오르는데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문학시스템 자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창과와 국문과라는 교육시스템을 비판하고 한국문학-즉 문단문학이 국가 내 문학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문학에 대한 공적자금-즉 국가의 돈 투입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비평과 문학이 나올 리 없다. 비평집이 팔리지 않는 이유도 문예지나 출판사 청탁에 의한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설에 그칠 뿐 진지한 자세로 한 문제에 천착하는 비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영일은 전작비평, 장편비평을 제안한다. 확실히 나부터 우리나라 문학비평집은 안 사 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으니까. 왜 재미없을까, 내가 너무 공부를 안해서 그럴까 고민했는데 여기서 그 답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조영일이 말한대로 `청탁에 의해 씌어진 잡문`에 불과한 진정 중요한 문제에 천착한 비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전엔 창작가와 비평가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엄격해지면서 창작자와 비평가들은 타인의 평가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창작과 비평의 아카데미화가 일어나면서 비평집은 자기들끼리만 읽는 비평집이 되었고 비평가는 비평쓰기에 자신을 바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문예지를 사지 않는 이유는 당파성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 문예지를 사면서 읽는 것은 평론이란 말에 공감했다. 예전 모 문예지를 정기구독했을 때도 창작 부분은 거의 읽지 않았고 주로 평론 부분만 읽었었다. 문예지와 문학출판사의 공생관계 역시 진정한 비평을 불가능하게 했다. 또한 문예지가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는 상황에선 제대로 된 비평이 이루어질리 없다. 최근 주장되었던 장편소설 대망론이 허망한 이유는 그 논의가 내놓는 해결책이 겨우 장편소설 발전을 위한 국가기금 지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갇힌 문학이 지금 한국문학이다. 국가에 갇히면서 문학은 보수화되었다. 이 상황에서 진정 새로운 문학을 만들려면 그런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부재한 이유는 비평의 책임이기도 하므로 시대의 요구에 맞는 비평의 갱신이 필요하다면서 비평의 갱신 방법으로 조영일은 장편비평을 제의한다. 2008년에 일본문학에 대해 한국문학이 이겼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된 것에도 일침을 가한다. 일본문학은 신작 출간권수와 작가 수가 다양하지만, 한국문학은 몇몇 스타 작가에만 의존하므로 진정 한국문학이 부흥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한국소설가들 중에서 소설창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는 극히 드물고 대개는 겸업을 하는데 그렇게 한국문학이 몰락한 바탕에는 국가에 의한 문예창작지원시스템이 있었다. 그리고 청소년 문학이 성행하는 상황에 대해선 실제로 그 청소년 문학을 지탱하는 사람은 청소년 독자가 아니라 그들을 지도하는 어른들이다.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청소년을 독자로 삼는 문학이 아니다. 거기서 반항은 보이지만 결국 기존 사회로 그들은 복귀한다. 단지 교육적 목적을 의해 쓰인 것일 뿐 진정 청소년이 바라는 문학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츠이치의 <GOTH> 판금사태도 그런 상황과 연결된다고 한다. 라이트노벨에서 반항하는 사람들은 기존사회로 복귀하지 않는다. 결국 검열하는 자들이 원하는 건 기존 사회체제의 유지다. 이렇게 기존 사회체제의 유지로 이어진 문학이 새로운 문학을 창출해낼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간윤위 사태 역시 실질적으론 별로 윤리적이지도 않으면서 제스처만 요란해서 일어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들이 말하는 윤리성이란 결국 기존 사회를 유지하려는 보수성에서 기인한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새로운 게 나올 수 있을까? 문학은 기존 세계에 대한 반항에서 새로움을 얻었다고 기억하는데 현 체제와 결탁하고 현 상황을 유지하려 하면서 문학이 시대를 이끌어 갔던 예전으로 돌아가길 꿈꾸는 건 헛된 망상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