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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위인전 등의 기록물들을 보면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신화를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인물은 다른데 형식이 비슷하여 다 같은 인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짧은 글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아 내려니 해당 인물이 어린시절부터 이어지는 삶이 강렬해야겠죠. 그런데 그 강렬한 한 인간의 삶을 다룰 때, 폄범한 요소들은 필요가 없었을 터이고 그래서 위인전이 그렇게 읽다보면 질리는 그런 책이 되지않았나 싶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일관되게 앞뒤로 다 위대할 수가 있겠어요. 아마도 대단한 사람들의 사명감 투철한 삶을 모양을 만들어 놓아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읽고 겁없이 투철한 사명감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뭔가 해 낼 것이라는 착각들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나오는 책들에 더 애정이 갑니다. 이 책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신혼부부의 육아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이고, 이 책의 제목에서 언급된 제시는 이 부부의 첫딸 이름입니다. 이야기는 액자식으로 구성됩니다. 피난, 대피, 물자부족이 일상인 삶 속에서 제시를 키워낸 최선화 선생이 손녀의 대화에서 시작되죠. 일기예보를 주의깊게 보는 할머니를 손녀는 이해할 수 없지만, 비가오면 공습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할머니의 비 사랑은 당연한 것이겠죠. 할머니가 손녀(제시의 딸)에게 딸 제시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진짜 독립운동가의 육아일기입니다. 전쟁의 상황에 따른 임시정부의 이동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삶도 움직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정부의 지원이 함께 한다고는 하나 그 삶이 안락하지는 않았겠죠. 공습에 대피하고, 미쳐 피하지 못해서 죽었거나 자신들이 들어갈 뻔한 동굴이 무너진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이동하는 오랜 길에 거친 물길을 만나 고생하기도 하고 내리는 비에 집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태어나고 자라고 사물을 구별하고 말하고 의사를 표현합니다. 부부에게는 그 자체가 경의로움이겠지만, 삶은 감탄만 하고 있게 만들지는 않지요. 수 많은 역경 속에서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6.25까지 이어지진 않습니다. 만약 이어진다면 저는 읽기를 그만두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 삶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할머니는 과거로 가죠. 액자식 구성이 이렇게 구성되는 것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컬러에서 흑백화면으로 화거로 가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과 짝을 이룹니다. 서울의 중년의 제시가 다시 아버지에게 안기는 장면으로 마무리 됩니다.
내용 중에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합니다만, 전쟁 중에 독립운동을 하는 부부가 쓴 육아 일기입니다. 그 사이사이 삶에 대한 이야기와 주변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그 당시를 가늠하게 하고, 험한 역사 속에서도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다르지 않음을, 어디서든 삶이 계속 된다는 것에 감동하였습니다. 책 상태 좋습니다. 들고다니기에는 무게감이 있습니다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마지막의 사진은 이 이야기가 더욱 감동적이게 만드는 듯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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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된다. 지난 야만의 정권에서 그토록 임시정부를 부정하기 위해서 각종 해괴한 논리를 들어 논란을 부추겼지만, 촛불혁명으로 일어선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그 논란을 일축했다.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https://youtu.be/R27OE7atDf8 - 문 대통령 "2019년은 건국 100주년"
이후 12월 중국 충칭에 방문하여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여 "임시정부는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법통입니다. 그래서 2019년이면 3·1운동 100주년이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고, 그것은 곧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됩니다." 라며 임시정부의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https://youtu.be/Qjh3N3cdM9s - 문 대통령, 충칭 임시정부 방문
disallowed url - 'https://www.facebook.com/plugins/post.php?href 지난 야만의 정권을 통해 여러 소중한 가치를 희생했고 모순적이게도 이를 통해 그 중요성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역사의 중요성. 특히 독립운동사를 관심가지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지난 적폐세력을 강력하게 처단하지 못하는 모습에 불만족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위와 같이 임시정부를 강조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행보라고 본다. ![]() 조금 더 바란다면 김구, 이시영, 안창호, 윤봉길, 신채호, 한용운, 안중근, 조소앙, 지청천(지대형), 남자영, 김규식, 정정화, 여운형 등 유명한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그 기록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위의 도서 『제시이야기』는 독립운동가인 양우조, 최선화 부부의 육아일기를 그림으로써 그토록 참담했던 시대에도 희망을 그리며 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의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 ![]() ![]() ![]() 참담했던 그 시대를 버티면서 기록을 남긴 양우조, 최선화 부부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를 멋지게 그려낸 박건웅 작가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제시의 딸인 김현주 님이 남긴 서문에서 출판을 하는 과정을 회고하며 "소중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라고 했는데, 나 또한 『제시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소중했고 다행이라 느낄만큼 좋았다. 위의 도서가 많은 이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다시 만나다… '제시의 일기'가 세상에 나온 지도 18년이 됐다. 빛바랜 사진이 붙어 있던 낡은 일기장이 책으로 나오던 날, 일기를 쓰셨던 할머니와 일기 속 주인공 어머니께서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이거 한번 보련?" 하시며 할머니께서 서랍 속에서 책 한 권을 고이 꺼내 건네주셨을 때, 표지를 넘기고 가장 먼저 나타난 맨 앞 장에 써 있던 글이 '제시의 일기'였다. 내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엄마가 태어나던 날부터 시작되는 일기는 하루하루 그날의 날짜, 장소로부터 시작하여 하루에 있었던 일을 때론 간략하게 때론 깊은 의미를 담아 살아 있는 듯한 글씨체로 담고 있었다. 내 엄마가 아기부터 커가는 모습을 일기를 통해 보는 것도 참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한 번도 뵙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이든지 기록하시는 철저하고 꼼꼼한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시간 여행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기쁨이었다. 일기를 현대화된 문장으로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할머니를 인터뷰하여 일기 내용에 보충해서 넣고 출판을 하는 작업은 일 년여가 걸렸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 이제 나는 미국에서 교포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외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혼을 넣어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역사의 뒷모습으로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조상들의 고단하지만 희망이 있었던, 다음 세대를 통해 희생했던 그 자랑스러운 삶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제시의 일기'는 매주 토요일 한국학교에 모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천여 명이 넘는 2,3세 한국계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속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임시 정부라는 지붕 아래 한 공동체로 같은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되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할 일이 많음을 매순간 느끼게 한다. 일기 속, 하루하루의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그림으로 다시 살아나는 이 책을 어서 할머니와 엄마께 보여드리고 싶다. 비록 이 책의 출판을 함께 기뻐하지는 못하시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일기 속 제니, 내 이모와 함께 이 책이 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실 것이다. '제시의 일기'를 찾아 새롭게 세상에 보여주신 우리나비 출판사와 『제시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분들과 가족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역사는 그 시간을 기억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존재한다. 그래픽노블 『제시이야기』가 소중한 것도 그 이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록이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박건웅 작가님의 그래픽노블 『제시이야기』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리고 가슴 설렌다. 김현주 (제시의 딸, 실리콘밸리 한국학교장) p 006, 007 서문
============================== 오늘 비로소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제시를 안아줬다. 언제부터인지 제시는 스스로 머리와 목을 바로 세우고 있었다. 이 세상에 나온 지 고작 두 달 정도지만 벌써 자기 몸 간수를 단단히 잘 하고 있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아기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설사증이 생겨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한의학에 정통한 이시영 선생님의 처방으로 '백아삼전', '등심일속'을 먹였다. 이시영 선생님은 우리들 중 아픈 사람이 생겨 찾아가면 약처방을 내려주셨는데… 그때… 하늘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육남매를 낳고 나와 동생들이 아플 때면 어쩔 줄 몰라하며 애타하시던 어머니… 먼 이국 땅에서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는 이 딸을 아시는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새삼 새로운 날이었다. p 046 ~ 048 2. 피난 ![]() ============================== 아기도 사람의 표정에 섬세하게 반응한다. 안좋은 소리로 말하면 서러워하고 밝은 얼굴로 얼러주면 웃곤 한다. 어른이 된 우리의 마음도 사실은 이렇게 민감한데 그것을 숨기고 사는 게 아닌가? 세상을 살면서 감정에 무뎌지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안 좋은 태도를 가지고 말하면 자신도 모르는 상처가 쌓일 것이다. 아기의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순수한 사람이라고 마치 특별한 사람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아기 때의 반응이 인간 본연의 느낌이요 반응일 것이다. 아기들의 그 즉각적인 반응에서 사람들 얼굴 속에 숨겨진 모습을 찾게 된다. 친절한 표정에는 미소가, 화나고 거센 표정에는 아기들처럼 그렇게 울고 싶은 서러움이 마음속에 떠오르다… 이곳 중국 사람들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며 새삼 어떤 중국아기의 천진스러운 표정을 떠올려보게 된다. p 049, 050 2. 피난 ============================== 1938년 10월 3일 세상속에 들어온 걸 깨달은 건지 한 세상 함께 지니고 살아야 할 자신의 도구들을 점검해보고 있다.
제시에겐 이곳이 고향이 아닌 낯선 중국이란 사실도 평생을 믿고 살아야 할 나라를 빼앗겼는지도 하나도 중요치 않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 그것이 눈앞에 닥친 더욱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문득 우리 아기를 볼 때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p 053, 054 2. 피난 ============================== 1938년 11월 21일 아침에 유주를 향하여 출발했다. "여기는 계라라는 지방이에요! 산세가 험악하고 천연굴이 많은 곳이에요. 그래서 병기창이 옮겨와 있고 기계화 부대 학교가 있어요." 11월 24일 "이런, 또 여울에 걸려 멈춰섰네!!" 여울과 여울, 끝도 없는 강물길에서 쉬지 않고 만나는 것이 바로 여울이다. 여울은 위험하기도 하고 우리의 피난길을 더욱 멀고 길게 만들지만 오늘처럼 멈춘 배 위에서는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에요." "맞아! 그렇네." 비록 피난 중이나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술과 고기를 준비해놓고 잘 놀았다. 개천절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제의 침략이 대두되면서부터다. 단군시조를 중심으로 한민족으로 내려온 우리 동포들의 하나됨과 자부심을 일깨우는 개천절은 임정인사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남다른 축제일이다. "우린 대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단군시조 아래 하나로 내려오는 민족애를 떠올린다니까요. 하하하 ㅡ" 개천절 행사를 핑계삼아 조금은 긴장을 풀고 좋은 음식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또한 좋으리라. p 072 ~ 074 3. 남쪽으로 ============================== 1938년 12월 6일 새벽 5시쯤. 깨어서 엄마 엄마 하고 삼사 차례나 계속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오늘이 처음이었다. 엄마라는 소리에 수많은 의미가 떠오른다. ![]() ![]() 함께 자고 함께 울며 나눔과 희생을 행해야 하는 이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아기가 엄마라고 부를 때… 엄마가 느끼는 사랑과 책임감, 엄마의 어렵고 힘든 역할이 그 이름 '엄마'라는 단어로 순간 녹아내린다. 세상의 거의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제시가 눈을 뜨고 자기 옷을 만들고 있는 엄마를 다정히 바라보더니 다시 평화로운 꿈나라로 돌아갔다. p 093, 094 4. 공습 ============================== 1939년 유주의 정월은 명랑치 못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 선배와 동지들의 착잡하고 평범치 않은 감상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국민당군이 일본군에 밀려 우한으로 후퇴하였고…" 제시가 세상에 태어난 지도 햇수로 한 고개를 넘어서게 됐다. 약 2주나 특별히 주의하여 본 결과 제시의 표현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장하여 먹고 싶을 때는 눈물을 흘려가며 엉엉 울고… 안아달라는 것은 허리와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눈물도 흘리지 아니하고 에에 소리를 낸다. 젖을 먹다가도 대소변이 마려우면 젖먹던 걸 멈추고 사지를 뻗치고 웅웅거리며 자다가 대소변이 마려우면 처음에는 눈을 감은 채 질척거리다가 급하면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두손으로 잡히는 대로 쥐어 뜯는 것이다. 이상이 제시의 유일한 의사표시 수단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큰 웃음과 높은 소리를 지르며 하루 종일 잘 놀고 있다. 하루하루 아이의 기분이 엄마 아빠의 기분까지 좌우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은 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낯선 땅 낯선 시간 속에서 바깥정세에 의해 오락가락해야 하고 풍전등화의 처지이지만 아이는 바깥세계와 무관한 듯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 먹고 배설하고 제 몸을 관찰하고 시험해보고 안 좋은 자극이 오면 그대로 반응한다.
이 시간 이 땅에서 아버지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가정이란 보금자리에서 따뜻한 관심과 가슴으로 그저 아이를 지켜주는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선택을 물려주며 어쩔 수 없으니 감수하라고 할 것인가? "아빠… 왜요?" 아이가 훗날 이국을 떠돌면서 생활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너의 미래를… 위해서야~" 짧은 한마디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것으로 독립성취라는 간절한 우리의 소원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으로 우리 가족의 이 시간을 담아내고도 남을까? p 100 ~ 105 4. 공습 ============================== 오늘도 역시 제시는 잘자고 들어왔다. 저녁이 되어서는 제시의 앞이마와 귀밑까지 머리가 자라 잠든 틈을 타서 깎고 다듬어줬다. 이것이 제시의 두 번째 이발이다. 제시의 부모로서의 역할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마치 거울이 되는 것과 같다. 자식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거울이 깨지면 그 속에 비춰진 모습도 흉하게 일그러진다. 아이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에 대해 눈 뜨게 된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거울이 되어… 그 아이의 참 모습을 보여줬고… 또 깨닫게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p 107, 108 4. 공습 ============================== 1939년 3월 4일 저녁엔 유주에 들러 잠깐 머물고 있는 한국광복청년공작대 주관의 위로대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제시와 같이 갔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는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을 지낸 노백린 장군의 아들 노태준이 단장으로 작년 10월에 만들어졌다. "사진 찍을 기회가 속히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나온 김에 사진 찍고 갑시다!" 사진관에 가서 앉혔더니 보이는 것이 모두 새것들이라 두리번거리며 만져보고 툭툭 쳐보기도 한다. "뿌우우 ㅡ" "응? 제시가 아침부터 침뱉기를 하네! 애가 왜 그러지? 못된 버릇이 생겼나? 장난감을 물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네." 그래서 손으로 잇몸을 만져보았더니… "여보! 왼쪽에 아랫니가 하나 나기 시작했어요~" 기념할 만한 일이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 먹기 위해 하나씩 준비를 시작해간다.
아이가 씹는 것은 음식물뿐만은 아닐 것이다. 교과서 지식을 씹고 세상속의 다양한 모습을 한데 섞어 다져가며… 때로는 기가 막히도록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의 이중성을 씹고, 성공과 실패로 나누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세상살이를 꼬곡 십어가며 제시 자신의 살로 만들어갈 것이다. p 109 ~ 112 4. 공습 ============================== 1939년 4월 19일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네~" "유주를 당장 떠날 것처럼 얘기하더니… 우린 언제 떠나는 걸까요?" "아침부터 비 내리는 거 구경하자고 자꾸 문 밖으로 나가자고 하네." 떼를 쓰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치지를 않는다. ![]() 그쳤다 내렸다 하는 요즘의 비처럼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게 바로 우리 앞의 정황이다. p 120, 121 4. 공습 ============================== 1939년 5월 3일 중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넓은 중국 땅의 다양한 지역적 특색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중국인들은 소주에서 태어나 항주에서 살며 광주에서 먹고 유주에서 죽는게 소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소주는 방직공장이 많아 옷감이 좋아서 좋은 옷을 걸칠 수 있기에 태어나기 좋은 장소고 항주는 풍경이 수려하기에 삶을 즐길 만 하고 광주는 열대과일과 요리로 유명하며 유주는 아름드리 나무가 많아 관을 잘 만들기로 유명하기에 죽기에도 좋다는 설명이다. 저마다 출신지역에 따라 성격도 다르고 특색도 천차만별인 중국인들의 소원답다. 상해에서 시작하여 중국대륙의 한복판으로 호남성 장사 남쪽 끝인 광동성 광주를 거쳐 서북쪽 광서성 유주를 돌아 다시 서쪽 구석인 사천성 기강까지… 우리는 중국인의 부러움을 살 만큼 중국여행을 다닌 셈이다. 비록 피난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p 155, 156 6. 은하수 ============================== 책을 보면 책장을 찢어버리려고만 하던 제시가… 언제부터인가 책을 들고 읽는 흉내를 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크거나 작거나 머리빗을 보면 들어서 앞머리와 뒷머리를 빗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좋아하고 있다. 약 일주일 동안 콧살을 찌푸리며 웃던 버릇은 이제 그만두고… 오늘부터는 입을 크게 벌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는 버릇이 생겼다. "도대체 누구를 보고 따라하는 거니?"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신체의 변화와 감정의 표현들은…
제시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모든 걸 기록한 엄마 아빠의 대견함을 알 수 있을까? "아빠! 정말 내가 이랬다고요?" 몸짓과 옹알이, 그 하나하나의 의미가 우리에겐 얼마나 신기하고 소중했던지… 아기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시간의 이르고 느림을 제외하면 어쩜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된다고 할 것이다. 제시가 언젠가 인생의 좌절에 부딪힐 때 우리에게 제시가 지녔던 소중한 의미를 기억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제시가 이 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제시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부모 된 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기쁨을 계속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제식의 작은 몸짓과 표정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의미만큼, 제시 자신의 행동과 표정이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무한한 의미를 깨닫기 바란다. p 157 ~ 159 6. 은하수 ============================== 1940년 3월 14일 이동녕 선생님께서 어제 오후에 작고하셨다. 임시정부의 제일 웃어른이 가심으로 한교들은 충격이 컸다. 돌아가시면서도 한교들의 화합을 유언으로 남기셨다고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 임정의 원로선생님께서 타개하신 이 시간에 철 모르는 제시는 밤낮 노래 부르며 봄기운과 같이 잘 자라고 있다. 죽음과 삶이란 이런 것인지… 생명이 생기고 사라질 때를 우리는 수없이 많이 목격한다. 그렇게 해서 시대가 바귀고 또 다른 삶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은 돌계단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 하나하나 밑받침이 되는 돌 위에 또 다른 돌… 긴 세월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고 그들이 존재해야만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 몫의 계단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단하고 무너지지 않는 중심잡힌 하나의 돌계단을… 역사란 그렇게 쌓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위 어느 자리엔가 제시의 돌도 서게 될 것이다. p 186 ~ 188 6. 은하수 ============================== 1940년 10월 26일 경계경보가 들려왔다. 급히 먹고 나간다고 나갔으나 십여 분 지체가 되었던 모양이다. 도중에 비행기 소리를 듣고 황급히 숲속으로 달아났다. 피하기는 했으나 모두들 황급한 태도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집에 돌아와서 찬밥을 끓여 막 먹고 일어서는데… "제시야~" 아빠의 음성이 들려왔다. 떨어져 있은 지 두 달이 채 못 되었는데 제시는 서먹서먹해서 반가운 표시를 못하고 숨는 것이다. 그러더니 한 시간도 못 되어서 아빠를 부르며 따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입으신 의복이 떠날 때와 달라서 그랬던가 보다. 아빠는 중경에 계실 때 숙식이 많이 불편하셨던지 몸이 많이 수척해지셨다. 제시의 선물은 쇠고기, 양말, 과자, 귤 등이었다. 제시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르겠다. 고구마, 밤만 먹다가 얼마나 맛나하는지…
궁한 생활에서 늘 부족한 듯 지내다가 맛난 음식을 만나는 기쁨은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비록 그것이 제 아무리 크더라도 아버지가 돌아오신 기쁨에 비할 수 없으리라. p 218 ~ 221 7. 아기 키우기 ============================== 1940년 11월 1일 오늘, 일본군이 안남에서 철퇴하고 남령과 용주 등지인 광서선이 철퇴되며 강소성 소흥이 광복되었다는 중국신문의 보도가 있었다. "이제 기강 땅에서 지낸지도 1년 6개월이 되네. 이번에 중경 근교에 새로 건설되는 한인부락 토교로 이사가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앞으로 임시정부 일로 중경 시내에 있어야 할 것 같고…" 1940년 11월 9일 배에다 살림살이 세간을 전부 싣고 다른 식구들도 같이 탔다. 이로써 기강은 당분간일지 영영일지 모르는 작별이다. 엄마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는데 웬일인지 서운해 하고 있다. "음…큰일이오~ 강물이 적어 걱정이오." 아니라 다를까 30리쯤 와서는 모래 여울에 걸리고 말았다. 간신히 배를 끌어내어 2리가량 더 와서 작은 마을 부두에 대고 밤을 지내게 되었다. 낯선 곳… 낯선 상황에 처해지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일이지만… 어딘지 이름 모를 곳에서 보이지 않는 깜깜한 눈앞의 풍경을 응시하고 있으려니… 묘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떠오르곤 한다. 가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건지 모르겠고 이 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내 앞에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인생의 비밀처럼… p 222 ~ 226 7. 아기 키우기 ============================== 194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1941년 새해인사를 드리기 위해 강 건너 정부 집으로 가서 노인 선생님들로부터 사탕과자를 받고 제시는 즐겁게 놀다가 피곤했는지 아빠 품에 안겨 한참을 늘어지게 자더니… 사고 파는 물건이 오밀조밀 많은 시내여서 그런지 제시는 갖고 싶은 것을 사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 이제 이 아이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얼마나 많아질까? 생후 세돌이 못 된 아이에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생겨난다. 내 것이란 이름으로 가지고 싶은 마음. 사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함께 보고 나눌 수 없는 것인가? 오늘 우리가 갖는 많은 절망과 어둠이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p 238 ~ 240 8. 보금자리 ============================== 1941년 7월 4일 제시의 만 세 돌 되는 날이다. 아침 6시 반에 공습경보가 나서 아무것도 살 수 없이 되더니 저녁 6시 반이 채 못되어서 또 경보가 났다. 그러다보니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피난가기에 분주했고 더위는 실내온도가 38도나 되었다. 너무 뜨거워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 피곤함은 비할 데가 없었다. 전등, 수도시설이 안 된 강북이라 물은 한 지게에 1원 남짓 주고 사먹는데… 그 물도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에 가득 붓고는 백반을 휘둘러 놓아두면 그제서야 흙물이 맑아진다. 중국땅 물이 거의 다 흐린 물로 우리 고국 강산에 흐르는 물과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그 물도 우리 가족만 먹는 것이 아니다. 국무위원들께 나눠드리고, 이웃집에서 달라고 하여 주고 나면 곧 바닥이 드러나고 만다. 결국 제시의 세 돌 날에는 선물은 커녕 물 한 짐조차 살 여유 없이 하루가 가버렸다.
생명의 꽃이 한 해 두 해 되풀이해서 피는 동안 제시라는 나무는 점점 굵어져가고 깊이 뿌리를 내려간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컴컴한 땅속에서 성숙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보인 이 날을 매해 기념하고 축하하는 대신 비바람에 다칠까 막아보고 고깔을 씌어보고 하고 있다. 이때 나무에게 예쁜 치장은 해주지 못해도 해마다 변해가는 제시란 어린 나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걸어주게 된다. 잠이 든 제시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지난 한 달 동안 제시는 조금도 키가 크지 못했어요. 그런데 못하는 말이 없고 꾀와 철은 한없이 늘어가고 있어요!" 자꾸자꾸 변해가는 제시. 그 제시를 품어야 할 세상, 네 살된 아이에게 보이는 이 세상은 참으로 어지럽다. 하지만 제시! 건강하게 잘 성장해서 언젠가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을 기대해보마. 생일 축하한다! 제시! p 256 ~259 8. 보금자리 ============================== 1945년 7월 12일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점점 심해지더니 곡식 값은 올라만 가고 덩달아 모든 물가가 더 치솟기만 한다. 세상엔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많다. 삶에 대한 애착이 사람을 더욱 지혜롭게 하고, 목표를 향한 삶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듯 우리 교포들의 삶은 꿋꿋하게 진행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세월의 끝에서 깊은 감회를 갖고 돌이켜보는 순간도 있으리라. 그때 가서는 지금 살기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제시는 2차로 아랫니 하나를 뺐다. "어제처럼 이가 나왔다고 하던 게 엇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를 빼느라고 야단이네. 후후." 이제 나올 새 이는 평생 지니고 사용할 수 있는 이가 될 것이다. 이는 이대로, 손발은 손발대로, 눈코입은 눈코입대로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제시의 건강한 생활을 이뤄갈 것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해 하나의 몸을 움직여가듯이 장성한 후의 제시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서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혼자서 큰 일을 이룰 수는 없다. 각자의 능력이 모여서 한 가정을 이루고 한 사회의 모든 이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나라를 되찾는 일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이가 되어 혼자 자리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p 306 ~309 10. 고통의 시간 ============================== 시련 속에서도 아이는 성장한다 독립운동과 나의 인연은 단순했다. 우연히도 나와 이름이 같은 독립운동가가 계셨던 것. 검색을 해보니 『딸보다 조국을 사랑한 아버지, 박건웅』이라는 책이 있었다. 아내가 "당신은 조국보다 딸을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모습은 8,90년대 학생운동 시절에도 종종 보아왔다. 가족과 연애, 모든 것을 사치로만 여기고 이 같은 것을 버려야만 진정한 운동가로 거듭날 수 있음을 강조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라를 잃은 일제식민지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그러하리라 여겨졌다. 매순간 생사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살아가던 독립운동가에게도 조국과 가족 그리고 개인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고뇌와 선택의 순간이었으리라. 태어나 처음으로 취재를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상해를 가보게 되었다. 윤봉길 의사가 일본전승기념일에 수통폭탄을 던졌던 홍구공원, 그리고 그 전날 거사연습을 위해 오갔던 길을 걸으며 글로만 봤던 역사가 어느새 가슴으로 다가왔다. 상해 임시정부청사와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가 묻힌 추모공원 그리고 항주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까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은 중국 곳곳에 남아 있었고, 그 길을 한 걸음씩 걷고 있자니 어느새 나도 독립운동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시의 일기를 통해 우리가 평소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숨은 생활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평범함 속 용기가 이국만리 수십만 킬로를 걸으며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렸다는 것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이었다. 화창한 날에는 폭격이 있을까봐 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러나 전쟁과 폭격 속에서 모든 것이 죽어가고 파괴되어도 아이는 성장하고 자란다는 사실. 하나의 생명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작은 생명이 미래의 희망이요, 곧 대한민국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박건웅 p 354,355 작가의 말 ============================== ![]() "과거를 회고하건대, 좋게 말해서 나의 인생은 국가와 민족이 사람다운 생을 살기 위하여 희생된 인생 중 일인이었다고 하련다. 이 몸은 이제 세상사와 멀리하였거니와 생전 함께한 가족은 부디 명심하여 고인의 미진한 애국애족 정신, 즉 전체 동포의 위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지 말아라. 개인은 전체의 일분자요. 일분자가 모여 대체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비겁은 취하지 말고,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말아라." 양우조의 유언 중 일부 p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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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다. 너무나 작고 어려서 기억나지 않을 그 역사가, 그 아이의 삶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그의 부모가 일기로 기록했고, 책으로 나왔으며, 이를 다시 박건웅이라는 작가가 그래픽노블로 만들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옛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대학시절 걸개그림에 있던 그림들. 민중미술이라고 칭해지던 그림과 언뜻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부드럽고 거부감이 없다. 30년대 후반부터 해방때까지의 모습을 진짜 그당시처럼 잘 표현했다. 그 시대에 적절히 어울리는 그림체, 표현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고혈을 빨아먹던 40년대초, 우리의 독립운동은 지지부진했었다고 생각했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핍박받아왔기에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많은 이념과 자기주장, 대립이 많았던 시기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여전히 독립을 위해 싸웠고, 지쳤지만 서로 격려하고 방법을 모색했다는 것을 내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해하면서 한편으로 그럼 그렇지, 인간이 별수 있나 하는 그런 생각. 오만했다.
제시이야기는 그당시 중국에 있었던 임시정부의 삶을 제시라는 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개인과 사회적 삶이 어떻게 얽히고 이어지는지, 삶이란 어떤 것인지, 그렇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면서도 끊임없는 일제의 중국침략에 타국을 이리저리 이동해야하는 고달픔과 한편으로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쁨과 그 아이가 자라나는 행복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놀랍도록 어울렸다. 나의 할머니가 지나왔을 그 시간들을, 장소는 다르지만 같이 걸어왔으리란 생각에 마음도 찡했다.
일본이란 나라의 무자비함과 전쟁의 잔혹함,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념대립이 서글펐다. 임시정부이지만 독립되지 못하고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나라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에 아쉽고도 고마웠다.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모습이, 그런 모든 사회현상이 개인의 삶에 남아 있는 것이 슬펐다.
이 책은 액자구성처럼 처음과 끝에 현재가 컬러로 보여진다. 할머니가 일기를 보며 회상하는 구성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가끔 화자가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밥이 소중한 분이었다. 무엇보다 밥을 잘 먹어야 했다. 그 당시 밥을 먹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에 배인 습성이리라. 이 책의 할머니(제시의 어머니)는 날씨에 민감했다. 늘 아침마다 날씨를 확인했는데 그 이유가 날씨가 좋으면 하루에 두세번도 울리는 공습으로 대피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 지금까지 날씨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사회는 과연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은 가장 잔혹했던 40년대 초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개인의 삶에 좀더 중점을 두어 기술했기에 마치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친근하고 이해가 가고 애닯다. 독립이란 가치아래 사회적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개인의 역사도 중요하다는 점을 보인 것에 감동을 느낀다.
한쪽에서 죽고 한쪽에선 아이의 삶이 이어지고. 인생은 그랬던 것이고, 그런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제시이야기는 일반적인 우리네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무겁지 않고 우리의 삶과 사회적 역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알 수 있는 책이기에. 그들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하기에 말이다.
우리의 어른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 뒤를 잇고 있는 우리들, 어린 세대들에게 고맙다. 삶은 그래도 흘러가는 것이다. |
| 이 책은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인 '제시의 일기'를 그래픽노블로 재구성하여 복원한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육아일기일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절에 있었던 선조들의 독립운동, 중일전쟁의 참상 그리고 여러 역사적 사실을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좋은 독서 경험이 되었다. |
| 독특한 소재의 그래픽노블이었다. 책의 제목에 있는 '제시'의 부모가 일제 강점기 시절 중국에서 체류하며 썼던 육아일기와 독립운동, 그 시절 중일 전쟁의 참상들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의 고난했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처음 몇 장을 읽다 보면 할머니가 매일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내일 날씨가 흐리다며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책을 완독한 후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타국에서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리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노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 책으로 먼저 읽은 후 만화 <제시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신혼생활을 보내게 된 독립운동가 부부의 일상이 실감나게 그려져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