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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는 그동안 바다를 주제로 끊임없이 글을 써온 그가 2년동안 섬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격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아마도 이 섬은 작가의 고향인 여수 거문도일 것이다...)
바다는 옛 코흘리개 친구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어떤 여인네, 수(秀)], 집나간 부인과 돌아온 그를 죽으라고 소리치지만 끝내 울며 아내를 끌어안는 모습과 같이(달빛이 지면...)아름다운 공간이기도 하지만 헤어졌던 애인이 그리워 그 애인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기도 하고(새), 안개로 인해 제주도까지 표류하고 그 뒤로 죽음을 위해 묵묵히 단을 쌓는[단(壇) 쌓는 노인]것 처럼 죽음과, 쓸쓸함,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한다.
예전에 읽었던 홍합이라는 책에서는 바닷가의 비릿한 내음이 싱싱하게 그려졌다면 여기서는 삶의 모습이 좀 더 무겁고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바다는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만큼 그 댓가는 커서 한 순간의 실수가 죽음과 연결되는, 그런 양면성을 지닌 곳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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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들에 '섬'이란 단어 그 자체는 정지된 듯한, 고요한 듯한, 뭔가 푸르른, 그러면서도 신비로움을 주기에 충분한데, 그 곳에서 펼쳐지는 자잘한 삶과, 그 삶 구석구석 스며있는 적막, 무적소리, 안개, 달빛, 바람... 이것들은 과학과, 산업과, 속도에 중심을 잃어가는 우리네 모습을 한바탕 뒤집어 엎은 뒤, 태풍 뒤 고요처럼 다시 평온하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소중한 대안을 준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이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나, 사랑에 실패한 연인이나, 주체하지 못하는 욕정에 헐떡이는 자 누구든 한번쯤 '섬'에 갖혀볼 일이다. 그 넉넉하고, 꿈틀대고, 관능적이면서, 삶의 극한을 보여주는, 그 생명, 죽음 속에서 주린 마음 다시 추스려 볼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항상 소란스러운 마을은 비 덕분에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비란 호들갑스럽고 들뜬 사람들의 마을을 가라앉혀주는 존재 아니겠는가. 그러나 또한 비라는 물건이 거듭되다보면 가라앉다 못해 너무 침잠해버려 나중에는 몸살기가 돌고 짜증이 나다가 급기야 무언가가 솟구쳐 살아온 땅을 버리고 싶어지게 만들기고 한다. 마음에 곰팡이가 피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장마철에는 다들 영혼의 방랑기를 조금은 다독여 반듯하게 뉘어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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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장 그르니에의 <섬>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했더니만 주르륵 많은 책들이 따라 올라왔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추가로 선택해서 카트에 담아 주문했더랬다. 따라서 몇 권의 <섬>이 나에게 배달되어 왔는데, 한창훈의 <섬>이 내가 두 번째로 읽기 위해 집어든 '섬'이다. (다음에 집어 읽을 섬은 르 클레지오의 <섬>)
한 남자의 시점으로 그가 마주한 고독과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지루하고 심각한 내용으로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어진 것. 남녀가 섬으로 하루 들어왔다가 벌어지는 사건, 섬이 답답해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섬을 뛰쳐나갔다가 돌아온 여자와 그녀에게 죽으라고 종용하는 남편, 바다 너머 뭍을 그리워하는 절름발이 소녀, 배에서 생선을 낚으며 먹으며 수다를 떠는 남자들, 귀신이 나오는 집....
각자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한덩어리임이 분명한 그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그야말로 섬에 있었다.
그의 섬은 고독하기도 했지만 참 따뜻하기도 했다.
나도 한 몇 달 고독한 섬에 쳐박혀 책이나 계속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즐거우리라.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도 섬 사람들을 관찰하며 깊은 생각의 바다에 잠기곤 하겠지.
한동안 한창훈의 섬에 머무르며 이 여운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마치면 르 클레지오의 섬으로 항해해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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