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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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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는 그동안 바다를 주제로 끊임없이 글을 써온 그가 2년동안 섬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격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아마도 이 섬은 작가의 고향인 여수 거문도일 것이다...)   바다는 옛 코흘리개 친구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어떤 여인네, 수(秀)], 집나간 부인과 돌아온 그를 죽으라고 소리치지만 끝내 울며 아내를 끌어안는 모습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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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는 그동안 바다를 주제로 끊임없이 글을 써온 그가 2년동안 섬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격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아마도 이 섬은 작가의 고향인 여수 거문도일 것이다...)

 

바다는 옛 코흘리개 친구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어떤 여인네, 수(秀)], 집나간 부인과 돌아온 그를 죽으라고 소리치지만 끝내 울며 아내를 끌어안는 모습과 같이(달빛이 지면...)아름다운 공간이기도 하지만

헤어졌던 애인이 그리워 그 애인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기도 하고(새), 안개로 인해 제주도까지 표류하고 그 뒤로 죽음을 위해 묵묵히 단을 쌓는[단(壇) 쌓는 노인]것 처럼 죽음과, 쓸쓸함,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한다. 

 

예전에 읽었던 홍합이라는 책에서는 바닷가의 비릿한 내음이 싱싱하게 그려졌다면 여기서는 삶의 모습이 좀 더 무겁고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바다는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만큼 그 댓가는 커서 한 순간의 실수가 죽음과 연결되는, 그런 양면성을 지닌 곳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c******0 2007.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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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켠 마음만큼한 '섬' 하나 안겨주는 소설
"가슴 한켠 마음만큼한 '섬' 하나 안겨주는 소설" 내용보기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들에 '섬'이란 단어 그 자체는 정지된 듯한, 고요한 듯한, 뭔가 푸르른, 그러면서도 신비로움을 주기에 충분한데, 그 곳에서 펼쳐지는 자잘한 삶과, 그 삶 구석구석 스며있는 적막, 무적소리, 안개, 달빛, 바람... 이것들은 과학과, 산업과, 속도에 중심을 잃어가는 우리네 모습을 한바탕 뒤집어 엎은 뒤, 태풍 뒤 고요처럼 다시 평온하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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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들에 '섬'이란 단어 그 자체는 정지된 듯한, 고요한 듯한, 뭔가 푸르른, 그러면서도 신비로움을 주기에 충분한데, 그 곳에서 펼쳐지는 자잘한 삶과, 그 삶 구석구석 스며있는 적막, 무적소리, 안개, 달빛, 바람... 이것들은 과학과, 산업과, 속도에 중심을 잃어가는 우리네 모습을 한바탕 뒤집어 엎은 뒤, 태풍 뒤 고요처럼 다시 평온하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소중한 대안을 준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이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나, 사랑에 실패한 연인이나, 주체하지 못하는 욕정에 헐떡이는 자 누구든 한번쯤 '섬'에 갖혀볼 일이다. 그 넉넉하고, 꿈틀대고, 관능적이면서, 삶의 극한을 보여주는, 그 생명, 죽음 속에서 주린 마음 다시 추스려 볼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항상 소란스러운 마을은 비 덕분에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비란 호들갑스럽고 들뜬 사람들의 마을을 가라앉혀주는 존재 아니겠는가. 그러나 또한 비라는 물건이 거듭되다보면 가라앉다 못해 너무 침잠해버려 나중에는 몸살기가 돌고 짜증이 나다가 급기야 무언가가 솟구쳐 살아온 땅을 버리고 싶어지게 만들기고 한다. 마음에 곰팡이가 피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장마철에는 다들 영혼의 방랑기를 조금은 다독여 반듯하게 뉘어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p*****d 2003.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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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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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엔 무엇이 있을까?   시금치를 다듬으려고 신문을 꺼내들었는지, 읽지 않고 쌓아두었던 신문을 훑어보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펼쳐 든 순간 '한창훈'이란 이름이 내 시야에 크게 들어왔다. 3월 29일자 한겨레 신문에 특집으로 '여수엑스포'에 대한 기사였다. '여수 소설가 한창훈이 본 '여수, 세계박람회'라는 제목으로 첫 페이지에 그의 글이 실려 있었다.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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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엔 무엇이 있을까?

 

시금치를 다듬으려고 신문을 꺼내들었는지, 읽지 않고 쌓아두었던 신문을 훑어보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펼쳐 든 순간 '한창훈'이란 이름이 내 시야에 크게 들어왔다. 3월 29일자 한겨레 신문에 특집으로 '여수엑스포'에 대한 기사였다. '여수 소설가 한창훈이 본 '여수, 세계박람회'라는 제목으로 첫 페이지에 그의 글이 실려 있었다. 한 달도 더 지난 신문 속에서 그의 이름을 만나게 될 줄이야. 만약 제 날짜에 이 신문을 봤더라면 나는 그가 누군지 전혀 몰랐을 터이다. 그의 이름을 보았다손치더라도 전혀 관심도 없이, 기억할 것도 없이 그저 스쳐갔을 것이다. 참 묘한 인연이다.

 

1주일 안에 그의 소설을 3권이나 읽었다. <열 여섯살의 섬>을 시작으로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와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을 이번에 읽었다. 제목이 다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그를 '바다의 작가'라고 하나보다. 이 세권의 소설은 온통 바다와 섬이야기이다. 이것들을 연달아 읽고나니 마치 내가 섬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재작년 겨울에 제주도 여행시 반도의 끝인 마라도에 갔을 때, 한 일주일 쯤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했다. 한 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넉넉하게 돌 것 같은 아주 작은 그 섬은 맑고 깨끗하며 아름다웠다. 그러나 잠시 후에 나는 그 생각을 취소했다. '과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다 받아낼 수 있을까?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로 가득한 그 공간을 일주일이나 버티어 낼 수 있을까?' 금방 막막해져오는 섬의 분위기를 당해내기에는 내 몸과 정신은 지나치게 육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28쪽/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이 곳에서는 파도소리에 잠들고 깬다. 간밤에 세상 그득하게 퍼져나가는, 바닷물이 모래밭을 타고 오르는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고 새벽에는 그 소리라 나를 잠의 바깥세상으로 끌어냈다. 나는 파도만난 모래알갱이처럼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훌훌 가벽게 떠다니는 잠을 잤다.

 

(74쪽/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내 방문객은 소리뿐이었다. 나는 소리로서 적막의 세계에 들어 간 것이다. 네모난 조그마한 방에 육일 동안 꼬박 있다보면 내가 사각형으로 토닥토닥 메만져서 종내는 벽돌로 변해 버릴 것 같았다.

 

섬에서는  파도소리가 알람소리이며 자장가인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난다면 파도소리는 삶의 질서가 되어주기도 하고, 삶의 방향이 되어주겠지만 고작 일주일로 섬을 껴안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것 같다. 소설 속에서 남편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로 떠났을 때 집을 나갔던 아낙 역시 "나는 단지 섬과 내 인생이 답답했을 뿐이야."라고 이유를 말한다.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는 한참을 읽었을 때도 단편소설로 착각하고 있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 소설인데다가 각 장의 이야기들은'섬'처럼 단절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각 장에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각각 다른 인물이었으며, 그 안에서만 존재하다가 다른 장으로 넘어가면 사라진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앞에서 나왔던 인물이나 장소가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장편소설이라는 것을 간간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지 않다. 어떤 사건이 등장하고 그것이 절정으로 치닫고 결말을 맺는 형식이 아니고 에세이 같은 형식이다. 그래서 나는 단편소설로 깜빡 속으면서 읽곤 했다.

 

외딴 곳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남자주인공은 어느 날 밤 소문과는 달리 귀신이 아닌 벌레의 고백을 듣는다. 어쩌면 이것은 상상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읽은 <알로마노 달의 여행>과 아주 비슷한 내용이었다. 부나비는 오랜 시간 기다리고 궁리하던 사랑할 대상을 만나는데 그것이 바로 달이다. 달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수직을 그리며 위로 날아올라보지만 달은 멀리만 있었다. 그러나 밤마다 그를 향해 올랐고 떨어져내렸다. 부나비는 사랑을 찾아 자꾸 올라갔다. 소나무 끝을 지나 벼랑을 타고 올랐다. 벼랑에 부딛힌 바람이 부나비를 밀어올려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높이 올라갔지만 달은 아직도 멀었다. 울면서 계속 힘을 주었지만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부나비는 아주 독한 사랑을 했고 그것 때문에 죽었다.

 

존재하지만 손에 잡혀주지 않은 허상에 모든 것을 바치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부나비의 생은 마치 우리들의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한창훈의 소설에는 '죽음'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중학교만 졸업한 누이가 식모살이 하러 갔다가 하루만에 연탄가스로 죽어버리자 누이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주인공에게서 떨어지지지 않는다. 남자친구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섬에서 최고 미인인 소아마비 소녀는 어느 날 바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고 나물을 뜯으러 갔던 두 할머니는 산에서 주검으로 내려온다.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던 남정네들, 물질 간 잠녀(해녀)들이 그네들의 삶터인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동네 사람들이 의기추합하여 잔치를 열어주었지만 잔치를 사작하자마자 100세 노인은 숨을 놓아버린다. 곳곳에 죽음이 서려있는 섬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자 죽음의 공간이다.

 

(245쪽/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열두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 그곳에서 만난, 살갗을 트게 하고, 침묵하게 하고, 응시하게 하고, 텅 비우게 하고, 옷을 벗게 하고, 춤추게 하고, 끝내는 영혼의 유전인자까지 뒤흔들어놓게 한, 적막과 죽음에 관한 보고서이다.

때문에 교정을 보면서 수시로 원고를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어둠 저편을 바라보곤 했다. 자꾸 그 쓸쓸한 집과 파도와 남풍과 무적소리와 죽어갔던 이들과 남아 밭 갈던 이들과 철새와 수평선을 비추는 달이 떠올라 마음이 시렸다. 처음으로 내 자신이 가여워지기도 했다.

 

단편소설 모음집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을 읽을 때도 분위기는 한창훈의 다른 소설과 별다르지 않았다 양지보다는 음지를, 활기보다는 적적함을, 소통보다는 막힘을, 미래보다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야말로 섬같은 소설이다. 자꾸 고립감을 느끼게 하고 외롭게 하고 처연하게 한다. 한창훈은 섬을 미화하거나 감상주의로 몰고가지 않는다.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끌어안는다.  

 

한창훈이 맨 처음 소설을 쓰기로 마음억었을 때 했던 다짐 중 하나는 마흔 살 쯤에 아주 괜찮은 소설집 하나를 내는 거였다. 세상 한 고비를 넘긴다는 그 나이가 되면 자신의 삶도 뭔가 숨통이 트여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나쁘거나 못되먹게 살지 않았다는 징표 하나를 그 책으로 갖고 싶었다. 이 책<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은 그의 나이 서른아홉에 쓴 책이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사람들은 '바다'로 떠난다. 그들은 상처난 가슴을 부여앉고 바다 앞에 망연자실 앉아있다. 가슴넓은 바다가 산산히 조각난 가슴을 하나하나 기워주기라도 하는 걸까? 아직 바다와 정면으로 대면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느낌을 잘 모른다. 단지 소설 속에서나 조금 느낄 뿐이다. 한 사흘 쯤, 아니 일주일 쯤, 한 달쯤, 그것도 아니면 몇 해를 살아봐야 그 감이 올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i****l 2012.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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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고독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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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장 그르니에의 <섬>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했더니만 주르륵 많은 책들이 따라 올라왔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추가로 선택해서 카트에 담아 주문했더랬다. 따라서 몇 권의 <섬>이 나에게 배달되어 왔는데, 한창훈의 <섬>이 내가 두 번째로 읽기 위해 집어든 '섬'이다. (다음에 집어 읽을 섬은 르 클레지오의 <섬>)   한 남자의 시점으로 그가 마주한 고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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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장 그르니에의 <섬>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했더니만 주르륵 많은 책들이 따라 올라왔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추가로 선택해서 카트에 담아 주문했더랬다.

따라서 몇 권의 <섬>이 나에게 배달되어 왔는데,

한창훈의 <섬>이 내가 두 번째로 읽기 위해 집어든 '섬'이다.

(다음에 집어 읽을 섬은 르 클레지오의 <섬>)

 

한 남자의 시점으로 그가 마주한 고독과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지루하고 심각한 내용으로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어진 것.

남녀가 섬으로 하루 들어왔다가 벌어지는 사건,

섬이 답답해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섬을 뛰쳐나갔다가 돌아온 여자와 그녀에게 죽으라고 종용하는 남편,

바다 너머 뭍을 그리워하는 절름발이 소녀,

배에서 생선을 낚으며 먹으며 수다를 떠는 남자들,

귀신이 나오는 집....

 

각자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한덩어리임이 분명한 그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그야말로 섬에 있었다.

 

그의 섬은 고독하기도 했지만 참 따뜻하기도 했다.

 

나도 한 몇 달 고독한 섬에 쳐박혀 책이나 계속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즐거우리라.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도 섬 사람들을 관찰하며 깊은 생각의 바다에 잠기곤 하겠지.

 

한동안 한창훈의 섬에 머무르며 이 여운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마치면 르 클레지오의 섬으로 항해해나가리.

 

^_^

s******y 2009.06.23. 신고 공감 0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