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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 good book.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품되 진리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뒤집혔다. 요즈음 사람이 내세우는 부분은 사실 내세우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바로 그 자신이다. 그가 의심하는 부분은 마땅히 의심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바로 신적 이성(Divine Reason)이다. 나는 인생을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었다. 만일 어떤 이야기가 있다면, 당연히 이야기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은 내면을 들여다볼 뿐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경이감과 열정을 품은 채 신적인 동반자와 신적인 우두머리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격렬하게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음과 같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사람은 내면의 빛과 함께 홀로 내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해처럼 아름답고 달처럼 청명하며 군기 달린 군대처럼 무서운 저 바깥의 빛을 명백히 인식하는 즐거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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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위인이지만 본인 스스로를 ‘궤변자’라고 낮춘다. 그의 자조적이면서 지혜로운 점이 마음에 든다. 그의 책은 현대의 ‘굼뜨고 시시한’ 철학책이 아니다. ‘가뿐하고 놀라운’ 책이기에 내 자신이 귀‘중(重)’해지는 듯하다. 시인을 변호하는 시인, 체스터턴의 글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 ”나는 열두 살 때는 이방인이었고, 열여섯 살에 이르러는 완전한 불가지론자였다.” 끝까지 의심한 그는 한 결론에 도달한다. “나름의 이단을 창설하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거기에 마지막 손질을 가했을 때 그것이 바로 ‘정통’신앙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치열하게 의심했던 과거를 밝힌다. 그리고 의심하는 신앙인에게도 조언한다. “종교적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철학적 의심도 있게 마련이다. 거만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더는 의심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계속 의심하라고 말해야 한다. 기묘한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게 될 때까지 기이하고 황당무계한 일들을 매일 의심하라고 말해야 한다.” - C.S 루이스가 이 책에 찬사를 남겼다. “강한 무신론자로 남고 싶은 젊은이는 그의 글을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같은 건물 다른 세대’ 라고 말한 C.S 루이스의 책을 좋아하는 개신교도라면 저자가 개신교인지 가톨릭인지 분별하느라 시간 쏟는 처음 사랑이 식은 ‘에베소 교회’ 같은 생각을 하지 말았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