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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병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참여 지식인이자 좌파 철학자인 알랑 바디우의 글이다.
이 책은 부제에 드러난 것처럼 ‘11월 13일 참극에 대한 고찰인데, 11월 1일 참극이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프랑스의 심장인 파리를 무차별적으로 테러한 사건이다. 그 테러로 모두 130 여명이 사망했다.
이 책의 내용은
그게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에 일어났는데, 그 사건에 대해 바디우가 2015년 11월 23일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의 원칙에서 출발합시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해가 안 돼’, ‘결코 이해 못 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패배를 뜻합니다. 어떤 것도 사유 불가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유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에 맞서기를 바란다면, 사유의 임무는 그것을 사유하는 것입니다.> (16-17쪽)
그렇게 말을 시작한 바디우는 다음의 순서로 이어간다.
1부. 현대 세계의 구조
2부. 인구에 미친 영향
3부. 반동적 주체성
4부. 현대적 파시즘
5부.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6부. 국가의 반동 : ‘프랑스’와 ‘전쟁’
7부. 현대 세계의 흐름과 분리된 해방의 정치의 복귀 조건
이 책을 읽으면서, 바디우도 유머를 구사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운동은 7개의 부로 구성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계셔야 합니다,”(18쪽) 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들어야 할 목소리
이 책에서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들이 많다.
비단 그 사건에 관련된 것뿐만이 아니라, 바디우가 제시하는 사유의 과정에서조차 새겨둘 것이 많다.
예컨대, 바디우가 테러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 중 하나, 국가의 약화라는 항목은 특히 그렇다. 우리 보통사람들로서는 국가라는 존재를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없기에, 국가가 약화되고 잇는지 어쩐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에 바디우가 자본주의적 권력이 국가를 넘나들고 있다는 말, 그래서 국가가 약화되고 있다(32쪽)는 말을 새삼 새겨 보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말도 결론으로 새겨 본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내재성과 분리될 수밖에 없는 세계적 차원의 정치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세계적 차원의 정치의 부재에서 젊은 파시스트가 출현하고, 창출되는 것입니다.
파시스트 젊은이들과 강도질과 종교가, 고유의 비전을 구축할 수 있고, 고유의 실천을 규정할 수 있는 정치의 부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정치의 부재가 파시즘, 강도질, 종교적 환각의 가능성을 만든 것입니다.> (90쪽)
<불행에서 오직 희생자의 정체성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비극적 사건에 대한 위험한 인식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유는 필연적으로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12쪽)
<그러나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합니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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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어떤 심경으로 이 잔혹한 참극에 대해 말해야 할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분명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 또한 언론과 당국이 위험하게 난타하고 있듯, 정동情動과 민감한 반응의 기능은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11월 13일 참극을 살펴보다
알랭 바디우는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이며 정치 활동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았고, 1958년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며 통합사회당(PSU)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알튀세르와 교류했으나 68혁명 이후 마오주의 노선을 택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한다.
1970년대에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지만 마오주의의 쇠락과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직후, 서구 좌파들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안을 사유하기 위하여 철학의 자리로 복귀한다. 그후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재구축한 저작인 <존재와 사건>(1988년)을 통해 철학적 가능성의 재생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지평을 마련했다.
그는 참혹한 파리 테러 직후에 마련된 특별 강연에서 정동情動의 압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유의 운동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파리 테러라는 증상의 구조적 고찰을 진행하면서 폭주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초국적 자본이 빚은 인류 최악의 과두정, 자본에 의해 무無로 산정된 '유목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이같은 비극이 잉태한 파시즘의 주체를 넘어설 사유의 기반을 마련한다.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곳곳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렸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바타클랑 공연장과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장 등 파리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을 골라 연쇄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이 테러로 말미암아 무고한 시민 130명이 희생됐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열흘밖에 안된 때에 행한 특별강연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복수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지 말라
불특정이든 특정인든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런 유형의 범죄, 즉 테러에 대해서 복수의 유혹은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일례로 항상 법치국가임을 자처하고, 사형을 거부하는 우리 서구에서 경찰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에서 어떤 소송도 없이 살인자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고 있지만 이에 분노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비극悲劇은 연극의 한 형식이다. 이런 의미의 비극은 인생을
정중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이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대결해 결국엔 재앙을 맞게 되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비극'은 이런 드라마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재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IS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불행이 비극의 한 예다. 후자에서 말하는 비극엔 슬픔과 무기력함이
존재한다.
그리스 비극이란 장르를 만든
아이스킬로스는 처음부터 극작가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다른 철학가나 역사가들이 모두 그렇듯 그도 군인이었다.
그는 기원전 525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엘레우시스에서 태어났다. 엘레우시스는 농업의 신 데메테르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비밀스러운 의례가 1년에 두 번씩 거행되던 도시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 연극에 대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 위대한 그리스 비극은 정의의 논리와 복수의 논리를 대립시켰다. 정의의 보편성은 가족, 지방,
국가, 정체성의 복수와 대립된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가 그것이다. 비극에서
정체성의 충동은 살인자의 추적을 순수하고 단순한 복수의 추격전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해가 안 돼', '결코 이해 못 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패배를 뜻한다. 어떤 것도 사유 불가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유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에 맞서기를 바란다면, 사유의 임무는 그것을 사유하는 것이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이성적인 범죄임에도 '이해가 안 돼'라는 식으로 사유하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결국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비이성적, 범죄적, 병리적 행위가 있지만 이 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대상이며, 그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은 없다. 사유 불가능의 표명은 항상 사유의 패배이며, 사유의 패배는 항상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였다.
새로운 제국적 행태
책의 제목은 프랑스 극작가 장 라신의 비극 <페드르>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이를 패러디해 "우리의 병은 이민, 이슬람, 황폐해진 중동, 약탈에 굴복한 아프리카…보다 오래전에 시작됐다"고 말한다. 즉 우리 병은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패에서 생긴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던 저자는 공산주의 실패, 반대로 이야기하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에서 문제의 연원을 찾는다.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가 지배하는 현대 세계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전략적 약화, 심지어 국가의 자본주의적 소멸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몇몇 경우 국가를 잘게 해체하거나 심지어 전멸시키는 것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새로운 제국적 행태를 갖고 있습니다. 일례로 리비아 파병의 진정한 이해관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가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국가를 완벽하게 파괴했고, 모두가 반대하는 혹은 반대하는 듯한 하나의 무정부 지역을 만들었지만, 결국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말리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온갖 짓을 자행했습니다. - 37쪽에서
인구에 미친 영향
세계 인구의 1%가 전 세계 부의 46%를 소유하고 있다. 다수의 빈곤층 중 압도적인 다수는 바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이다.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구적 생활양식을 수호하려는 중산층, 자본에 의해 마치 투명인간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20억 이상의 인구, 글로벌 자본주의가 양산한 이런 구도 속에서 복수와 파괴의 욕망으로 구성된 '허무주의적 주체성'이 생겨났다. 이와같은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승자는 자본이다. 자본이 승리했으므로 자본은 노동시간의 감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마르틴 오브리(전 노동부장관)가 제안한 빈약한 35시간도 용인하지 않는다. 자본은 이 틀 속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담하게 무無로 선포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세계에 무無로 산정된 대규모 집단이 있는 것이다.
현대적 파시즘
이런 주체성의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되고 촉발된 대중적 주체성을 일반적으로 '파시즘'으로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1930년대가 이에 해당)가 존재하고, 어쩌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계화로 인해 분명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보다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행위(맹목적 대량 학살)는 테러가 아니다. 테러는 점령군 나치와 페탱주의 공범자들에게 항거한 레지스탕스가 조직했고, 더 나아가 명예로운 러시아 민중주의자들이 차르를 죽이기 위해 꾸몄던 것이다. 실제로 11월 13일의 학살은 액면 그대로 보면 조직적, 군사적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유혈극, 그러나 비열한 유혈극이다. 이는 젊은 파시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산정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를 넘어서는 주체성 창출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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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A4 종이를 반으로 접은 크기에 100페이지가 되자 않는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글로벌 세계의 모순과 기울어진 우리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2015년 11월 13일에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그 사건에 대해해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사유하는지 짚고 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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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의 IS 대원 8명이 파리 시내 7곳에서 무차별 총격과 자살폭탄 테러로 시민 131명이 사망한 대형 참극의 발생 원인에 대해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IS의 소행이지만, 그 배후에는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주장합니다. 불행에서 오직 희생자의 정체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인식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필연적으로 정의의 복수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는 세계시장으로 확대를 의미합니다.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서 자라난 상실감에 종교의 희생정신이 결합한 새로운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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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파리 테러’의 본질과 그 참극에서 벗어날 대안을 사유한 책.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하나의 원칙에서 시작한다. 저자에게 IS로 불리는 파시즘은 서구자본주의의 이면이고, 주변부로 밀려난 유휴노동력의 허무주의적 행동이며, 오래전에 시작된 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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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아름답기로 유명한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프랑스의 심장인 파리를 무차별적으로 테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무장단체인 IS는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연쇄 테러를 저지른다. 영화에서도 악당들에게 공정성이나 정정당당한 규칙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어야 하고 단시간에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야 하기에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도심에 폭탄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분명하게 잘못되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는 분명 국제 사회에서 반칙이다. 하지만 이런 반칙의 외침은 IS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든 규칙만이 규칙이고 그 이외는 모두 죽여야 하는 대상일 수도 있다.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에서는 파리 테러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본다. 현대 세계의 구조를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는데 그 첫 번째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들 수 있다. 세계화, 즉 글로벌화가 되면서 자본주의의 힘은 막대해졌다. 그래서 국가의 힘이 경제의 힘이 되고 힘이 약한 국가는 가난한 나라라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그 모든 고통은 국민들이 가지게 된다. 그렇다보니 국가의 힘은 약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영역은 이제 방대한 세계적 구조의 국지적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은 불평등을 초래하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크게 벌어지면서 빈부의 격차가 차별을 낳게 된다. 차별의 대상은 빈곤층이고 빈곤층 계급은 인종차별주의, 외국인 혐오, 빈곤층 경멸에 노출된다고 한다.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의 1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 프랑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은 현재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IS나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가는 난민들의 수가 엄청나고 난민을 수용하자는 의견과 수용에 반대하는 의견이 대립하고, 난민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부각되면서 점점 날카로워져가는 유럽이다. 제2의 파리 테러가 또 일어날 수도 있고 우리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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