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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요깃거리를 들고 가식해놓은 나무를 옮겨 심는 밭에 나갔더니 남편은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하다 잠시 쉬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다. 제작년에 심은 과일나무 중 가장 많이 자란 나무 몇 그루가 누군가에 의해 톱으로 잘려 있었다. 올해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거라며 기대하고 있던 나무만 골라서 죽인 것이다. 남편이 얼마나 지극한 정성과 애정으로 나무를 가꾸었는지 나는 안다. 우리에겐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의 교복을 다림질 하다가 두 아이의 교복 바지가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복 바지는 누가 봐도 해어져서 찢어진 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찢었다는 걸 알 수 있게 찢겨져 있었다. 전날 교복을 빨아 널고 두어시간 가량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건 분명 같은 사람의 소행이야. 생명 있는 나무를 잔인하게 죽인 것도 모자라서 아이들 교복까지 찢다니, 이럴 수는 없어.
다음 날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펼쳤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멈추지 않고 읽어내려 갔다.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은 부활의 의미와 부활의 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헨리 블랙커비는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을 체험할 때 비로소 참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전한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지 할 수 있는 신령한 감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정확히 모른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도무지 모른다.
혼란스런 나에게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은 말한다. 그분의 구원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삶의 방향과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요? 나를 해코지하는 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라고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니, 싫다. 텃새하는 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더러 우리를 이방인 취급하는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잘못한 것 없이 당하는 게 억울하다는 나에게 하나님은 한 사건을 상기시켰다. 그랄 땅에서 우물을 팔 때마다 블레셋 사람에게 순순히 우물을 배앗긴 이삭을 기억하게 했다. 원주민들은 백배 결실을 맺은 이방인을 질투하여 해코지 했지만, 이삭은 그들과 대응하거나 분을 내지 않았다. 분을 참지 못하고 이장에게 달려갔던 나는 책을 덮고 엎드려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마13:11)
헨리 블랙커비는 하늘나라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는 '부활'이고, 부활의 열쇠는 갖는 방법은 '변화'라고 설파한다. 변화는 말씀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서, 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의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아집과 자아를 죽여야 한다. 그러할 때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부활의 복이 임하고, 증인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헨리 블랙커비의 통찰은 우리를 부활 신앙으로 이끈다. 처음 책을 들었을 때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이 책을 덮을 즈음엔 기쁨으로 충만했다. 감사 수준에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제는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해 저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장기전이 되더라도 한걸음씩, 내가 먼저 저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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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매일매일 의 삶에서 살아가는 날들이 주님의 삶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주님의 제자로써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삶 은 날마다 죄에대하여 죽음으로써 다시 부활의 축복을 맛보며 살아가는것 입니다 세상의 욕망 과 즐거움을가지고자 한다면 주님의 십자가 와 부활 의 진정한 축복을 받아서 느끼는 삶을 살수 없을것 같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의 죄에 대속물로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과 피흘리고 사랑으로써 우리 의 죄를 사하여 주신 그 크나큰 사랑은 고난과 고통속에서 더욱 간절히 느끼는 삶 인것 입니다 살아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십자기에 죽고 부활을 꿈꾸는삶은 온전히 주님만을 사랑하며 그안에서 하나가 될때 그분 의 전하신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그속 에서 하나가 될수 있는것 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간구하는 육체적 인 죽음 너머 영원한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축복 .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육신이 살아가고있는 이세상에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 의 거룩함을 기도와 간구로 갈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 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입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다시 새생명 으로 태어나는 축복받은 삶의 영광은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것이지요 세상의 즐거움은 느끼면서 주님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르 바라지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어두운 가운데 빠져드는것 입니다 세상의 것에서 벗어나는길은 말씀을 사모 하면서 세상의 것을 끊느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야지만 부활의 축복이 다가온다는 것을 새삼 많이 느꼈 습니다 주님 을 통한 삶의 기쁨은 그어떠한 것 과도 바꾸지 않을 것 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금주님의 사랑과 고난 과 축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의능력 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삶 의 실천으로 살아가렵니다 주 의 사랑 항상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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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깊이 체험하고, 자신의 삶 속에 그대로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사건들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늘 되새기며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삶을 살고 있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이미 허락되어졌음을 믿고, 우린 이미 그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늘 감사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하고 있나? 참 감사하게도 사순절 기간과 고난주간에 맞춰 만나게 된 이 책을 통해 많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저 형식과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 부활절을 앞둔 시간들이 더욱 깊고 은밀한 은혜로 채워졌음에 감사드리게 된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신앙은 율법신앙에 지나지 않으며 복음이 없는 기독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생명이 없는 종교일 뿐일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깨닫고 경험하지 않은 기독교인들도 그저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서 살 뿐이지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하늘에 속한 자들로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장면을 목격한 자들은 아니기 때문에 그 보이지 않는 과거의 사건 속에 있었던 엄청난 감격의 순간을 체험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기억도 있지 않다. 그래서일까…?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이 나와는 거리가 먼 아주 숭고하고 경건한 이들의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과 성직자들을 비롯한 신성한 일에 참여한 이들이 가는 그 천국을 누릴 자격이 나에겐 없다는 생각으로 슬퍼하기도 했었다. 그 동안 진정한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자녀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미 모든 축복과 약속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진 때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 귀한 복음 안에서 사는 축복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운 채 그 생명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고 따르며 십자가 고난을 목격하였지만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보기 이전에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의 감격을 체험하고 그 기쁨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제자로서의 삶이 되었고, 그 삶으로 인하여 신약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완성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도 너무나 큰 축복을 받았음에 감사하여 기쁨이 솟아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그의 부활 사건의 역사가 없었다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과 그의 부활, 그 부활을 체험한 많은 이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에게서 공급되는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없는 감사의 눈물을 쏟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사랑하시는 아들을 보내셨고, 그 아들을 통해 온갖 이적과 사건들을 보여주셔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은 우리의 죄 때문에 그 아들을 죽이셨고 사망을 경험케 하셨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 잃었던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셔서 죄로 인해 사망 가운데 있던 우리에게 회복과 기쁨을 더해 주셨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했을 우리를 용서하시고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인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의 결과이며, 부활은 용서와 구원의 증거이자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 기쁨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바울이 부활을 체험하길 간절히 사모하며 소망하였듯 우리도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게 되길 소망해야 한다. 육체와 세상으로 인해 겪는 죄와 고통을 하나님께서 지워주시는 영광의 십자가로 여길 때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 믿음으로 인해 열 두 제자들과 같이 순종함으로 그 뜻을 따를 때에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예수님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삶을 바라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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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목회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알아갔으면 하는 것이 사실 내 바램이다. 근래에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건 성공학 강의를 듣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정작 성경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로 갔는지 쏙빠져 있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느 분의 설교는 잠깐 양념식으로 들어갈 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많은 설교들에서 느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과연 이땅에서 축복을 받고, 잘 살기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부요하게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다 실패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지 않을까? 복음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들이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모습을 볼 때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오해되어지고 있는 것들을 본다. 십자가는 단순히 사순절과 고난주간에만 이야기 되어져야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하나님 편에서 본다고 하면, 이것은 우주적인 사건일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이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별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활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성경학자라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 사람들은 과연 부활절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서였다. 나는 이 세가지에 대해서 항상 누군가가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다른 목사님들과 비교해 볼때, 성경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부활과 십자가 신앙을 매우 논리적인 관점에서 견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시대는 논리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을 설득해 낼 수가 없다. 이미 교육수준이 대부분 전문대학교 이상인 시대이기 때문에 성경도 논리적으로 봐서 자기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까지만 믿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헨리 블랙커비 목사님의 책은 상당히 복음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활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관점들을 잘 논하고 있고, 부활의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겠다라는 일종의 지침같은 내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내가 보고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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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은혜로운 책이라 별 다섯을 주고도 모자라지 싶다. 복음에 기초한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얼마만인가! 물론 목사님들이나 신학생들이 읽는다면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평신도인 나에게는 큰 깨달음을 가져다준 귀한 책이다. 신간 신앙서적들을 많이 읽는 편인데, 책을 읽으면서 마치 설교를 듣고,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어, 내 영의 기쁨을 느끼기는 처음인 것 같다.
E.M.바운즈, 앤드류 머레이, 찰스 스펄전 목사님 등, 신앙 서적의 고전 작가들처럼 헨리 블랙커비 목사님도 성경과 복음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집필하셨다. 예화도 거의 없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읽을수록 책에 푹 빠져들고 만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다음주는 고난주일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심을 기념하는 주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본다. 저자는 육체적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의 죽음은 영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목사님으로부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지옥을 경험하셨다’라고 들었다. 내게는 큰 충격이었고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당시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가실 수 없다!’가 나의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목사님은 영적 죽음을 가리키신 것임을 알았다. 영적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됨을 뜻한다, 즉 죄의 대가를 치르신 것이다.
예수님의 순종과 하나님의 능력 또 부활주일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동안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단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라고 믿고, 느끼고, 가르쳐왔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지만, 이는 부활시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음으로 기꺼이 순종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이 육적, 영적 죽음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육적 소생과 영적 부활을 의미한다. 또한 영원한 생명, 영원한 구원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신다.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관계를 맺고,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을 받아서, 우리의 우선순위가 새로워지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복들을 경험하는 삶을 산다. 이 복들은 바로, 이 책의 3장 -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설명되는 예수님의 생명, 믿음, 평안, 기쁨, 능력, 권세, 확신, 소망이다. 우리는 이 부활의 삶을 살지에 대해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일회적 행동이 아니다. 매일 매일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듯이, 부활의 능력과 그리스도안의 새 생명을 체험하기를 매일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삶을 사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귀한 책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예수님께 튼튼한 뿌리를 두고, 세상에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게 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헨리 블랙커비 목사님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아본다: “주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 만한 부분이 제게 있습니까? 당신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 삶이 걸림돌이 되었습니까? 주님, 세상이 저를 보고 있나이다. 제 삶을 깨끗하게 하소서.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본문 41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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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추구하다가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과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가?
나의 힘을 빼는 것 나의 욕심을 내려 놓는 것 나의 의지를 죽이는 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 다가왔다.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들로 부터 내가 자유로와 지는 것 하지만 진정 예전의 나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삶으로 과연 내가 발을 자신있게 디딜수 있을까
사람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도 그분이 그것을 묵과하시고 여전히 복을 주시기를 바란다. 주일에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서 죽어서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최후 심판이 날에 그분이 친절을 베푸시길 원한다.
한구절 한구절 가슴 깊이 찔림이 느껴졌다. 진정 내 안에는 온전한 따름이 있는 것인가 하는 되물음이 계속됐다. 부활의 능력을 누리는 비결은 먼저 나를 죽이는 것이라는데 과연 나는 죽은 것인가??? 넘어뜨려도 다시 벌떡 벌떡 일어서는 오뚜기 처럼 나 역시도 죽었다고 하는 순간 다시금 일어서는 나를 보면서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요" 하는 기도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내가 진정 예수님을 경험한 삶을 온전히 살고 있지 못함을 시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며 피흘리고 찔림을 당할때 내가 흘리던 눈물이 벌써 다 마른것인가 하는 물음이 나를 자꾸만 무릎끓게 했다. 다시금 마음속에 뜨거움이 이는 듯했다. 그동안 입으로만 외치던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을 가슴으로 또다시 느낄수 있었던 책이었다. 예수님의 피흘림과 부활을 보면서 나를 내려놓겠노라고 했던 마음이 변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자랑하며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이 라는 것을 미련하고 부족하여 순간순간 잊고사는 우리에게 귀한 붙잡음을 주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통해 사람들과 사회가 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 있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참 멋지지 않은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소망하며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님을 만난 첫날 처럼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빛바래지 않고 무뎌지지 않게 감당하는 삶을 많은 사람들이 살수 있도록 새롭게 더욱 새롭게 하는 그런 책을 만난 것을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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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가지 일로 낙담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을 통해 큰 위로와 소망을 얻었습니다.
블랙커비는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쳅터 한 쳅터를 읽어가면서, 그 동안 잊어버리고 놓쳐며 살았던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의 권세를 꺾는 것이요,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의 부활로 삼기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으면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나에게도 큰 숙제였던 것 같습니다. 나를 죽이는 것,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 내 십자가를 지는 것, 매일 매일 돌아보아야 하는데, 어느 한 순간 잊어버리고 나를 앞세우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의 복들이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생명과 믿음과 평안과 기쁨과 능력....., 그러나 이런 것들을 진정으로 경험하며 증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물론 나도 그 속에 있습니다. 참 안타갑니다.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고 순간에 좇겨 살며, 예수님의 부활은 박제된 지식으로만 전시되어 있었나 봅니다. 그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주님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 말로는 무척 쉬운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리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부셔져야할 자아가 너무 많고, 회개해야할 모습들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그리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모습들, 주님없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회개해야 겠습니다. 마음한켠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가득한 열정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만족해 버리는 내 모습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주님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세상에 만족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어제 넘어졌어도 오늘 다시 일어나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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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소명”의 저자로 익숙한 헨리 블랙커비.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란 부제를 단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이 내앞에 펼쳐졌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삶은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이 아닐까?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지셨던 십자가사건이 그분의 삶의 절정이었다면 부활이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이 완성되었고 성취되었다.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지낸지 2주도 안된 지금,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기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이요 축복이 되었다. 책을 읽는 일주일 여간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경험하는 변화된 삶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아버지의 영원한 뜻임을 말한다.
2부는 예수님의 영으로 사는 것인데,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고, 구원의 완성을 위해 살아나셨으며, 예수님은 영원토록 살아계심을 믿고 사는 삶을 말한다. 이것이 부활을 경험하는 삶이다.
3부는 믿는 자에게 주신 복들인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것인데,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의 평안, 예수님의 기쁨,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권세, 예수님의 확신, 예수님의 소망을 경험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차례차례 읽으면서 영혼이 소생함을 입는 경험을 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힘과 능력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임을.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다른 것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그분을 알기 위해 나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살며 주님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목적이요, 의미이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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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에 이 책을 만나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이 나의 죄때문에 돌아가신 사실에 대해 믿고 사는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는 생각이 더 앞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뻐하기보다는 예수님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고 주눅들어 살아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기는 하지만 늘 뭔가 주님 앞에서 죄인의 모습이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시 한번 주님의 부활로 인해 달라지고 변화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으로 인해 율법이 아닌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믿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순절 기간과 고난 주간 그리고 부활절을 지내면서 읽은 이 책은 그 의미를 더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믿는 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생명, 믿음, 평안, 기쁨, 능력, 권세, 확신, 소망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을 경험하라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이 주신 삶을 누리면서 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부활절은 예수를 믿으면서 산다는 것은 그저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나를 대신해 달리심으로 죄사함을 해 주시고 그 예수가 그저 죽으시지 않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그리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오는 부활절이었다. 삶에 대해 진지하기보다는 그저 시간의 흐름대로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답답하던 차에 부활절에 즈음하여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