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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에리히 프롬 책 여러권 읽고 이 책 구입 했는데 소유와 존재 (?)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이라는 책들에서 봤던 내용들이 나오네요 ㅋㅋ 개인적으로 저 책들 다 추천 합니다 에리히 프롬 책들 너무 좋아서 뭔가 새로운 걸 기대하고 샀는데 ㅎㅎ 뭐지 싶네요 ㅋ 어차피 내용들 자체가 주옥 같으니 천천히 읽어봐야겠네요 다시 반복한 다는 의미로 좋은 내용 기억 하자는 뜻에서 ㅎㅎ 사실 분들은 주의 하세요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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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 인류 역사의 전반적인 방대한 사항을 가져다가 설명하기 때문에 책일 읽다 너무 자주 길을 잃어 독후감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잘 정리가 되지 않으니 1차적으로 독후감이 구성되지를 않았다. 메모하기도 쉽지 않았고, 기억나는 것도 많지 않아 책을 마무리 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남아 있는 책에 대한 감상과 기억도 거의 전무하다. 이렇게 텅빈 소감은 참 오랜만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관련하여 에리히 프롬에 관련해 찾아 봤더니 생각보다 쉽게 정리된 내용이라는 소개도 보여서 황당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내게는 너무 어렵고 정리하기 쉽지 않은 난해한 책이었다. 저자가 풀어내는 문장하나하나가 소개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은 분명 아니었던 거 같다. 큰 주제에 맞는 세세한 내용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수긍이 가능 부분이기도 했다. 다만 주제에 어떻게 연결되어 정리될 수 있는지는 막연하게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가령 다음과 같다.
“신은 본디 우리가 자신의 내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신이 소유양식에서는 하나의 우상이 된다. 예언자의 시각으로 보면 우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일 뿐이며, 인간은 여기에 자기의 힘을 쏟아 부음으로써 자신을 약화시키고 만다. 죽 우리는 자신의 창조물에 복종하며, 그 결과로 소외된 형태의 우리 자신과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우상은 하나의 사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지만, 아울러 내가 그것에 복종함으로써 그것이 나를 소유하게 된다. 일단 신이 우상이 되어 버리면 신에게 있다고 일컬어지는 여러 가지 속성은 소외된 정치적 강령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경험과는 거의 관계가 없어진다. 우상은 자비로운 신으로 찬양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잔악 행위가 그 이름으로 자행될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결속으로 소외된 신념이 더없이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데도 이에 대한 어떠한 의혹도 일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신념은 소유양식에 젖어 확신을 갖길 원하는 사람들, 감히 스스로 찾아 나서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인생의 해답을 원하는 사람들을 받쳐주는 버팀대이다.”
소유냐 삶이냐란 주제의 길지 않은 책에서 일상경험에서의 소유와 존재에 관련한 부분에서 신념을 설명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이 자체로만 떼어내 읽어보면 그리 어렵지 않고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보통의 상식을 갖는 사람들이 종교의 문제에 대해-일신교, 다신교, 사이비 종교 등 구분할 필요가 없다-명확한 이해가 가능한 설명이다. 그런데 이것이 소유냐 존재냐의 주제에 면밀하게 연결되어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는 나는 정리해 내지 못한 거 같다.
사랑의 기술은 더욱 짧은 주제의 내용인데, 도무지 정리하지 못하겠다. 저자의 경력에서 심리학, 정신분석학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로 보이는 대목이 있어 프로이트 학파의 어떤 내용들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도 보이고, 휴머니즘에 근거한 보편적인 가치를 전반적으로 설명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요약하며 생각나는 구절도 없고, 참 난감할 따름이다. 제목 자체도 뭔가 내용과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자유에서의 도피이다. 전체주의에서 탈피하고 중세를 지나며 개인의 개념이 대두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개인에게 자유가 향상되어 독립성과 합리성을 부여하였지만, 그러한 개인이 고독에 빠지게 되어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찾든가-중세 전체주의 시대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구시대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했다-아니면 인간의 독자성을 극대화시켜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찰인 듯 하다.
“중세 사회의 전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것은 개인에게 독립의 새로운 감정을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에게 고독과 고립의 감정을 초래하여 의혹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했고, 새로운 복종과 강제적이고 비합리적인 활동으로 개인을 위축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 생명은 성장하고 신장하여 여러 능력을 표현하려는 내재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 만일 생명이 방해받고 개인이 고독에 빠져 회의나 고독감이나 무력감에 짓눌리게 되면, 그때 그는 파괴성이나 권력 혹은 복종을 희구하는 충동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구 들에게 위의 요약된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겉핧기 식으로 요약하자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나는 이책이 너무 어려웠다. 다시한번 고백한다.
“민주주의, 자유, 개인주의라는 말 또한 이러한 악용의 대상이 된다. 민주주의와 파시즘과의 차이의 참된 뜻을 명백히 하는 한가지 방법이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완전한 발전에 공헌하는 경제적, 정치적 여러 조건을 창조해 내는 조직이다. 반면 파시즘은 어떠한 명목에서건 개인을 외적인 목적에 종속시켜 순수한 개성의 발전을 약화시키는 조직이다.”
마지막으로 인용하고 싶은 내용이다. 현대 우리사회를 위 인용구로 들여다 볼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