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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1/ 토인비/ 홍사중/동서문화사/ 2016 최근 1년간 읽은 책 중에 읽으면서 가장 진도가 안 나간 책. 아,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내용이 풍부해서 벅찼던 책,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입니다. 제가 들어는 봤으나 절대? 읽지 않는 고전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던 책 중에 당당히 들어가 있었던 책이기도 하죠. 무슨 내용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난번 막스 베버의 책에 크게 데이고도 과감하게 지르고 나서, 편년체의 이야기 방식일 거라고 아무런 근거 없이 혼자 미리 짐작하고 책을 폈다가 그야말로 아연실색. 이 책은 토인비 옹이 제목으로 지은 이름 그대로 그야말로 역사의 연구 였던 겁니다. 자, 이 책은 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을 연구할지 미리 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에서 역사를 연구하지 뭘 연구하겠습니까만 이 책에서는 말 그대로 역사, 말하자면 문자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이후의 인류의 삶의 모습, 즉 문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전 인류에 대략 어느 정도, 그러니까 몇 가지 정도 있어 왔는가. 이 문명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마침내 해체에 이르는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이 문명이 사라지고 나서 이를 이어받은 문명은 또 문명의 일대기를 어떻게 또 지나가는가.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다 거치지 않고 성장하지 못한채 사라진 문명들과, 쇠퇴한 채 해체되지는 않고 계속된 문명들과 그외의 변형들은 어떤 것이 있고 이유는 무엇인가. 요행히 미노스 문명에서 헬라스 로마 문명으로, 또 서유렴 문명으로 이어지는 이 순환 즉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이 문명의 순환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어떻게 가장 화려한 문명의 시기에 쇠퇴의 기미를 볼 수 있는가. 문명의 쇠퇴와 해체기에 한 문명과 외래의 신진 문명 끼리의 부딪침에서 지배적 소수자와 내적, 외적 프롤레타리아의 섞임 현상이 마침내 쇠퇴 과정 중에 나타나는 복귀 혹은 아예 새로운 문명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게 되는 것을 관찰한 것, 하나의 문명이 완전히 스러지는데 즉 해체를 거치는데 있어서도 그 것이 대부분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쇠퇴와 복귀를 반복하다 이루어 지는 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점을 고찰한 것이나 이를 중국문명에까지 적용시켜 역시 하은주 시대를 지나,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움. 그리고 수당시대의 번성기를 지나 사실상 정체기인 송명 시대와 이민족의 원청 시대를 하나로 엮은 거시적인 안목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더군요. 무엇보다 이 책에서 헬라스 문명과 시리아 문명의 연관성, 특히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뗄 수 없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던 점도 큰 소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시선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유물과 유적에서 언어로, 경제학에서 심리학으로, 무엇보다 철학과 종교로 종횡무진 마구마구 달립니다. 독자에게 상당한 수준의 사전 지식을 요하는 책인 만큼 피곤하지 않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단계에 있는가. 라는 질문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중국문명 외에 인근 한국 및 일본문명이라고 따로 정해놓긴 했지만 일본에 관한 언급은 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뭐라 할 수도 없었던 것이, 토인비처럼 이렇게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봐버리면 모든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으니 말입니다. 중국의 문명이 당나라 이후에는 사실상 쇠퇴와 해체기였다니 말입니다. ^^;; 이 책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원서 토인비의 책을 섬머벨이라는 이가 1/6정도 분량으로 줄여서 재편한 것을 토인비의 감수를 거쳐 낸 것입니다. 축약본이라 더 어려웠는지 더 쉬웠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네요. 반쯤 즐겁고 반쯤 괴롭게 1권을 읽었는데, 그보다 본문이 짧긴 하지만 2권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내로는 읽었으면 좋겠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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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의 연구’ 인가? ‘한국적’이란 건 무엇일까? 어느 수업에서 만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서 문명의 단계를 3가지로 보았는데 문명을 전달하는 단계, 문명을 받는 단계, 문명을 받았지만 줄 수 없는 단계로 구분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 한국, 일본과 매칭되기도 한다. 문명을 받았지만 줄 수 없는 단계에 속하는 일본은 토착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서 문화가 아주 독특한데, 한국 같이 문명이 흘러가는 곳은 문화의 축적이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한국 적인 것은 없다’ 까지는 아니어도, ‘매우 어렵다’였다. 나는 의견이 좀 달랐다. 아놀드 토인비가 살아 생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한국을 생각해보면 거의 섬나라와 같아, 그동안 받은 문화가 고일 대로 고이고 독특하게 발달한 상태일지도 몰라서 정말 열심히 샅샅이 뒤져보면 ‘한국적’인 어떤 것이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문명의 단계를 설명한 것을 들은 것만으로도 내 생각이 조금은 넓어지는 것 같았는데, ‘역사의 연구’를 다 읽게 된다면 더 많은 사고의 확장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언젠가는 꼭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라는 책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왜 ‘스터디’ 인가? 이 책은 혼자서는 절대 다 읽을 수가 없는 분량이다. 1권, 2권 합쳐서 1,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압도적인 양을 대하면 웬만큼 대단한 결의가 있지 않고서는 혼자서 읽게 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읽는 동지가 있다는 의지로 읽어야만 정해진 시간 내에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은 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 읽기의 어려움 ‘역사의 연구’를 읽는 어려움이 겉으로 보기에는 물리적 양뿐이지만, 완독한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 또한 쉽게 읽히는 내용이 아니라서, 완독을 포기하고 싶은 내적 갈등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처음 서론을 읽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기억난다. 수많은 민족명과 나라명, 황제명... 아직도 스터디원 누군가는 이름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 키아누 리브스라고 대충 퉁치고 넘어가는 황제의 이름이 있다고 한다. 서론이 그러한데 본론은 어떠한가. 서론 내용의 어려움을 크기로 표현했을 때 보통의 책 사이즈만큼 이었다면, 그것을 축구장 너비만큼 확장한 만큼의 크기가 본론 내용의 어려움이라 하겠다.
박경리의 ‘토지’와 문명의 쇠퇴 윌라 서비스로 박경리의 ‘토지’를 듣고 있는데, 시대적 배경이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느냐 마느냐 위태위태한 상황의 구한말이다. ‘역사의 연구’의 문명의 쇠퇴 편을 읽으면서 ‘토지’의 배경인 구한말을 생각하면 한결 납득이 쉬워졌다. 문명의 쇠퇴는 마치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부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가 그것이 외부의 침략으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내부가 곯아 있으니 외부에서 침략받고, 그것에 대해 적절한 응전을 해내지 못하고 이것이 반복되며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구한말의 상황이 딱 그랬는데, 내적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 양반들을 공격하였고, 조금씩 백성들 사이에서는 양반과 상놈의 계급 구분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나고 있었다. 계속되는 나라의 수탈에 농민들은 이 세상이 뒤바뀌길 바라는 한이 있는 감정의 상태를 가진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적 소수자들,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는 찬란하게 시작했었을 창조자들이 이제는 그저 현재 상황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기득권이 되어 혁명의 물결을 진압하고자 일본군에 도움을 요청하는, 당장의 구멍을 막기에 급급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외적이 한 일은 기껏해야 막 숨을 거두려는 자살자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일이었다. 외래 세력의 침입이 무력에 의한 공격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 공격받은 문명은 역사의 최종 단계, 즉 죽음의 순간에 있지 않을 때는 파괴가 아니라 긍정적인 자극제가 된다.”
역사의 연구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 이 책을 읽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로써 책의 구성에 관해 설명을 하자면, 한 권은 문명의 발생/성장/쇠퇴/해체의 단계를 차례대로 설명하고 다른 한 권에서는 문명의 흥망성쇠 과정에서의 개체들을 따로 떼어내어 세계국가, 세계교회, 영웅시대 등으로 분류하여 구성되어 있다. 구성이 이러하니 개별적으로 관심이 있는 부분을 먼저 읽어 보기가 좋았으나, 순서대로 읽는 문명의 흥망성쇠는 마지막 해체 부분의 양이 방대하고 반복되는 이야기 같이 느껴지는 지루한 부분들이 있어 읽기의 최고 고비가 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해체의 거의 끝부분 ‘해체기의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에서 지난한 해체의 과정에 살아남은 유일한 이, 구세주의 존재를 설득력 있게 등장시키고, ‘해체의 리듬’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계 국가가 아닌 세계 질서가 필요하다는 통찰은 보여주다가, 마지막 장 ‘해체에 따른 표준화’에서 아직 우리의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로 2권을 예고하며 끝내서 가슴 웅장해지는 감동과 희열을 느끼며 책을 덮게 해준다.
'역사의 연구' 어떠세요?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칸이 세운 그 넓은 영토의 국가는 왜 이 엄청난 왕들이 죽은 후 급격하게 소멸했을까? 왜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의 양상을 띄는가? 종교들은 왜 조금씩 비슷한 면들을 가지고 있을까? 서구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의 의미는? (충격) 아놀드 토인비는 왜 몇십 년에 걸쳐서 ‘역사의 연구’를 썼을까?
답이 궁금하다면 도전해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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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