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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술의 하인인가,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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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들은 과학기술의 존재 없이 밥알 한 톨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처럼 그 존재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바로 기술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덧 공기와 같은 인간존재의‘배경’이 되어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긍정적 혜택만 주는 것은 아니며, 생명의료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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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들은 과학기술의 존재 없이 밥알 한 톨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처럼 그 존재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바로 기술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덧 공기와 같은 인간존재의‘배경’이 되어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긍정적 혜택만 주는 것은 아니며, 생명의료 윤리의 문제에서부터 인간성의 훼손, 기술에의 종속이라는 자유의 박탈 등 부정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독특하게도『‘욕망하는’테크놀로지』라는 제목처럼, 과학기술이 마치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듯한, 이 저술을 구성하는 28편의 과학기술시론은 인간과 기술, 기술과 사회, 기술의 현재와 미래의 관계라는 성찰을 통해 과학기술의 정체와 특징을 탁월한 이론과 예화로 전달해 주고 있다.

기술은 “인간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정의하였던‘하이데거’의 말처럼, 형체가 있는 인공물로서, 이것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서비스와 노하우, 그리고 인공물과 같은 대상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기초가 되는 공학 지식을 의미하는 기술에 더해, 인공물이 만들어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꾸려는‘의지’까지를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기술은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각인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기술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거대한 기술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결국 기술은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고,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기술철학자‘자크 엘륄’의“현대 기술이 자율적이 되었다!”는 상징적 표현처럼 “인간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것이 맞긴 한데, 발전시키지 않을 자유도, 사용하지 않을 자유도 인간에게 없다면 인간은 기술의 주인인가? 하인인가?”하는 질문이 절로 터져 나올 밖에 없는 것이다.


근대이후, 인간의 오만이 만들어낸 자연의 지배 욕구는, 그 자연에 인간 자신마저 포함되어 스스로 지배의 대상이 된 꼴이 되고 말았다. 과학기술을 통한 눈부신 성취 뒤에는 공허함과, 권태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주체는 없어지고 의지만 남은 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술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거대 기술시스템은 효율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여기에 인간의 가치나 필요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력하고,“인간이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 할 자유밖에 남지 않았.”음의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기술결정론, 사회결정론, 사회구성주의론 등 과학기술학 및 기술철학자들의 다양한 통찰들을 기반으로 하여 기술의 윤리와 도덕성, 기술의 정치성, 기술의 인간사회에 대한 영향과 책임에 대한 화려한 사색이 풍부하게 수 놓여 지고 있다. 일례로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의 기술의 정치성에 대한‘뉴욕 존스비치 공원’진입로에 놓인 고가도로가 흑인이 이용하는 버스의 통행을 막기 위해 낮게 설계되었다는 예화나, 숙련노동자의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자동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지적은 기술의 새로운 범주로의 확장된 이해와 시각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또한 세탁기와 같은 가사기술이나 휴대전화가 과연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한 것일까? 하는 질문의 답변 역시 낭만적인 긍정만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기대행동의 패턴을 변화시킴으로써 새롭게 인간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부지기수로 등장하는데, 체외수정의 생식보조기술이나 피임기술 역시 여성을 출산이라는 우연적 위험에서 해방시키기는커녕, 사회적 맥락을 달리함으로서 기술을 사용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게 하는 것과 같이 암묵적으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전제에 지배당하게 하고 말았다는 것과 같다.


특히 기술후발국으로서 세계 경쟁시장에서의 생존이라는 명분하에 기술개발에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는 한국의 끔직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기술의 잠재적 혜택만 부각하고 불확실한 위험은 축소하거나 무시하며,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과학기술 발전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국익을 무시하는 반역행위처럼 취급되는 후진적 현실이 궁극에 얼마나 막대한 폐해를 야기하는지 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반성케도 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편리와 자유의 확장, 그리고 엄청난 물질적 혜택과 성취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발전의 신화만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기술은 인간의 자율성을 넘어선다고 경고한다. 인터넷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를 인간에게 선사하였지만, 중독과 같은 그 자유에 도리어 묶이게 하는 측면도 있다. 나아가 최근의 “언제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한다는 ‘유비쿼터스’의 환경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거나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확산된다. 아마 ‘조지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빅브라더(Big Brothers)’들이 통치하는 ‘제레미 벤담’의 전자‘파놉티콘’의 감시사회로의 이행도 우려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기술이 제공하는 기회만을 강조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다양한 문제에 꼼작 없이 갇히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저작은 기술의 철학적,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조명된 화려한 통찰들로 오늘의 기술사회에 대한 냉정하고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 과학기술학에 낯선 독자들에게조차 익숙한 언어로 새롭고, 다채로운 이론적 배경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지혜롭게 과학기술의 면모를 이해시키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 지상주의나 이와는 반대로 사회결정론과 같은 편협된 주장을 페기하고, 균형된 시각을 지니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더욱이 기술철학과 과학기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접하는 대중에게 고마운 저술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기술이 자체의 힘으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든다거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과학기술자, 엔지니어, 사회집단을 향한 기술의 책임에 대한 교훈들은 더 이상 다루기 쉬운 도구가 아닌 기술에 대한 명철한 통찰 이상의 조언이랄 수 있다. “인간을 닦달하는 테크놀로지”, 존재자 중심의 사유가 극에 달한 것이 바로 현대기술이라는 하이데거의 지적은 어찌 보면 인간소외의 미래사회를 향한 우울한 예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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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시대의 인간과 기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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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있다. 휴대전화에서 인터넷, 자동차 더 나아가 로봇,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면 이러한 과학기술은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단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환경파괴와 인간의 존재방식까지도 지배하는 존재로 진화할 것인가?   이 책은 일상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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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있다. 휴대전화에서 인터넷, 자동차 더 나아가 로봇,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면 이러한 과학기술은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단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환경파괴와 인간의 존재방식까지도 지배하는 존재로 진화할 것인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기술제품에서 출발하여 테크놀로지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는 여러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자연과학에 기초한 책이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문화학, 역사 등을 아우르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총이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면 총을 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가? 이 질문을 생각해 보면 기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결국 기술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을 함께 고려할 때에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시계의 발명으로 시간에 짜맞춘 생활양식이 보편화되었고, 비행기의 발명은 대륙간 여행의 보편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인간 본래의 모습을 축소 또는 왜곡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통적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새로운 가능성을 동시에 나타낼 수도 있다.

 

책 제목에 나타나고 있는 '욕망하는 테크놀로지'란 의미도 이젠 기술이 더 이상 도구적, 중립적 존재로만 머무르고 있지 않는다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을 돕는 도구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이젠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기술은 '인간이 자연세계와 관계를 맺는 특별한 양식'으로 변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기술의 이러한 측면들에 대해 이 분야의 최고의 과학기술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여러 저자들의 이야기가 함께 제시되기 때문에 비슷한 측면이 중복적으로 이야기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기술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전개되는 좋은 책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c******4 2009.10.22.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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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외, 욕망하는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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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사학자’들이 성찰하는 ‘과학’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학자’들이 성철하는 ‘기술’을 다룬 책이다. 과학기술자와 과학사학자들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을까? 예전에 읽은 이상욱 교수의 논문을 떠올려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학자들은 현재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꺼려한다. 반면 과학기술학자들을 지금 다루어지는 과학기술들을 다방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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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과학사학자’들이 성찰하는 ‘과학’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학자’들이 성철하는 ‘기술’을 다룬 책이다. 과학기술자와 과학사학자들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을까? 예전에 읽은 이상욱 교수의 논문을 떠올려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학자들은 현재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꺼려한다. 반면 과학기술학자들을 지금 다루어지는 과학기술들을 다방면으로 분석하고, 정리한다.”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 우리 삶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고찰하고 있는 논문의 대부분은 ‘과학기술학자’가 쓴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역시 머지않은 과거를 분석하고, 그에 얽힌 여러 가지 정치, 경제, 문화적 관점으로 기술을 고찰하고 있다. 여기에 철학적 고민까지 더해져서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특히 장대익 교수의 ‘휴머노이드와 사이보그’와 ‘뇌는 정말 거짓말을 못할까’는 매우 신선했다. 그의 글은 기술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몸의 장기와 뇌등을 인공물로 만들어 인간의 몸에 이식하는 날이 온다는 미래예측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철학적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뇌가 곧 나인가?” (p.262) 또 인공지능이 점점 발달해서 사람과 같은감정을 가진 로봇이 생산된다고 가정할 때, 그 로봇 또한 자아에 대해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상상해보라. 로봇이 인간이 하는 것처럼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나는 누구인가?” 또, 인간과 같은 로봇에게 선거권을 줘야하는지, 법에 맞는 제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주제 외에도 <욕망하는 테크놀로지>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한 생산가 절감으로 자동차의 대중화를 일으킨 ‘자동차의 왕’ 포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사, 그에 대한 쟁점, 기술학 방법론, 여성과 기술 등이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나는 과학적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고, 정확한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학 분야를 새로이 접하면서 그것은 아주 큰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역시 일반적인 ‘과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 줄 것이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전혀 새롭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옛날과 비교해 보라. 옛날에는 자동차 한 대가 굴러가도 “우와~ 신기하다” 탄성을 내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말하는 로봇이 등장해도, 인공위성을 하늘에 쏘아 올려도 신기해하는 대중은 거의 없다. 그들에게는 모든 과학의 성과들을 당연시 여기거나 무관심 대상인거다. 왜냐하면 그만큼 과학은 늘 진보해왔으니까. 더 진보하는 과정의 하나로 여길테니까.


  <욕망하는 테크놀로지>와 같은 책들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동안 이룩해온 과학적 성과들을 한번 만이라도 곰곰이 사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과학은 ‘양날의 칼’이라는 구닥다리 정의말고, 진정으로 고찰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인류의 행복한 삶을 함께 고민하는 가장 의미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인간의 부산물인 과학도 결국은 윤리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한번 더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다.

i****h 2009.11.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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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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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 꾸준히 속편들이 제작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1편의 마지막 장면 중 용광로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라지는 장면? 또는 “I'll be back.”이라는 대사? 물론 그런 부분들도 공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변 상황, 말하는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대답할 말을 선택하도록 된 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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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 꾸준히 속편들이 제작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1편의 마지막 장면 중 용광로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라지는 장면? 또는 “I'll be back.”이라는 대사? 물론 그런 부분들도 공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변 상황, 말하는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대답할 말을 선택하도록 된 프로그래밍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마치 누가 보면 그들도 생각할 줄 알고,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듯이.

 

기술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기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기술이란 단어에서 사람 없이도 쉼 없이 물건들을 생산해내는 공장의 로봇 팔들을 떠올려본다. 철, 금속, 기계가 주는 차가움. 그래서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미가 없다며 전혀 관련 없는 다른 것으로 딱 잘라 선을 긋기까지 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알람시계, TV, 냉장고, 세탁기, 휴대전화, 대중교통수단, 컴퓨터,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하는 일 등등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잠들기까지 우리는 기술로 이루어낸 산물들, 즉 ‘기술’ 자체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은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좀 더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기술을 “인간이 자연세계와 관계를 맺는 특정한 방식” 혹은 “세상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정의했다.(p.16) 그러고 보면 기술은 참 친숙한 단어다. 사냥 기술, 농사 기술 그리고 국가의 힘이 되는 정보통신기술 등 우리는 기술을 만들고 덕분에 생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시간, 장소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의사소통의 장이 되게 해준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성처럼 현실 세계의 사람들에겐 소홀할 수 있다는 면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기술은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지배와 권력을 가지기도 한다.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이 늘 그 우위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이 기술에 의해 거꾸로 통제되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철학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 기술은 각각 따로따로가 아닌 크게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기술 속에 자연 속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휴대전화의 전쟁과 수컷 공작새의 꼬리 자랑 비교는 무척 흥미로웠다. 한편 ‘호모파베르에게 자유는 있는가.’에 대한 글에서기술의 제작에 있어서는 자동화를 통해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사용에 있어서는 사용하지 않을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p.67)는 말을 통해 효율성의 법칙 안에 서서히 잠식당하는 인간의 가치를 돌아본다. 허탈한 무력감. 그동안 기술을 만들고 발전시키느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은 아닐 런지. 서로 연관되어 있음에도 균형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공존하는 기술시스템의 개념에 더욱 눈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속의 테크놀로지에 관련된 테마 중에서는 여러 소주제 중에서 ‘타자기, 세탁기 그리고 인공수정 : 기술과 여성의 세 접점’이란 글을 통해 기술과 여성의 관계를 재조명해 봄으로써 색다른 관점으로 기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무자동화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줄지 않았다는 점, 피임, 인공수정이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개발이 그 독단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일반적 입장이 고려되어 그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휴머노이드와 사이보그’는 이미 많은 영화들을 통해 한번쯤은 접해봤기에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은 개념이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휴머노이드라면 반대로 사이보그는 로봇을 닮은 인간이다. 책에서는 사이보그가 짧은 유통기한을 가진 신체의 여러 부분들을 그렇지 않은 기계 및 전자 장치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생긴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로봇과 인간 사이에 대한 글과 함께 다음으로 이어진 뇌에 관한 신경과학의 발전에 관한 글은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득 일본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떠오른다. 10년도 더 된 애니메이션이지만 벌써 그 속에서는 사람의 두뇌를 전자화한 ‘전뇌화’와 사고로 인해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신한 ‘의체화’란 표현이 나온다. 사람은 얼마든지 원하는 신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두뇌나 신체는 다른 존재에 의해 해킹당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기억 조작도 가능하다. 책에서 제기한 신경과학의 발전과 애니메이션의 ‘전뇌화’ 개념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뇌 프라이버시 문제라든가 윤리적 쟁점 같은 것들은 공통적으로 다뤄봐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특히 ‘뇌가 곧 나인가?’라는 문제 역시 탐구해볼 만한 주제이다.
   
『욕망하는 테크놀로지』는 끊임없이 의문점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아간다. 기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그 순기능과 역기능은? 나날이 발전해가는 기술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쓴 저자들 모두 기술에 대해 유토피아적이거나 디스토피아적인 양 극단의 생각이 옳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기술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회,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생각하는 기술. 앞으로는 그런 철학적인 부분들과 함께 발전되어야 하겠다. 

 

s*******6 2009.08.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