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작가는 어마무시한 문명의 발달이 초래할 인간의 위기를 예견하며 이 책을 썼다. 화재에 약한 다양한 재화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직업이었던 Fireman은 문명발달로 더이상 화재에 약하지 않은 물질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다. 소방사라는 직업이 불필요해지자 사회의 지배계급들은 피지배계급의 정신을 소멸하기 위해 소방사를 불을 지르는 방화사로 탈바꿈시킨다. 책을 태우며 인간이 사유할 기회를 같이 '소멸'시켜버리는 것이다. 모든 집에 책 대신 말초적인 쾌락을 위한 커다란 벽걸이TV가 등장하고 사람들은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와 듣고싶은 뉴스에 길들여져 버렸다.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신경안정제를 들이붓지 않으면 잠이 안 오고, 누군가는 아무 고민 없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고, 그것의 이유를 책에서 찾으려고 했던 누군가는 불타죽는 괴이한 상황들이 펼쳐진다.몬테그가 특이한 소녀 클라리세를 만나 처음으로 책을 방화하는 일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그가 잊고 있던 행복을 찾는 행위는 숨긴 책을 '보호'하는 일로 다시 변화한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보존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행위지만, 그에게는 행복하기 위한 시도였고, 불행한 미래를 바꾸기 위한 행동의 첫걸음으로 묘사된다.
왜 책이었을까. 그 이유는 어떻게든 책을 숨기고 보존하고 싶어했던 교수 파버의 '책이 중요한 세가지 가치'에 설명되어 있다. 좋은 질과 짜임새로 사람마다 알맞게 좋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 충분한 시간과 멈춤(pause)를 통해 사유할 여가를 주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가 갖춰졌을 때 기인하는 행동력의 권리를 일깨우는 것이 바로 책이 세 가지 기능이다. 번역의 오류인지 작가의 은유 때문인지 이 부분을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담화를 위해 재독을 하고, 작가후기 및 리뷰를 보며 이 부분을 겨우 정리할 수 있었는데, 지배권력이 책을 방화하려는 이유=피지배층이 사유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작금의 세태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을 느끼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70년이나 이전인 과거에 이렇게 미래의 문제를 생생히 예견하다니.
요즘 우리는 더욱 가속화된 문명의 발달로 편리한 생활을 누린다. 로봇이 사람일을 대신하는 정도로 기대했던 과거는 우습고, 이제 로봇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정신줄을 잡아야하는 미래를 마주한다. 생각하지 않게 해주는 지나친 편의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단순히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는데 그치지 않고, 편의에 물들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잊거나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잊지 않으려고 버둥거려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이 유일한 대안인 것은 아니지만, 가장 쉬운 대안 중 하나인 것이 사실이다. 책(글)을 읽는 행위로 우리의 두뇌는 장면을 그리고, 옳고그름을 판단하기도 하며 책이 주는 메시지의 감정을 느끼고 기록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축적되면 경험이나 스킬이 되기도 하고, 또는 신념이나 감정의 소화가 되기도 한다. 내가 책을 읽고 담화하는 모임에서 얻는 것이 많다고 느끼는 이유다. "심지어 책으로 힐링도 된다고! " 외치는 나는 책모임 예찬론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숙제처럼 책을 읽고 아는 척을 하고자 공부하듯 참여했던 지난 책모임과 달리, 지금은 책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비추어보고 경험을 공유하며 지식이 아닌 지혜를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책모임은 어렵지 않고 이롭고 할 얘기가 많아 재밌다. 지인이나 아이가 독서가 버겁다고 한다면, 나는 네가 가장 읽고 싶었던 책으로-그것이 소설이든 만화이든 수필이든 상관없다-골라 읽고 싶을 때 읽고, 덮고 싶을 때 덮고, 또 이어 읽어 완독하는 것으로 시작하라고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정말 재밌었고 소개해주고 싶은 책을 만나면, 거기서 인상적이었던 경험을 네가 대화하고 싶은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시간을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독서가 주는 힐링과 대화의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나의 아이들이 그렇게 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퍼뜨리는 사회, 그런 유토피아가 화씨451의 디스토피아를 유머로 기억하는 세상이 오길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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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을 누군가 다가와서 불태워 버린다면? 당신이 그동안 소중하게 모아둔 책들을 불태우고 당신마저 불속으로 집어넣어 버린다면 당신,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이 불타는 온도 '화씨 451'을 바라볼 것인가, 그 온도 속으로 함께 들어갈 것인가. 1953년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책이 불타는 미래를 『화씨 451』에서 그려냈다. 이 책은 놀랄 정도로 미래, 즉 지금의 모습과 닮아 있다. 브래드버리가 놀아달라는 딸을 피해 UCLA 도서관 지하에서 30분에 10센트 씩을 내고 타자기로 쓴 이 소설은 2018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방수가 아닌 방화수로 일하는 몬태그는 책이 있는 곳에 찾아가 등유 방사기로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한다. 미래의 어느 사회의 집들은 모두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화재가 날 위험이 없다. 불을 끄는 일이 사라진 자리에 불태우는 직업 방화수가 등장한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이란 가지고만 있어도 방화서로 신고 당하는 물건으로 변해버렸다. 방화수들이 즉각 출동해 책을 태우고 책과 함께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까지도 집 안에 불과 함께 두고 나온다. 위험한 것이다, 책이란. 가지고 있어도 읽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법을 어기는 행동이다. 벽면 텔레비전이 집 안을 차지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홀로그램과 환상에 취해 매일 죽음을 꿈꾼다. 몬태크의 아내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텔레비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현실이 아니고 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상이다.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한 상태인 밀드레드를 발견한 몬태그는 전화를 건다. 의사가 오지 않고 기계 두 대를 가진 사람들이 온다. 긴 관을 아내 몸으로 집어넣고 약물을 빼낸다. 아내가 괜찮은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요금을 먼저 계산하라는 그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찾아 볼 순 없다. 자신이 수면제를 먹은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는 밀드레드는 다시 벽면 텔레비전과 하루를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소녀 클라리세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몬태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느낀다. 민들레로 사랑에 빠진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는 클라리세. 제트 카에 탄 사람들은 거리에 풀과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클라리세. 제트 카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광고판을 한없이 길게 제작해 놓는다는 것. 그리고 아침에 잔디밭에 나가면 이슬이 맺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클라리세는 자신을 미친 열일곱이라고 소개한다. 그 대화의 시작으로 몬태크는 책을 불태우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책의 운명은 어떻게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스스로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고 생각했던 몬태그는 방화 현장에서 책 한 권을 훔쳐 나오기에 이른다. 아내에게 그 책을 보여주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몬태크는 그 안의 내용들을 조금씩 읽어 본다. 방화서장 비티가 찾아와 방화수들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마침내 전 세계 집들이 전부 불연성이 되자 예전처럼 불을 끄는 소방수란 존재가 필요 없게 되었지. 이건 지난밤에 자네가 한 가정이 맞아.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는 새로운 일거리가 할당된 거야.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열등한 인간이 된다는 두려움, 그 타당하고 정당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 거지. 정부 검열관이나 판사, 집행관 같은 파수꾼, 몬태그, 그게 바로 자네고, 나라는 존재야. 비티의 말대로라면 방화수라는 직업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 필요를 누가 만든 것인가. 한때는 책이 경제적인 부담이 적고 여유가 많은 상태여서 여러 곳에서 대접받았다. 서재를 가지고 있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웠다. 인구가 늘고 대중매체가 변화하기 시작하자 책들은 점점 단순해지고 말초적인 일회용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책 대신 벽을 가득 채우는 텔레비전을 들여놓고 압축된 이야기마저 읽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책은 불태우기 전에 스스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몬태크는 공원에서 만난 한 노인을 떠올리고 그를 찾아간다. 그에게서 책들이 왜 중요한지를 듣는다.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책의 역사를 알게 된다. 여가 시간이 사라진 사회에서 책을 읽는 대신 말초적인 자극만을 담당하는 벽면 텔레비전의 현실을 따라갈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느린 여유와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을 사람들은 벽면 텔레비전의 가상과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아내와 친구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몬태크. 방화서로 신고 당해 책과 집이 타는 걸 봐야 하는 몬태그. 냄새만으로 사람을 추적해서 몸을 마비 시키는 사냥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가 찾아간 곳은 어디일까. 책이 사라진 시대에 책이 아니라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몬태그의 세계의 앞날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여전히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 서점이 문을 닫고 도서관 대신 공원이 들어서는 시대. 레이 브래드버리가 『화씨 451』에서 그린 책의 운명이란 불에 태워지지만 않을 뿐이지 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거실과 안방에 각자의 텔레비전을 놓아두고 좁은 그 세계에서 위로와 위안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소통 대신 무의미한 이야기를 이야기를 띄워 놓고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조차 서로의 신상들을 묻기에 바쁘다. 책을 읽었다는 것이 자기 과시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절판된 『화씨 451』을 도서관에서 발견해 읽고 전자책으로 다시 나온 『화씨 451』을 읽으며 책의 온기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내 속에서 책이 발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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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의 주인공 가이 몬태그의 직업은 소방수입니다. 존경받는 멋진 직업이죠. 문제는 이 시대의 소방수는 불 나면 불을 꺼서 사람들을 구하는 분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책을 태우는 직업이라는 점입니다. 뭣하면 사람도 같이 태우고요. 생명과도 같은 책이 사라지는 것을 책 주인들이 거부하면 말이죠. 저는 이 책 주인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책이 생명과도 같이 소중해서도 있겠지만, 책을 태우면서까지 사람들을, 나를 통제하는 사회를 참을 수 없는 거지요. 책 태우는 사회라면.... 상상이 가시죠? 사람들 사는 모습이 끔찍합니다. 겉모습은 멀쩡한 좀비같아요. 몬태그의 아내 밀리는 자신이 우울증인지도,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해 남편이 여러 번 구조요청을 해 살렸다는 것도 모릅니다. 벽에 설치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감정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의 사회. 여러분은 이런 세상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살고 싶으세요? 도대체 이런 사회를 계획하고 만드는 인간들은 누구냐고요? 왜요,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들. 다양한 생각들이 넘나드는 사회를 불안정하며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생각해보니 많죠?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오싹합니다. 나의 자유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도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네요. 책을 존중하는 사회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좀 과장인가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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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은 책이 금지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지식과 자유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전개와 강렬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으며, 현대 사회의 정보 통제와 미디어 의존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읽고 난 뒤에도 오래 여운이 남는 의미 있는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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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단단히 오해를 하고 시작했다. SF. 책을 불지르는 방화수. 라고 해서 수확자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 밤티 말투에 이상한 말도 안 되는 비유까지.. 중도 하차각이 여러 번😢 2부 시작할 때서야 아 이 책은 SF로 보는 게 아니구나. 내가 착각했구나. 라는 걸 인지한 이후로는 엄청 재미있게 봤다!! 이건 그냥 고전 1984 느낌인데 결말도 1984처럼 되면 어떡하지 꽤나 걱정하면서 읽었다. 🥶🥶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이야기. 특히 책을 불태우는 이유가 단순히 정부의 강압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깊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결과라는 점이 꽤 섬뜩했다. 1953년에 나온 책인데 그때와 지금과 달라진게 없다는 사실이.. 본인의 의지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현실 같은 이야기라서 결말도 와닿았고 여운이 오래 오래 남는 책이다. |
| 요루시카의 451 노래 듣고 읽게 된 책입니다. 방화수라는 설정이 너무 맘에 들었던 작품...그리고 출판된지 꽤 된 작품인데도 작금의 사회를 꿰뚫는 통찰. 독서와 멀어지는 세대에게 보내는 경고장과 같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성도 재미도 다 훌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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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과 독재 사회를 비추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책 속의 사회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소방관의 역할이 책을 찾아 불태우는 일이다. 소방관인 주인공은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가 한 소녀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생각하는 삶에 대해 배우고 책읽기에 눈을 뜨게 된다. 인상깊은 이야기였어요. 잘봤습니다 |
| 레이브레드버리 작가님의 화씨 451 리뷰입니다. 이책을 읽고 느낀건 익숙한걸 낯설게 보기에 딱 맞는 예시적인 작품인거 같습니다. 책의 책을위한 책에의한 스토리가 펼처지는데 신선한 작품이었어요. 많은 생각을 하게되고 곱씹게 되네요 |
| 독서가 반사회적 행위라 금지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현대의 불을 끄는 소방수와 반대로, 주인공 몬태그는 금지된 책들을 불지르러 다니는 '방화수'인데, 어느 날 사라진 옆집 클라리세를 만나면서 사고가 바뀌는 일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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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는 자꾸 책 구매할때마다 많이 구매한 책, 추천하는 책으로 떠서 궁금했습니다. 아직 읽지 않고 이북리더기에 다운만 받아두었는데, 제가 자주 보는 유투버 분이 화씨를 읽기 시작했다고하여 저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서도 추천하는 도서로 많이 등장한다고 하니 여러분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