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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분야에 대한 논쟁적 사실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명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단계별로 고민을 해보자. 먼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야 할 것이다. 그럼 누가 전문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미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개인이나 단체의 추천을 받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권위 있는 단체나 개인을 만날 것인가?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의 의문은 자제하자. 어차피 순화 논법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야기를 계속 전개하면, 그와 같은 추천을 통해 만난 전문가들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논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어차피, 한정된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가 다방면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방법이 차선책으로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이 책은 저명한 과학자 12명과의 12가지의 논쟁적 주제에 대한 인터뷰를 편집해 놓은 책이다. 또한 해당 전문가를 선정한 사람인, 이 책의 지은이 제레미 스탱룸은 「필로소퍼스 매거진」과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뉴 브리티시 필로소피』의 공동 편집자이다. 이쯤 되면 위에서 언급한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의 기본 조건은 만족하는 셈이다. 필자는 선정된 12명의 과학자들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중 세명을 알고 있는데 필자의 관점에서 소개를 해보고 싶다. 사회생물학이라는 명저로, 소위 진보적 정치노선을 바탕으로 한 과학이라는 어리석은 가치를 추구하는 르윈턴과 굴드에게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온 하버드대 생물학자이자 명저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그의 사회생물학 이론은 많은 증거와 함께 이제는 거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굴드와 르윈턴이 범한 좋지 않은 실수, 즉 객관적 사실의 추구라는 과학적 가치를 이데올로기로 제단한 나쁜 선례가 되었던 사건이다), 종의 기원을 현대 분자 생물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다시 쓴 “진화하는 진화론”의 저자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유전학 교수 스티브 존스, “빈서판”, “언어 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같은 명저의 저자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 이와 같은 세명이 대변하는 것이 무엇인가? 최소한 필자가 알고 있는 바를 바탕으로 판단하더라도 전문가들의 선정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특이한 점은, 전문가들이 선정된 분야는 주로 생물학과 의학 분야라는 사실이다. 과학 자체를 논하는 인터뷰도 두 개가 있지만, 나머지 10가지 주제로 생물학과 의학, 로봇공학을 선택하였다는 것은, 이 책이 대중과의 과학적 이슈들에 대한 호흡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반 대중들에게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과 같은 분야로 접근하기 보다는 생물학, 의학, 천체 물리학, 로봇 공학과 같은 분야로 접근하는 것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훨씬 용이하다는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로, 이 책을 손에 드는 순간 거의 모든 과학의 분야를 섭렵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열두가지 분야로 거의 모든 과학의 분야를 다룬다는 생각 자체가 순진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손엘 들 때는 그런 순진한 욕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브 존스, 스티븐 핑커의 이야기는, 이미 필자가 상당 부분 동의하고 있는 분야이므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나 지구 생명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노교수의 이야기들은 절대로 진부하지는 않다. 기계가 지능을 가지는가? 라는 논쟁적 화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워릭 교수의 이야기는 그의 열정을 보여 준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의 몸에 전극을 이식하며서 해당 전극을 통한 통신으로 눈을 감고도 무엇인가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는 워릭 개인의 경험담은, 인간의 마음 또는 아이덴터티에 대한 유물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의 유희를 즐기게 해준다. 말릭이 쓴 동물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극단적 동물 보호론자들의 반인간적 주장들을 이성적으로 고발함으로써, 극단적 환경론자들과 과학의 화해하기 힘든 논쟁들을 설득력있게 제시해 준다. 특히,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그간의 생각을 바꾼 것이 있다. 그런 변화의 출발은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조금은 막연하게나마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의 이런 반감은, 유전자 변형식품을 통해 거대 기업적 농업이 발전하고 이에 따른 영세 농민들의 몰락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과 광우병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이슈로 야기된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에 대한 매우 엄격한 잣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분위기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즉, 필자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못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세 분의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데, 어차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부모의 유전자가 변형되어 만들어졌으므로, 모든 먹거리는 유전자 변형식품이라는 생물학적 근거에서부터 증가하고 있는 제3세계의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계속 개간을 하여,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킬 것인지 아니면 주어진 경작지에서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 올릴 것인지를 묻는 지극히 환경론적인 옹호까지 세분의 전문가들은 언론과 대중과 극단적이고 근시안적인 환경론자들 이야기가 객관적 사실을 가려버린 예로 주저 없이 유전자 변형식품 논란을 들고 있다. 조금 확대하여 이야기해보면, 지적설계론과 같은 정치적, 종교적 우파들의 논란을 지극히도 혐오하는 필자는, 극단적 환경론과 같은 정치적 좌파들의 논리에도 과학이 오염되어질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먼 래빗의 인터뷰 주제인 위기의 과학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흥미로운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도킨스의 비판과 괘를 같이 하는데, 소칼의 사건 - 좌파 지식인들의 현학적 오류가 객관적인 과학을 오염시킨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중학생 수준이면 알 수 있는 과학적 오류 다섯 가지 정도를 의도적으로 담아서 “중력장 이론에 대한 변형적 접근”이라는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제목으로 논문을 써서 포스트 모더니즘 학술지에 제출하였더니 덜커덕 게재가 된 사건 - 을 예로 들면서 현학적인 자세로 과학을 접근하는 부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정치적인 입장이 절대로 우파는 아닌 필자에게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었다. 인간의 의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뇌과학자 수전 그린필드의 주장, “뉴런 연결망의 개인화가 바로 우리가 인간의 마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은 유물론적이고 과학적인 인간 의식과 마음에 대한 설명이지만, 어쩐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좀 더 증거가 쌓여서 그와 같은 그린필드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주저없이, 인간의 마음을 뉴런의 연결을 통한 시냅스의 전기신호라 주장할 것이다. 짧은 시간 투자로 효율적인 결과를 얻는다는 목적은, 근본적으로 책읽기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이야기이다. 독서라는 것은 일정 수준이상의 시간과 사고를 투자하여야만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인 분야인데, 이 책의 예외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책은, 자칫하면 소위 수박의 겉핥기가 될 수도 있는데 읽어보면 읽어 볼수록 핵심에 대한 정리가 산뜻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학자중에 한 분인, 에드워드 윌슨의 노력이 눈물날 정도로 마음에 다가오는 Site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그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들을 등록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모든 종이라는 말의 정의는 무척이나 유연하다) 만든 Site 인데, 눈물이 날 정도로 노교수의 노력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아래쪽 EOL 의 로고를 클릭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