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40개의 수필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수필은 서두, 영화, 수필로 나뉘어 졌다. 서두는 글의 간판이다. 따라서 고급 언어들의 집합이다. 가히 시(詩)라 해도 흠이 없다. 작가는 이 간판을 쓰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나는 정성 들여 읽는다. 그래야 뜻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부분은 짧다. 겨우 200자 원고지 2매 정도, 요는 그녀 수필의 소재에 불과한 것(영화 알기를 원한다면 평론이나 영화 소개서를 읽을 일이다). 수필부분은 작가의 인생이며 철학이며 사랑이며 생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영화보다 더 진한 인생을 이야기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공존="" -="" 프라하의="" 봄="">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읽고 몇 년 동안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던 때가 있었다. 예측을 불허의 거침없는 관능과 매끄럽게 진행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철학이 내재된 소설. 그 소설의 영화화라는 것을 이제야 아니 내가 얼마나 한심한가. 몇 년 전만 해도 공무원들은 일과 중엔 신문조차 읽지 못하게 했으니, 우민화(愚民化) 정책일까. 공무원을 불쌍하게 생각하시라. 여기서도 작가는 어김없이 어릴 적 가볍게 눈사람을 만들다 무겁게 실패하는 이야기를 서두로 엮는다. 작가는 독자에게 과일을 통째로 내어놓아 질리게 하지 않는다. 과육을 가볍게, 얇게, 저며 "맛 좀 보시라." <눈물로 부른="" 아리아="" -="" 파리넬리)="" 시골="" 만석군의="" 장남으로="" 물장사가="" 된="" 음악="" 지망생과="" 농사를="" 지어="" 어렵게="" 의사가="" 되기를="" 기대한="" 딸이="" 미대(美大)로="" 전공을="" 바꿔="" 아버지의="" 의지를="" 꺾어="" 예술을="" 지향하던="" 선배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아름다움="" 수필이다.="" 거기="" 어린="" 소년의="" 미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거세당한="" 동생의="" 애절한="" 고통의="" 영화="" -="" 파리넬리가="" 더욱="" 슬프다.="" 나는="" 이="" 수필집을="" 읽으며="" 글="" 쓰기를="" 다시="" 배운다.="" 기행문을="" 쓰면서="" 날자와="" 날씨를="" 안="" 쓰니="" 기행문을="" 그렇게="" 쓰냐며="" 항의="" 비슷한="" 말을="" 하는="" 수필가를="" 만난="" 적이="" 있다.="" 꼭="" 날짜를="" 명시해야할까.="" 기행문을="" 돌아다닌="" 행적을="" 기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여행사="" 안내문으로="" 족하다.="" 작년에="" 양박사(독서="" 지도교수)가="" 나의="" 독후감을="" 보고="" 당신의="" 의견을="" 제시하라는="" 말이="" 무엇인줄="" 몰랐다.="" 이제야="" 안다.="" 이렇게="" 배운다는="" 것이=""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배워야="" 할="" 것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배움으로="" 보이지="" 않으니="" 무위로="" 그친다.="">눈물로><절대 고독="" -="" 위대한="" 비상=""> 이 글만은 '철새의 이동은 모진 운명입니다'로 시작해 전편(全篇)을 새들의 날기에 관한 이야기로 할애한다. 그만큼 절실한 이야기다. 내가 읽은 글 중에 가장 오랜 잔영으로 남아 있던 글이기도 하다. 언젠가 제목을 잊고 이야기를 했더니 '위대한 비상'이로군요. 하고 아는 사람도 있었으니 꽤 잘된 영화인 모양이다. …이동 중에 낙오되어 추락한 새들의 시체는 죽는 순간에도 날아야 한다는 생존의지 때문에 두 다리를 뒤로하고 유선형을 유지한 채 얼어죽어 있습니다. …중략… 나침반 바늘 만한 감각을 가지고 달과 별을 이정표 삼아 고도를 바꾸고 끝없는 비상을 하는 새들은 고층 빌딩의 불빛을 별빛으로 알고 빌딩에 부딪쳐 죽기도 하고, 갑자기 날아온 사냥꾼의 총알에 저항의 몸짓이나 외침 한번 없이 수직으로 뚝뚝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들의 여정과 비행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수직의 낙하가 그토록 처절해 보이지 않겠지요.…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영화를 본다 해도 이 글에서 느끼는 것만큼 감동을 얻지 못하리라. 글이 사진이나 사실보다 더욱 절실한 때가 있다. 이 글이 그런 글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멀티="" 프리시티=""> 삶을 4배 편리해 지도록 복제 인간을 만들지만 일은 4배로 늘어난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컴퓨터만 나오면 인간은 창조적인 사유만 하고 모든 것은 기계들이 할 것이라 했지만 사실이 그런가. 인터넷과 FAX, 자동 음성 녹음기에서, 복사기,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출력한 모든 자료들의 검색, 그리고 수정과 삭제…. 어느새 일이 줄어든 것을 따지기 보다 기계 속도에 작업을 맞추어야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읽기는 잘못된 독서법이지. 실제는 더욱 심각한 이야기다. 혹시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나를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를 묻고 있다. 황인원의 시 '살아 있는 시체 3'을 다시 읽는다.나를>절대>가벼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