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는 일은, 말하자면 지적 절도다. 무릇 정당한 대가를 치루지 않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일 일체를 절도라 말한다면, 독서만한 큰 절도는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책을 읽는 경우, 독자는 독서에 너댓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저자가 집필에 투자한 수백수천여시간의 정수를 훔친다. 행여 기만원의 책값이 저자의 나머지 시간을 변상한다고 말한다면 언감생심이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의 쾌감은 값진 물건을 훔쳤을 때의 심정과 기실 꼭 같은 것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저자가 평생 땀 흘리며 보아온 조선 그림들의 핵심을 독자들은 낄낄 웃어가기까지 하며 훔칠 수 있다. 게다가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열정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대중 강연을 녹취했기 때문에 정색하고 읽을 책이 아님에도, 마냥 가볍게만 읽히는 책이 아니다. 평론다운 평론이 의례 그러해야지만, 그림의 전체적 맥락을 짚어주면서 화폭 구석구석을 야무지게 부각해내는 저자의 해설은 빼어나다. 김홍도의 <무동> 세부를 섬세히 파헤치고 있다 싶으면 어느 순간 그림밖의 역사적 맥락을 호쾌하게 풀어놓는다. 저자의 이런 능력이 한 장의 그림을 살아 뛰놀게 한다. 게다가 그의 말솜씨는 박자와 가락이 퍽 영리해서, 그림을 설명하는 시종 독자를 쥐락펴락한다. 조선의 그림은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내려그으며 봐야 한다는 기술적 정보에 감탄했다가, 혼이 담겨 있지 않은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는 저자의 일갈에 독자는 감심(感心)하고 마는 것이다. 딱 하나, 책 뒷편으로 갈수록 국수주의적 냄새가 짙어진다. 그러나 우리 그림이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저자의 개탄이 회고취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조선 그림이 갖는 보편적 가치가 매쪽에서 잘 배어나기 때문이다. 책 내용에 대해서는 말한 게 없다 싶어 몇 구절을 인용할까 했는데, 저자의 청산유수 속에서 한두 마디만을 똑 잘라내기가 당최 쉽지 않다. 읽어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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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심미안이 미덥지 못해서 늘 의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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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옛 그림을 보아야 하는가 평소에 특별히 예술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아니면 미술 작품을 보고 제대로 감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흔히 박물관 같은 곳에서 부딪히는 아이들은 학교의 수행평가를 위해 혹은 부모의 자기만족을 위해 감상이 아닌 작품해설을 노트에 옮겨 쓰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이 작품 감상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병도의 <국사대관>에 기재된 것처럼 고구려의 문화는 “고졸(古拙) (하고) 웅건(雄健)”하며, 백제의 문화는 “우아(優雅)하고 섬세(纖細)하고 세련(洗鍊)”1)되었다고 읊조리는 것도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니다. 그저 다른 이의 감상을 앵무새처럼 중얼거리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행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그 길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작품을 감상하는 원칙은 간단하다.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2) 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대형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1층 제일 첫 줄 한쪽 가장자리에 앉게 되면 한두 명의 배우는 자세히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작품 전체를 온전하게 감상하기 힘들 것이다. 반대로 2층이나 3층 좌석에 앉게 되면 작품의 전경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 하나하나는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기본이 갖춰졌다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해야 옛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의 옛 그림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서양식 가로쓰기에 따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스쳐 내려가듯이 본다. 하지만 오랫동안 세로쓰기를 하였던, 우리의 조상들은 평상시 습관대로 오른쪽 위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스쳐 내려가듯이 본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옛 그림을 보면 우리는 뻔히 답안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다고 떼를 쓰게 되기 쉽다. 불행히도 소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거쳐와서인지,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우리 것으로 소화시키는 대신, 기존의 것을 무조건 버리고 서양의 것을 신성시하고 모방하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헛발질의 결과로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문화도 사라져버린 저 만주족(滿洲族)의 전철(前轍)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과 그들의 문화를 무조건 못난 사람과 고루(固陋)한 것으로 치부하고 대충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이불견(視而不見,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다)”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 듣기는 듣는데 들리지 않는다)”한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옛 그림을 보면서 감상이 어렵다는 우리에게 “보고 듣는데 왜 안보이고 안 들릴까요? 마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애초 찬찬히 보고 들을 마음이 없이 건성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3)”라고 질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마음을 열고 하나라도 천천히 살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변상벽(卞相璧)의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강연에 얽힌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공부 더 한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사랑하고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이 더 중요4)”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옛 그림과의 대화를 위하여 이 책에서는 한국문화 가운데서도 조선 후기 그림을 중심으로 한국화, 즉 그림을 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 설명된 붓 터치, 여백 분석, 구도 분석부터 그림 속에 내재된 마음을 읽는 법과 글과 함께 해석하는 법, 음양오행을 통해 읽기 등을 보면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옛 그림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우리가 옛 그림에 대해 끊임없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문화를 보는 안목을 높인다면 언젠가는 <천년 벗과의 대화>의 저자가 그렇듯이 옛 사람과, 아니 옛 그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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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의 생일을 맞아 생일 선물로 준비한 책이다.
물론 내방서가에도 좋은 자리를 잡아서 오주석선생님의 책3권이 함께 있다.
오주석선생님의 글을 처음 본것은 "옛 그림읽기의 즐거움"이라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미술교과서 등에서 보아온 한국화의 걸작들을 추리고 추려서 작가의 심상을 적은 것이었다.
남자치고는 유별난 성품이라 회화 , 조각, 등등의 작품감상을 적은 글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지금까지 "옛그림읽기의 즐거움"마냥 즐거움을 준 책은 거의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군대시절, 남도의 초봄을 카고트럭의 마후라 터진 고물버스같은 크기의 엔지소리와 함께 감상하면서 읽은 책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난생처음로 읽고 바로 다시 읽은 책은 이것뿐인지라, 누구에게 독서를 권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만은 날 믿고 한권씩 사서 필독하기를 권하다...
"한국의 미특강"은 교육자들 모셔놓고 한 특강을 녹취해서 만든 책인데,
강의를 기본으로 해서 짜여진 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좋은 경험이었다.
(비슷하게 안도다다오가 대학원생을 위한 특강을 책으로 역은 "연전연패"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은 것을 보니 이런 종류의 책은 재미가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일본의 찌꺼기를 머리 한가득 지고 살면서도 무엇이 찌꺼기인지도 모르고 살던 이유로 광화문 현판교체등의 사회적 이슈와 "오빠가 돌아왔다" 중 보물선인가하는 내용도 따라잡지 못하다가, 이번독서를 통해 통찰의 눈이 더욱 커진것 같아서 기분좋다.
하여간 이번 추천 도서는 전 국민의 필독서라 할 수 있으니.
묵언수행과 함께 민족정신함양 및 문화강국의 척후병 기능 수행을 해보기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닥,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나라의 문화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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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솔/2005.5.25.
우리가 박물관이나 전시회에서 우리의 옛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종종 있다. 때로는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같이 가기도 한다. 그림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팜플렛이나 작품설명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만 적게 한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근무하며 이런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우리의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안내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냈다. 저자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전국에 강연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2>, <단원 김홍도> 등이 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강의 내용을 보강해서 펴낸 것이며, 옛 그림을 공부하면서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의 구성은 강좌를 시작하며, 첫째,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둘째,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셋째,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강좌를 마치며, 부록 : 그림으로 본 김홍도의 삶과 예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문화라는 것은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내력, 지금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보람, 가치, 이런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옛 그림을 잘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우리가 어떤 저력을 지니고 있는 민족인지 등등을 여러 가지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p.13)” 국립중앙박물관이고 어디고 간에 최고의 명품은 그 전시실에 딱 들어갔을 때 한눈에 척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과 끝 부분에 그 다음으로 훌륭한 그림을 전시한다. 그림도 내 마음에 드는 것, 왠지 모르지만 자꾸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몇 점을 골라서 잘 보고 찬찬히 나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 옛 그림은 대각선만큼 떨어지거나 그 1.5배만큼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렇게 쓰다듬듯이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그림을 찬찬히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p.31)” 글을 내리닫이로 썼으니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읽어야 한다. 산도 비슷한 윤곽으로 흐른다. 서양 사람처럼 좌상에서 우하로 보았다가는 그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볼 때 먼저 왼쪽 위를 봤다가 오른쪽 아래로 스쳐 내려가듯이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한문도 세로로 쓰셨고, 한글도 이렇게 내리닫이로 쓰셨다. 즉, 시간을 들여 찬찬히 사물을 볼 때 먼저 오른쪽 위를 봤다가 왼편 아래쪽으로 이렇게 시선이 스쳐 내려가게 된다. 이게 아주 다른 점이다. 그런데 동양 3국 중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서양식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안타까워한다.
“기록을 보면 태평양전쟁 말기, 즉 1941-1943년 무렵에 우리 국보급 문화재가 한 해에 만 점 이상씩 A급만 쏙쏙 뽑혀서 일본의 도쿄, 교토, 오사카 3대 도시의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경매되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남아 있지도 않은 순 A급만 뽑아서 말이지요. 그래서 광복 당시 골동 상인들이 어떤 얘기를 했느냐 하면 “이제는 좋은 물건 다 나갔으니 앞으론 이 장사도 때려 치워야겠다”고 말했다는 겁니다.(p.155)” 이렇게 우리의 빼어난 문화재는 일본인 들이 수없이 가져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원의 풍속화첩에는 ‘처음부터 일체 글씨건 도장이건 낙관이 없었다. 이 또한 대량 생산한 상품이었다는 증거의 하나다. 그래서 <무동>의 도장은 가짜’라는 것이다. 또한 동양화는 여백이 특징인데, 탱화는 왜 이렇게 화면을 가득 채워 그렸을까? 불교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온 세계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붓다의 깨달음, 그 진리로 우주가 화려하고 장엄한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절에 있는 탑의 층수는 홀수, 땅에 닿는 면은 짝수로 이루어져 있다.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건 고려말 티베트 불교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진 이례적인 탑이기 때문이란다.
“사실 표구는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장황(裝潢)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한국말이 되어 사전에도 실려 있지요. 점잖은 옅은 빛 옥색 천을 위아래 민패로 바르고 그림 주변에 화면과 같은 색 바탕을 좀 더 환한 띠로 둘렀을 뿐, 문양이란 일체 없습니다.(p.193)” 표구를 할 때도 우리나라에선 비단에 무늬가 요란한 것을 쓰지 않고 그저 단색으로 옅은 옥색바탕을 위아래에 민패로 깔고 만다. 그랬던 것을 일본의 영향을 받아 그림 바깥쪽에 온통 정신 사납게 금빛 국화무늬며 구름 문양 등을 가득 둘러놓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면 그림이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호암미술관이나 옛 그림을 전시한 곳에 가 보시면 우리 옛 그림은 거진 70%정도가 다 이런 일본식으로 표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그렇게 바뀌어 버린 것인데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작품이 훼손되어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옛날 분들은 초상(肖像)이라고, 닮을 초(肖) 자를 쓰지 않고 ‘사진’이라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애비를 ‘닮지 못한’불효자라는 뜻으로 ‘불초(不肖) 자식’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학문과 수양과 경륜을 보여 주려고 초상을 그린 겁니다.(p.217)” 현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빛이 어디서 들어오고 그늘이 어디 생기고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옛 산수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수 자연의 기운을 옮겨 그리고자 하기 때문에 나무의 그림자는 그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참된 정신이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그 점을 중요시 했다. 여성만 안 그린 것이 아니라, 젊은이도 그리지 않았다. 젊은이는 학문도, 수양도, 경륜도 아직 이루어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깊은 뜻이 ‘사진(寫眞)’이란 말 속에 있다. 혹은 ‘진영(眞影)’이나 단순히 ‘진(眞)’이란 단어도 쓰는데, 그래서 임금의 초상은 ‘어진(御眞)’이라고 한다.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이건 손바닥만한 그림으로 김홍도가 그린 건데,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꽉 붙들고 있다. 왜 그럴까? 갈대꽃 로(蘆) 자는 과거에 붙은 선비한테 임금님이 주시는, 고기 려( ) 자 하고 발음이 같아서, 갈대꽃을 꼭 붙든다는 것은 과거에 합격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게하고 갈대꽃을 그릴 때는 반드시 부등켜안은 모습을 그린단다. 이 그림에서도 뒤로 발랑 나자빠지면서도 결사적으로 잡고 놓지를 않는다. 그런데 두 마리니까 소과(小科), 대과(大科)를 다 붙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게딱지는 딱딱하니, 한자로 쓰면 갑(甲)이니까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첫 번째 글자다. 소과, 대과를 둘 다 장원급제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홍도의 <황묘롱접도(黃猫弄蝶圖)>라는 그림에는 여름 꽃 패랭이와 봄에 피는 제비꽃이 한 화면에 그려졌다. 작품이 생신 선물이라 상서로운 뜻을 살리기 위함이다. 즉 고양이는 칠십 노인, 나비는 팔십 노인, 이끼 낀 돌멩이는 장수, 패랭이는 청춘, 제비꽃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상징한다. 그러니 전체 그림을 합쳐 읽으면, ‘생신을 맞은 어르신께서는 부디 칠십, 팔십 오래도록 청춘인 양 건강을 누리시고 또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하는 축원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문화는 꽃이다. 사상의 뿌리, 정치, 제도의 줄기, 경제, 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은 핀다. 지금 한국문화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 길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문화는 선인들의 과거를 성실하게 배워 발전적 미래를 이어가는 재창조 과정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우리의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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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쩜 우리 그림보다 서양의 그림이 더 아름답다 말했을지 모른다. 문인화보다 수채화를 1년 정도 먼저 시작했는데 처음엔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정말 어려웠다. 사람의 눈은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되었다. 보는 눈은 같을지 몰라도 그림을, 아니 사물을 해석하는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풍경을 보고도 다른 그림이 나오는 거라고. 수채화 채색이 들어가면서 색이 가진 힘에 놀라고 명암과 채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는 분위기에 놀랐다. 내가 가진 능력에 실망해 몇 번이고 그림을 포기하려했던 순간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사물을 보는 눈과 관점이 달라져 그림을 그리는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우연히 도서관에서 문인화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수채화나 유화와는 전혀 다른, 먹물의 색으로 사군자와 다양한 산수를 표현하는 게 신기해 수강 신청을 했다. 그렇게 1년은 ‘난’을 그리고 6개월은 ‘대나무’만 그렸다. 어떤 이는 지겹지도 않냐고 그거 배워서 뭐하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안다. 만약 수채화랑 문인화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한다면 나는 문인화를 선택하게 될 거라는 것을. 비록 1년 6개월의 시간동안 ‘난’과 ‘대나무’만 그렸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정신을 수련했고, 심신은 안정됐으며, 흑과 백이 주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알았으니까.
그렇게 문인화를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의 미를 알 수 있는 책이 좋아지게 되었고, 간혹 그런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번에 만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의 학교에서 골든벨 책으로 선정되어 어렵게 구입해 읽게 되었다. 저자가 강연한 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기에 딱딱하지 않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옛 그림을 감상하는 두 가지 원칙을. 하나는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은 옛 사람의 마음을 느낄 것.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딱 맞다는 생각에 무릎을 친다. 지금은 대부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을 읽지만 우리 그림을 볼 때는 세로쓰기를 사용했던 옛사람의 눈에 맞춰 그렇게 봐야 한다고 한다. 서양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움직이면 우리네 그림 감상은 엉망이 되어버릴 수밖에. 우리 그림에 담긴 우주관과 인생관, 음양오행과 한글의 원리 등 어렵기만 했던 것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송하맹호도’는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며 털이며 몇 천 번이었을지 모를 붓 터치가 주는 생생함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무엇보다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표구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다. 우리네 그림을 우리 식의 표구로 완성해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식 표구로 인해 우리의 색(우리의 느낌, 생각, 기백 등)을 반도 전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초상화를 있는 그대로, 터럭 한 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라는 생각으로 그렸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순간 이었던가? 우리는 우리의 그림을 순박하고 촌스럽다 생각하진 않았던가? 나 역시도 문인화를 그리지 않았다면, 유화나 수채화 아크릴 화 등, 화려한 색감과 그림에 더 빠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안다. 흑과 백이 주는 아름다움과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이 뭔지. 사군자를 그리고 나면 산수화를 배우게 될지 모르는데 산수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안개가 드리워진 듯 그 숲 안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아련함을 물의 농도만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사실을. 문인화는 그리면 그릴수록 정이 가고 행복해지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 예전엔 몰랐던 한국의 미.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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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반대로 해석하면 모르면 보이는 것도 없다는 얘기다. 보이는 게 없으면 느끼거나 생각도 못한다. 무관심은 스스로를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헬렌켈러의 이야기다. 산책을 다녀온 친구에게 뭘 봤냐고 물으니 아무 것도 본 게 없다고 했던 이야기. 눈이 보이지 않는 헬렌켈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 순 없겠지만 많이 알수록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즘은 그림에 대한 책들이 자주 출간되어 일반 독자들도 올바른 미술 감상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다. 전문가가 풀어놓은 작품 해설과 작가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냥 보기만 했던 작품들을 감상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주는 것이다. 이 책 <한국의 미 특강>은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었을 뿐아니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까지 배우게 된 좋은 기회가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 좋은 기회였다.
저자는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보면 교양이 있는 사람인지 문화하고는 아예 담벼락을 쌓은 사람인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전시장에 가면 크고 작은 그림들이 있다. 특히 우리 그림 중에는 아주 조그마한 그림들도 있다. 크기가 무척 다양하다. 작품은 크고 작은데 그림과 똑같은 거리를 두고 심지어 똑같은 속도로 지나가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고 흔히들 그렇게 본다. 그런데 그건 엉터리란다. 큰 그림은 떨어져서 보고, 작은 그림은 바짝 다가가서 봐야 한단다.
옛 그림 가운데는 공책처럼 작은 것이 많습니다. 그럼 바짝 다가서서 보아야지요. 화가자신도 사람들이 그만한 거리에서 볼 거라고 짐작하고 작은 그림은 작품의 세부를 더 꼼꼼하게 그립니다. (중략) 화가가 이렇게 거대한 작품을 그릴 때에는 붓끝은 화면에 닿아 있어도 마음은 저만치 뒤쪽에 가 있어서, 이게 멀리서 볼 때 이러이러하게 보여야 되니까 팔을 좀더 휘둘러 각도를 크게 해 주어야 되겠다. 선이 좀더 굵어져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립니다._(P.19)
그래서 우리 그림을 볼 때는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감상하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우리 그림을 감상할 때 중요한 것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봐야 하는 점이다. 우리 조상들은 글도 세로로 썼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움직이는 시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가로가 긴 현대의 그림들과는 다르게 우리 그림들은 세로가 긴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시선을 옮겨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옛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법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그림 한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좋은 그림 한 편으로는 몇 시간을 강의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전시관에 가면 쓱 한번 훑고 지나가는 식으로 그림을 감상하고 마는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비싼 입장료 내고 전시관에 가서 책에서 본 그림이 보이면 '이게 그 그림이군' 하며 확인하는 식으로 그림을 감상했던 지난 날을 깊이 반성하기도 했다.
어쩌다 우리 옛 그림을 공부하게 돼서 다시 우리 역사를 찬찬히 돌이켜 보니까, 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실은 굉장히 잘 지어진 돌집 같은 나라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문화와 도덕으로 튼실하게 잘 지어진 나라였다는 말이지요.(중략) 조선 시대는 세종대왕이며 영조, 정조 때에 배울 만한 훌륭한 사례가 많았는데 그 부분은 대충대충 가르치고, 나라 망하는 부분인 19세기말 20세기 쪽만 잔뜩 가르쳐서 열등감을 주면 우리 학생들은 도대체 무얼 배우고 느끼며, 무슨 자부심을 키우라는 겁니까? 참 이상한 발상입니다._(PP.164-165)
조선은 문화와 도덕이 튼튼했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왜곡되어 인식되고 있는 부분까지 짚어주고 있다. 일제가 우리 역사에 개입한 결과인 셈이다. 더불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진주 논개사당의 <논개 초상>, 남원 춘향 사당의 <춘향 초상>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그림이 예쁘지만 정신이 빠진 그림으로 소개했다. 친일 경력이 있는 화가가 일본식으로 그린 그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가 자신의 부인 얼굴을 그린 그림이란다!
일본인 조선 총독에게 한복 입은 아녀자들이 금비녀를 뽑아 바치는 그림을 그려 대동아전쟁 선전에 앞장선 사람입니다. 그런 이에게 부탁해서 춘향이도 만들고 논개도 만들고, 심지어 이순신 장군도 만들다니... 이런 일을 하는 나라는 세상에 원,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_(P.197)
이 책은 우리 문화와 그림의 우수성을 배우고 자부심을 갖게 해준다. 자연스럽게 우리 그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탄력 받은 김에 저자의 다른 책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 권을 이어서 읽을 생각이다. 덕분에 최소한 우리 그림 전시장에 가서 그림을 바라보는 자세부터 바뀔 것 같다. 아마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기도 하고 때론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보기도 할 것 같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교양인처럼 보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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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솔/2005.5.25. sanbaram 우리가 박물관이나 전시회에서 우리의 옛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종종 있다. 때로는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같이 가기도 한다. 그림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팜플렛이나 작품설명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만 적게 한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근무하며 이런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우리의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안내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냈다. 저자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전국에 강연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2>, <단원 김홍도> 등이 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강의 내용을 보강해서 펴낸 것이며, 옛 그림을 공부하면서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의 구성은 강좌를 시작하며, 첫째,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둘째,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셋째,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강좌를 마치며, 부록 : 그림으로 본 김홍도의 삶과 예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문화라는 것은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내력, 지금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보람, 가치, 이런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옛 그림을 잘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우리가 어떤 저력을 지니고 있는 민족인지 등등을 여러 가지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p.13)” 국립중앙박물관이고 어디고 간에 최고의 명품은 그 전시실에 딱 들어갔을 때 한눈에 척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과 끝 부분에 그 다음으로 훌륭한 그림을 전시한다. 그림도 내 마음에 드는 것, 왠지 모르지만 자꾸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몇 점을 골라서 잘 보고 찬찬히 나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 옛 그림은 대각선만큼 떨어지거나 그 1.5배만큼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렇게 쓰다듬듯이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그림을 찬찬히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p.31)” 글을 내리닫이로 썼으니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읽어야 한다. 산도 비슷한 윤곽으로 흐른다. 서양 사람처럼 좌상에서 우하로 보았다가는 그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볼 때 먼저 왼쪽 위를 봤다가 오른쪽 아래로 스쳐 내려가듯이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한문도 세로로 쓰셨고, 한글도 이렇게 내리닫이로 쓰셨다. 즉, 시간을 들여 찬찬히 사물을 볼 때 먼저 오른쪽 위를 봤다가 왼편 아래쪽으로 이렇게 시선이 스쳐 내려가게 된다. 이게 아주 다른 점이다. 그런데 동양 3국 중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서양식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안타까워한다. “기록을 보면 태평양전쟁 말기, 즉 1941-1943년 무렵에 우리 국보급 문화재가 한 해에 만 점 이상씩 A급만 쏙쏙 뽑혀서 일본의 도쿄, 교토, 오사카 3대 도시의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경매되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남아 있지도 않은 순 A급만 뽑아서 말이지요. 그래서 광복 당시 골동 상인들이 어떤 얘기를 했느냐 하면 “이제는 좋은 물건 다 나갔으니 앞으론 이 장사도 때려 치워야겠다”고 말했다는 겁니다.(p.155)” 이렇게 우리의 빼어난 문화재는 일본인 들이 수없이 가져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원의 풍속화첩에는 ‘처음부터 일체 글씨건 도장이건 낙관이 없었다. 이 또한 대량 생산한 상품이었다는 증거의 하나다. 그래서 <무동>의 도장은 가짜’라는 것이다. 또한 동양화는 여백이 특징인데, 탱화는 왜 이렇게 화면을 가득 채워 그렸을까? 불교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온 세계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붓다의 깨달음, 그 진리로 우주가 화려하고 장엄한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절에 있는 탑의 층수는 홀수, 땅에 닿는 면은 짝수로 이루어져 있다.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건 고려말 티베트 불교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진 이례적인 탑이기 때문이란다. “사실 표구는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장황(裝潢)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한국말이 되어 사전에도 실려 있지요. 점잖은 옅은 빛 옥색 천을 위아래 민패로 바르고 그림 주변에 화면과 같은 색 바탕을 좀 더 환한 띠로 둘렀을 뿐, 문양이란 일체 없습니다.(p.193)” 표구를 할 때도 우리나라에선 비단에 무늬가 요란한 것을 쓰지 않고 그저 단색으로 옅은 옥색바탕을 위아래에 민패로 깔고 만다. 그랬던 것을 일본의 영향을 받아 그림 바깥쪽에 온통 정신 사납게 금빛 국화무늬며 구름 문양 등을 가득 둘러놓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면 그림이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호암미술관이나 옛 그림을 전시한 곳에 가 보시면 우리 옛 그림은 거진 70%정도가 다 이런 일본식으로 표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그렇게 바뀌어 버린 것인데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작품이 훼손되어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옛날 분들은 초상(肖像)이라고, 닮을 초(肖) 자를 쓰지 않고 ‘사진’이라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애비를 ‘닮지 못한’불효자라는 뜻으로 ‘불초(不肖) 자식’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학문과 수양과 경륜을 보여 주려고 초상을 그린 겁니다.(p.217)” 현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빛이 어디서 들어오고 그늘이 어디 생기고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옛 산수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수 자연의 기운을 옮겨 그리고자 하기 때문에 나무의 그림자는 그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참된 정신이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그 점을 중요시 했다. 여성만 안 그린 것이 아니라, 젊은이도 그리지 않았다. 젊은이는 학문도, 수양도, 경륜도 아직 이루어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깊은 뜻이 ‘사진(寫眞)’이란 말 속에 있다. 혹은 ‘진영(眞影)’이나 단순히 ‘진(眞)’이란 단어도 쓰는데, 그래서 임금의 초상은 ‘어진(御眞)’이라고 한다.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이건 손바닥만한 그림으로 김홍도가 그린 건데,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꽉 붙들고 있다. 왜 그럴까? 갈대꽃 로(蘆) 자는 과거에 붙은 선비한테 임금님이 주시는, 고기 려(臚) 자 하고 발음이 같아서, 갈대꽃을 꼭 붙든다는 것은 과거에 합격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게하고 갈대꽃을 그릴 때는 반드시 부등켜안은 모습을 그린단다. 이 그림에서도 뒤로 발랑 나자빠지면서도 결사적으로 잡고 놓지를 않는다. 그런데 두 마리니까 소과(小科), 대과(大科)를 다 붙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게딱지는 딱딱하니, 한자로 쓰면 갑(甲)이니까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첫 번째 글자다. 소과, 대과를 둘 다 장원급제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홍도의 <황묘롱접도(黃猫弄蝶圖)>라는 그림에는 여름 꽃 패랭이와 봄에 피는 제비꽃이 한 화면에 그려졌다. 작품이 생신 선물이라 상서로운 뜻을 살리기 위함이다. 즉 고양이는 칠십 노인, 나비는 팔십 노인, 이끼 낀 돌멩이는 장수, 패랭이는 청춘, 제비꽃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상징한다. 그러니 전체 그림을 합쳐 읽으면, ‘생신을 맞은 어르신께서는 부디 칠십, 팔십 오래도록 청춘인 양 건강을 누리시고 또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하는 축원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문화는 꽃이다. 사상의 뿌리, 정치, 제도의 줄기, 경제, 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은 핀다. 지금 한국문화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 길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문화는 선인들의 과거를 성실하게 배워 발전적 미래를 이어가는 재창조 과정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우리의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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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야 한다 말 그대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뜻을 새겨 한 줄의 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 말에 지극한 공감을 느낀다. 근간에 오주석이라는 한사람에게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워낙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 전해지기에 그간 발간된 저자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간된 책들 어느 하나도 허투루 느껴지는 것은 없다. 우리 것을 공부하고 배우며 즐기는 사람으로 김홍도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의 삶과 예술 정신을 닮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그 사람이 남긴 글로나마 그를 그리워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 생각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발간된 순서와는 상관없이 저자가 발간한 책 들 중 마지막으로 접하게 된 책이다. 한 폭의 그림을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그림 소재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느낀 사람의 따스한 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을 찾아내고 그가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꽃이다. 사상의 뿌리, 정치제도의 줄기, 경제 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은 핀다. 지금 한국 문화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실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아픈 마음으로 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문화를 만들어 온 우리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친 들판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한국의 미’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다. 한국의 미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 옛 그림을 선별하고 그림 읽기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강의를 통해 일반인과 만나왔던 저자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중심 주제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 오주석은 옛 그림을 대할 때 우선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을 말한다. 그것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림을 보라는 것’을 지적하며 열린 마음으로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자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 이런 기본사항을 견지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으로는 김홍도의 ‘군선도’를 시작으로 백자항아리, 단원의 풍속도, 기로세련계도, 불화, 주상관매도, 마상청앵도, 송하맹호도, 황묘롱접도, 모계영자도 등을 세심하게 읽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그림의 소재뿐아니라 그림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중심이다. 나아가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초상화’라고 한다. 초상화를 그리고 남긴 조선의 선비들의 오롯한 정신세계를 통해 우리가 찾는 한국의 미의 정신을 밝히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예쁜 모습보다 진실한 모습, 참된 모습’을 중시했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다. 또한, 저자의 단원 김홍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점을 확인한다. 이 책 곳곳에서 만나는 김홍도의 그림뿐 아니라 부록으로 김홍도 그림에 대한 그간 말해왔던 작품을 따로 묻어 그림과 그림에 대한 감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사회에 흐르던 성리학의 기본 이념이 어떻게 사람을 위하고 그것이 사람의 정신을 통해 삶이 투영된 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말해주고 있다. 사대부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주도하며 창조해온 시대의 문화는 그 저변에 동양사상의 한 축을 구성하는 천지인의 사상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음도 밝혀주고 있다. 현재는 과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마치 하늘에서 불쑥 떨어진 사람들처럼 과거를 기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희망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다시 법고창신의 정신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옛 그림을 읽어주는 것을 통해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자 오주석의 책을 권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