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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사람과 함께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 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리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 보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놓고 떠나라
이 책은 1997년 초판 출간 당시 한 달 만에 6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인간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가슴 아픈 자각을 한 김재진 시인은 이 시집에서 '혼자야말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반듯한 위안'이라고 말한다. 고단한 삶의 상처를 드러내지만 어둡거나 슬프지 않게, 사랑의 갈망, 사랑의 안타까움과 부질없음을 표현한다. 오래전 어느 날 선물로 받은 시집 한 권. 평소에 시를 거의 읽지 않는 나였지만 이 시집을 접하고 김재진을 사랑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혼자의 삶을 살며 고립되어 있을 때 김재진 시인은 섣부른 위로가 아닌, ‘혼자인 삶’의 당연함을 자각하게 하였다. 지금도 김재진은 내 마음의 첫 번째 시인이다. 시인과 나를 이어 준 첫 번 째 시집. 나는 이 시집을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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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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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에 내가 좌절이라는 시간을 마주할 때쯤 내게 건네 준 한 권의 시집에는 '멀고도 가까운 모리'의 빼곡한 글이 있었다.
외부적인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면 몰이해의 대상이었고, 가까운 내 동행인인 남편도 더는 내게 함께일 수 없음을 보여주었던 지독히 홀로 서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시집은 내 마음의 작은 힘이 되어준 빛이 바랜 오래도록 묵은 책이다. '모리'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이 시집은 늘 나의 친구로서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제가 지은 선생님의 애칭이랍니다. '들꽃' 그녀가 써놓은 글들이 살아움직이며 내 삶의 진정함을 응원해 주고 있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는 이들이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어 평생의 닻이 될 수 있으리라 |
![]() 시집은 삶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시집을 펼쳐들었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친정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케케묵은 슬픔을 하나 둘 꺼내 놓아도 한없이 받아줄 것 같은, 오랜 세월 함께 지낸 가족처럼 허물이 없다. 이 시집을 읽으며 아린 내 속살을 보는 듯 가슴이 저려왔지만, 나만 혼자인 게 아니라고 그는 나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책 제목에 마음이 이리 꽂히기도 처음이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일부분 (62~63쪽) 책을 펼치며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건 시인의 사진과 함께 수록된 아래의 글이다. 다소 무표정한 김재진 시인의 얼굴을 보며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읽는 맛이 좋았다. 작가의 이마에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갈 때마다 이 시집도 1991년 초판 발행 후 출판사를 바꿔가며 우여곡절의 세월을 흘러갔겠지. 나도 시인처럼 그 시절엔 시간이 머무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빨리 20대가 되길 바랐었다. 어느덧 허무하게 떠밀려 나는 너무 많이 와버리고 말았다.
시간의 바깥에서 너를 읽는다.
그 시절 우리는 시간이 머무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때로 시간은 흘러가며 우리를 떠내려 보내고 맨발의 시간을 껴안을 수 없던 우리는 세상의 바깥에서 바깥으로 떠돌아 다니곤 했다. 기차가 남긴 기억 그 너머로 아득해진 세월과 세상을 내려놓은 이는 결국 세상 바깥으로 밀려가는 법인지 한 때 우리가 읽었던 세월은 그대 가슴속에나 남아 있고 회랑을 돌아 마주치던 빛들이 몇 장의 추억을 인화할 때 주름살 사이로 짙어져가는 눈길을 우리는 허무라고 불렀다. (5~23쪽) 김재진 시인은 원래 첼로를 전공한 음악도라고 한다. 조기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단지 고교 2학년 때 첼로에 반해 배우기 시작했는데, 2년 만에 음대에 들어갈 정도로 첼로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대학생활에서는 첼로 연습을 열심히 할수록 실력 면에서 큰 좌절감을 겪게 되고 상대적으로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와 1985년 「시인」에 시가, 1993년 조선일보와 작가세계에 소설이 당선되었고, 몇 권의 시집과 산문, 동화집을 펴냈다. 오랫동안 KBS, 불교방송국 PD로 일했으며, 현재 명상전문방송 유나를 통해 명상과 마음공부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 코끝에 감도는 한자락 커피 향에 두 눈을 감고 비 맞는 나무처럼 가슴 적시는 무심한 몸놀림이 아름다울 때 있다. - <나무> 일부분 (52쪽) 시집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다. 한 시인에게서 잉태된 시지만 부마다 느낌이 색다르다. 딱 이렇다 선을 그어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1부와 2부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잔하게 녹아있고 홀로된 자의 아픔도 묻어난다. 3부는 그가 명상과 마음공부를 하면서 여행길에서 직접 겪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종교적인 색채가 풍긴다. 4부에서는 삶 속에서 시인이 느낀 처절함과 깨달음 등이 진하게 우러나 있다. 1부와 2부에 실린 시들이 특히 좋았는데, 리뷰에 실린 시는 모두 1부와 2부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살아가다 한번씩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자.
먼 길을 걸어 가 닿을 곳 아예 없어도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마음의 젖은 자리 외면하며 살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나갔던 세월. 먼 바다의 끝이 선 자리로 이어지듯 아쉬운 이별 끝에 지겨운 만남이 있듯 모르는 척 그저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 <세월> 전문 (57쪽) 사랑을 주제로 한 시가 가장 쓰기 쉽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그만큼 사랑이란 유치하고 낡은 걸까. 유치해도 그런 시가 무작정 좋을 때가 있었다. 핑크빛 사랑을 꿈꾸던 이십 대에는 달콤하면서도 귀 간지러운 사랑 시에 더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사랑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김재진 시인이 꺼내는 사랑이야기엔 유치함이란 없다. 무르익고 짓물러서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는 사랑과 고독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사랑에 실패하는 건 다만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 <새들도 슬픔이 있을까> 일부분 (47쪽) 시는 응축과 함축의 산물이다. 그러다 보니 시인과 코드가 맞지 않을 때는 시를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소재가 너무 가볍거나 무거워도 문제겠지만, 기본적인 공감대 형성이 힘들다면 독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행이도 김재진 시인과 나는 코드가 맞았다. 시를 천천히 읽어갈 때마다 영혼의 울림이 참으로 좋아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시 세계가 요구하는 그런 고도의 긴장을 견디기 힘들어 소설로 장르를 이동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의 시가 왜 읽을 때 편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는 시를 삶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삶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상처들과 화해함으로써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슈베르트가 '내 슬픔으로부터 비롯된 음악이 사람들을 위안하고 기쁘게 한다'고 한 적이 있듯, 저도 그래요. 이제는 내 상처에서 비롯된 시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위안할 수 있기를 바라게 돼요. 저 자신만 해도 세상에서 소외된 상태에서 간절하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이런 시들을 쓰게 했지요." (150쪽) 상처 입은 자만이 상처를 치유하고 소외감을 느껴본 자만이 상대를 위로해 줄 수 있다. 시를 쓰게 된 동기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아픔을 치유하고 좀 더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려 한다. 그의 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곪은 상처가 터져 얼른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터뜨려준다. 아픔을 너무 아프게만 받아들이지 말자. 곧 새 살이 돋을 테니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이 없듯 누구나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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