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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추구에 대한 추상적 실마리 평생의 숙제, 행복 추구에 대한 추상적 실마리를 던지는 소설이다. 삶의 의미이자 행복과 직결되는 선과 악, 사랑과 결혼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한다.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은 죽음을 향해 걸어 나가는 여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여정의 끝, 바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놓지 못할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애정 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애정 어린 마음은 선한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때문에 선 과 악을 스스로의 기준에 맞게 규정하고 그 선을 따르고자 하는 끊임없는 고민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다. 이런 추상적 개념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이 소중한 고전은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히스클리프는 언쇼라는 동정심 많은 인물에 의해 입양되면서 그의 친 자식들인 캐서린과 헤어튼과 함께 자라게 된다. 언쇼의 의도와는 달리 히스클리프는 그 집안에서 온갖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그런 와중에 힘이 되었던 언쇼의 친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 역시 히스클리프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당시 부유했던 친척 린튼 도련님과 결혼을하고 이를 계기로 히스클리프는 악마가 되어 자신의 친자식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 모두를 괴롭힌다. 그런 히스클리프는 결국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공허하고 의미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이 소설은 막을 내린다.
어릴 때 학대를 받아본 사람은 학대를 하는 사람의 악한 마음의 기저를 일찍이 깨닫는다. 인간이 갖는 다양한 마음들 중 악을 인식하고 있기에 이를 모방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주변에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한 사람은 선한 마음을 먼저 체득하고 주변의 자극에 대해서도 선한 의도에 먼저 반응하기 쉽다. 호의를 받아본 사람이 호의를 베풀기 쉽고, 홀대를 받아본 사람이 남에게 나쁜 생각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자신이 받은 나쁜 기억을 그대로 주위로 다시 퍼뜨려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악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고, 반대로 나쁜 기억에 의한 괴로움을 절감하고 더더욱 남에게 선한 마음을 갖는 사람을 선을 선택했다고 볼 수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행복을 담보로 한다.
이런 선과 악의 기준으로 볼때, 히스클리프는 당한대로 복수하는 악한 마음을 선택하였고, 린튼 도련님은 선한 마음을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아내 캐서린이 자신이 아닌 히스클리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나쁜 마음을 갖지 않았고 따뜻하게 아껴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딸 캐시를 살뜰히 보살핀다. 히스클리프가 아무리 자신의 삶을 침범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가정을 지켜나간다. 반면 히스클리프는 어릴 적 받은 학대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고 영원히 그 학대의 피해자가 된다. 복수를 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복수하는 과정에서 권력과 돈으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의 겉모습을 통해 유한 성격의 린튼 도련님보다 훨씬 나약한 정신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린튼이야말로 그렇다면 왜 히스클리프 같은 인물은 악한 환경하에서 그대로 악을 모방하고 린튼 도련님은 히스클리프의 끊임없는 괴롭힘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한 마음을 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 주요 원인을 어릴적 자란 환경에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의 크기로 치부해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랑 받고 자라온 사람이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어떤 환경에서든 누구나 일정 부분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잘못된 선택은 어릴 적의 열악했던 주변 환경이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가장 큰 요인이었을까? 바로 감사하는 마음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히스클리프는 어릴 적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갈 수도 있었지만 극적으로 입양되었을 뿐 아니라 그 집의 귀한 딸 캐서린과 진심 어린 사랑에 빠진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결혼 후에도 줄곧 히스클리프만을 사랑하다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 단 한 사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도리어 린튼 도련님이야 말로 평생동안 아내 캐서린을 짝사랑하고 이로 인해 히스클리프 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할 뿐 아니라 죽은 뒤에는 재산과 자식까지 빼앗긴다. 그럼에도 그는 캐서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평온한 가정으로 이끌어 나간다. 이는 매사에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캐서린과 결혼하는 날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부분만으로도 그의 긍정적이고 밝은 사고 방식을 예상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한 감정에 물들지 않기 위한 가장 큰 덕목은 자신이 가진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럼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 주체적인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은 자신을 악의 영원한 피해자로 만든다.
진정한 사랑과 결혼관이란 어떤 것 일까? 이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그려진다. 캐서린이 린튼 과의 결혼에 대해 가정부 넬리와 상의하는 장면이 바로 그 부분이다. 이때 넬리는 ‘ 오직 현재만을 생각한다면 린튼 도련님과 결혼하세요.’ 라는 쇠된 조언을 내지른다. 캐서린이 린튼의 주변 조건에 의해 결혼 결심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들은 쉽게 변화될 뿐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유일한 단 한 사람,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 작가의 결혼관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이 부분에 가슴 깊이 공감했을 뿐 아니라 나만의 주체적인 결혼관을 갖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진정한 사랑을 하는, 유일하게 행복한 인물은 캐시이다. 그녀는 캐서린과 린튼 도려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린튼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인지 천진 난만하고 순진해 보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히스클리프의 악한 행동에 대해 처음 전해 들었을때 그녀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다. ‘‘몇해씩이나 복수심을 속에 품고있다가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흉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는가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라고 히스클리프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나타나있다. 일반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나쁜의도로 하는 행동의 기저를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에게 없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천진난만하고 순진해 보이면서도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이런 그녀의 어릴 적 면모에서 그녀는 나쁜 상황에 처해도 쉽게 흔들리거나 행복을 잃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에 내심 응원하게 되었다.
히스클리프의 철저한 복수심하에 어김없이 그녀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히스클리프는 그녀의 아버지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자신의 병든 아들과 캐시를 강제로 결혼 시킨다. 이때 그의 아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병들어 있었다. 캐시는 병든 그를 가엾게 여겨 사랑으로 보살피려 했지만 반대로 그는 캐시를 아끼는 마음도 전혀 없을 뿐아니라 아버지가 두려워 그의 복수 행각에 동조하여 캐시를 함정에 빠뜨린다. 힘든 순간을 맞이한 순간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 그녀의 첫 애정의 감정은 이런 나쁜 남자에 의한 슬픈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이런 좌절의 순간에도 히스클리프에게 ‘ 아저씨는 아저씨를 사랑해주는 사람 하나 없죠. 그러니까 아무리 아저씨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앙갚음을 하는 셈이에요’ 라고 말하며 곧 그녀의 행복한 결말을 예감하게 만든다. 그녀의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함께 생활하던 그녀의 사촌과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히스클리프를 어릴적 학대했던 헤어튼의 아들로 히스클리프로 부터 복수의 학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듯하게 자랐고, 히스클리프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점에서 캐시와 헤어튼의 아들 모두 진정한 행복과 사랑을 추구할 건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둘은 서로를 가슴깊이 아끼며 따뜻한 사랑의 결말을 맺는다.
그런 이유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진정성 있는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캐서린은 사랑보다 조건에 따라 결혼을 했을 뿐아니라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치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의 진정성 있는 사랑의 마음을 올바르게 받아주지 못한다. 남을 괴롭히고 부정적인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도 그리 대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을 괴롭히면서 결국은 자신이 가장 고통받는 그의 모습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인생이 가장 중요한것인데, 그것을 희생하면서 까지 남을 괴롭힌다는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남에게 인생의 초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함을 택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사랑도 할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다.
이 소설은 가정부 넬리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넬리는 극중 관찰자의 입장임에도 당사자 중 한 사람처럼 상황에 대한 묘사를 구체적으로 하고 있어 독자에게 폭풍의 언덕의 저택에 직접 다녀온 기분을 선사해 주고있다. 각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이 소설적으로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대처방식을 가지게 된 그 심리적 기저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들 각각의 캐릭터, 어두움과 밝음, 낙관적임과 비관적임은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면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지닌 모순적인 본능의 요소를 한가지씩 분리하여 각각의 인물로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내 안의 각각의 요소가 오롯이 어떤 모습인지, 과연 내 안에는 히스클리프, 캐서린, 린튼이 어떻게 싸우고 화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건지를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는 내 안의 누구를 응원하며 지내고 있는건지, 또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걸까. 인생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시련을, 나는 과연 어떻게 겪어나게 될까. 혹은 어떻게 겪어나가기를 선택하게 될 까. 시련을 치유하고 전처럼 살아가는 사람, 시련을 겪고 몰락하는 사람, 시련을 겪고 위인이 되는 사람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어렸을 때 읽었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이번엔 책장을 넘길 수록 "이 책이 이리도 재밌었던 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아마도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늘어남에 따라 등장인물에 대해 좀더 공감하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 감정 이입이 조금 더 용이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20~30년 뒤에 이 책을 다시 보게 된다면 또 어떻게 느껴질까 기대된다. 나는 과연 그때에는 히스클리프를 좀더 동정하게 될 까. 린튼을 수고했다 격려하게 될까.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을 그들을 다르게 만나게 될 나를 기대하며 이 책을 책장 한 켠에 간직하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