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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학교는 지금이나 예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예전이 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교육도 바뀌어야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예나 지금이나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지만, 그래도 예전의 학교는 지금처럼 살벌하고, 의미없는곳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도 말하지만,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할 수가 있고, 학교는 그러한 흥미를 유발시켜 주어야 한다는데 공감이 간다. 고등학교 땐가.. 물론 그때도 학원이 있었지만,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학교 본고사의 수학시험은 문제 4-5개가 나올 뿐이다. 그걸 준비한다고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며 일본 문제집을 사다 푼적 이 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몇 안 되는 문제집은 이미 수도 없이 풀어보았고, 좀더 다른 유형, 어려운 문제를 접해보고 싶어서였다. 그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흥미를 가졌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금도 그런 아이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많은 아이들이 그랬다. 미국의 교육개혁가인 “존 홀트”가 쓴 이 책은 저자가 교육의 목적성 등에 대하여 팸플릿, 잡지, 책 등에 그 동안 개별적으로 발표한 단편들을 모아 엮은 것 이라고 한다. 한 사립학교에서 5학년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던 저자는, 1960년대 이미 [아이들은 어떻게 실패 하는가],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란 책으로 교육에 관한 수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등의 교육의 목적성 자체와 바람직한 교육법에 대한 성찰을 근거로 현대 미국 교육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부를 하고 있다. 그는 말하길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양같이 온순한 사람이라면 학교는 현재로서 완벽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 이라면 몇몇의 큰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이라고 하면서 1960년대 이후 미국교육의 현실을 해부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배움이란 한 사람이 스스로 얻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그에게 주거나 베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문화의 전통들과 더 높은 가치를 전수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알게 하고, 직업을 위해, 가능하면 성공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 세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는, 현재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나쁜 곳 이라고 저자는 단정한다. 체벌과 차별로 공인된 아동학대의 현장이고, 아이들을 수감하는 거대한 감옥이라고 비판한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만이 성공이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하나의 정상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제품은 창고에 쌓아 방치하는 거대한 생산공장과 다름없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책 읽는 습관과 배우는 것에 대한 열의를 꺾어 놓는다고 주장한다. 교사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지루한 이야기를 듣는 어른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아이들은 흥미와 관심을 고조시키고 주의를 기울여 듣는 방법을 이내 잊어버린다고 한다. 교사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이 교육과 상관없는 학급관리를 위한 것 이거나, 아이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 이라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독서를 싫어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은 아무리 내용이 어려워도 몇 번이고 읽고, 가슴으로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교사들은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그것을 말로, 혹은 글로서 표현하게 만들고 평가를 함으로써 아이들이 책에서 떠나도록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험 또한 학습과정을 방해하고 왜곡시키며 손상시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교는 시험을 치는 이유가 무엇을 배웠는지 알아냄으로써 아이들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 이라고 교육론에 있는 대로 얘기하지만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 이라고 한다. 실제로 시험을 치는 이유는 아이들을 위협하여 어른들이 바라는 것을 하도록 만들고, 상벌을 분배하기 위한 근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소위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반문한다. 거기에 쓰여지는 내용에 대해 아이들이 반문할 수 있는지? 아이들의 주장이 반영될 수 있는지? 어른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의해 작성되어 아이들이 일을 하게 되면 고용주에게 보내지고, 이후 줄곧 아이들의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말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선 아이들이 학교에 꼭 와야 하는 강제규정, 출석부부터 없애라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같이놀 친구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에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또래들이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게끔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공부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맞춤법 하나 틀려도, 철자하나 틀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 된단다. 틀릴 수도 있는 일인데 마치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손바닥을 맞고, 비난을 당하고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흥미를 잃게 된다고 한다. 또 그는 교육관리자, 그리고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풀어놓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학교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꼭꼭 붙잡아 두려는 것은 어른 모두의 이기심이며, 교육이 아닌 어른들의 직업으로써 학교라고 말한다. 실패하는 학교! 책 제목이나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것 모두가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에 대해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 있을까? 아이들은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른들의, 부모들의 욕망이 아이들의 영혼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아이들이 경쟁하여 다른 아이들을 밀어내고 승리하는 것을 배우기 보다는, 서로 같이가는 방법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저 혼자서 갈려고 남을 밀어내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감성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공부할수 있는, 그러한 것을 가르치는 학교에 가고 싶어,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아이들이 보고싶다.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변할수 있기만을 고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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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은 풍금을 연주하시면서 화음에 대해서 수업을 하셨다. 화음 하나를 치시면서.. "이 화음은 불협화음인데.. 좀전의 도미솔이랑 다르게 들어보니 불안정하지?" 하셨더랬다. 반 친구들 모두는 "네" 라고 대답하는데,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 불협화음이 내게는 전혀 불안정하지도 않았고 선생님 묘사하시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게 느낀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을 이기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게는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그 화음을 불안정하다고 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가 알려주는 대로 음악과 미술.. 시와 글에 대해 감성을 표현하는 법까지 배웠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침대와 맞지 않는 사람의 신체를 억지로 침대에 맞추려 잡아늘리거나 잘라내었다는 잔혹한 이야기.. 학교가 이제껏 획일화된 지침아래서 아이들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인으로 길들이는 역할을 해왔다는 일침을 가하기 위해 저자 존 홀트가 비유한 이야기다. 저자인 존 홀트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교육자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학교와 교육제도를 고민했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의 가르치면서 너무 많은 구속과 억압을 한다고 주장하며, 시험과 출석제도에 반대하는 자유로운 교육과 학교를 옹호했다. 그의 다소 이상적인 교육철학은 사후 지금까지도 여러 교육개혁가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저는 아이들이 다른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배우면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을 때, 배우고 싶은 방식으로 배워야만 더 잘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p233) 그의 교육에 대한 기본 철학을 알 수 있는 이 말은 존 홀트가 블리스 교수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다시 한번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중학생일 때 나는 수학을 제일 좋아했고 잘 했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이내 식어버렸지만.. ). 우연히 기하학, 도형문제를 좋아하게된 나는 돈이 생길때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수학 문제집을 사서 기하학 문제만 싹 풀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흥미와 호기심은 나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나는 왜 흥미를 갖게 되었을까? 나는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를 이 책을 읽다가 깨닫게 되었다. 존 홀트는 아이들을 가르칠때면 가끔 일부러 틀리곤 했다고 한다. 그럼 아이들은 선생님의 오류를 지적하게 되고, 아이들은 자신의 선생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하고 수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적극 참여하는 깨어있는 수업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우리 수학 선생님도 가끔 문제를 푸시다가 중간에 실수를 하시곤 했다. 그러면 당연히 답이 이상하게 나오게 되었고, 그 오류를 내가 찾아낸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은 오류를 찾은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 말이 어떤 칭찬보다도 기분 좋았던 나는 수학시간엔 늘 반짝반짝할 수 있었다. 존 홀트가 그랬고 우리 수학선생님이 그러셨듯이.. 이 책의 제목과 반대로 "성공하는 학교"란 아이들에게 흥미와 호기심을 키워줄 교사가 많은 학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가 말하는 실패하는 학교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과거 60-80년대의 미국의 교육문제를 이야기한다. 과거 미국이 안고 있던 문제.. 지금까지 여전히 개혁이 진행중인 문제들이다.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교육하고, 명문대 진학에만 열을 올리고, 독서하는 아이들의 흥미를 꺾는 학교.. 그런데 이 모습.. 어쩐지 너무나 익숙하다. 바로 우리의 학교의 모습이지 않은가.성공하는 삶은 좋은 스펙으로 좋은 벌이의 좋은 직장을 갖는것이라는 신념으로 학교와 부모가 똘똘뭉쳐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이 책을 모든 부모, 교사.. 학교행정에 관련된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이들을 점수위주로 교육하는 것.. 그로인해 자살하는 아이들이 늘고, 음주 및 흡연등. 탈선의 길로 가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현실.. 좋은 대학을 못가면 낙오자가 되는것처럼 인식되는 사회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한번쯤 고민하는 것.. 그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 풀어야할 숙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