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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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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시리즈를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접근을 해야 하는 참에 드디어 종묘 시리즈로 나오는 걸보면서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기에 그랬을까 했다. 기존의 궁궐 시리즈는 임금이 거쳐했던 공간이다보니아이처럼 설례이는 내용이 있기도 했고 저자의 설명도 직접 듣기도 하면서 답사했던 터라서 종묘도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종묘는 제향의 공간으로써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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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시리즈를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접근을 해야 하는 참에 드디어 종묘 시리즈로 나오는 걸보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기에 그랬을까 했다.

 

기존의 궁궐 시리즈는 임금이 거쳐했던 공간이다보니

아이처럼 설례이는 내용이 있기도 했고

저자의 설명도 직접 듣기도 하면서 답사했던 터라서

종묘도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종묘는 제향의 공간으로써 우리가 답사를 할때 포커스를 어디로 두는가에 따라서 완연하게 달라지는 내용이기도 하여서

늘 답사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여행서 같은 책이기에 무겁지 않길 바랬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배경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것도 있겠지만

종묘라는 공간을 즐길수 있도록 적당히 내용을 추려가면서 읽게 만들고

너무 어렵지 않게 풀어내가고 있기에

학생들이라도 답사시에 들고 투어를 할때 도움이 될 정도로 난이도를 정하고 있다.

 

계속해서 종묘라는 것이 건물과 조경 그리고 제향이라는 무형문화재가 있다보니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서 좀 더 깊이를 조절한듯 하다.

 

그래서인지도 어려운 용어를 많이 눈높이를 낮추고

많은 사진과 저자의 그림을 많이 넣어서 제향의 공간과 단소하면서도 사색을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공간으로 느끼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막힘없이 읽어갈수 있는 힘이 있고

종묘의 구석구석과 항시 볼수 있는 곳이 않은 곳같이 보여주고 있어서 많은 호기심을 채워주고 있다.

 

어려운 여행서가 아닌 답사를 통해 익숙해질수 있는 면과 모르는 부분을 보완을 해주면서도 골고루 셥렵하게 만드는 힐링 여행이다

 

종묘는 힐링이란 말이 맞는듯 하다

조상이라는 것은 그저 먼저 태어난 것많이 아닌 나를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질문을 마음속으로 내던지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의 공간이다보니

침묵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 제목에 얼울리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j********1 2016.11.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종묘 해설의 종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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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조선의 왕들과 왕비들의 신위(神位)를 모신 국가 사당이다.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는 국보 227호이다. 종묘 일대를 훈정동(薰井洞)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종묘로 가는 길 오른 편의 어정(御井; 서울시 유형문화재 56호.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던 우물) 때문이다.(훈薰: 향풀 훈)   종묘는 궁궐 전각들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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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조선의 왕들과 왕비들의 신위(神位)를 모신 국가 사당이다.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는 국보 227호이다. 종묘 일대를 훈정동(薰井洞)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종묘로 가는 길 오른 편의 어정(御井; 서울시 유형문화재 56.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던 우물) 때문이다.(: 향풀 훈)

 

종묘는 궁궐 전각들이 대부분 화려한 팔작지붕인 것과 대조적으로 맞배지붕이다. 원래 창덕궁, 창경궁, 종묘는 담장으로만 구분된 하나의 영역이었다. 일제에 의해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관통도로가 세워졌다. 현재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시키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종묘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신이 다시는 길인 신로(神路)가 있다는 점이다. 궁궐의 삼도(三道)는 가운데에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가 있다면 종묘의 삼도는 가운데에 신이 다니는 길인 신로가 있다. 신로의 오른쪽은 어로(御路), 왼쪽은 세자로(世子路)이다. 신로는 신향로(神香路)라고도 불리는데 대제를 지낼 때 조상과 관련된 신주(神主), (), (; 축문)을 옮길 때 밟는 길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이 있다. 혼백이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말로 매우 놀라거나 혼이 나서 넋이 나간 상태를 뜻한다. 옛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가고 몸을 지탱하던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는 혼을 위한 구조물이고 무덤은 백을 위한 공간이다.

 

종묘는 경복궁보다 먼저 지어졌다. 중요한 것은 경복궁과 종묘 및 사직단 창건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47 페이지)는 점이다.(동시에 짓기 시작했지만 종묘는 규모가 작아 경복궁보다 먼저 지어졌다.) 조선왕조는 주례 고공기의 법식을 따라 좌묘우사를 선택했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지은 것이다.(좌묘우사...우리가 보기에 경복궁 오른쪽에 종묘, 왼쪽에 사직단이 있다.)

 

현재 종묘에는 세 개의 지당(池塘; 연못)이 있다. 외대문 안쪽 왼편에 하지(下池)가 있고 삼도 오른쪽으로 망묘루 가는 길에 중지(中池)가 있고 그 위쪽으로 상지(上池)가 있다.(59 페이지) 중지는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사각형의 못으로 천원지방의 원리를 따랐다. 종묘라는 제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지당에 연꽃 등을 심지 않았고 물고기도 기르지 않는다.

 

겨울 눈 덮인 중지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궁궐의 지당 섬에 소나무를 심은 것과 달리 종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에 향나무를 심었다.(61 페이지) 중지를 지나면 종묘 건물 중 유일한 팔작지붕인 망묘루가 있다. 왕이 종묘를 바라보며 선왕의 은덕과 나라의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망묘루 북쪽에 서향의 향대청(香大廳)이 있다. 향축과 예물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대기하는 등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종묘 신실 중앙에 신주가 모셔졌는데 신주는 잣나무로 만든 궤에 넣어 보관했다. 신실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종묘제례 때만 공개된다. 향대청에서 북쪽으로 긴 숲을 지나면 재궁(齋宮)이 나온다.

 

재궁은 제례를 앞둔 왕과 세자가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정제하는 등 제사 준비를 하던 곳이다.(81 페이지) 남문을 들어서면 이어지는 어로와 맞닿은 북쪽에 임금이 머물던 어재실(御齋室)이 있다. 동쪽으로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 서쪽에는 목욕을 하던 어목욕청이 있다. 재궁 동쪽은 전사청(典祀廳) 가는 길로 이어진다.

 

전사청은 종묘에서 제수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의 서문을 나와 삼도를 따라가면 정전의 동문으로 이어진다.(90 페이지) 동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네모반듯한 정사각형 모양의 단이 두 개 보인다. 돌로 가장자리를 누르고 그 위에 검은 전돌을 깔았는데 이를 판위(版位)라 한다.

 

판위는 왕과 세자가 정전에 들어가기 전에 멈춰 서는 자리이다. 왕은 제향 하루 전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종묘에 도착하면 먼저 종묘에 인사드리는 망묘례(望廟禮)를 행했다. 망묘례는 왕이 정전과 영녕전(조종과 자손이 영원히 안녕하라는 의미의 영녕전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세종 3년의 일로 당시 상왕인 태종에 의해서였다.)의 조상들께 인사를 드린 후 신실을 돌아보는 예를 행하는 일이다.

 

정전 동북쪽에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이 영녕전에도 있었으나 현재는 정전 전사청만 있다. 부엌 역할을 했기에 부엌 주를 써서 신주(神廚)라 했다. 전사청 동쪽에 제정(祭井)이 있다. 제례 때 사용하는 명수(明水)와 전사청에서 제수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물을 긷던 우물이다.(106 페이지)

 

정전 동문의 담에 잇대어 북쪽에 지어진 네칸짜리 맞배 지붕 건물인 수복방(守僕房)은 제사를 준비하는 관원들과 종묘를 지키고 청소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108 페이지) 정전의 정문은 신을 위한 문으로서 신문(神門)이라 하고 남문 또는 남신문으로 불린다.(113 페이지)

 

제향의 절차에 따라 제례를 행하는 사람 외에는 왕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가운데 신문으로 출입할 수 없었다. 동문, 서문과 달리 신문의 위는 홍살로 되어 있다. 동문은 왕을 비롯한 헌관, 제관 및 종척(宗戚: 왕의 종친과 외척)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출입하는 문으로 재궁에서부터 어로가 연결되어 있다.

 

종묘 건축은 불필요한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한 단청이나 절제된 문양으로 종묘를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만든다.(121 페이지) 정전 앞의 월대는 상월대와 하월대로 구성되어 있고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가장 큰 월대이다.(122 페이지)

 

월대(月臺)는 궁궐 앞의 섬돌이다. 섬돌은 집채와 뜰을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든 돌층계이다.(122 페이지) 정전 동북쪽 계단 밑에는 소차(小次; 예전에 왕이 거동할 때 쉬기 위해 임시로 친 막) 설치를 위한 방형의 단이 조성되어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넓은 월대의 윗면은 박석(薄石; 얇고 넓적한 돌)을 깔았고 곳곳에 차일(遮日) 고리가 박혀 있다.

 

종묘 월대의 박석은 궁궐의 박석보다 조금 더 거친 느낌을 준다.(123 페이지) 종묘 정전은 처음 7칸의 태묘로 창건되었다. 태조 49월에 동당이실(同堂異室)로 태실 7칸 안에 신실(神室) 5칸을 만들고 동서에 협실(夾室) 2칸의 종묘를 영건(營建; 집이나 건물을 지음)하고 태묘(太廟)라 했다.

 

신실 5칸은 석실(石室)로 만들어 시조와 4대조를 모시는 5묘로 사용하고 2칸의 협실을 둔 것이다. 동당이실은 한 건물 내의 기둥 사이에 발을 내려 칸을 막아 여러 개의 사당을 두는 것이다. 역대 왕의 신위는 정전(태묘)에 부묘(祔廟; 삼년상이 지난 뒤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것)되었다가 친진(親盡; 제사를 모시는 대수가 끝남)되면서 영녕전으로 조천(祧遷)했다.(132 페이지)

 

그러나 공덕이 있는 왕은 불천위(不遷位; 世室)로 정하여 영녕전으로 조천하지 않았다. 5대가 지난 왕은 원칙적으로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신위를 옮겨 봉안했지만 태종이나 세종과 같이 공덕이 뛰어난 선왕의 신주는 옮기지 않고 영구히 정전에 봉안하고 덕종이나 장조와 같이 보위에는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세자들도 추존하여 왕으로 봉안하고 정전 내 가장 서쪽에서부터 선왕의 순으로 신위를 모신다 등의 원칙에 따라 종묘의 건물들은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쳤다.(133 페이지)

 

임진왜란때 정전과 영녕전이 전소되었지만 선조가 피난중에도 종묘의 신주를 수습해 왕실의 신주가 보존될 수 있었다.(133 페이지) 정전은 제례가 행해지는 공간이다. 신실 내부는 신을 위한 어둠의 공간으로 만들어 엄숙하고 장중한 침묵을 연출해냈다.(138 페이지) 종묘 정전에는 열아홉 분의 왕과 서른 분 왕후의 신주를 모셨다.

 

넓은 월대 위에 세워진 정전은 신주를 모신 19칸의 신실이 있고 양쪽 끝에는 각각 2칸의 협실이 있다. 예전에는 협실에도 신위를 모셨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협실 앞으로는 동서 월랑이 각각 5칸으로 구성되어 있다.(138 페이지) 종묘의 신실은 동당이실 제도를 적용한 건물에 서쪽을 상위로 하여 신주를 모시는 서상(西上) 제도로 배치했다.

 

서상 제도에 따라 첫번째 신실에 태조의 신위를 모시고 3대 태종, 4대 세종, 7대 세조, 9대 성종, 11대 중종, 14대 선조, 16대 인조, 17대 효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1대 영조, 22대 정조, 23대 순조, 추존왕 문조(익종; 효명세자),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 27대 순종의 순으로 모셔졌다.(142 페이지)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오례는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등을 말한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삼년상을 지나 종묘에 부묘되기까지는 흉례, 그 이후 제사의식은 조상을 다시 만난다는 의미에서 길례이다.(146 페이지) 묘호는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의 왕의 이름이고 능호는 왕릉의 호칭이다.

 

시호(諡號)는 임금 사후 공덕을 칭송해 부여한 이름이다. 돌아가신 왕은 부묘를 통해 종묘에 신주가 모셔진 이후에야 각종 제사의 대상이 된다.(152 페이지) 공이 많으면 조(), 덕이 많으면 종()이라는 묘호를 부여했다지만 그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157 페이지)

 

원래 태조를 제외하고 모두 종으로 묘호를 정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세조나 인조는 정난이나 반정을 통해 등극해 왕통(王統)을 다시 세웠다고 하여 조로 칭했고 선조는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이유로 조를 부여받았다.

 

왕의 부모로서 왕위에 오른 적이 없는 생부와 생모는 당연히 종묘에 모실 수 없었지만 성종이 생부 의경세자(세조의 장자)를 왕으로 추존해 덕종이라는 묘호까지 마련하여 숙부인 예종의 신실 위 칸에 봉안함으로써 이후 추존의 전례를 남겼다.(158 페이지) 왕이 서쪽에 모셔지고 왕비는 동쪽에 모셔졌다.

 

왕비가 여럿일 경우 책봉 받은 순서로 위차를 두고 신주를 모신다.(161 페이지) 왕비가 먼저 승하할 경우 임시 거처라 할 혼전(魂殿)에 모셨다가 왕이 부묘된 이후 부묘했다. 종묘의 모든 의례는 철저히 남성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제사 음식 장만에서 진설(陳設), 그리고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제관, 집사, 악공, 일무요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성들이 역할을 담당했던 의례공간이었다.

 

묘현례(廟現禮)는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여성이 종묘에 들어와 치른 의식이었다. 묘현례는 세자빈 또는 왕비가 가례를 올린 뒤 종묘의 선대왕과 왕후에게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다.(187 페이지) 중종대에 몇 차례 묘현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숙종의 세자 경종이 단의빈 심씨와 가례를 올린 뒤 종묘에 알현하기 위해 온 것이 묘현례의 시초이다.

 

사도세자와 혜경궁이 열 살에 동갑 나이로 가례를 마친 뒤 종묘에 알현했고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15세에 왕비가 되어 묘현례를 행했다.(189 페이지) 정전 월대 아래 동쪽의 공신당(功臣堂)은 남신문의 남쪽 담장에 바짝 붙어 있는 긴 집으로 역대 국왕 공신들의 위판을 모신 곳이다. 그렇게 모셔진 공신들을 배향 공신(配享功臣)이라 한다.

 

왕의 신위가 영녕전으로 조천(祧遷)이 되면 영녕전에는 공신당이 없으므로 그 왕대의 배향공신의 위판은 다시 사가로 전해져 땅에 묻혔다.(191 페이지) 현재 공신당에는 역대 왕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이념을 반영한 결과이다. 오늘날은 정전과 영녕전을 포함하는 일대를 모두 종묘라 하지만 조선시대 초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태묘)로 인식하고 영녕전은 별묘(別廟)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201 페이지)

 

영녕전 가운데 건물의 지붕은 높고 양쪽 협실은 지붕이 낮고 월대의 높이도 정전 만큼 장대하지 않다. 조선 왕조의 시조인 태조를 비롯해 선왕 중에서 큰 공적이 있는 왕의 신위는 불천위라 하여 4대가 지나도 영녕전으로 옮기지 않고 계속 정전에 모셨다. 영녕전은 4대가 지난 왕과 왕후의 신위를 정전으로부터 옮겨 모시는 또 다른 사당이라 하여 조묘(祖廟) 또는 별묘로 불렀다.

 

세종때 처음 건립될 당시에는 모두 6칸의 건물이었으나 점차 증축해 16칸이 되었다. 현재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조천된 왕과 왕후, 추존 왕과 왕후의 신위 등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203 페이지) 영녕전 신실은 가운데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가 모셔졌고 서상 원칙에 따라 서쪽 협실에 2대 정종, 5대 문종, 6대 단종, 추존왕 덕종, 8대 예종, 12대 인종, 동쪽 협실에 13대 명종, 추존왕 원종, 20대 경종, 추존왕 진종, 추존왕 장조(사도세자), 의민황태자(영친왕) 등이 모셔졌다.

 

영녕전 바깥 서쪽에 종묘제례때 악공들이 머물던 건물인 악공청이 두 군데 있다. 국가 사당으로 태묘(종묘)가 있다면 왕실 사당으로는 궁궐 안에 선원전(璿源殿)이 있다. 선원전은 왕의 어진을 봉안한 사당으로 사묘(私廟)의 성격이 강하다.(220 페이지) 종묘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뒤를 이었다.

 

현재 5월에 봉행되는 종묘제향의 화려하고 장엄한 장면은 경복궁에서 출발하는 어가행렬로 시작한다. 경복궁을 출발하여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종로를 거쳐 종묘에 드는 어가행렬은 1년에 한 차례 볼 수 있는 장엄의 극치이다.(233 페이지)

 

공자는 예()의 완성은 악()이라 했다. 종묘제례의 완성은 종묘제례악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279 페이지) 종묘제례악은 기악()과 노래(), 무용()으로 구성된다. 종묘제례에서 추는 춤인 일무(佾舞)의 기원은 세조때이다.

 

6일무(6×6; 36)였으나 고종이 황제가 된 이후 8일무(8×8; 64)를 추었다.(292 페이지)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있다. 문무는 약(피리)과 적을 들고 춘다. 무무는 칼과 창을 들고 춘다.(293 페이지) 종묘제례는 의례(儀禮), (), (), ()가 함께 어우러지는 최상의 무대가 펼쳐진다

이달의 사락 m******1 2017.05.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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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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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가 먼저 배우는 건 조선의 왕의 업적입니다. 여기에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사건들, 한반도 곳곳에 남아있는 문화재와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중심으로 조선인들의 삶과 예술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조선의 역사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면 종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종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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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가 먼저 배우는 건 조선의 왕의 업적입니다. 여기에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사건들, 한반도 곳곳에 남아있는 문화재와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중심으로 조선인들의 삶과 예술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조선의 역사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면 종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종묘란 조선의 왕과 왕비 그리고 83위의 배향공신의 위폐가 모신 곳이며, 조선이 건립되면서 지금까지 그 종묘제례를 유지해 왔습니다. 처음 우리가 종묘를 중국을 통해서 도입하였고 일본에도 신당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아시아 세 나라 중 대한민국만 현존하고 있으며, 1995년 이후 종묘와 종묘제례,종묘 제례학 이 세가지 모두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재 되었습니다. 그건 종묘 그 자체가 가지는 문화재로서의 상징적인 의미 뿐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종묘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로 3가에 위치한 종묘는 지금까지 왕와 왕비의 신주가 모셔있으며, 그곳에는 조선시대 그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모습과는 많이 변했지만 그 형식은 그대로 보존유지하고 있습니다. 종묘에 관한 지식을 접하면서 우리의 제사가 종묘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조상이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 자례를 지내기 전 몸을 단정히 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곳과 실제 제사를 지내고, 청소를 하는 관직을 가진 이들이 머무는 곳이 종묘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물론 제례를 지내기 전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는데 있어서 물 하나도 소중히 여겼으며, 종묘 안에 있는 우물 또한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학창 시절 우리가 외웠던 '태정태세 문단세~'로 시작되는 왕의 이름.. 이것은 왕의 이름이 아닌 왕의 묘호입니다. 왕이 죽은 뒤 왕의 업적에 따라 조(祖)와 종(宗)이 덧붙여지고, 왕으로서 자걱이 없는 임금은 군으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여기서 조선의 왕중에서 군으로 머물러 있는 왕은 광해군과 연산군이며, 실제로는 두 명의 왕이 더 있습니다. 조선의 2대 왕 정종과 6대왕 단종이며, 그들은 사후 공정대왕와 노산군으로 머물러 있었으며, 숙종 때에 이르러서 정종과 단종이라는 묘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종묘에 대해 배워야 하는 이유이며, 조선시대 전쟁 중에도 종묘를 유지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국가가 흔들리는 것을 바로 잡아주는 중심 역할을 종묘가 차지하고 있으며, 나라의 국난이 닥칠 때 그것을 벗어나게 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종묘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달의 사락 k*******2 2016.1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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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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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조선시대에 조상신께 제례를 올리고 나라의 안위를 부탁했던 조선왕조의 국가 사당입니다. 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조상에 대한 효는 곧 국가의 사상적 이념을 대표햇던 근간이 되었습니다. 종묘는 바로 이 효를 실천하고 백성에서 본을 보였던 국가 사당입니다. 제가 처음 종묘를 보았을 때의 낌은 한 마디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엄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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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조선시대에 조상신께 제례를 올리고 나라의 안위를 부탁했던 조선왕조의 국가 사당입니다. 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조상에 대한 효는 곧 국가의 사상적 이념을 대표햇던 근간이 되었습니다. 종묘는 바로 이 효를 실천하고 백성에서 본을 보였던 국가 사당입니다. 제가 처음 종묘를 보았을 때의 낌은 한 마디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엄함이 오래 전 보았던 종묘의 강렬한 인상이었습니다. 자, 여러분을 신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종묘로 초대합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신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종묘宗廟

 

저자 이향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으며, 세 번의 개인전과 수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23년 동안 교직에 재직했고, 2000년부터 시민 NGO 단체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소속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하면서 문화재청장 표창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한국의 전통 궁궐문화에 대한 강의와 원고를 집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

 

 

 

 

 

 

 

 

 

조선왕조의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그 제례적 신성성과 함께 종묘 건축이 갖는 단아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세계에서 유일한 건축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광해군 원년(1608년)에 이전의 규모로 중건되었고, 그 후 다시 몇 번의 증축 및 보수補修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묘는 처음 지어졌던 구조에서 점점 더 길어졌고, 사당으로서의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특별한 위계를 지니게 되었다. 

조선의 왕이 가장 중요하게 떠받든 것은 바로 종묘사직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정이 모든 것을 버리고 황급히 피난길에 올랐으나, 그 황망 중에도 종묘와 사직의 신주만은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이는 종묘사직이 보존되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종묘사직은 국가의 존립 그 자체였다.

 

 

 

 

국상國喪

 

종묘 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왕의 죽음으로부터 접근해야 한다. 왕의 죽음을 국상國喪이라고 말한다. 조선에선 유교식으로 상장례喪葬禮가 엄격하게 치러졌다. 이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되어 있다. 상례는 3년의 복상 기간 중 행하는 모든 의례를, 장례는 시신을 땅에 묻어 무덤을 조성하는 일체의 의례를 일컫는다.

 

유교의 사생관死生觀에서 사람의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혼魂은 하늘로 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은 제례를 통해 효孝를 표현했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삼년상을 지나 종묘에 부묘되기까지를 흉례凶禮로 보고, 그 이후 제사의식은 조상을 다시 만난다는 의미의 길례吉禮로 여겼다.

 

 

 

예를 소중하게 여기다

<국조오례의>에 규정하기를 조선시대 예제禮制의 대상에는 오례(五禮 -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가 있었고, 제사 의례인 길례吉禮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나뉜다. 종묘대제는 사직대제와 함께 대사大祀에 속하여 임금이 친히 받들었던 가장 격식이 높은 의례였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왕실의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로, 종묘대제宗廟大祭 또는 대향大享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왕실의 후손으로서 왕이 친히 제향을 봉행하여 조상에 대한 효를 행하고 국가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조선왕조의 가장 큰 국가 의례로 임금을 비롯한 왕세자, 제관祭官, 문무백관, 악공, 일무원 등 7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이 있는 공신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 종묘에서 제향을 올리는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이 유교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의례 형식으로 보여준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를 진행하는 동안 제사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기악과 노래 그리고 춤이 펼쳐지는데, 이를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고 한다. 종묘제례악은 세종 때 완성되었으며, 그 후 약간의 추가가 이루어졌을 뿐 큰 변화가 없다. 거의 500년 전의 기악과 노래와 춤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이렇듯 오래된 제례와 음악이 함께 전해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로,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선정되었다.

 

공자가 일찌기 예의 완성은 악樂이라고 말했듯이, 종묘제례는 종묘제례악으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 그리고 일무원들이 추는 무용 등 이 세 가지가 종묘제례악을 구성하고 있다. 엄숙한 제례 절차에 따라 연주되는 경건하고 장엄한 곳이므로 그 음악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세종대에 정비, 세조 때 다시 다듬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이달의 사락 5****0 2016.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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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설레임으로 종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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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여행시리즈11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예전에는 사람들이 왜 궁궐로 놀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나도 나이가 들어서일까?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역사의 현장인 궁궐이 편안하고 가고싶은 곳이 되었다.특히 가을이면 더욱 가고 싶어지는 곳모두 아름답다.그런데, 종묘는 그닥 끌리지가 않았다.왠지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다녀온 지인들이 모두 좋다고 꼭 가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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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여행시리즈11

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예전에는 사람들이 왜 궁궐로 놀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역사의 현장인 궁궐이 편안하고 가고싶은 곳이 되었다.


특히 가을이면 더욱 가고 싶어지는 곳

모두 아름답다.


그런데, 종묘는 그닥 끌리지가 않았다.

왠지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다녀온 지인들이 모두 좋다고 꼭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겨울방학 때 아이와 꼭 같이 가보기로 한 곳, 종묘


"전하,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

바로 그 종묘다.


 

그림으로 그린 종묘의 모습이 참 편안하다.


 


을 펼치면 종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울시 종로 3가와 4가 사이에 위치한 종묘는 복원 과정을 마치고

종묘 괒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종묘 전교를 지나 하마비를 만나면 모두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춰야 한다.

왕도 소여를 타고 종묘


책을 읽으면 실제 종묘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상세한 설명과 각 명칭, 이유까지 읽다보면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는 듯 하다.



 


사진과 함께 그려진 그림도 참 마음에 든다.

외대문에서 바라본 신로

혼령이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중지 옆의 단풍이 너무 아름답네요.

정말 가을에 꼭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종묘사적비 옆에 유네스코 기념비가 있어요.

조선을 지탱하는 정신적 뿌리였던 종묘와 사직

또한 종묘제래악까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읽으면서 궁궐보다 종묘를 더 먼저 지었다는 것도 알게되었답니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란 의미겠지요.


외대문부터 걸어들어가면서 종묘를 만나다보니

조선의 역사까지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 되네요.


올 겨울 꼭 종묘에 가야겠어요.

책을 통해 본 종묘와 실제 가서 느끼는 종묘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동으로 만나게 될 것 같아 설레입니다.


 

f*****l 2016.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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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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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면서 종묘에는 가보려는 생각도 하지않았다. 궁궐에는 자주 산책이나  체험학습 삼아 들리지만 종묘는 조선시대 국가 사당 외에 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몇 주전 광화문에서 종로로 걸어내려오다 말끔하게 정비된 종묘 광장을 보게 되었다. '종묘가 여기 있었구나' 새삼스러웠다. [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신간 소식에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시리즈 저자인 이향우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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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면서 종묘에는 가보려는 생각도 하지않았다. 궁궐에는 자주 산책이나  체험학습 삼아 들리지만 종묘는 조선시대 국가 사당 외에 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몇 주전 광화문에서 종로로 걸어내려오다 말끔하게 정비된 종묘 광장을 보게 되었다. '종묘가 여기 있었구나' 새삼스러웠다.

 [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신간 소식에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시리즈 저자인 이향우선생님이 바라 본 종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힐링시리즈답게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참 정성스러운 책이다. 역사의 사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아주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고 이야기에 맞는 장소의 사계절 사진, 직접 그린 그림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사극을 보다보면 '종묘와 사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조선 건국 후 한양에 천도하기 위해 한양에 가장 먼저 세운 것이 종묘와 사직이라고 한다. 종묘는 국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고 사직은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사진 속 종묘는 궁궐처럼 화려한 단청도 없이 엄숙하고 고즈넉하다. 저자의 친절하고 고요한 글을 읽다보면 나도 함께 소박한 지당을 지나 숲을 따라 걸어 망묘루와 신주를 모시는 향대청을 만나게 되는 느낌이다. 종묘 입향을 위한 왕과 왕후들의 슬프고 기막힌 사연에 죽어서도 편치못한 영혼들을 생각하게 된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다.  단종을 낳다가 죽어 구천을 떠돌며 자신의 아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문종은 세명의 세자빈을 맞이하게 되는데 첫번째 세자빈은 투기하는 마음으로 잡술을 이용하다 퇴출, 두 번째 세자빈은  나인과 동침하는 동성애 행각으로 퇴출, 세번째 세자빈이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였다. 왕이 된 후로는 더 이상 왕후를 들이지 않았다하는데 아마 재임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세조가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이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고 무덤까지 파헤쳐 관을 노천에 방치하였다하니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거의 100년 후, 중종에 의해 입향되었다니 원한이 조금은 풀렸을까. 종묘에 관련된 소소한 기록들을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주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종묘의 의미는 전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제례 음식과 음식을 담는 그릇, 종묘제례와 종묘 제례악까지 소개하고 있어 종묘가 외형적인 의미보다 정신적인 의미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종묘제례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어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다. 한국인이면서도 종묘제례에 얼마나 문외한인가 생각하니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원래 밤에 하는 의식인데 요즘은 낮에 재현되고 있다고 하니 모든 형식은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인가보다.

 올해는 부록에 담긴 <종묘 10경>을 하나씩 내 카메라에, 내 눈에 담아보리라.

 

h******g 2016.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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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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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궁은 몇번씩이나 가보았는데도 정작 가까이 있는 종묘는 가본적이 없다.이번 여름 휴가 때 자칭 서울 역사투어를 하기로해놓고서는 살인적인 더위에 기가 꺽여 이번에도 종묘를 가보지 못했다. 봄에 종묘제례악을 보지 못해 속상했었던터라 휴가땐 꼭 가보아야지했던 곳이었는데 말이다.같은 문화재이지만 가까이 있는 궁과 달리 종묘는 선뜻 찾아 나서지지 않는다. 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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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궁은 몇번씩이나 가보았는데도 정작 가까이 있는 종묘는 가본적이 없다.

이번 여름 휴가 때 자칭 서울 역사투어를 하기로해놓고서는 살인적인 더위에 기가 꺽여 이번에도 종묘를 가보지 못했다. 봄에 종묘제례악을 보지 못해 속상했었던터라 휴가땐 꼭 가보아야지했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같은 문화재이지만 가까이 있는 궁과 달리 종묘는 선뜻 찾아 나서지지 않는다.

신들을 모셔둔 곳이라는 인식때문이지 않나 싶다.


종묘는 서울시 종로 3가와 4가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종묘 앞 공원을 재정비해야한다는 여론에 올 3월에 종묘 앞 광장이 새롭게 조성되었다고한다. 재작년에 덕수궁 체험을 하며 하마비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야하지만 실제로 임금님은 내리지 않으시는데 그런 임금님도 종묘 하마비에서는 내렸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책을 보니 연을 타고 궁을 나선 왕은 실제로 하마비 앞에서 내리지 않고 잠시 가마를 멈춰 마음을 경건히 하는 예를 취하고 출발했다고 나와서 종묘 하마비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풍수지리적으로 기의 흐름을 막기 위해 조성한 둔덕인 가산의 흔적을 사진으로 보며 아무 지식없이 가서 보았다면 낮은 언덕정도라고만 생각했을 듯해서 문화재를 대함에 있어 사전지식 없이 보는것과의 차이가 크게 다가왔다.


유교사상이 오랫동안 내려왔던 우리나라는 '혼백'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데 

"묘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받는 곳입니다. 옛사람들의 생각으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혼백이 온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가고, 몸을 지탱하던 백은 땅으로 갑니다. 이때 사람들은 혼을 위한 구조물로 묘(사당)을 짓고, 백을 위해서는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 글을 보면 조상님들이 혼백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종묘가 어떤 의미인지 잘 나타내주고 있어 아이들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알지 못했던 후궁의

사당이 소개되어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우리가 사극에서 악녀의 이미지로 많이 알고 있는 장희빈을 비롯하여 조선의 국왕을

낳은 생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일곱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칠궁도 볼 수 있었다.

봄에 딸아이와 고궁박물관에 가서 제례 때 쓰이는 제기나 제례악에 쓰이는 악기를 본 적이있었는데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보게 됐다.

종묘에 대한 내용들이 꼼꼼하고 자세하게 나와있어 즐겁게 볼 수 있었고 제목 그대로 힐링이 되는 역사체험을 하고 온 기분이 들었는데 딸아이와 이번 겨울방학에는

 꼭 종묘에 가봐야겠다.

d****i 2016.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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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공간인 종묘를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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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다녀온지 한참 되었다. 내가 갔을때만해도 종묘앞은 높디높은 칸막이로 가로막힌 공간이였는데. 이 책을 보니 종묘 앞 광장 공사가 마무리되어서 개방이 되어있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높디높은 벽으로 막혀서 답답했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책속의 광장모습은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다. 책을 펼치면 표지속에 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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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다녀온지 한참 되었다.

내가 갔을때만해도 종묘앞은 높디높은 칸막이로 가로막힌 공간이였는데.

이 책을 보니 종묘 앞 광장 공사가 마무리되어서 개방이 되어있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높디높은 벽으로 막혀서 답답했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책속의 광장모습은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다.

책을 펼치면 표지속에 그림이 있다.

궁금해서 책날개쪽을 펼쳐보니 우와! 종묘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어찌보면 참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종묘이다.

하지만 그곳에 담긴 의미는 단순하지가 않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정신이 담겨있는 곳이다.

한양의 어느 궁보다도 먼저 지어진 종묘.

이 내용은 이번에 책을 보면서 알게된 내용이다.

몇번 종묘를 다녀왔지만.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수박겉핡기식의 탐방만 한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을 보면 종묘의 구석구석.

사계절이 모두 담겨있다.

종묘를 한번도 안 가본 사람도 종묘라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수 있게 해준다.

또한 종묘에 담겨있는 의미도 전각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의미를 자세히 배울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다음 기회에 종묘를 방문한다면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것이다.

종묘앞 광장은 열렸는데. 조금 아쉬운 장면이 있어서 짚고 넘어가려한다.

외대문 계단이 공사를 할때도 맨 밑계단은 땅에 묻혀 있다고 했는데.

광장이 복원되었는데도 그 계단은 여전히 땅속인것 같다.

공간을 복원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조금더 세밀하고 섬세하게 복원을 해주었으면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 볼수있었을텐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다음에 종묘를 간다면 꼭 확인해보고 싶다.

책속에는 종묘의 모습뿐만 아니라 종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아직 종묘제래약 현장을 못 보았기에 나는 더 관심이 간다.

종묘의 제는 어떤 과정을 따라 이루어지는 말이다.

직접 눈으로 보진 못하지만 이렇게 글로라도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갈수 있어서 행복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장면이다.

 

예전에 아이들과 종묘를 다녀온 사진을 찾아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나름 종묘의 구석구석을 둘러본다고 봤는데. 아무래도 공부를 하지않고 현장을 찾아가면 볼수 있는 부분이 작아지는것을 몸으로 경험을 하고 왔다.

이 책을 아이들과 같이보고 우리도 책속에 등장하는 종묘의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궁궐지킴이로 활동하신 작가분이라서 그런지 종묘의 구석구석을 같이 다니면서 설명을 들은것 같은 느낌이다.

꼭 책을 들고 종묘에 다시한번 가봐야겠다.

 

저는 위 도서를 추천하면서 인문산책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g*******1 2016.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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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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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글.그림 이향우사진. 황은열-인문산책-    종묘를 소개시켜주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입니다.표지만 보아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이책은 사진과 그림이 섞여 있습니다.사진으로 구체화된 상상을 할 수 있으며 그림으로 왠지 편안해지는 마음이 느껴집니다.종묘 전체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참 넓고 여유가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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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글.그림 이향우

사진. 황은열

-인문산책-



 

 

 


종묘를 소개시켜주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입니다.

표지만 보아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이책은 사진과 그림이 섞여 있습니다.

사진으로 구체화된 상상을 할 수 있으며 그림으로 왠지 편안해지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종묘 전체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참 넓고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동안 종로를 지나다니며 구석에서 언뜻언뜻 보았던 문입니다.

저 문을 외대문이라고 부르는군요.

 

 

 


주석등이 분홍박스안에 가지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문서에서 따온 글들은 글씨체도 옛스럽게 되어 다른 느낌을 주네요.

 

 

 


사진과 그림이 잘 어울립니다.

가을에 간다면 저런 풍경이겠네요.

 

 


사진이 구도도 우리가 주로 보는 구도로 잡고 찍은 것들이라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본다면 여기가 여기구나라고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참 많이 실려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전하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라는 대사를 많이 들을 수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종묘가 바로 이 종묘입니다.

[종묘()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뒤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라고 나와있습니다.

즉 왕과 왕비도 저절로 숙연해지는 조상들이 모셔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종묘는 집에서 참 가깝고 버스한번이면 금방 가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네요.

주로 궁은 많이 다녀보았지만 종묘는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요.


종묘는 조선이 건국될 무렵 궁을 짓기 전부터 지은 곳이라고 합니다.

1층으로 지어진 단층건물로서 유네스코문화유산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전에 1박2일에서도 종묘를 다룬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종묘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인지 물었더니 비가 폭우로 쏟아질 때 종묘 마당(?)에서 물이 내려오는 모습이

가장 장관이라고 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물이 빠지는 것도 과학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고


이 책은 사계절의 종묘를 모두 담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아 그 사진에 나와있는 종묘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책입니다. 이제 곧 6학년이 될 보물1호와 이 책을 들고 종묘를 산책하고 싶네요.


토요일 오전에 이 책을 들고 종묘를 거닐고 오후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가고 싶습니다.


s*******7 2016.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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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침묵의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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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침묵의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      매번 계절이 바뀌는 때면 시간을 내서 궁궐이나 종묘를 답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500년 된 흔적의 장소를 답사한다는 건 매번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난다는 설레임을 갖게 한다. 궁궐에 비해서 종묘라는 공간은 그 느낌을 많이 달리하는 곳이다. 경복궁보다 먼저 지어진 곳이 바로 종묘와 사직이다.  종묘라는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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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침묵의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

 

 

 

 

매번 계절이 바뀌는 때면 시간을 내서 궁궐이나 종묘를 답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500년 된 흔적의 장소를 답사한다는 건

매번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난다는 설레임을 갖게 한다.

궁궐에 비해서 종묘라는 공간은 그 느낌을 많이 달리하는 곳이다

. 경복궁보다 먼저 지어진 곳이 바로 종묘와 사직이다. 

종묘라는 공간으로 떠나는 힐링 여행을 저자는 어떻게 안내하는지 궁금했다.

우선 저자의 약력을 살피니 조각가로 활동하고 23년간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 궁궐지킴이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궁궐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늘 가까이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설명을 하고 있는 작가이기에

독자를 대상으로 시간 내에 다 하지 못한 안내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된다.

사실 궁에 가서 해설을 들으면 다 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에

늘 아쉽고 궁금한 점이 많았다.

종묘의 경우는 평일에는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면서

지정된 공간만 보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 또한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책을 통해서 종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안내를 받으면서

아주 여유롭고 꼼꼼하게 종묘를 답사한 기분이 든다.

종묘는 침묵의 공간이라고 한다.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공간이기에

 단청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고 창을 내는 방식도 상당히 다르다.

 

이 공간에 대한 설명과 함께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책에서 볼 수 있으니 더 없이 반갑다.

마침 오늘 고궁박물관에 갔다가

종묘제례에 쓰이는 다양한 제기와 종묘제례 과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부분까지 책에 담고 있어서

이 책 한권이면 종묘에 대한 답사는 물론

종묘제례에 대해 궁금한 점까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두고두고 보면서 찾아보고 배울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진과 정보, 그리고 종묘의 각 건물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받았는데

 어떻게 종묘를 다시 가보지 않겠는가?

종묘 앞을 새 단장하고 아직 한차례도 가지 않은 게으름을 반성하면서

 눈이 많이 내린 겨울 날 종묘에 들려보련다.

c******u 2016.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