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크게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받기만 하는 사람, 마냥 주기만 하는 사람 그리고 주기도 받기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3종류의 사람 가운데 주기도 받기도 하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서 나의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받기만 하는 사람과 주기만 하는 사람은 둘 다 행복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늘 받고자 하는 사람은 뭔가를 받지(얻지) 못했을 때 불행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는 받지 않으면서 주기만 하는 사람 역시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은 성숙하지 못한 불완전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반드시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 본서에서 나무를 사랑했던 소년은 날마다 나무에게 가서 나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에 대한 소년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소년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러나 소년이 나무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마다 나무는 소년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나무는 소년의 요구를 들어줄 때마다 행복했다. 그러나 진짜 행복한 건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소년과 마냥 주기만 하는 나무는 서로가 행복하기보다는 허전함과 때로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 나는 본서를 읽으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생각해봤다. "무조건 주여 주시옵소서" 늘 요구하는 신앙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소원을 항상 들어 주셨다. 나의 소원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저리고 아프셨을까?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일방통행의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너무 부끄럽고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시면 또 다음에 다른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또다시 요구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통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세상 것으로는 만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은 그 어떤 세상의 값진 것을 줘도 만족할 수 없다. 운동 후에 마시는 콜라가 갈증을 더하게 하는 것처럼 세상 것을 취하면 취할수록 더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전부를 주신 예수님과 날마다 교제할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는 소년이 이것을 마지막에 가서 깨달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 결국 소년은 나무에게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무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소년에게 미안해한다. 그러나 소년은 "이제 내게 필요한 건 별로 없어 앉아서 쉴 조용한 곳이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나무는 자신의 밑동에 소년을 앉게 한다. 소년은 나무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결국 소년과 나무는 서로가 함께 하며 서로가 주고받을 때 행복을 느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일방적인 사랑을 베풀면서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다. 그렇다. 사랑은 혼자 만들고자 하나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내 삶 속에서 더 많이 요구하고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주고받는 사랑을 통해 반쪽이 아닌 최고의 사랑, 참 행복을 누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