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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술이다. 프롬은 사랑이란 감정적인 것이 아닌 노력과 학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하기 위한 전제이다.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프로이트적인 성에 대한 또한 사랑에 대한 시각을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프로이트의 이론이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성립된 인간에 대한 관념을 심리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듯 프롬의 글도 현대 인간의 소외와 그것을 만들어낸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대안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결론 부분에서 언급하듯이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의 실현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그런 것이 베버(Marx Weber) 이후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한없는 욕망의 추구는 경제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이런 가치관을 전제로 한 이 사회에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더구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프롬은 이 문제를 정치가들에게 넘기고 있다. 결국 그는 학자인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랑을 원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일치감이라는 것으로 사회에 또는 여러 가지 대상에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분리라는 것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인 것이다. 책에서는 분리와 일치를 유아기적 현상과 같은 심리학적 부분부터 종교와 중독과 같은 일탈 현상으로까지 확대 적용시킨다. 사랑은 준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로서 보살핌과 책임, 존경과 지식을 필연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형제애, 모성애, 육체적 사랑,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사랑과 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사상은 19세기 유물론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사상은 모든 정신적인 현상은 생물학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설리반은 소외된 시장형 인격으로서의 팀(team)이론을 보여주었다. 이것 또한 두 사람만의 이기적인 사랑인 것이다. 이처럼 사랑이란 관념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 가능하며 사실 그 이론은 계속 변화해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실상 현대 서구사회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계속적으로 해체되어 왔다고 말한다.
프롬에게 있어 결국 사랑은 신념에 따른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의 실천은 훈련과 정신집중, 인내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활동 기술(奇術, art)이다. 사랑이란 인간 본성에 대한,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회적이고도 개인적인 활동인 것이다. 논리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색채까지 보일 정도로 주관적인 성격의 특이한 글이다. 또한 심리학적 고찰에서 끝나지 않고 종교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까지 관찰한 면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프롬이 동양사상에 깊이 젖어 있지 않았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의 책 『소유나 존재냐』에서도 나타났듯이 말이다. 심리학 책이지만 너무 극단적인 논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더 많은 실증이 아쉽다.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의의 단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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