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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내용보기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이붕언 엮음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3.5.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이붕언/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은 ‘일본에서 나고자란 한겨레’인 이붕언 님이 ‘일본에서 일하고 살아온 한겨레’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은 자취를 갈무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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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이붕언 엮음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3.5.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이붕언/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은 ‘일본에서 나고자란 한겨레’인 이붕언 님이 ‘일본에서 일하고 살아온 한겨레’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은 자취를 갈무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일본에서 일하며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붙잡히거나 끌려가야 한 분이 있고, 이 나라에서는 입에 풀바를 길이 없어 떠나야 한 분이 있고, 시달리고 들볶이는 살림이 벅차 건너간 분이 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다면 누구나 곱게 품습니다. 나라가 사랑스럽다면 누구나 반가이 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지 않기에 한켠에서 울며 괴로운 사람이 있고, 나라가 사랑스럽지 않아 한쪽에서 멍들며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총칼을 벼린다고 할 적에는, 이 총칼로 으레 옆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총칼이란 옆사람을 이웃 아닌 밉놈으로 삼아 짓밟고 죽이려고 하는 싸움연모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총칼로만 이웃을 짓누르거나 죽이지 않아요. ‘개밥도토리’란 말이 있듯 우리 겨레도 스스로 옆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따순 마음이 아닌, 높낮이(신분·계급·돈·이름·힘)로 가르는 틀을 두었으니, 때리는 쪽하고 맞는 쪽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있대서 이웃이 되지 않습니다. 담 하나를 마주하는 사이라서 이웃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나라하고 더없이 가까운 사이가 될 만하기에, 우리한테 넉넉한 살림을 나누어 주고, 우리한테 없는 살림을 나누어 받으면 서로 좋겠지요. 나라지기라면 나라하고 나라가 사이좋도록, 고을지기라면 고을하고 고을이 사이좋도록, 마을지기라면 집집이 사이좋도록, 슬기롭게 이끌 노릇입니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이웃나라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살림을 짓고 살아가기에 ‘재일조선인’이라면, 이 나라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재한조선인’일까요?

 

  서로 아끼는 가까운 사이는 ‘동무’입니다. 동글동글 어우러지고, 동글동글한 마음이에요. ‘동포(同胞)’란 한자말은 “1.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2.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만, 글쎄요, 참말로 따스하게 한겨레를 일컬으려고 이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은 터럭만큼도 안 듭니다. ‘우리하고 다르잖아?’ 하는 뜻으로 금을 그으려고 이 이름을 쓴다고 느껴요. ‘한배를 타는’ 사이라면, 한살림을 꾸리는 동무가 되자면, 한사랑으로 나아갈 이웃으로 살자면, 가장 수수한 이름인 ‘이웃·동무·마을’으로 돌아가서 바라보고 어깨를 겯어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눈물을 닦고 웃음으로 가길 바라요.

 

ㅅㄴㄹ

 

“먼 길 오셨네.” “네, 조금요. 이런저런 옛날이야기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할 수야 있지만 한량이 없어서…….” 말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 그 순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1쪽)

 

“일본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그야 탄광이지. 그때가 열예닐곱 살이었으니 아직 어린애잖소. 느닷없이 데려와서는 처박은 거지. 탄광이란 게 어지간해서는 못 배기는 곳이오. 돌덩어리가 머리 위에서 데굴데굴 떨어지는 곳이니까.” 드디어 그는 탄광에서 도망쳤다. (42쪽)

 

“한국에는 가 보고도 싶다오 태어난 곳은 역시 그리운 법이거든. 그렇지만 생활하기는 어려워. 27년 만에 고향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수. 저기에 내가 자란 마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멀리서 바라보며 울기만 했지.” (49쪽)

 

일본이 전쟁에서 지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전부 팔아치우고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147쪽)

 

조선에 가면 목숨은 건진다.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년 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밀항선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에서는 살 수 없어. 돌아가지 마!” 밀항으로 돌아온 조선인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289쪽)

 

 


 

h*******e 2021.01.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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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죽어’라고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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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은 개처럼 키웠어. 개라도 지금 그렇게 키우면 살지 못할 거야.” - 변봉석(여) / 1923년 3월 5일생 / 경상남도 출신 / 7남매 / 도쿄 미나토 구 시바우라 거주 큰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봄에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여섯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매트나 의자, 이불에 솜을 넣는 일, 폐품 수집 따위. “애들이 작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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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은 개처럼 키웠어. 개라도 지금 그렇게 키우면 살지 못할 거야.”

- 변봉석(여) / 1923년 3월 5일생 / 경상남도 출신 / 7남매 / 도쿄 미나토 구 시바우라 거주


큰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봄에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여섯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매트나 의자, 이불에 솜을 넣는 일, 폐품 수집 따위.

“애들이 작을 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죽어’라고 말했지. 울면 일 못하잖아.  니가 죽으면 내가 편해지니까 죽어! 했지. 정말이었어.”

큰아들은 동생들을 보살피면서 그녀가 모아온 폐품을 분류하여 취급점에 가지고 갔다. 어느 날 큰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왜 가난한 거야! 돈 좀 있었으면…….”

“아래만 쳐다보고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단다.”

“어머니, 아무리 아래만 쳐다봐도 돈은 없었어.”

- 이태숙(여) / 1915년 4월 13일 출생 /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 / 4남매 / 교토 시 미나미 구 거주


“아들 둘은 일본에 있지만, 딸 넷 중에서 둘은 북한에 가버렸다오. 여기서 차에 올라 멀리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래서 항구까지는 도저히 못 갔고. 그 두 아이를 언제가 되면 만날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가슴 아프다오.”

- 이갑년(여) / 1915년 10월 14일 출생 /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 5남매 / 이와테 현 시즈쿠이시 정 거주


“민단 설립했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끌려가 죽을 뻔했지만 내가 그렇게 간단히 죽을 사람인가. 고치에 조직 폭력단 300명 정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잡아놨지. 내게는 감히 뭐라고 못해. 싸움은 정말 많이 했어! 엄청 셌지. 좋은 시절이었어. 내가 죽는 걸 기다리지 마라. 니들이 먼저 뒈진다. 난 이백 살까지 간다.”

- 김중권(남) / 1919년 11월 11일 출생 / 경상북도 영양군 출신 / 4남매 / 고치 현 고치 시 거주


“옛날에 ‘보리밥이 밥이냐, 정어리가 생선이냐’ ‘조선인이 인간이냐, 보리밥이 밥이냐’는 말이 있었다오. 조선인은 개나 매한가지로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입견이 일본인들에게 있었지. 나를 그렇게 보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아. 일본에 와서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했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조선인을 싫어했는지 모르겠어. 참 웃기는 곳이야, 일본이란 나라는.”

- 박수엽(남) / 1920년 9월 5일 출생 /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 4남매 / 기후 현 기후 시 거주


“자전거가 넘어져서 소 내장이 길바닥에 죄다 쏟아진 거야. 근데 창피해서 당최 주울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흙바닥에서 소 내장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하나하나 핀셋으로 돌멩이를 떼어낸 다음 팔았지.”

- 정증순(여) / 1925년 9월 8일 출생 /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 / 4자매 / 사가 현 사가 시 혼조마치 거주


“나이 오십이 되어서 태어난 고향 집에 갔을 때, 내 어릴 때 자주 돌봐줬던 사람에게서 왜 한국말을 못하느냐, 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느냐는 말을 들은 게 지금도…….”

- 김봉도(남) / 1924년 11월 27일 출생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출신 / 5남매 / 오이타 현 오이타 시 다이지 리 거주


“21년 동안이나 못 봤던 어머니와 간신히 만날 수 있게 됐을 때 여권을 신청해 한국에 건너가려던 차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정말이지 말도 안 나오고……. 그래도 고향에 갔더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너 용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구나! 하시대…….”

- 김달룡(여) / 1924년 3월 27일 출생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 / 4남매 /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 미즈신치 거주


이렇게 한 장 한 장 넘기기 힘들었던 책이 근래에 있었나 싶다. 아흔 한 명의 재일동포1세의 삶. 2~3페이지 당 1명씩 담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고통과 눈물의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그들에 대한 담담한 보고서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2001년부터 일본 전역을 돌며 생존해 있는 재일동포 1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저자는 재일동포 3세 사진작가이다. 그는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윤상인 교수에게 “재일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 1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했다”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이 책이 한국어로 소개된 지금, 인터뷰에 응했던 네 명 중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등졌다고 전한다.


윤상인 교수는 저자 이붕언의 취재 과정을 이렇게 소개한다.


“5년 동안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종단했다. 하루에 한 명씩 만나 반나절이나 한나절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해서 91명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만난 사람은 100명 보다 많았다. 아예 면담을 거절하거나 면담 후 수록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수록은 하더라도 사진 게재만큼은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세 명 모두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고통의 기억이 크고 깊을수록 말문은 굳게 닫히기 쉽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 자체가 공포인 것이다. 혹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과거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본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손들에 대한 배려에서 이제와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역자는 재일 1세를 “나라 잃은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전란을 겪고,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땅에 머무르며 정주의 길을 일궈 나간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나라 잃은 땅에서 태어나 강제로, 또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해방이 되어도 차마 살던 터전을 버리지 못해 남은 이들. 혹은 여러 가지 운명의 장난으로 고향을 갈 수 없었던 이들. 이들은 전후 혼란기의 폐허만 남은 일본에서 그야말로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억척같이 삶을 일구어 나갔다.


현재 재일 한국인은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재일 한국인은 여전히 일본 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이고, 재일 3세와 4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역자는 경제 선진국 일본에서 태어나 마이너리티로서 정체성을 일궈 나가며 정주의 길을 걸어야 하는 ‘조선인’의 후예들이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개만도 못한 조센징이란 차별과 억압 속에 반세기를 강인하게 버텨 온 재일1세들. 그들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일본에서도, 그리고 조국이라 떠드는 한국에서도 여지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일본 내 동포들마저 분단시켜버린 과거 양 정권의 오만과 죄악에 대해서 추호의 사죄도 없다. 일본 국민과 같이 똑같은 납세의 의무를 지면서도, 정작 투표권조차 가질 수 없는 3등 국민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은 무엇인가. 나라라는 것이 힘이 없어 강제로, 또는 어쩔 수 없이 건너간 일본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우리는 따뜻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일본의 재일 동포 차별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우리는 ‘우토로’ 사람들의 고통을,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차별과 모욕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가.


역자의 말처럼 재일1세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기술에서 소외되어온 존재다. 식민지 지배/피지배 역사에 관한 진술 체계 속에 그들의 목소리가 스며들 여지는 없었다. 광복 이전에는 일본의 자민족 우월주의에 기초한 식민 담론을 통해 차별 대상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았고, 광복 이후에는 한국 민족주의의 배타적 저항 담론 속에서 배척 혹은 무시되는 고립무원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야 했다.


“제국은 악이며 민족은 선이라는 선험적 공리가 작동하는 ‘제국과 민족의 이분법’(임지현)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경원의 대상이 되었다. 제국 일본의 패망 후, 조국에 귀환하기를 거부했거나 귀환 후에 또다시 밀항선을 타고 민족의 땅을 버린 그들은 오히려 민족 수난의 지배적 기억을 훼손하거나 희석시키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제국 일본의 기억을 ‘껄끄러운’ 형태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이 일본의 근대사 기술에서 챙겨질 여지도 거의 없었다. 역사 서술의 주체 세력 입장에서 볼 때, 대부분 무학에 빈곤했던 이들은 계급적 약자였으며, 영토 밖에 거주하는 이들은 공간적 약자였고, 일본 문화에 어설픈 형태로 동화된 이들은 문화적 약자였다. 무엇보다도 민족적 범주의 변방에 위치한 그들은 민족적 약자였다.”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들이 나올 때마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우습게도 “그럼 난 민족 구성원 중 하나 인거야, 개인인거야? 난 한국인인거야, 조선인인거야? 썅, 나는 사람인거야 조직 세포인 거야!?” 이딴 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결국 분노하게 된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폭력집단이 행해온 무수히 많은 범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특징 중 하나이다. 원시적이고, 매우 변태적인, 그리고 때로는 파쇼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 장면이다.


이들의 삶은 근대 한반도를 지나온 모든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눈물과 영욕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대적인 북송작업을 통해 재일 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각인시키려 했던 북한 역시, 이건 따로 다룰 시간이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 정부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굴욕적인 한일 회담이후 현재의 정신대 문제,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일본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이 친일파의 계승이라는 뼈아픈, 그리고 수치스러운 역사와 함께 엮여있으니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스포츠나 그밖에 한류 따위를 들먹이며, 국민들에겐 민족주의 감정을 일으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 아쉽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의 수준은 이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런 자격미달 국가에게 일본 본토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은 관심의 대상이기보다는 언제나 이용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걱정하고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대할 수 없다. 재일 동포 1세의 삶을 조명하는 이러한 책들이 결국 같은 재일 동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91명의 삶 하나하나가 가슴 묵직하게 다가온다. 힘겹게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어느 장면에선 눈물이 맺히고, 어느 장면에선 부끄러움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의무감 비슷한 감정까지 일었다. 나는 도대체 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기억했던 것일까.


한류가 일본에서 돌풍이라고 주접떨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딴 삽질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우리는 정작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류 열풍으로 그들도 가슴 펴고 살지 않을까 따위에 한심한 생각뿐이었다.


여전히 주제 파악 못하고, 깝죽거리는 수많은 한반도 조센징의 한 사람으로서 반세기를 살아낸 재일동포 1세 분들에게 죄스러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다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 분들에겐 우리의 눈물조차 가소롭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09.04.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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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기억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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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역사 교과서 및 조부,부모님으로부터 간접적인 이야기만 듣 고 자랐다.일제 강점기가 갖어다 준 배고름과 차별 의식,낮은 생활 수준등은 이야기를 듣는 자체만으로 불행한 한 시대였고,고통을 밥먹듯이 씹어 삼켰구나라는 비애만이 남았다.일제 강점기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부터 1940년대초 일본제국은 탄광촌이나 항만 해역등 잡역이 필요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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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역사 교과서 및 조부,부모님으로부터 간접적인 이야기만 듣 고 자랐다.일제 강점기가 갖어다 준 배고름과 차별 의식,낮은 생활 수준등은 이야기를 듣는 자체만으로 불행한 한 시대였고,고통을 밥먹듯이 씹어 삼켰구나라는 비애만이 남았다.

일제 강점기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부터 1940년대초 일본제국은 탄광촌이나 항만 해역등 잡역이 필요했는데,현지인보다는 식민국가의 젊은이들을 강제적으로 배에 싣고 간몬 해협을 통과하여 일본땅에 떨구면서 조선의 젊은 청년,처녀들은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일궈가야만 했다.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23년 제주에서 시모노세키라고 한다.

이 도서는 재일교포 3세 사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오에겐자부로씨가 건네 준 재일교포 1세들의 사진첩을 보면서,5년간에 걸쳐 일본 전국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어렵게 탐방하여 취재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며 구술담의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취재에 응해 준 교포 1세들은 짐승만도 못한 대우에다 무관심,차별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 들이면서 젊은 시절 제국 본토에서 청춘을 바쳤을 것이다.중일전쟁,2차 대전이 끝나면서 200만에 이르던 재일교포 1세들은 140만이 조국,조선으로 돌아오지만 나머지 10만은 생계가 일본만 못해 재차 일본으로 돌아가 삶의 터전을 내내 그곳에서 영위하며 살아 왔던 것이다.

기나긴 세월만큼 그들의 얼굴에는 깊게 팬 주름과 투박하고 거칠어진 손마디에는 그들이 일본에서 살아 왔던 기나긴 여정을 전해주고 있는거 같았다.저자가 전하고 있듯이 탐방 취재는 그다지 용이하지 않았던 것같다.일본인이 아닌 식민지 땅의 사람들이기에 말할 수 없는 차별과 부당한 처우,무관심등이 가슴 속에 피먹이 들고 아물줄 모르는 상처를 뭐가 좋다고 입밖에 내고 싶었겠는가?!

흘러간 일제 강점기는 우리 역사에 크나 큰 상처와 고통을 안기고,아직까지도 겸허하고 솔직한 자세로 나오지 않은 일본의 고자세와 비겁한 사과가 일본에 사는 교포 1세에게는 그냥 목숨이 붙어 있기에 살아가는 자체일 것이다.

91명의 교포1세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모진 세월 속에서 그들이 삶의 한 방편으로만 살아와야만 기구한 운명을 이제는 그들의 후손인 우리 세대가 제대로 알고 그들을 위로하며 남은 삶 속에서 억장 무너지는 세월을 감소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또한 소위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이 그들을 지칭하는)들에 대해서 우리 세대가 복원해야만 할 역사가 남아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때라고 생각이 든다.



 

 

j******6 2012.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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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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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1세란 나라 잃은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전란을 겪고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땅에 머무르며 정주의 길을 일궈 나간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까지 읽은 재일조선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단편적으로나마 내 머릿속으로 정리된 재일1세의 개념이 될 것 같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재일조선인인줄 알았다.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다.그래서 나는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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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1세란 나라 잃은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전란을 겪고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땅에 머무르며 정주의 길을 일궈 나간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까지 읽은 재일조선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단편적으로나마 내 머릿속으로 정리된 재일1세의 개념이 될 것 같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재일조선인인줄 알았다.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다.그래서 나는 스스로 재일조선인에 대해 알아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그래서 재일2세의 목소리도 3세의 목소리도 들어보았다.

이 책은 재일1세에 대해 조금더 알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물론 만족 할 만큼의 결과는 아니었다.개인적으로 재일조선인1세에 대한 이야기의 목마름이 컷던 탓도 있을 수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재일조선인1세로 살아온,살았던 혹은 살아오고 있는분들의 산증언을 듣는 것이 힘에 겨웠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은 이념 혹은 갈등의 이야기들이었다.그런데 이 책은 산증인들의 목소리와 간단한 소개,그리고 무표정 한 듯 그러나 힘겹게 살아온 사진들을 마주해야 했다.가난이 힘에 겨워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그리고 곧 고국으로 돌아 갈 줄 알았단다.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고,나라는 재일조선인들의 안전을 확실하게 지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재일조선인1세를 조금더 많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너무도 힘겹게 살아온 삶을 단 몇줄의 역사로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단 한장의 사진으로 내가 어떻게 그 아픔과 고통을 상상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잊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언제까지 기억 하고 싶었기에

자이니치 1세대로 인고의 세월을 겪었을 그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왜곡되는 역사앞에 살아 있는 산 증인의 교육일테니까..

이것 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교과서가 어디있겠는가?

 

그대들

부디,자이니치1세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시길...

w*******i 2009.04.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