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룸넘버1301이 11권을 끝으로 기나긴 종마전설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시원섭섭하네요. 처음 룸넘버와 만났을 땐 상상을 초월하는 막장스러움에 두근두근, 쓸데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참 순진했죠. 어쨌든 마무리가 지어졌으니 평가를 해봐야겠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제 기대치는 아주 높았거든요.
02. '나는 연애에 어울리지 않아'. 룸넘버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 하나를 고르라면 틀림없이 이것이 될 겁니다. 많은 이성과 접하고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도 언제나 켄이치의 마음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위화감이 있었지요.
13 층은 앞으로 있을 날개짓을 준비하는 둥지이며, 그 주민들은 미쳐 날아오르기도 전에 상처입어버린 몸과 마음을 서로의 체온으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아기새입니다. 비록 매력적인 여성진과의 절조없는( ..) 성관계로 용자물의 칭호를 얻었지만, 적어도 룸넘버가 겉으로 표방하는 바는 켄이치와 그 동료들의 아픔과 성장이라 믿어요.
그 렇기에 저는 켄이치의 마음 속에 울려퍼지는 이 어쩔 도리 없는 위화감과, 그가 얻은 많은 추억들, 그가 겪은 아픔과 그가 얻은 웃음이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의 결론을 내 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룸넘버를 막장하렘물이라 칭해도, 웃으며 종마전설이라던가 용자물의 선두주자라던가 하며 맞장구를 쳐도, 속으로는 꿋꿋하게 그 이상이 있음을 믿었던 바탕에는 그런 기대감이 깔려 있었던 것이죠.
03. 사에코의 일로 인한 방황,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자신만이 남겨질 거라는 외로움, 치야코와의 결착, 줄곧 느껴왔던 위화감, 13층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 많고도 많은 재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에서 그려지는 '성장'과 '해소'의 과정은 저에게 무척 불만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단어만이 떠오르더군요. 불완전연소. 한권 쯤 더 늘어나더라도 이야기해야할 것은 확실히 해주길 바랐습니다.
04. 하 지만 분명한 건, 저 자신이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겠죠. 그저 그런 종마의 일대기를 보는 것 같다가도 가슴을 푹 찌르고 들어오는 명대사를 날려주거나, 세간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왠지 모르게 공감하게 되는 독특한 철학토크를 전개하는 모습을 보며, 분명 마지막엔 지금까지 이상의 뭔가를 보여줄거라 믿었던 겁니다. 비록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는 무난하게 끝을 냈다고 봐도 될 것 같긴 해요.
05. 그럼 재미없었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궤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에 거는 기대와 작품에서 느끼는 재미가 꼭 일치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비록 제 기대는 어긋났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보너스가 있었습니다. 보너스 점수가 너무 커서 큰 폭으로 점수가 상향조정되었죠.
본 편이 끝나고 에필로그에서 마무리를 짓는데 그 뒤에도 챕터 하나가 더 있더군요. '후일담'이라는 제목의. 후일담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용서가 됩니다. 조금도, 털끝만치도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 그런지 깜짝효과가 대박이네요. 하지만 더 자세히 쓰면 미리니름이 되어버리니 궁금한 분은 직접 읽어보시길.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