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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베이비... 뭐라고 할까, '나의 이상과 욕구 사이'를 방황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 말하고 싶다.
누구나 이상을 가진다. 내가 정말 하고 싶고, 되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구말이다. 그런데 이상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 이상을 누리진 못한다. 환경이 문제고, 주변 여건이 따라주지 못할 때도 있지만, 우리들의 이상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다. 이상과 욕구가 충돌할 때, 우리는 가차없이 욕구와 충동을 따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에...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정리하고자 하는 것도, 나의 이상이라기 보다는 나의 욕구에 가깝다.
내가 셰리의 삶에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이상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욕구적 삶에 멈추고 마는 경우다. 또한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도, 나의 이상이 욕구에 늘 장애될 때이다. 셰리나 나 뿐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영혼들이 그런 갈등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셰리를 볼 때, 그녀도 안타깝고 그런 내가 안타깝다. 하지만 욕구란 녀석은 늘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미워하기엔 그동안 너무 친근했던 녀석... 미운 정 때문에 더 떨어지지 못하나..^^?
셰리는 자기의 딸 알렉시스를 잘 보호하고픈 이상을 가졌지만, 정작 자기에게는 그 이상을 이룰 수 불완전을 본다. 순간 다가오는 마약의 유혹 속에, 자기 화를 참지 못하는 감정 속에, 정작 딸 아이의 옷 하나 갈아입히지 못하는 자신 속에, 자신의 이상이 아직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비록 몸을 이용해서라도, 필요한 직장을 구하고, 모든 여건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 노력에 눈물 겹게 슬픈 현실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영화는 셰리의 실패 속에도 희망을 불어넣는다. 진정한 용기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셰리처럼, 오빠에게 자신의 딸을 좀더 돌봐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셰리베이비란 영화제목, 셰리의 베이비를 의미하는지, 욕구를 분출하는 셰리가 베이비란 의미인지, 내 나름대로 해석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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