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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 속에 성차별이 숨어 있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차별 구조를 날마다 재생산하는 데 이바지하는 셈이다. 20세기 초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레닌의 여성해방운동의 여세가 21세기에 들어선 우리사회에서도 최소한 양성평등의 외형을 갖추고 살아가도록 일조했다. 그러나 양성의 생활상을 안팎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뿌리 깊은 무언가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며 작동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은 양성평등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여성학 관련 책을 읽다가 평소 느낀 궁금증을 언어학적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회제도가 양성이 평등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 속에 살아가는 우리 의식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것은 왜일까? 저자는 우리의 정신 구조를 지배하는 언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호칭 속에는 성차별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남자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표하고, 기대 받고, 존경 받는 존재임에 비해,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적인 부수적인 존재이자 동물의 암컷이고, 대를 잇는 생활 노예 같은 존재임이 언어 속에 차지하고 있는 한 근본적인 정신적 평등을 이루기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째 장에서, 언어학 차원의 고찰과 개념이 양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이론적 이유와 방향을 살펴보고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우리말에 나타난 성차별 의식을 가족 간 호칭을 중심으로 따져보고 있다. 셋째 장에서는, 우리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에 나타난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언어 사용자의 성차별적 가치관을 파악하고 있다. 넷째 장에서는, 민중의 삶과 정신이 담긴 우리 민요와 속담에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을 살피고, 여성의 적이 남성만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다섯 째 장에서는, 우리 대중가요와 그 노랫말 속에 나타나고 있는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분석해보고, 과거와 근대 여성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와 오빠, 자매와 형제, 며느리와 사위 등에서 성차별 의식이 날마다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언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일일이 그 뜻을 의식해서 파악하고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무시해도 괜찮은 것일까? 저자는 여성의 지위 향상이 우리 삶 속에까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언어 속에 숨은 성차별 구조를 인식하고 하나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있을 때라야, 외형적인 평등만이 아니라 진정한 정신적 평등의 차원까지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는 일상 언어 속에 숨은 성차별 구조를 따라가며, 언어의 발생과 성립 과정이 철저하게 남성 중심이었음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의 성립 과정에 여성이 조금이라도 주체적으로 참여했더라면, 오늘날 그렇게까지 여성 비하적인 언어가 자리 잡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역사의 주체는 오로지 남성뿐이었음을 확인해주는 듯한 ‘비서(秘書)’를 만난 느낌이었다. 가부장제가 성립하면서 모든 권력과 통치 기구 및 문자를 비롯한 지식 생산의 도구가 남성의 전유물로서 기능해왔을 거라는 추측이 드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또한, 여성이 권력과 지식 생산이라는 상층부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가정 안에서 육아와 생활의 재생산에만 머물도록 억압받았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여성이 가정과 부족 문제를 공유하고 결정하는 일이나, 지식의 발견에서 타고난 관심이 없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료에 남아있지 않아 제대로 알 수 없는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와 질곡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하락했으며, 언어의 발견과 성립이 어떻게 성차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등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여성학과 사회학 및 선사시대 역사에 이르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 함께 떠오른다. 앞으로 관련 분야 도서를 더 찾아 읽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