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각에선 상위예술과 하위예술 간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을 구분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위배되지만 예술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위계층은 하위예술을 무시하고, 하위계층은 상위예술을 동경한다. 이를테면 보수주의 평론가 앨런 블룸은 클래식 음악을 높였지만 록음악은 꽤나 천대했다. 국내 문학평론가들이 탐정소설과 무협지는 취급조차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오늘날 여전히 예술에 관한 이런 비대칭적 인식이 뚜렷이 존재한다. 사회계층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예술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한, 예술에 대한 비대칭적 인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스 애빙은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21세기북스, 2009)에서 예술세계의 야누스적 면모를 지적하고 예술 경제의 패러독스를 설명한다. 한 얼굴에서는 돈과 상업성을 외면하는 고상한 태도가 발견되지만, 다른 한 얼굴에서는 시장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예술가, 예술 애호가로서 저자는 상업이 예술세계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로서 엄청난 규모의 기부와 지원처럼 예술세계에 깊게 침투한 상업성을 지적한다.
"일부 사람들은 상업예술로 인해 순수예술이 예술시장에서 소외당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상업적인 대중문화 때문에 우리 사회의 예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순수예술을 상업성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 한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나는 상업성은 순수예술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43쪽)
경제학적 관점에서 상업성이 예술세계에서 지니는 의미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예술가와 경제학자는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 경제학자들은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는 대체적으로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즉 시장이 예술작품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돈을 많이 버는 예술가가 더 훌륭한 예술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반면에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들은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가 서로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 즉 예술적 가치가 높을수록 시장 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정답은 두 주장의 중간에 있다. 시장 가치와 예술적 가치는 상호의존적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완전한 비례관계도 아니고, 예술가들의 주장처럼 전적인 반비례관계도 아니다.
그럼, 누가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를 결정하는가? 일반적으로 예술세계의 전문가들이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결정하고, 시장 가치는 경제적 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결정한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시장 가치에 영향을 주는 핵심요소다. 시장 가치는 시장의 유형에 따라 구별이 가능하다. 대중시장의 경우, 시장가치는 대중 소비자집단의 집단적인 지불의사에 달렸고, 부자시장의 경우, 시장 가치는 소수의 부유한 소비자들의 지불의사에 달렸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대중시장에서는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지만, 부자시장에서는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예술과 자본,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 신성함과 실용성,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에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은 사회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집단 간의 경쟁이다. 오늘날 예술세계에서는 또한 문화적 엘리트와 경제적 엘리트가 사회적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95쪽)
|
|
'예술은 배고프다'라는 말은 이제 숫제 상투어가 되어버렸다. 예술에 투신하는 사람은 굶주린다거나, 집에 돈이 많아아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거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생계와 예술관의 간극 사이에서 결국 타협하는 길을 택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안타까운 일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예술가는 그렇게 가난한 것인가? 어째서 예술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을까?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에 따르면, 예술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가난한 예술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예술가의 처우가 나아지고 사회적으로 지원이라도 받게 되면 예술과 생계에서 갈등하가가 예술 쪽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구조라면 예술가 지원제도가 정착되어도 지원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나올 수밖에 없고, 자연히 가난한 예술가는 또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것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원론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엄밀하게 파악한 다음 차근차근 분석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한국에도 해당될 법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를테면 예술시장 수요에 대해 예술학교 정원이 너무 많다는 지적 등이 그렇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을 많이 받을수록 유리하고, 학과를 유지하고 학교 규모를 확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예술의 문턱을 낮춘다는 등의 핑계를 내세워 너무 많은 학생을 뽑고 있으며, 이것이 예술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치 하락'이고 말이다.
한국 미술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유럽에 비해 한국의 미대는 정원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보다 미대 정원이 훨씬 적은 유럽에서 이 정도라면, 한국보다 예술 향유의 문턱이 낮은 편이고 보다 에술이 대중화되어 있는 유럽이 이 정도라면, 대체 한국의 상황은 얼마나 암울한 것일까?
책 전반적으로 날카로운 지적과 비평, 분석이 돋보인다. 특히 예술은 무언가 고상해야 하고, 대중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예술가가 가난한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은 단연 압권이다. 빈익빈 부익부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극소수의 예술가가 수많은 돈을 벌지만, 그 이외의 예술가는 이름을 알리기조차 힘들어졌다는 대목도 만만찮게 통렬하다. |
|
예술가는 매력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꿈꾸고 방랑하는 예술가에 대해 한번 쯤은 동경의 눈길을 줬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도 소소하지만 회화를 꿈꾸고 있어서 책의 제목만 보고도 읽어야겠다하고 생각했다.
경제학자이면서 예술가이기도한 저자는 경제적관점에서, 사회학적점에서, 문화적관점에서 다방면의 시각을 가지고 예술가가 가난한 이유들을 요모조모 따져 놓았다.
신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예술을 생산과 공급의 차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예술가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이다]라는 부분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 가끔 선생님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학생은 직업이 아니다. 너희는 생산을 하고 있지 않잖니...직업이란 무엇인가를 만들고 생산하는 일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소비만 하고 있는 학생은 직업이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찮가지로 예술가 또한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산이 아닌 소비만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새로웠다. '소득수준만 놓고 본다면 예술은 수익성이 없는 분야임에 확실하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생활비조차 벌기 힘든 실정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였더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지속한다. ... 이와 관련해 최근 예술가를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반적으로 특정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을 생산자라고 하고, 돈을 쓰는 사람을 소비자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작품 활동에 자신의 돈을 쓰는 예술가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는 셈이다. 즉, 예술가들은 다른 일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작품 활동이라는 취미에 소비한다. 가끔 운이 좋아서 취미활동으로부터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술가들은 소비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실패한 예술가 혹은 가난한 예술가들은 '불행한'전문가가 아니라 '행복한'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술가들을 작품 활동이라는 취미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거대한 아마추어 집단의 일원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유럽 특히 서유럽의 시장경제내에서 예술경제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들 나라의 예술가들이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서유럽 정부들의 예술의 대한 지원과 기업들의 후원은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도 기업의 후원도 예술가 개개인의 경제 사정을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예술은 신성하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는 신성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에 묶여있고 매일매일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야한다. 예술가도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한계를 가졌다. 예술가가 되려면 현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