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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하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녹두장군 전봉준일 것이다. 전봉준이 동학군의 선봉에서 봉기의 횃불을 든 인물이었다면 2대 교주 최시형은 그에 비해 온건한 입장에 선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전봉준에 가려졌던 것일까. 최시형이란 이름은 숱하게 들었지만 정작 그의 행적이나 동학에서 그가 한 역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최시형이 걸어온 길이나 역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한 권의 책만으로 그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는 신중했고, 동학을 체제 전복의 수단으로 인식했던 인물은 아니었고, 그가 택했던 노선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1864년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처형당한 이후 30년이상 동학을 이끌어오며 구심점이 된 인물이 최시형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조정의 핍박을 받았던 동학의 지도자, 당연히 그는 은신과 도주를 거듭하며 늘 쫓기는 상황이었다. 체포의 위험 속에서도 그는 동학을 널리 퍼뜨리고 조직화했고, 또 제지 노동자였던 기술을 살려 동학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펴냄으로써 동학 사상의 깊이를 널리 알리는 데에 기여했다. 특히나 교장,교수,도집, 집강,대정, 중정의 육임제를 실시한 것은 동학의 조직이 전국적을 발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 동학도들이 결집하는 데에도 적절한 체계였다. 그가 30년이나 체포되지 않고 활동함으로써 동학의 교인들과 조직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산될 수 있었으니, 그것만 보더라도 동학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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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세기 말 국내외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동학을 더이상 종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게만들었다. 도인의 대부분이 농민이었고, 관료들의 부패와 정치의 몰락, 제국주의 침탈로 인한 폐해에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동학은 개혁을 위해,아니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저항의 전면에 나서게 됐고, 관군과 일전도 불사하게 된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가혹한 학정에 항의하던 전봉준이 주동이 돼 고부 관아를 습격하는 것으로 동학농민운동은 그 도화선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최시형은 온건파였다. 전봉준이 무장 봉기를 이끄는 입장이었다면, 최시형은 기본적으로 왕정을 전복하지 않고,부패와 외세에 반대하는 온건한 노선을 취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강온 입장차이를 보였지만 손병희를 야전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통령에 임명함으로써 최시형은 전봉준의 노선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선회하게 됐다. 그리고 벌어졌던 우금치 전투..관군과 일본군 연합군과 맞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전투에서 퇴각함으로써 농민군의 기세는 급속도로 기울고, 그는 퇴각하던 중에 체포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죄목은 좌도난정율(左道亂政律) 즉 호남을 어지럽힌 죄였다고 하니, 최시형의 처형은 동학의 좌절이었고, 이로써 조선은 왕정의 극심한 모순을 개혁하고, 제국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무너지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최시형'은 담담하게 최시형의 인생을 서술하고 있지만 중간 중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최시형이 도피하면서 다녔던 30년이상의 삶에서 다리 뻗고 곤하게 잠잔 날이 며칠이나 됐을까. 가족들도 피해 다니느라 평범한 삶을 꾸리지 못했을 것이고. 부패와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종교 지도자, 그리고 백성들의 삶에선 고단함이 묻어나왔다. 표지에 실린 최시형의 모습은 처형 직전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모양이다. 최시형은 지치고,초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럼에도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자그마하고 앙상한 노구에서도 강단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최시형은 기본적으로 비폭력주의자였다니, 어떻게 보면 인도의 간디와 흡사한 입장을 취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니면 과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격동기일수록 평화주의자나 온건론은 주도권을 잡기 힘들어 보인다. 최근 동학에 대한 평가가 농민들의 자주적 근대화, 봉건제 해체라는 쪽으로 부각되는 상황에서는 최시형의 노선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는 조선왕정, 그리고 제국주의의 침탈로 망국에 처하게 된 조선. 그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인 것일까. 아니면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지배층, 사대부들 대신 개혁과 저항의 전면에 나서 희생돼야 했던 동학 농민들의 운명이 서글퍼서 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