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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 과학분야에 관심이 많은 딸 아이. 이번에 만난 [한국의 과학 천재들]이란 책을 읽어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천재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는지를 새롭게 알아가게 되었어요. 어떤 분야이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는 많은 어려움을 해쳐 나가야 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서 묵묵히 나아가야 하니까요. 선구자가 길을 닦아 놓은 덕분에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선구자는 새 길을 여는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때로는 길을 잃고 미아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을 뒤흔들 중요한 개념을 생각해 내더라도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이 그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게 되지요,, 이 책에 소개된 천재 과학자들도 그러했습니다. 과학 자체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으로 수많은 과학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이론을 만들거나 입증하여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천재 과학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은 점은 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후보자로 거론되거나 충분한 자격을 갖춘 과학자들이 있는데, 바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우장춘, 이태규, 이호왕, 이휘소박사입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이 분들에 대해서는 알아두면 좋겠죠,, * 우장춘 - '종의 합성'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세계 유전육종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과학자이다. * 이태규 - 1931년 일본 교토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해방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리-아이링'이론 등 우수한 논문을 내놓으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이론화학자로 활동했다. * 이호왕 - 인류의 숙제로 남아있던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세계최초로 발견하고 예방백신과 진단법까지 개발한 미생물학자. * 이휘소 - 소립자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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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 조선 시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 5명만 꼽으라면 상당히 고민에 빠질 것이다. 만약 10명만 꼽으라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선현들이 과학과 동떨어져 살았다고 생각하므로 선현들 중에 정말로 과학자가 있었느냐고 오히려 반문할 수도 있다. 한국인 중에서 선두 과학자, 즉 과학 분야의 천재를 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머리말' 중에서
8인의 위대한 한국 과학자들
한국의 과학자들의 면모를 알려주는 자료가 있는데 바로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사람들로 2016년 현재까지 모두 31명의 과학 천재들이 헌정되어 있다.
이곳에 헌정될 수 있는 기본 자격은 우선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 우리나라 과학기술 선현 또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과학기술인으로 한정된다. 또한, 탁월한 과학기술 업적으로 국가 발전 및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 사람들로 모든 과학기술인들의 귀감이 되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인품을 갖춘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을 선정할 때 고려되는 업적 기준도 구체적이다. 우선 과학기술 분야로 한정하되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이룩한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거나 국제적으로 공인되어야 한다. 더불어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기본 자격과 업적 기준을 통과하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들이 상당한 과학적 업적을 쌓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천재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 자체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으로 수많은 과학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이론을 만들거나 입증하여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란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던 조선시대의 인물임에도 과학자들로 분류하여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한 것은 이들 모두 시대를 초월하여 남다른 것을 추구했다는 뜻이다.
이원철(李源喆, 1896~1963) - 천문학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은 이미 여러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았지만 후보자로 거론되거나 충분한 자격을 갖춘 과학자들이 있다. 바로 우장춘禹長春, 이태규李泰圭, 이호왕李鎬汪, 이휘소李輝昭 박사가 그들인데 이들 중에서 이호왕 박사는 아직도 생존해 있다.
이휘소 박사(1935~1977년)
한국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는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에서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부서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입자의 예견은 소립자 물리학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공헌을 했다. 사실 이 연구 업적을 토대로 나중에 7명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 아쉽다. 왜냐하면 40세 초반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운의 아이콘인 셈이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자동차 사고로 위장되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이는 한국 내의 핵폭탄 제조와 관련하여 한국과 미국 간의 정치 역학에 의한 희생양이었다는 의문이 지금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던 과학자였지만 사망한 사람에겐 수여하지 않는다는 노벨상의 규정으로 인해 한국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연구에 몰드하느라 팬티가 썩은 줄도 몰랐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리승기 박사(1905~1996년)
전라남도 담양 출신인 그는 세계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에 이어 합성섬유로는 두 번째로 비닐론을 실용화했다. 서울에서 4년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다닌 후 일본의 마츠야마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현, 교토대학) 공업화학과에 입학했다. 1931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지도 교수가 아스팔트를 연구하는 회사의 연구원으로 추천했다. 이곳에서 일본 특허를 취득하는 등의 성과를 올린 후 교토제국대학 부설 일본 화학섬유연구소가 설립되자 읿본 섬유의 권위자인 사쿠라다 이치로 교수의 연구 강사로 임용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합성섬유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교토제국대학에는 이태규 화학박사가 화학과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937년 교토제국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 이를 감안할 때 리승기와 이태규는 여러 해 동안 교토제국대학에서 친교를 맺었다. 당시 일본은 세계적인 비단과 면직물 수출국이었는데, 미국의 듀퐁사가 1935년 나일론의 합성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의 나일론은 폴리아미드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인데 반해 일본의 비날론은 폴리비닐알코올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이다. 폴리아미드 계열의 화합물은 원유를 원료로 합성하므로 석유가 나지 않는 일본에서 산업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비닐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39년 10월, 교토제국대학 연구팀인 리승기는 두 명의 일본인과 함께 '합성 1호' 또는 '폴리비닐 알코올계의 합성섬유'를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본격적인 합성섬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후일 북한에서 대량 생산되는 비날론의 전신이 된다. 그의 연구가 공업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긴 했지만 완전한 실용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앗다. 우선 합성섬유 1호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쉽게 수축되었고, 이를 개선하려고 열처리를 하는 경우 착색이 되는 문제점이 잇엇다. 그는 제조 공정 중에 포르말린 대신 아세트알데히드를 넣는 방법을 고안, 1942년 무렵 거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했다.
그럼에도 그는 패망하는 일본에 군수용품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1944년 말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오사카 군 형무소에 투옥되고 말았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그는 1945년 11월 대학에서 함께 연구하던 동료 및 학생들과 함께 귀국, 경성대학 교수에 취임해 자신의 전공을 강의했다. 공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하고 말았다. 당시로는 북한의 연구 여건이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에서 비날론 공장 준공과 함께 그는 '노력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1962년 공산주의권에서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1960년 이후 1990년까지 과학계 대표로서 최고인민회의 대위원도 역임했으며, 탈북 망명자의 증언에 따르면 1967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고 알려졌다. 1996년 2월,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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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에 오른 한국의 과학 천재들 과학자 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은 아인슈타인, 뉴턴, 에디슨, 라이트형제, 퀴리부인, 와트... 모두 외국인들 뿐이다. 이 외에도 떠오르는 이름들도 외국인이다. 우리나라에 과학자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 과학자의 이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과학 천재들」 이 책이 눈에 들어왔던듯 하다.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있을 과학자들이 어떤분들일지 궁금했다. 엉뚱한걸 좋아하는 아들녀석은 과학을 참 좋아한다. 제법 두꺼운 과학 책들도 오랜 시간에 걸쳐 참 재미있게 읽는 모습을 보곤 한다. 물론 지루한 과학 이론서들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책 이나, 과학을 좀더 재미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진 그런 책들이다. 하지만 내가 읽었을땐 지루했던 걸 보면 아들녀석이 이해하는 정도가 나보다 높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아들녀석에게 넌지시 질문을 했다. "아들! 우리나라 과학자들 이름 세명만 말해봐!" 이런 나의 질문에 아들녀석은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 "우리나라에 과학자가 있어?" 너무 당황스러운 아들녀석의 대답에 신랑과 난 할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우리나라 과학자는 세종대왕과 장영실 이었다. 이 시대와 관련된 다른 책을 읽고 있었기에 먼저 떠오른 듯 하다. 이후 떠오른 이름은 '씨없는 수박' 을 만든 우장춘 박사였다. 하지만 그가 씨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것 외엔 알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책을 통해 우장춘 박사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아 인데 그의 아버지의 기록이 남달랐다. 일본 군대의 도움을 받아 창설한 별기군의 참령으로 봉직하던 고위급 인사였으며, 을미사변을 주도한 주범이다. 그런 그의 아버지는 우장춘의 나이 5살에 살해되었다. 하지만 친일파에다 국모 시해범으로 지탄 받았던 아버지로 인해 가족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형편이 좀 나아지자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히로시마로 거처를 옮긴 우장춘은 장차 공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대학 학비 조달이 막연했던 차에 농학부 실과에 진학한다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졸업 후 농사시험장에 취직해 기수가 되면서 그의 생활을 좀더 안정되었고 그의 연구 의욕이 왕성해졌다. 농학 박사가 되고 최고의 영에 중의 하나인 농사시험장 만년기사로 발령받은 다음날 우장춘은 만년기사직을 반환한다. 이유는 창씨개명의 거부였다. 결국 그는 농사시험장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그의 실적이 워낙 좋았기에 근처에 있던 다키이 농장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온 우장춘은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우량한 채소 품종을 만들기 시작한다. 외에도 이원철 / 이태규 / 리승기 / 이임학 / 조순탁 / 이호왕 / 이휘소 를 소개하고 있다. 부록을 통해 더 많은 과학자들을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다. 아는 내용들보다 모르는 내용들이 많아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있다는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소하게까지 느껴졌던 한국의 과학자들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아들녀석에게 큰 목소리로 설명해줄 수 있었다. 다음번에 아들녀석에게 우리나라 과학자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인물을 먼저 말해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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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지음 북스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 을 손꼽으라면 하는 질문에 저도 금방 생각이 나지 않더라구요 장영실 최무선 정도 생각이 나는데 이책을 통해 2016년 현재까지 31명의 과학 천재들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한국인으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던 육종학자 우장춘 -끊임없는 노력, 예리한 관찰 이태규 -세계 2번째 합성섬유 비날론 발명자 리승기 -세계적인 한국의 수학자 이임학 -‘조-울렌백 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조순탁 -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발견한 미생물학자 이호왕 -죽음이 가로막은 노벨상 이휘소 이렇게 우장춘 박사님을 제외한 이름도 생소한 분들이지만 20세기를 살았던 중 사람 중에서 과학의 각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신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씨없는 수박' 으로 기억되는 우장춘 박사님은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셔서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씨없는 수박도 직접 만드신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노벨상수상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공산권에서 이와 버금가는 레닌상을 수상하셔서 큰 틀도 보면 노벨상 수상 반열에 들었다 해도 할 만큼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노벨상은 돌아가신 분들에겐 수여가 되지 않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휘소 박사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와 참 입자의 예견, 그 공헌은 길이 빛나네요 지금껏 잘 몰랐지만 과학 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 천재들을 알게 되고 너무나 자랑스럽네요 다음에 국립과천과학관을 둘러볼 기회를 가져야 겠어요 부록으로 한국의 노벨상 수상 후보 과학자들도 알려주고 있어 우리나라 과학자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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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과학자를 떠올리면 우리는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퀴리부인등 외국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장영실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누굴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 누구다~하고 떠오르는 사람은 많지가 않네요. 하지만 대한민국에도 최고의 과학천재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고계셨나요?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 한국의 과학 천재들 > 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 괜히 흐믓해질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의 정보는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사람들로 2016년 지금까지 총 31명!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거나 국제적으로 공인된 분들로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과학천재들이 헌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배출되지 않았지만 후보로 거론되거나 자격을 갖춘 과학자들도 있고 그 중에는 아직 생존해 계신 분도 계시답니다. 책에는 20세기를 살았던 사람 중 각 분야로 구분해 선정된 8명의 과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천문기상학을 개척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 이원철 - 한국인으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던 육종학자 우장춘 - 우리나라 현대 화학계의 기초를 닦은 이론화학자 이태규 - 세계 2번째 합성섬유 비날론 발명자 리승기 - 리 유형 단순군 분류에의 기여와 새로운 단순군 모임을 발견한 세계적인 한국의 수학자 이임학 - 우리나라 최초의 이론물리학자이며 조-울렌백 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조순탁 -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발견하고 예방백신과 진단법을 개발한 미생물학자 이호왕 - 우리나라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특히나 안타까운 죽음으로 기억되는 이휘소 이론물리학자의 이야기는 더욱 기억에 남더라구요. 이휘소 박사가 연구했던 분야에서 훗날 7명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40대 초반의 너무도 이른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은 지금도 한국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죽음은 아직도 의문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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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한국의 과학 천재들'은 20세기를 살았던 우리나라의 뛰어난 과학자 여덟 명을 본격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세계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 7대 불가사의' 등을 쓴 이종호 박사이다. 다룬 과학자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 이원철, 한국인으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던 육종학자 우장춘 등이다. 저자가 의미하는 과학이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발견한 것을 토대로 이론을 만들거나 입증해 그간 알지 못했던 영역을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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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천재들 시리즈 중의 하나인 이번 편은 ‘과학’이다. 단연코 기피하는 분야이면서 이러한 분들의 이야기 들으면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 조선 시대를 포함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 5명만 꼽으라면 상당히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한국인 중에서 선두 과학자, 즉 과학 분야의 천재를 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난 한 연예인 때문에 리승기라는 과학자는 알고 있다. 그 외의 인물을 말하라 하면 묵음이 된다. ‘한국의 노벨상 집착’이 과하다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럴 것이 우리가 시기적으로 천재 과학자들의 발굴이 늦어진 점이나 역사적으로 일본강점기 때에 수많은 인물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끓임 없는 노력들이 그러한 결과를 보여 준거라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질 수 있게 한 인물이 우정춘 이라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때문에 썩 좋은 시선을 받을 없다 한다. 아버지가 별기군 참령에다가 어머니가 일본인 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아버지가 살해 당하셨어도 주변에서 아무런 도움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 고국으로 돌아가 학창시절을 보내지만 조선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학 중에 공과를 원하지만 장학금은 농학 분야에 제한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농학을 배운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우량한 채소 품종을 만들어 내거나 종자 대량 생산에 성공을 거두는 업적이 된다. 또한, 탁월한 과학기술 업적으로 국가 발전 및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 사람들로 모든 과학 기술인들의 귀감이 되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인품을 갖춘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 책의 이렇게 면면히 이어온 과학의 역사 속에서 20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을 과학의 각 분야로 구분하여 선정했다. 다행하게도 한국의 과학자들의 면모를 알려주는 자료가 있는데 바로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사람들로 2016년 현재까지 모두 31명의 과학 천재들이 헌정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