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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시작은 중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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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탄생/래리 시덴톱/정명진/부글북스/2016 작년에 야심차게 다짐했었습니다. 고전을 읽어보리라. 제목만 듣고 내용은 제대로 모르는 책들에 대해서 비록 번역본이긴 하겠지만 나스스로 읽어보고 판단해 보리라. 그런데, 정말 어려웠습니다. 문화적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각 단어의 정의조차도 그때와 지금은 다른 것이 많을 테니까요. 단테의 신곡은 뭔 소리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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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탄생/래리 시덴톱/정명진/부글북스/2016

작년에 야심차게 다짐했었습니다. 고전을 읽어보리라. 제목만 듣고 내용은 제대로 모르는 책들에 대해서 비록 번역본이긴 하겠지만 나스스로 읽어보고 판단해 보리라. 그런데, 정말 어려웠습니다. 문화적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각 단어의 정의조차도 그때와 지금은 다른 것이 많을 테니까요. 단테의 신곡은 뭔 소리를 하는지 주석을 읽지 않으면 읽어낼 수도 없고, 데카메론은 쓱 봐도 황색 잡지 같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도대체 이런 인간들이 무슨 영웅이라는 거야, 싶었죠. 책 덕후의 행복은 책에 푹 빠져서 읽는 거인데 이거 원 푹 빠지기가 힘드니까요. 유야무야 잠정 중단하던 차에 또 옆길로 들어서 딴 책들을 보다가 문득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인의 탄생. 거, 다들 개인으로 태어나지 않습니까? 쌍둥이 아닌 담에야.

 

가족 중심의 부족 시대에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던 고대 그리스 시대를 지나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로마시대에서 바야흐로 모든 근대적인 사고의 바탕에 된 중세에 이르기 까지 인간이 자연과 세상에 대한 생각, 신에 대한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광범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여 그야말로 역필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르네상스라고 하면 종교를 강조하고 자율성을 억압하던 중세 암흑기를 지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유로운 인간성을 회복하는 사회 문화적 운동이라고 배웠고, 그것이 상식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이 깨진 것은 사실 몇년 전인데요(여기저기 딴 책들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뭔가 다른데 하고 생각하는 정도 ), 이 책에서 확실해 진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민주정치라고 해도 여자와 노예들을 제외한 일부 자유민에게 한정되어 있어서 제한적 민주제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민주정치도 아니고 계급사회인 셈입니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이끌어나가는 세상이었죠. 그것이 그리스시대의 합리입니다. 자신이 속한 바 즉 계급이 정해져 있다. 왠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 같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즉 절대 자유로운 시대가 아닙니다. 작은 단위의 부족국가나 도시국가에서는 사실 자유민이라고 해도 전쟁 한번 붙어서 지면 바로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했죠. 갑자기 벤허생각이 나네요. 

 

그런데 어쩌다가 놀랍게도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모든 사람은 신앞에 평등하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어떻게 보면 지금봐도 급진적인 이 종교가 나타났고(신 앞에가 법 앞에로 바뀐 이 시대에도 사실 별로 평등하다는 생각이 안 드니까요) 결국 로마 시대에 공인되기에 이릅니다. 평등의 개념와 더불어 자유가 조금씩 확산되던 이때 이민족이 처들어와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사회는 붕괴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때 바로 종교가 나선 것이죠. 이민족이 들어와서 서유럽을 통치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그런 만큼 프랑크 왕국이 생기기 까지 숱한 분란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때 서유럽에 들어오게 된 게르만 족이나 본래 살고 있던 로마인(그때는 대충 다 로마 였으니까 서양인들을 로마인이라고 본다면)들을 조율한 것이 바로 이 그리스도교였다는 거죠. 몽고나 여진이 한족을 통치할 때 자신의 것 뿐 아니라 유학을 받아들이고 그 문화를 존중하고 심지어 장려하기도 했던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 죽이고 다 없애고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거나 그리스도교는 그 책임을 맡기 위한 시대적 필요성인지 아니면 아직도 만연해 있는 다신교적인 부분을 뿌리 뽑기 위해서인지 다른 어떤 집단보다 가장 먼제 체계화됩니다. 아래의 수사 주교 그리고 교황에 이르기 까지요.

 

이런 과정에 따라 서유럽은 신권의 성립이 왕권의 성립보다 더 빨리 확정되었으며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생활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종교의 중심만이 아니라 사회의 중심이었고 법의 중심이기도 했으며 철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신권의 정점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신학대전을 통해 철학이 신학의 시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퀴나스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즉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신학과 가장 많이 접목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였으며 오히려 순수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이들의 반박문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네요.

결국 제가 느낀 것은 우리가 고리타분하네 느끼는 이 신학이라는 학문이 그 당시에는 가장 세련된 학문이었다는 겁니다. 일단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기초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 대 개인을 조율하는 법률이, 이상주의적 추론을 강조하는 연역법이 아니라 경험을 강조하는 귀납법적 사고가 발달하면서 인식론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나타나기 시작할 정도의 자연과학이 발달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신학은 신을 위해 나타난 것이지만 결국 신을 배제하게 된  이중적 존재였던 것이지요.

 

신권의 체계를 흉내낸 왕조의 수장들 즉 왕들이 지역의 패자들이었던 영주와 귀족들 그리고 신의 대리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보통사람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결국 안정된 유럽의 왕조를 발전시켜 가는 모습은 바로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의 추측입니다만 결국 이렇게 된 것이겠지요. 평등하도다. 그렇다면 스스로 책임지고 권리를 행사하는 자유민인 우리들은 그대로 평등하다. 신도 필요 없고, 왕도 필요없도다. 우리의 대표는 우리 스스로 정하겠노라. 그런데 우리의 대표를 우리 스스로 정하는 바로 그것도 교황을 선출하는 것에서 시작된 걸 생각하면 거참 민주적이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많이 괴롭긴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모르는 개념이 너무 많았으며, 모르는 역사적 사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초판본이라 그런지 오자도 심심하면 한번씩 나오고 주술어 불일치, 소유격의 남용, 장문을 번역하면서 흔히 나타나는 오류이긴 한데 도대체 어떻게 끊어 읽어야 할지 난감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좀 더 정선된 개정판을 바랍니다만 읽기 녹록치 않은 책이라 어떨지 모르겠네요.

 

중세에 대한 색안경 즉 근대와 단절된 것으로 중세를 인식하는 것이 서양에도 너무나 팽배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네요. 저도 다시금 느낍니다. 역사는 부질없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어떤 시간도 그냥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저 개인적으로도 아우구스티누스와 그라티아누스 그리고 오컴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힘든 독서였지만 그래도 재밌었어요.

 

 

 

 

 

r*******n 2017.01.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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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의 모습일까? 개인이 있고 국가가 있는 것이지 국가가 먼저 있고 개인이 생겨난 것은 아닐 테니, 개인의 탄생을 통하여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지금과 같은 나라의 문제가 있기 까지 그 중심에 치유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국가와 개인에 대한 고민이 없어서 이지 않을까? 보다 더 나은 국가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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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의 모습일까? 개인이 있고 국가가 있는 것이지 국가가 먼저 있고 개인이 생겨난 것은 아닐 테니, 개인의 탄생을 통하여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지금과 같은 나라의 문제가 있기 까지 그 중심에 치유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국가와 개인에 대한 고민이 없어서 이지 않을까? 보다 더 나은 국가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개인이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c***b 2016.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