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유언]
프랑스 최고 문학상 3개 동시 수상작!
기억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삶 자체이다
삶을 내 안에서 꽃피워랴 한다.
고요한 기억 작업을 통해 이 순간들의 모든 단계를 배워야 한다.
일상적 동작들 속에서 무기력하고 평범한 단어들 속에서
영원성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안드레이 마킨
![]()
![]()
![]()
러시아에서는 프랑스 사람이었던 내가
이제 프랑스에서는 러시아 사람이라고 느낀다.
1957년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의 안드레이 마킨은 [프랑스 유언]을 통해 1995년 공쿠르상과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 메디치상까지 받는 3관왕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소설로 소개할 수 있다.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야 어린 시절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모국어를 모두 익히기 전에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면서 그곳의 문화를 배우는 경우도 적지 않아 다시 국내로 들어와 한국의 사회 문화를 적응해가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바로 정체성에 대한 문제도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프랑스 유언]에서도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렇타고 암울하고 우울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워낙 안드레이 마킨의 글쓰기 능력이 시적이고 문학적이며, 섬세하게 표현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언은 제1부와 2부에서 화자와 그늬 누나가 시베리아에서 보내는 어린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며 할머니 책에서 지냈었던 일들과 프랑스어로 쓰여진 책을 읽고, 할머니의 어린 시절 파리에서의 회상을 통해 그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이 때 화자와 그의 누나에게는 그들의 삶이 이중 분열되느 시간으로 드려나면서 샤를로트 할머니의 이야기와 더불어 열네살된 화자의 이야기도 동시에 전개된다. 3부에서는 화자의 14살이 지나면서 현실의 삶 러시아가 등장하면서 그 안에 살아 있는 프랑스를 수그러트리고 러시아 청소년이 되면서 현실의 삶에 동화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이 후 20년이 지나면서 화자의 독일에서의 언론 활동에 이은 파리와 페르라세즈 모지에서의 생활이 등장하게 되며 샤를로트를 프랑스로 돌아오게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4부를 읽는 동안 몽환적이란 느낌을 받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매력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는 " 보지 말았응 할 사진"이 등장한다. 이 사진의 발견을 통해 화자는 지속적인 궁금증 해결을 위해 회상을 통해 과거를 보여주고, 현재와의 병렬 구조로 전개 하며 이 비빌은 작품의 말미쯤에서 해결하게 된다. [프랑스 유언]을 읽는 바탕에는 중간중간에 역사적 배경들이 등장하면서 프랑스와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소설을 느끼는데 도움될 수 있겠다.
|
|
안드레이 마킨의 소설이 출간되기를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프랑스 유언」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5년에 프랑스에서 나온 소설이 2017년에야 한국에 소개되니 조금 늦은 감은 있다. 기대한 바에는 못 미쳤지만 읽어보니, 이 작품이 문학상 3개를 수상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주제를 서정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해 조금 소개해보자면, 시베리아 출신으로 90년대 파리에 정치망명을 한다. 조모의 영향으로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 와서 쓴 소설을 투고하니 출판사에서 받아주질 않는 것이다. 러시아인이 어떻게 프랑스어로 글을 쓰나? 그래서 안드레이 마킨은 자기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을 러시아어로 다시 옮기는 작업을 한다. 프랑스어 원문과 러시아어 번역문을 함께 제출하고 나서야 그의 첫 작품이 출간된다.
「프랑스 유언」은 안드레이 마킨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것이다.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기 힘든데, 마킨이 이런 작업을 즐기는 탓에 사실 여부를 잘 안 가르쳐주나 보다. 심지어 안드레이 마킨도 본명이 아니1)고 망명할 때 고른 이름이란다. 자전적 요소 중 확실한 것은 소설 속 화자를 어릴 적에 돌보곤 했던 할머니가 프랑스인이라 프랑스어를 잘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분이 진짜 조모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이 소설은 할머니- 샤를로트 르모니에라는 여성이 제정 러시아와 소비엔트 연합 시절을 살아가며 목격한 러시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소년(화자)이 자기 안의 프랑스와 러시아를 어떻게 인정하고 키워나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첫 연결고리로 옛 프랑스 신문이 가득 들어있는 할머니의 퐁뇌프 가방이 등장한다. 전쟁이 발발해 피난갈 때도 함께 했던 소중한 가방이다. 소년은 이 가방에 담긴 프랑스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소년에게 프랑스는 파리-아틀란티스라는 것으로, 대홍수 때문에 주변이 물에 잠겨 섬처럼 느껴지던 1905년의 파리이다.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이 파리-아틀란티스 때문에 소년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조숙했고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에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소년의 마음 속 프랑스와 러시아는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았는가. 러시아어로 차르라 하면 잔인한 황제가 떠오르지만, 프랑스어로 차르라 하면 파리-아틸란티스의 독특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발음과 그 울림이 다르기 때문이다. 할머니 몰래 열어보았던 가방에서 본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밝혀지는 비밀과도 연관되어 있다. 소년이 자라나는 공업도시는 할머니가 계신 벽촌 사란짜와는 아주 다른 곳이다. 할머니가 만들어낸 프랑스는 주로 이야기책의 산물이라 동심을 잃어가는 소년에게 프랑스는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으며, 현존하는 러시아를 느끼며 더 괴로워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자신에게 꿈을 심어준 이방인 샤를로트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겪어낸 이야기들을 듣고 소년은 깊이 뉘우친다. 그리고서 자기 안의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화자가 도착한 프랑스는 꿈결 같던 그 곳이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사회로부터의 거절. 청년이 기억을 살려 샤를로트의 전기를 쓰는 일은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소설 자체는 평이하며 큰 반전은 없다. 역사 앞에서 무력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 살아남고 또 살아가는지에 대한 것, 시베리아의 삶과 러시아에 대한 부분이 생생하다.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이 나라에는 한계가 없다. 이 나라는 너무나 커서 결코 정복될 수 없을거야, 라는 샤를로트에 공감한다. 광활한 대지 앞에 겸허해질 수 밖에 없고 정신세계도 끝없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
문화란 무엇일까. 정체성은 무엇이고 시스템 안에 살아가는 개인의 삶은 어떤 것일까. 샤를로트 르모니에가 조손에게 남긴 유언 중, 프랑스어로 쓴 내용은 러시아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도, 습관적으로 아니면 조심스럽게 말이다. 이 또한 사회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1) 텔레그라프 인터뷰 (2013.4.13): http://www.telegraph.co.uk/culture/books/booknews/9986647/Andrei-Makine-interview.html |
|
"샤를로트의 과거 삶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렇게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은 채 현존하고 있었다"(37).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치던 해에 태어나신 우리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서러운 기억이 많아서였을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일본말을 전혀 모르시는 것은 북쪽 국경선 근처에 사셨기 때문이고, 그래서 중국말은 조금 하시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아흔이 넘어서도 서러운 눈물을 흘리신다는 건, 한참 자라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결정하신 '피난' 한 방이 이후 가족들의 삶에 미친 영향은 더 한참 자라고 그 의미를 겨우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 이야기 속에 내 삶의 뿌리가 있고, 나라의 역사가 있고, 세계사의 흐름이 있고, 그렇게 이야기는 이어서 흘러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프랑스 유언>은 "시베리아 초원 지대 인근 마을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열 살짜리 소년과 그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1995년도에 초판된 책이라는 것과 자전적이지만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1995년도에 초판된 책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시대적 감각을 익하기 위해서이고, '소설'에 강조점을 둔 것은 이 책이 절대(적어도 저에게는) 소설로 읽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작가 소개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의 일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고백록처럼 읽힙니다. "이 작품에서 화자가 글쓰기를 통한 기억 작업으로 불러낸 환상과 자신의 현실적 삶 그리고 역사와 인간의 분열상들은 봉합되고 화해하게 된다" (372, 옮긴이의 말 中에서). 자전적 소설로 이 작품을 읽을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섬세한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서정성입니다. 오래 전 잠든 신화가 이야기를 통해 다시 깨어나듯, 세월에 휩쓸려간 오래된 사진, 오래된 신문, 오래된 기억이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 우리 앞에 다시 소환될 때, 독자는 순간을 영원으로 붙드는 언어의 마법에 매혹당합니다. 그것은 지금은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 프랑스 여인의 낡은 기억이지만, 그 안에서 대홍수가 깨어나고, 황제를 맞이하는 연회의 밤이 재현되고, 그 속에서 막 한 소년의 인생의 시작된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하며, 프랑스라는 한 나라가, 전쟁이라는 역사(세계사)가 전혀 다른 입체감으로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의 섬세한 언어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게 만듭니다. "나는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무의식적인 추억이었다고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나의 프랑스 조상들이 내게 보낸 울림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그 추억의 요소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다 되찾을 것이다. 할머니가 프랑방스를 여행할 때의 가을 햇빛, 라벤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판의 향기, 그리고 향기 가득한 공중에서 너울거리던 거미줄"(1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유언>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습니다. 문장(언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흥미로운 스토리에 집착하는 저와 같은 독자에게는 초반부가 다소 지루할 수도 있고,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책의 말미에 붙어 있는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 것도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이 책의 가치,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옮긴이의 말>을 많이 의지했고,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두 비극적인 이야기 사이에서 몸부림쳤다"(233).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자라며 할머니의 언어로 할머니의 프랑스를 유산으로 상속하며 "프랑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기에 모든 걸 러시아식으로 생각해야만 했"던 소년(작가)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이중 분열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소년이 삶의 자리를 프랑스로 옮겨 앉으며 결국 그런 이중 분열은 소년(작가)에게 저주가 되고 말지요(이 작품이 탄생했다는 의미에서 끝내는 축복이 되었지만요). "우리 삶이 이처럼 이중 분열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차진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할머니 곁에서 산다는 것은 곧 우리가 다른 곳에 있다고 느낀다는 것을 의미했다"(31).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게 이식된 프랑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내가 내 가슴속에 들어 있는 이 제2의 심장을 질식시키는 데 성공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심장이 마지막 숨을 내쉰 그날은 내게 있어서 유령들이 나타나지 않는 삶의 시작을 의미하는 4월의 그 오후와 정확히 일치했다…"(236). "나는 처음에는 씁쓸하게, 나중에는 미소 지으며 '프랑스-러시아'가 내게 내린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내게 이식된 프랑스적 특성을 숨겨야 했지만 이제는 내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을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이다"(340-341). 작가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언어 집착증처럼 보일 정도로 어떤 사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찾기에 고심하는데, 그런 작가가 그려내는 프랑스, '매혹의 대상인 동시에 배척의 대상'이었던 '할머니의 프랑스'는 가득 기억이나 회상이 아니라 '체험'이었습니다. "마킨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번뜩이는 직관과 섬세한 언어 작업을 통해 우리가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안에서 또는 우리 눈앞에서 되풀이되는, 어떤 이야기 또는 어떤 과거와 조우하는 일이다"(372, 옮긴이의 글 中에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한 줄 문장이 더욱 의미심장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마킨의 글쓰기는 "또한 시간 개념을 소거함으로써 인간 역사에 너무 자주 흔적을 남기는 악을 없애려는 시도이기도 하다"는 해석이 아름다운 통증으로 남습니다. 아름답지만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쉽게 읽히지도 않습니다. 빠르게 읽고 지나가는 소설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처럼 붙드는 작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체험해야 하는 그런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
|
프랑스 유언 / 안드레이 마킨
안드레이 마킨의 자전적 소설 [프랑스 유언]을 읽기 전 내게 있어 프랑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프랑스라고는 해도 파리를 여행해본 경험이 전부라서 어쩌면 장님코끼리 만지는 수준일테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적어보자면 우선 언어로 먼저 다가온 나라였다고 말하고 싶다. 에펠이라던가 영화라던가, 패션의 화려함보다 영어가 아닌 독특한 언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성인이 되어 방문한 파리는 기대만큼의 화려함도 추억거리나 볼거리가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 무렵 프랑스영화에 빠져있었는데 영화에서 받은 그 충격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리여행 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 속의 파리는 대도시가 갖는 허무와 우울을 가진 상징적인 도시다. 얼추 마음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르던 키워드들이 오히려 이 책 덕분에 하나로 모아진듯했다. 낭만보다 우울, 화려함보다 공허함이 감도는 도시 파리로 두 번째 여행을 갔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지켜야 한다'라는 사명감밖에 없었다. 몇 해사이에 파리에는 폰을 노리는 범죄가 급증한 상태였고, 중심가가 아닌 곳에서도 노골적으로 돈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의 패션은 눈에 띄게 완벽했고, 일본과는 다른 친절함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파리가 친절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있어 파리는 친절한 도시였다. 그리고 저녁때면 센강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소박함과 웃음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에 굳히기를 한 작품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로랑스 코세의 <오 봉 로망>이었다. 좋은 소설을 파는 서점이라니, 아이디어도 내용도 완벽했다. 좀 멀리 돌아왔는데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프랑스는 호불호로 나뉘자면 당연 호에 해당되는 나라였다. 안드레이 마킨에게는 프랑스가 어떤 나라였을까? 맨 위 발췌문정도로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들의 유년을 살펴보면 외부에서 기인했든 내부적인 문제가 되었든 책에 한참 빠져드는 시기가 존재한다. 소설 속 '나' 역시 할머니로 부터 들었던 프랑스 덕분에 쉼없이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읽게 된다. 러시아 아이들의 무시는 오히려 그를 더더욱 프랑스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 보다 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이야기를 읽기만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입장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 순간을 사춘기의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또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화자로서의 역할을 맛본 나는 사란짜로 할머니 샤를로트를 만나러 가면서 이전과는 달리 그녀의 이야기가 이전처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머니와 포옹하는 동시에 그런 착각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원치 않아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부모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거나 심지어 끝까지 무시하고 우쭐대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저자의 심경변화가 당시 열네살이라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제법 성숙했다고 느껴졌다.
무언가에 열의를 다하면 다할수록 그것이 또렷해지지 않고 흐릿해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칠듯한 열정은 이내 곧 식어버리기 마련이고 프랑스에 대한 주인공의 마음도 그런 단계를 밟게된다. 심지어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할머니 샤를로트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참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 샤를로트에게 프랑스와 관련된 일화를 들으면서 '나'는 묘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듯한 기쁨을 맞이하게 되고 어느순간 그것을 할머니로 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결국 '나'라는 존재가 프랑스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혹은 그 둘 모두를 거부하고 싶어지는 저자 심리를 자전소설이 갖는 장점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달되면서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과 그로인한 처절한 아픔과 상처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품이 왜 비평가들에게까지 극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결말에 이를수록 이 책이 던져주는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저 이제 프랑스를 떠올리면 한동안은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
|
프랑스 유언이라고 해서 저는 프랑스 사람이 적었다는 생각으로 봤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프랑스 사람이 아닌 러시아 사람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이렇게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는 유언이라고 해서 어떤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해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러시아에서부터 시작한 이 책은 프랑스의 정치상황까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격동의 20세기는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많은 아픔을 준 역사기도 합니다. 예전 같은 경우는 반혁명으로 인하여 황제가 되었던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결국을 돌아가게끔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프랑스와 같은 연합군으로서 싸운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 격동의 시대를 하나의 서사시처럼 풀어나가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흥밋거리로 남았습니다. 최근 프랑스 문학계에서는 안드레이 마킨을 프랑스 작가로 인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러시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로 문학을 적는 것을 포함하여 그 당시 프랑스 상황을 잘 이해하고 그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에 반영한 것이 크게 사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실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계는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보다는 크게 관계가 없다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책을 보는 내내 생소한 느낌으로 이 책을 접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이야기를 하는 자전적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격동의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체련이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는 것을 비교할 만큼 소련에서도 학생들에게 수류탄 투척을 하는 연습을 시키던가 하면 군사제식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그 외에도 필요한 사상교육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 당시 시베리아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적다보니 작가 자신이 왜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격동의 시기이기는 합니다만 아마 그 당시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평화시대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부디 쁘띠 뽐므라는 말로 평화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 계속되기를 기대했었습니다. |
|
어린 시절의 향수를 지배하는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옛날 옛날에 말이야. 로 시작하는 그것, 혹은 예전에 내가 말이야. 로 출발하는 미지의 세계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향수에 젖게 만들고,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 지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아마도 살아 계셨다면 나를 너무도 예뻐하셨을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꽤 오래 사셨던 친할머니는 나와 동생이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워하셨기에 나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다. 그래서 여름이면 외할머니 댁을 찾는 주인공 소년이 겪게 되는 그 경험들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내 마음속의 프랑스는 주로 이야기책의 산물이었다. 그렇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바로 그 기억할 만한 저녁에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검을 휘두르고, 줄사다리를 기어오르고, 비소를 들이마시고,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잘려진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마차를 타고 여행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허구 세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국적이고 멋지고 어찌 보면 희극적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에는 와 닿지 않았다.
소년은 누나와 함께 시베리아 초원 지대 인근 마을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곧잘 여름 방학을 보내곤 했다. 프랑스 여인이었던 그의 외할머니는 오래된 사진, 낡은 책들, 그리고 단풍잎을 연상시키는 비단 부채, 부적 같은 것들을 통해 존재했던 추억들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소년의 할머니 샤를로트 르모니에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프랑스의 역사, 그리고 20세기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증언과도 같았다.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온 그녀의 삶 자체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어린 그들은 당시 거의 깨닫지 못했다. 다만, 꼭 어른한테 얘기하듯이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말투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할머니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그렇게 마치 안개 자욱한 아틀란티스처럼 그들의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당시 소년은 프랑스어를 가족들만 쓰는 사투리 정도로 간주했었다. 가족들이란 보통 집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별명들이라던가, 집 안에서만 쓰는 은어, 말버릇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그들이 집 안에서만 쓰는 사투리인 프랑스어가 출렁거리는 검은 물에서 그들만의 환상의 도시 '아틀란티스'가 구축되고 있었다. 특히나 소년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것이 바로 프랑스어라는 언어였다는 점이 매우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데, 기억과 읽기, 쓰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유는 굉장히 유려하게 표현되고 있다. 소년은 도서관에 소장된 프랑스에 관한 글이나 책을 전부 찾아서 읽으며, 한 세기에서 다른 세기로 이어지는 시간들을 마치 점묘화를 그리는 인상파 화가처럼 개요만 들려준 이야기의 틈을 메우면서 프랑스에 깊이 매료되어 푹 빠져 지냈다. 책이 꽉꽉 들어찬 먼지투성이 미로에서 보낸 그 기나긴 날들이 그의 사춘기를 지배했던 거의 전부였으니까. 한 노부인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한 나라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그렇게 한 소년에게로 이어진다. 마치 동화처럼, 그렇게 어딘가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그려지는 정밀화처럼, 누구나의 상상 속의 그곳 아틀란티스처럼.
그리고 책을 읽으며 찾아내야 하는 건 일화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책장 위에 멋지게 배열된 단어들 역시 내가 찾아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심오하고, 동시에 훨씬 더 자연스러운 그 무엇, 그러니까 일단 시인에 의해 계시되면 영원 불멸한 것이 되는 가시적 세계 내의 심원한 조화였다. 그 뒤로 내가 이 책 저 책 읽으며 찾아 다녔던 것은 바로 이것,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이것의 이름이 바로 '문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안드레이 마킨의 자전적인 요소가 다분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소년은 작가 그 자신처럼 보인다. 세 살 때부터 프랑스 출신 할머니에게 배운 제 2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직접 작품을 썼고, 프랑스어로 쓴 그의 원고는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러시아 작가가 굳이 프랑스어로 작품을 써야 하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대체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그에게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 언어는 어떤 의미일까. 소년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그는 자신의 할머니를 프랑스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결국은 그가 프랑스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러시아 사람이라고 느끼는 아이러니함이 그와 할머니의 삶을 통해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작가인 안드레이 마킨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체험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과거를 되살리고,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시간의 가역성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추억을 회상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억 또한 삶 그 자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들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 수 많은 것들을 언어로 그려내는 마법과도 같은 책이다. 작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언어들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미지의 세계는 당신의 눈 앞에도 아틀란티스가 떠오르는 것 같은 기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 |
|
제목만큼이나 제본이 무척이나 특이한 책이었다. 책을 집어든 첫인상이랄까? 프랑스 유언이라고 해서 프랑스인이 유언을 남기나? 잠언집인가? 라는 상상을 했는데 글쓴이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인 소설이었다. 저자인 안드레이 마킨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출신이다. 대학까지 모스크바에서 다녔는데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정치적으로 망명을 하게 된다. 그 후 프랑스와 구소련의 문화가 복합된 배경의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 활동하시는 분이라 이 책 <프랑스 유언>의 화자와 작가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이 작가가 독특한 점은 묘사에 단어의 정확함이라든가 전후 관계의 개연성이 중요하지 않은 듯한 느낌의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그래서 몽상적인 느낌을 주는 느낌이다. 단어 자체에 섬세하게 세공을 한 듯 신경을 쓰고, 직관에 의존하여 글쓰기를 하기 때문에 물 흐르듯 읽히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듯이 내용과 내용이 짜여져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은 화자와 그의 누나가 함께 했던 시베리아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름에 외할머니 댁에 놀러가면 외할머니가 프랑스어로 된 소설을 읽어주시곤 했는데 그 때부터 그의 가슴 속엔 프랑스라는 나라가 '이식'되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면 누나와 나는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가 러시아어를 하며 살아가고, 학교에서는 공산주의 국가 답게 엄격하게 사상 교육을 시키고 수류탄을 던지는 연습을 한다. 으례 교련 수업을 하고 프랑스로 대표되는 서양을 무찔러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젊었을 적 파리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으며, '시베리아의 가방' 속에서 꺼내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소설의 첫머리에는 소설의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단서가 나온다. 바로 '보지 말아야 할 사진'인데 독자는 이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며 도대체 어떤 사진이길래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끝까지 보게 된다.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며, 20세기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세계전쟁을 겪으며 느꼈던 마음과 그 당시의 세계 정세가 마치 역사에 대한 증언을 하듯이 생생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그들의 평가와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프랑스 역사와 러시아의 역사가 맞물려 이루어낸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흥미롭다. 특히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세세하게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까지 러시아에서 살았던 저자의 경험이 잘 녹아내린 듯한 느낌을 준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은 이데올로기를 떠나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있다. 그것이 문학이 가진 위대함이 아닐까 한다. |
|
프랑스 유언/안드레이 마킨/무소의뿔/시베리아 초원지대와 프랑스를 잇는 대서사시~
모든 결과물이 그렇듯 소설도 작가적 경험과 상상의 산물일 겁니다. 작가가 겪은 희노애락의 농도만큼 소설의 깊이와 넓이, 맛도 달라질테니까요. 그러니 특이한 이력의 소설가라면 그가 쓴 소설 역시 특이할 수밖에 없겠지요. 러시아와 프랑스에서의 삶을 두루 경험한 작가의 소설 속에는 시베리아 대자연의 웅장함과 프랑스적 섬세한 문체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기에 색달라 보이고 특이합니다.
글쓰기가 단지 단어와 문체, 그리고 문장들의 연쇄로만 요약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관점이다. -안드레이 마킨
저자인 안드레이 마킨은 시베리아 초원지대 볼가 지역에서 자랐고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했고요. 파리 여행 중에 정치적 망명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데요.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려낸 자서전 요소가 다분히 들어간 소설입니다. 세살 적부터 할머니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웠고 공산 치하에서 러시아어와 프랑스어 사용이 가능한 작가였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작가적 경험이 잘 우러나 프랑스 문학과 러시아 문학의 융합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저자는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문학상인 공쿠르상, 고등학생들이 선정한 공쿠르상, 메디치상을 수상했답니다.
쁘띠뽐므 사진 찍을 때 치-이-즈처럼 입모양을 예쁘게 낼 때 내는 프랑스어인데요. 평소에 우아한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던 할머니였기에 옛사진 속에서 할머니의 우아한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아이들은 신선한 충격를 받는데요. 아이들은 옛사진 속 외할머니의 화사한 '쁘띠뽐므' 미소에 호기심을 가지고 옛추억을 더듬으면서 할머니의 과거 속으로 여행합니다. 그 속에서 한때는 우아했던 할머니가 피란만장한 삶을 겪으면서 우아함과는 멀어지는 역사의 주인공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시베리아 초원지대 인근 마을 소도시 사란짜에 살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외할머니의 러시아에서의 격동의 삶에는 나폴레옹 대군의 개선 행렬, 세계제1차대전, 러시아 혁명, 러시아 황제의 마지막 처참한 모습, 부르조아의 몰락, 공산화 혁명의 결과로 광기와 죽음으로 얼룩진 폐허가 된 마을 등 프랑스 역사와 러시아 역사 속 격동기가 함께 하는데요. 역사는 모든 것을 바꾸듯 할머니의 미소마저 바꿔 버립니다.
프랑스 유언! 러시아 역사와 프랑스 역사, 시베리아 대자연 속에서의 삶을 더 잘 알았다면 이해가 더욱 쉽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공산화가 되는 과정이나 넓은 시베리아의 눈덮인 겨울 풍경 등의 섬세한 묘사를 보며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눈내린 설원 속 주인공들의 이별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시베리아 초원지대에 사는 외할머니댁을 방문했던 프랑스 소년의 눈에 비친 광활한 대지나 대초원에서의 삶이 무척 시적이고 세련된 문체로 표현되어 있기에 낭만적으로 느껴지다가 프랑스어를 쓰는 할머니의 러시아에서의 생활이 낭만에서 고통으로 전환되면서 광기의 러시아 역사를 마주한 부분은 역사적 교훈을 얻기도 하는데요. 요즘 한국의 지도자나 정치권의 광기가 겹쳐지기도 했답니다. 일반 국민의 의식 수준보다 못한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던 대통령의 배반, 그런 배신감에도 우아함을 잊지 않는 국민들의 정치 의식이 오버랩되기도 했답니다.
이 책은 격동의 세월을 견뎌낸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자 지금의 프랑스와 러시아를 있게 한 역사의 주인공들에게 바치는 소설인데요. 시베리아 대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공산혁명이 준 충격적인 폭압 속에서도 우아함을 잊지 않으려는 사진 속 할머니의 짧은 미소, 프랑스와 러시아 역사를 담은 소설이기에 웅장한 느낌입니다. 이왕이면 러시아의 대자연의 풍경이나 풍습을 잘 안다면, 그 역사를 잘 안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
이런 스타일의 소설은 소화하기가 힘들다. 너무 프랑스적인 감수성과 러시아적인 마법적 느낌이 잘 어우러져 있지만 말이다. 물론 감수성 어린 문체와 가족사를 테마로 한 소설답게 잘 찍은 스냅사진의 모음집처럼 간혹가다 기분좋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한자리에서 독파하기엔 매우 벅찬 느낌이 든다.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청년 시절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도전해 본 적이 있던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어려움도 느끼게 된다. 굳이 저자 안드레이 마킨이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라는 것을 상기시키지 않아도 '할머니의 마법'에 대한 상세한 회상신은 왠지 모르게 러시아 출신의 미국 소설가 나보코프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 유언』(무소의뿔, 2016)은 작가의 자전적 색채를 강하게 내뿜는 이야기로, 소설 제목 자체가 상징하는 것이 다원적이다. 일단 '프랑스 유언'은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어와 위대한 프랑스 문학의 유언'으로 해석 가능하다. 가문의 뿌리가 되는 러시아 역사에 대한 내용이 중추가 되지만, 정체성 갈등의 양상이 되는 프랑스적 삶의 방식에 대한 애증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할머니 샤를로트의 삶을 토대로 1차대전과 스탈린의 폭정이라는 역사의 홍류 속을 표류하는 개인의 삶이 조명된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20세기 역사와 중첩된 삶이기에, 이 소설은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의 작은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
독특한 제목이다. 프랑스 유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