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의 삶은 때로는 파도처럼 깊이있게 다가오다가 어느 때는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히 흐른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만난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빚어지는 산물이다. 있음직한, 어느 곳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이름만 달리하여 그들의 삶을 나타내는 글들이 많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도시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소설속 인물들의 시각으로 혹은 냉정하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때로는 사실을 때로는 상상력의 산물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소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게 되므로. 내가 살고 싶었던 삶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는 이유로 읽는다.
한 젊은 남자가 말하는 그의 삶을 엿보았다. 코피노. 즉 한국인 남자와 필리핀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소설속 주인공 하퍼 킴은 필리핀인 보다는 한국인 이미지가 강해 보이는 듯한 외모인 것 같다. 엄마는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나 일본으로 떠났고 아버지는 죽었다. 필리핀 세부의 유흥가인 망고스퀘어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다. 망고스퀘어에서 그는 소매치기로 혹은 마약배달로 하루하루를 먹고 산다.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을때 그는 동영상을 편집하여 구글에 올리는 일로 수입의 대부분을 벌고 있다. 타인이 올렸던 게시물을 짜깁기하여 올려 수익을 올리다가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면 삭제를 하는 식이다.
그는 곧 성년이 되려는 참이다. 엄마는 그를 버리고 일본으로 갔고 간간이 편지와 사진을 보내올 뿐이다. 그는 이곳 망고스퀘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밤에 춤을 추다가 여자들을 만나 하룻밤 혹은 이틀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자기보다 열너댓살이 많은 누나를 알게 되었다. 누나와 함께 살다가 마약 운반책으로 경찰에 잡힐 위험에 처했다. 마약 운반을 지시했던 박사장은 그를 신고 했고, 그를 수배자 신분에서 풀어주는 조건으로 미인대회 출신인 베렌을 찾아 데려오라고 했다. 베렌을 찾으려 그녀가 미인대회에 나왔던 영상을 계속 돌려보는 와중에 점점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의 엄마와 동생이 있는 곳을 서성거렸고, 나타나지 않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자기중심적일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자기 맥락을 찾다 소멸하는 대화도 있을 수 있다. 뭔가 미적거리는 말들이 남고, 다시 만난다 해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반복하다 헤어지기도 한다. (64페이지)
![]()
단절된 사람만이 가지는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나' 하퍼 킴은 단절된 사람이었다. 아버지와 단절되었고, 어머니와도 단절되었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도 그의 곁엔 없었다. 필요에 의해 사람을 찾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망고스퀘어는 그의 놀이터였는지도 모른다. 망고스퀘어에서 물건을 훔치고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 그런 그의 삶은 단절된 삶이었다. 진정한 삶으로부터의 단절. 그런 그가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베렌을 찾으면서, 단절된 삶에서 탈출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엄마에게서 온 항공권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는지도. 어차피 가진 것이 없기에 훌쩍 떠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일본의 거리를 헤매며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생각했고, 베렌과 함께 엄마를 방문하면서 단절된 삶에서 소통하는 삶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어둠의 깊이가 뼛속까지 들어오면 결국 지쳐버린다. 외로움에 지친다. 유흥이 숨겨진 밤거리에서 돈을 퍼붓지 않으면 초라해질 따름이다. 이방인이요, 구경꾼에 불과하다. (152페이지)
절제된 문장과 절제된 표현으로 된 한 젊은 청년의 한 시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었던 하퍼가 스스로 프로포즈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상상해본다. 망고스퀘어에서 구애의 춤을 추는 남녀들의 몸짓을. 음악에 맞춰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연습하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단절된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몸짓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찾게 마련이고,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찾는 사람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 그렇지않으면 나의 반쪽일지라도.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가는 세상을 은연중에 바란다. 결국 소통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 자신과 함께 삶을 살아갈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까지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
|
그토록 예의 바른 사람이 어째서 나한테는 하인 대하듯 했던 걸까 . 처음부터 관계 설정을 잘못한 것 같았다 . 손님들이 나간 뒤 뒤치닥꺼리를 도왔다 . 수박이나 망고 껍질에서 맴도는 냄새가 여운을 남겼다 . 외국인들은 망고에 칼집을 내며 먹기 좋게 써는 걸 어려워한다 . 누나는 망고를 썰었다기보다 씨에서 겨우 분리한 정도였다 .
ㅡ본문 86 쪽에서 ㅡ
한참 드라마에서 망고처트니,망고처트니를 외치던 시어머니 역활을 하던 부인역의 배우 생각이 났다 . 있는 집의 배울 만큼 배운 , 교양을 숄로 어깨를 두를 만큼 둘렀는데 이상하게 며느리에게만큼은 그 교양의 교'자도 아깝다는 듯 굴던 부인의 모습과 남편의 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완벽한 가정상을 깰 수가 없어서 당장 망고처트니를 구하지 못하면 안될 듯 동동 거리던 며느리역의 배우가 동시에 떠오른 건 이상한 일일까 , 각자 맡은 역에 충실했을 뿐인데도 어딘가 제 옷을 못찾아 입은듯 어거지스럽던 떼씀들 ......
또하나는 최근의 소설에서 읽은 원전에 관한 장르 소설속의 상황이 오버랩되곤 했다 . 천공의 벌에서 언급한 원전유치를 하게되는 가난하고 지역의 자본수입에 유전이 없는 경우에 , 따로이 관광상품이라거나 지역특산물이 없는 한 기댈 곳이 원전이란 것이고 그런 정부 시설이 하나 생겨서 지역주민에 당장은 이득이 될지 몰라도 차후까진 책임을 지지 않기에 두번째 , 세번째의 원전에 기댈 수 밖에 없어진다는 이야기. 그런데 원전을 유치하면 할 수록 그 지역은 위험지역으로 더욱더 고립이된다고 했다 . 밑장을 빼서 윗돌을 괴는 이상한 블록쌓기 놀이같지 않나 ? 그게 가능키나 한지 , 모르겠지만 ......
관계설정이란 것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그런 연상으로 망고에서 처트니까지 흘렀는지 모르겠다 . 윗 글의 누나는 한국에서 일만하다 일에서 놓여나기 위해 불현듯 한국을 버리듯 최고 휴양지라는 세부까지 와선 조금 빈둥대다 다시 이런 저런 일을 시작한 여자이고 , 그런 여자를 돕는 헬퍼 같은 역 겸 어린 연하의 애인도 뭣도 아닌 ,뭐랄까 부리기 좋은 현지애인 ? 동생 ? 그러기엔 선은 넘어서 알만큼아는 ......나"는 이 책 속의 주인공이다 . 이름 은 하퍼 김이고 이름처럼 ,아버진 한국인 엄마는 필리핀인이어서 흔히들 코피노라고 부른다 .
이 소설에선 코피노라고해서 혈통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애잔함 같은 걸 다루지 않는다 . 물론 한국의 문제도 다루지만 그보다는 더 국제적이라고나 할까 . 따지면 여기저기서 요즘 이슈가 되는 쏟아지는 다국적인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 그런데 신기한건 현지에 사는 이들이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이들에게 휘둘리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는 것과 그것이 자본이 주는 막강한 힘인데 , 그 막강한 힘에 현지의 배울만큼 배운 고학력의 젊은이들이 부나비처럼 가난과 돈에 어쩔 수없이 이끌려 반복된 노예같은 일에 종사하면서 산다는 게 현실이란 것이다 .
그 속에서 한국인의 위치란 나쁜 것들 가장 빨리 많이 들여오고 빨리 흡수하며 , 퍼트리는 입장같아 보였다 . 하퍼 김은 박사장의 눈에 찍힌 건지 , 가족이 따로 없어 보여 쉬웠는진 몰라도 약자로 인식된게 확실해 보였다 . 그 자신은 분명한 위치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 그것이 힘에 이기는 수단에는 미치지 못한다 . 마치 교양을 두른체 망고처트니를 외치는 부인처럼 그들에 군림하는 jtv나 ktv의 박사장같고 , 그에 절절매는 며느리 같다면 너무한 과장일까?
코피노란 그저 약자의 한 위치를 말하는 것 뿐 , 자피노(일본+필리핀) , 차피노(중국+필리핀) 처럼 이젠 한 나라의 피해자로만 인식되는 존재가 아닌 말그대로 하퍼의 존재들일 뿐이다 . 아시아인들의 복합적인 수입열대과일 쯤으로 인식되는 망고처럼 노란 빛깔은 아시아의 인종을 대표한다고 읽혔다 . 그들을 소비하고 빨리 낭비하는 곳의 대명사가 세부 , 유명 관광지인 것이고... 말하자면 고립된 원전의 지역 주민들과도 같은 역활을 보였다고 읽었다 .
하퍼 김은 박사장의 계락으로 불법 마약 수송건으로 연류되어 , 박사장이 아쉬운 돈을 가진 베렌을 찾는 위치가 되는데 이 사건역시 흑막으로 박사장의 개입이 안보이게 있었을 것만 같다 . 베렌은 미끈한 외모로 ktv에서 jtv를 오간 톱에 있는 서비스걸 이었는데 지명손님의 죽음과 그가 준 거액이 문제가 되서 박사장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입장이된다 . 사정을 알지못하는 하퍼 김은 찾으라니 베렌을 찾긴하지만 딱히 그녀를 찾아 뭘 어찌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가 막판에 베렌과 연락이 닿자 돌연 같이 일본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일찌기 자신을 버리고 재가한 엄마를 찾아 그간의 회포를 풀며 오래 끊긴 가족의 정 같은 걸 생각하고 베렌과 함께 새출발을 꿈꾸는데 , 그 모든 건 희망이 가혹하단 것처럼 그저 꿈같은 일이 된다 .
베렌을 약속 날짜까지 잡아오지 못하고 잠적하자 그를 마약수송으로 엮어 수배를 내린 박사장 때문에 일본에서 출국하자마자 바로 교도소로 이송이되고 무기징역을 언도받는 하퍼 김 . 그리고 베렌과의 결혼은 무산된 채 , 그들이 기다림이 한정없단 것과 앞 일은 알수없는 걸로 책은 끝이난다 .
베렌의 남동생은 이제 하퍼김이 하던 것처럼 가이드일을 하며 리조트로 휴양지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며 형을 기다린다고 한다 . (하퍼 김을 말함) 그러나 그의 생활이 종전과 크게 좋아 진 걸로 보이진 않는데 , 그들은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진 않는 이상한 힘이 있고 , 이상하게도 가장 나쁜 것들을 빨리도 배우고 가져오는 한국인들은 종종 자주 자살을 해서 의문을 가지게한다 . 어쩌면 한탕주의의 이 한국사회를 꼬집고 싶은 작가의 생각였는지 모르겠다 .
달콤한 망고를 딴 고층의 소비도시 망고스퀘어 , 무르고 흐르는 과즙처럼 다딘단 것들의 생명이 그렇듯 뒤는 처참하고 썩으면 죽음의 뒷모습과 뭐가 다를까 싶기도했다 . 거기서 우리는 망고의 씨조차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는 그저 외지인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저한 고독의 냉기가 이상하게도 뜨거운 도시를 더 춥게 느껴지게 했다고 , 그 끝에 영국이나 미국에서 지금 한참 종족주의나 민족주의로 가는 형국이 더 부각되는 것을 불안하게 현 시국처럼 읽었노라고 ......
그러니 ,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ㅡ의 이 우리는ㅡ은 하퍼 김이나 베렌이 아닌 , 글 속의 누나와 박사장 같은 인물에 해당하는 우리는 이 맞을지도 모른다 . 당신들의 위치는 어디 쯤 있느냐고 .... 돈이 없고 힘이 없어 갇힌 저들이지만 , 저들은 저들의 위치를 안다는 게 그 이유이고 끝나지 않을 고생을 하는 듯 보이지만 과연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도 그들이 과연 그대로일지 ...... 그들도 무섭게 배울것 아닌가 . 우리는 여전히 소비를 팔고있을만 있는 이때에 .......
소설은 미완의 형태로 끝을 냄으로 더 완결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노라고 해야겠다 . 먼저 읽어버린 예언서처럼 무섭고도 섬짓하였으니 .
|
|
도시의 화려한 중심. 그곳에서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오늘을 봤다.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내일의 바람은 위태롭게 쌓은 모래성 같다. 가벼운 입김 한방에 무너져 내려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처럼.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달라 보였다. 누구는 위에서, 누구는 아래에서. 평지 위에서 다른 위치가 아니라 높낮이가 달랐다. 그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은 매번 달랐으나, '하퍼 김'이 서 있는 자리는 늘 같았다. 베렌과 함께였던,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같이 보냈던 그 며칠을 제외하고, 그는 늘 거기 있었다. 누군가의 발아래, 힘이 미치는 손끝에, 희망이 없던 오늘의 자리에...
이제 막 스무 살, 성인이 된 코피노 하퍼 김. 동영상 업로드나, 박 사장의 심부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그날그날을 산다. 어느 날 박 사장으로부터 주어진 임무. 그에게 베렌을 찾아 데려오라는 것. 가진 정보가 거의 없다. 베렌의 고향 집 말고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는 베렌을 찾아 나선다. 자기가 살아야 했으므로...
그가 코피노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했던 걸까. 그건 아닌 듯하다. 그의 한국인 아버지는 죽었고, 필리핀인 어머니는 재혼하여 일본에 산다. 그가 생계를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 이유가 코피노인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고, 살아왔던 것뿐이다. 하루하루가 그만인 듯, 오늘만 사는 듯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붙박이가 아닌 부유 하듯 떠돌듯이 사는 그의 모습은 불안하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설지 않은 분위기 때문일까. 간절하게 바라도 이뤄지지 않을 것 아는 사람처럼 많은 것을 체념한 표정이 저절로 그려졌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면 오늘을 잘 살아낸 것 같았다. 며칠을 적당히 버틸 돈이 마련되면 잘 사는 인생처럼 안도하는 잠깐이 행복해 보였다. 이런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아?
때로는 망고스퀘어 광장을 걷는 많은 사람처럼, 때로는 무언가를 피해 숨어 지내듯이 사는 그는, 그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듯했다. 누가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부유를 제안한다고 해도 그는 선뜻 그걸 선택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왜일까. 누구나가 쫓듯이 가지고 싶은 것들을 왜 그는 그리 간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까. 소설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갈망하던 것이 넘치는 돈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다고 여겼던 자기 인생을 그리고 있었다. 서류상으로도, 현실 속 관계 속에서도, 무엇으로도 하나 단단하게 엮인 것 없이 보였던 관계에서 그는 가족을 찾았다. 이런 모습도 괜찮지 않을까? 혼자 웃으며 머릿속에 그린다. 그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이렇게 꿈꾸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그런 행복을 잠시나마 그려보는 일. 그에게 사치일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닌 일이다.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인, 이방인으로 살면서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일을 보는 그의 표정에 설렘이 인다. 이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오늘이 아닌 내일을 잠깐 엿보는 일은 그 못지않게 읽는 우리에게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의 많은 사람, 어쩌면 세상 속 모든 사람이 가고자 하는 종착역에 그리고 싶은 그림일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살아갈 시간임을 알면서도 한 번은 그려보고 싶은 시간. 어떤 관계가 아니라, 아무 관계가 아니면서도 가능한, 한 식탁 위에서 편한 젓가락질 같은 손놀림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이런 게 우리가 찾고 싶었던, 어느 순간부터 그가 바라던 삶의 목적이자 바람이 아니었을까.
다다미방에 앉아, 나는 우리 네 사람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베렌과 엄마가 나란히 주방에서 밥을 짓고,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식탁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식탁을 규정한다. (169페이지)
그의 삶에 베렌의 등장은 다른 방향의 삶을 그리게 한 거다. 그저 박 사장이 시킨 일을 하려던 것뿐이었다. 그가 늘 해왔던 일, 박 사장의 발아래서 세상을 사는 법을 터득한 효과다. 그런데 뭔가 어긋나듯 달라졌다. 박 사장에게 의뢰받은 베렌을 찾는 일, 그런 베렌과 일본 여행을 하는 하퍼에게 어떤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건, 슬픔이자 행복이었을 것 같다. 예정에 없던 엄마를 만나고, 엄마의 남편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주방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엄마와 베렌의 모습에서 그가 찾는 시간을 본다. 그 시간을 이뤄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 일이다. 오직, 지금. 그는 한 번도 그리지 않았던 인생의 궤도에 시작점을 찍기 시작했다. 불가능이라 여겼던 것들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 자리에 한발 내디딘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시도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탕을 얻어먹던 시절이 생각났다. 얻어먹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98페이지)
단절의 인생을 살다가 관계의 구성 속으로 뛰어든 그는 이제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내가 느낀 불안의 실체는 그렇게 드러난다. 조금은 누군가를 원망했다. 왜 그렇게 작은 것조차 차단해버리고야 마는 것이냐고, 그 정도도 못할 인생이냐고. '언젠가, 꼭 같이 살자'(225페이지)던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느냐고. 그 상황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던 나와는 반대로, 오히려 그들은 담담했다. 사라질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의미 있는 시간을 사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괜찮아?'라고 물으니, '괜찮다'라고 대답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그의 삶에 균형이 찾아올 그 '언제'를 나도 함께 그려본다. 상처가 사라질 삶, 어쩌면 가능한 '같이'가 현실이 될 그 날을 기다린다. 미리 응달 속의 가지를 잘라냈으니, 상처를 끌어안은 새살이 돋아날 테니, 그렇게 뻗어 나갈 것이니...
|
|
소망을 갖는 일은 뭔가 잘 될 거라는 주문을 외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은 키우지 않은 게 좋을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소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들처럼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때때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만 삶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에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속 화자인‘ 나’ (코피노 청년)가 하루하루를 용케 견디는 게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 길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도(正道)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세월은 우리를 대책 없이 성장시키고 있었다. 일년에 키가 10센티미터 자라기도 했다. 또 새해가 다가왔다. 새해 들어 우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12쪽) 필리핀 세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처럼 산다. 한국인 아빠는 병에 걸려 죽었고 엄마는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나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할 뿐이다. 지역의 특성상 세부의 삶은 관광객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부모의 돌봄 없는 코피노 청년은 공부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닥친 일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제 곧 성년이 되는, 온전한 어른이라 할 수 없는 나이에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 세부 유흥가 망고스퀘어에서 사람들이 프러포즈를 할 때 관광객의 지갑을 훔치거나 한인 박사장의 마약 운반 심부름을 한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열 살도 훨씬 많은 한국에서 온 누나의 연락은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엄마처럼 살갑게 아픈 나를 보살피고 연인처럼 안아주는 누나야말로 가족과 다름없었다.
필리핀에서 코피노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코피노를 떠올리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과 겹쳐진다. 물론 이 소설이 코피노 청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평범한 듯 특별한 자신의 삶을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닿을 수 있으니까. 그건 어디에서 살든 많은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가족이 아닌 이들과 살고 있으며 불확실한 내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가 유튜브에 실패한 영상을 올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건 타인의 실패에 우리가 작지 않게 위안을 받고 있다는 증거 인지도 모른다. 성공한 누군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도 나처럼 실패의 삶을 살고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 같은 것이랄까.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최악이다. 마약 운반의 발각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나’에게 그 일을 시킨 박사장은 피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박사장의 가게에서 일하던 베렌을 찾아오라는 일이다. 베렌의 고향에서 베렌의 어머니와 동생을 만났지만 베렌을 찾는 단서는 얻지 못한다. 좋아하는 여자를 박사장에게 대령해야 하다니. 박사장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고 놀랍게도 베렌과 연락이 닿는다. 베렌을 박사장에게 인계하는 대신 ‘나’는 엄마가 있는 일본으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먼저 일본에 도착해 베렌을 기다리면서 ‘나’는 일본에서 이방인임을 확인한다. 일본의 유흥가에서, 호텔에서, 망고스퀘어를 떠올린다. 세부에서 코피노로 살아가는 자신과 일본인 할아버지와 살아가는 필리핀인 엄마, 박사장을 피해 고향과 가족을 떠나 일본에 온 베렌, 모두가 그러했다. 간절히 정착을 원했지만 부유하는 삶을 이어갔다. ‘나는 우리 네사람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베렌과 엄마가 나란히 주방에서 밥을 짓고,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식탁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식탁을 규정한다. 가족 중 누군가 잔소리를 하거나 참견할지 모른다.’ (169쪽) 소설은 사실 단순하면서도 평범하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 내가 모르는 삶의 방식, 그 안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끌리는 건 주인공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절망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한 공간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봐 주는 일, 소소한 하루 일과를 나누고 내일을 기대하는 보통의 일상. 세부에 돌아가 망고스퀘어에서 베렌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상상으로도 행복하다.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잘도 갔다. (253쪽) 잔인하게도 현실은 상상에 닿지 못한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은 소망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니 누군가는 소망을 갖는 게, 주문을 외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소망도 없는 삶은 황량하고 적막한 사막과도 같다.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힘이 오아시스라는 소망에 있듯 ‘나’에게는 엄마와 베렌이 있기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소망을 키우냐에 따라 성장의 크기와 미래는 달라진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도 그 시간 안에 그들이 함께 있으면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
|
창작과비평 창간50주년
공모전 당선작 금태현 장편소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코피노
(kopino)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필리핀 세부시티의 유흥가 망고스퀘어를 중심으로 생계를 살아가는 코피노 하퍼 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념 기념 특별공모 당선작가 금태현씨는 아내와 아들, 노모가 있는 가장으로써 울산대학교 도서관에서 십여년간
소설을 써운 분이라고 한다.
창작과비평
당선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첫 작품이라 하기에 그는 덤덤하게 해야할 말을 책 한권에 모두 담고 있고, 그
이야기는 흥미롭게 흘러간다. 이곳 세부섬에서
누군가를 찾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다. 숨어 지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코피노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것이 가족을 납치한
범인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라는거 시국이 좋지 않은 요즘 바로잡아야 할것들이 참 많다.
|
|
망고... 달달하고 노오란 속살을 가진 과일. 즙이 많아 달달한 맛이 오래도록 감도는 과일. 동남아시아에서 흔한 과일이며 싸고 과일뿐 아니라 익지 않은 망고는 반찬으로으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랗게 익은 것을 먹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푸른 것을 먹는다고 하니 무슨 맛일까 하지만 입맛은 나라별로 다른 법이다.
망고, 파인애플, 연어, 모두 노란색에서 우러나는 맛이다. 세부섬에서 주로 먹는 참치는 옐로핀이라 일컫는 황다랑어다. 나는 베렌이 걸친 노란색 오프숄더를 상상했다.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망고스퀘어 상점의 노란 등에서 번져오는 허무한 냄새를 맡으면서.(70p)
전반적으로 망고의 노란색이 연상되어 지는 작품. 노란색이 비치지만 망고의 달콤한 보다는 왠지 모르게 익지 않은 초록색 망고의 딱딱함이 느껴지는 작품. 작가는 어떤 의도로 '망고스퀘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일까. 검색을 해본다. 망고스퀘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세부에 있는 광장. 망고광장쯤으로 해석하면 될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면서 가장 핫한 플레이스. 우리나라의 서울광장쯤으로 생각하면 맞을까.
오늘도 이곳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놓아둔 가방을 보며 기회는 노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하퍼다. 한국인 아버지 필리핀인 엄마. 아버지는 죽고 엄마는 재혼해서 일본행. 결국 나혼자 여기 남았다. 별달리 할수 있는 일은 없다. 사람들의 가방도 뒤지고 불법으로 영상을 다운받아서 그것을 다시 올리기도 하고 마약배달도 하지만 그것이 꼭 '코피노'이기 때문은 아니다. 코피노족이라는 이름부터가 이들을 차별하는 말이 아닐까. 굳이 코피노족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도 않고 흔히들 생각하는 다큐에 나오는 그런 코피노들과는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하퍼다.
하퍼의 일상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어리다면 어린나이에 부모없이 혼자서 성장하고 있는 그는 결코 쉬운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차분히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모두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그 또한 다른 삶을 살아가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꼭 불행하다고만은 할수 없다.
하퍼가 하고 있는 있는 일이 합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수 있다. 자신의 불법을 덮어두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하퍼. 그는 '베렌'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결국 그녀를 엄마가 계신 일본에서 만나게 된다. 일본과 필리핀. 여려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 닮은 점이 없는 듯 있다.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세부가 아닌 일본에서 베렌을 만난 하퍼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
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도 일지도 모른다. 바다의 파도. 그 파도가 큰 쓰나미가 되어 넘어온다면 한 나라 자체가 위험해지는 것은 아닐까. 내내 '파도'가 찰싹거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쓰나미'가 되어 하퍼와 베렌을 덮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앞길에 축복을 빌며. |
|
코피노 클리셰를 벗어나 담담하게 쓰여진 한 코피노 청년의 이야기!
창작과비평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열린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인 금태현 작가의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이라는 작품은 표지에서부터 어딘가 내면의 아픔을 가진 것 같은 주인공이 등장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좋은 책을 내기로 유명하고 역사 깊은 출판사 창비에서 나온 당선작이니만큼 읽기 전부터 기대가 많이 되었던 소설이었지요. 그리고 여지껏 접해보지 않은 '코피노'를 주인공 삼아 다룬 소설이라니 더욱 기대가 되면서도, 스토리가 궁금했답니다.
먼저 작가소개를 하자면 금태현 작가님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 않으면 몹시 불안"하실 만큼 언제나 소설쓰기에 주력하신다고 해요. 십년 이상을 어떠한 문학 스터디 혹은 문인 모임에 나가본 적 없이 도서관에서 홀로 글을 쓰시며 언젠가는 작가가 되리라 스스로 믿고 묵묵히 글을 써오신 금태현 작가님. 그래서 그런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이렇게 오랜세월 꿋꿋이 소설을 쓰신 작가님이라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짧지만 강렬하고 명확한 문체가 개인적으로 참 읽기에 좋았답니다.
본격적으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최대한 스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보통 코피노를 떠올리면 아버지로부터 버려진, 우울한, 암울한, 가난한, 정체성의 부재에 시달리는... 그런 불우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죠. 그리고 코피노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혹시,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가는 내용이 아닐까하는 예상이 들기 마련이죠.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뻔한 클리셰를 벗어나는 것이 매력이랍니다.
이를테면 주인공 하퍼(마침 이름도 Halfer를 떠올리게 하는데요)라는 코피노 청년은 주로 실패 혹은 실수로 끝나는 우스운 영상들을 훔쳐다가 방문객 수를 늘려 돈을 벌곤 합니다. 즉 네티즌들의 클릭을 유도해 수익을 내는 아이이죠. 탑3에 든 영상 제목만 해도 웃음을 자아내는 타이틀임을 알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되게 신기했던 것이 작가 나이에 비해 영상을 훔쳐다가 돈을 버는 과정, 수익구조가 비교적 자세히 묘사했다는 것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주인공처럼 유튜브에 동영상을 제공하는 유투버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더군요. 또한 독립영화사를 차린 경험도 있으시대요! 역시 경험만큼 생생한 이야기의 재료는 없는 것 같아요!
코피노의 전형적 고정관념 혹은 편견섞인 이미지를 대차게 깨뜨리는 인상깊은 장면이 바로 하퍼가 십대부터 입에서 살살 녹는 참치맛을 알았다는 것, JTV의 오너인 박사장의 분부대로 샤부, 즉 마약을 심부름하면서 가난따위 코웃음치듯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보통 코피노라 하면 필리피노 엄마와 그녀를 버리고 한국으로 떠나버린 한국인 아버지 전형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하퍼의 경우는 그런 클리셰를 벗어나 희귀한 위장병에 걸려 돌아가신 아버지와 일본 노인과 결혼해 일본에서 거주하는 어머니를 두고 있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퍼는 영상을 팔아 남기는 수익으로 연상의 한국인 누나와 세부섬에서 함께 살고 있죠.
그런와중에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지는 부분이 베렌이라는 여자의 등장이랍니다. 미인대회 출신의 예쁜 미모를 가진 베렌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도중 같이 있었던 한국남자가 자살했고 거액의 돈이 그 다음날 베렌의 통장에 꽂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박사장-하퍼-베렌의 복잡한 관계와 베렌-하퍼 간의 미묘하게 얽힌 감정들이 전개를 더욱 생생하고 흥미롭게 만들어 준답니다.로맨스는 전개되지 않을 것 같은 밑바닥 세계의 쫓고 쫓기는 내용 속에서도 베렌과 함께 엄마가 있는 일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사랑을 꽃피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부로 돌아가면 프로포즈해서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는 평화롭고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입국 과정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되는 주인공 하퍼... 절망적인 상황의 교도소에서 Marry you라는 음악을 머릿속에 계속 도네이며 프로포즈를 하는 상상을 하는 상황은 왠지 무거우면서도 또 무거움을 가볍게 훌훌 털기라도 하듯 씁쓸한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며 마무리 됩니다.
'marry you~'라는 노래가 울려펴지는 망고스퀘어 중앙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서서히 책을 덮었답니다. 결코 순탄치 않은 청년 코피노의 삶을 덤덤한 목소리로 풀어낸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도 했고 여행을 하는 듯도 했으며 문화를 체험하는 듯도 했던 흥미요소가 많았던 장편소설이었습니다. |
|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삼킨 청춘을 오늘에 토한 소설
어느 날 강가를 산책하다가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강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사색이 되어 찾는 가족들의 품으로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왔다고 한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품고. 그리고 6개월 동안의 퇴고 끝에 『창작과 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투고했고, 당선하였다. 금태현, 이 54세 신인 작가의 간략한 등단 경위이다. “인간의 마지막 직업은 작가다.” 작년 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블로그에서 봤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수상자들은 모두 40대 이상이었고, 한 분은 신인상인데도 50대였다고 한다. 흔히 산문은 영재의 문학이 아니라고들 한다. 세상과 인간을 깊이 꿰뚫고 글로 풀 수 있는 것은 연륜 없이 재능만으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 등단할지 아득한 채 태어나지 못한 작가로 사는 것은 참 녹록지 않다. 죽은 아들 불알도 아닌 태아나 정자를 더듬고 주무르는 부모의 삶이란. 흔히 늙은 신인 작가가 그렇듯 금태현 작가 역시 여러 편의 소설 완성작을 가진 상태에서 등단하였다. 호기심과 성장욕으로 시작한 등단작 분석은 작가의 이력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전형적인 똘똘한 등단작이다. 『창작과 비평』이 좋아할 소재와 문제의식이다. 분명 현시대가 다뤄야 할 문학 주제였음에도 완결력 있는 ‘일반’‘장편’소설로 나오지 못했던 코피노에 대한 소설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현재 한국 문단이 사회문제를 소설로 푸는 데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심사위원들은 395편이나 응모되었으나 다수의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내지 못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된 것과 달리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서사가 노련하다고 평했다. 십분 공감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 받고 인상적인 것은 생각해본 적 없는 ‘63년생의 문장’이었다. 심사평과 당선 소감을 읽고 소설을 읽다가 책날개를 다시 확인하였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코피노 청년의 한 동안을 다룬 이 소설에서 청춘을 묘사하는 태도는 20대 작가들처럼 생동한다. 부모나 선생의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나이의 문장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였다.
청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것이 아닐까.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심신적으로 인생에서 청춘은 시기가 있지만 그 시기가 지난다고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제 청춘을 놓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 모습을 불러낼 수 있다고. 쉰 살이 넘은 대한민국 울산 토박이 금태현이 그린 스무 살 필리핀 세부아노 하퍼. 작가와 하퍼는 같은 오늘을 사는, 완전한 동시대인이다. 누가 누구의 과거나 미래가 아닌 채 같은 시간을 산다. 어디까지가 취재일까.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의 정의에 충실한, 현실에 있음직한 허구의 이야기이다. 망고스퀘어는커녕 필리핀과 일본을 잘 모르는 독자도 어떤 불편함이나 이질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이국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 어떤 편견도 담겨 있지 않다. 처음 읽을 땐 전형적인 소재를 비전형적으로 전개하는 전체적 구성에 눈이 갔다. 그런데 다시 읽을수록 문장이나 문단 단위로 눈이 멈췄다. 어떤 심사평이나 당선 소감보다 개개의 문장과 행간이 작가의 모든 실력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 편하게 읽었음에도 잠깐 무서움이 엄습했다. 하퍼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 뿐인데 사는 꼴이 소위 표현하는 막장이다. 배운 것 없고 할 줄 없는 게 없다고 유투브에 돈될 만한 영상을 마구 올려 광고수익으로 먹고 사려다가 번번이 저작권 위반의 쓴맛을 본다. 결국 그에게 돈 같은 돈을 벌게 해주는 밥벌이는 마약 배달 같은 뒷골목 심부름이나 소매치기. 유흥가에 있다가 도망쳐 미스 필리핀에 나간 베렌을 잡아오라는 심부름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이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빠지고, 오랫동안 헤어진 어머니와 재회하고. 하지만 인생은 그 순간에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듯,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얼마간의 하퍼의 일상일 뿐이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오로지 삶은 계속된다는 명제일 뿐. 가족을 버린 것은 한국인 아버지가 아니라 필리핀 어머니고, 사랑은 극적으로 인생을 바꾸지 않는다. 순간엔 비범했던 행보도 평범으로 남는다. 예상대로 전개되지도 무겁지도 않은 코피노 소설이라 마음에 들었다. 본 대로 쓸 수 있는 눈을 가진 작가인 것 같아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금태현은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통해 삼킨 청춘을 오늘에 토한다. 우리는 무엇을 응답할 것인가. 수많은 시절의, 수많은 청춘이 이 청춘에 얽히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
|
시끄러운 댄스 음악 속 화려한 칼군무가 매주 벌어지는 세부의 망고스퀘어. 수많은 군중 속 젊은 청춘들의 로맨틱한 프로포즈가 벌어지는 이곳은 은밀한 마약거래와 굶주림에 찌든 어린아이들의 도둑질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코피노 청년 하퍼는 도둑질과 타인에게서 훔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받는 수익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가끔은 박사장이 시키는 은밀한 심부름을 하면서 황다랑어 덮밥을 사먹을 정도의 짭짤한 수익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게 덜미가 돼 악랄한 그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베렌이라는 여자아이를 잡아오는 것. 미인대회 1등 출신 베렌은 박사장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일한다. 그녀의 주된 업무는 여러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농도 짙은 애교를 터트리는 것이지만, 일주일 두 번은 큰 손님과 하룻밤을 보내는 '빅 투어'에 나간다. 하루는 젊은 한국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그로부터 거액의 돈더미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던 그 남자는 이튿날 죽은 채로 발견이 되고 그녀는 경찰 수사망에 오른다. 그녀 통장에 찍힌 거액의 돈 냄새를 그냥 지나칠리 없는 박사장은 하퍼를 고용해 베렌을 잡으려 한다. 오랫동안 짝사랑 해왔다며 베렌에게 접근한 하퍼는 그녀에게 여행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하퍼의 엄마가 늙은 새아버지와 재혼해 살고 있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퍼가 박사장과 한패라는 사실이 알게 되지만 베렌은 그와 함께 있고 싶어진다. 박사장으로부터 살기 위해 베렌을 만난 하퍼 역시 그녀와 엄마, 새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따뜻함을 맛본다. 두 사람은 망고스퀘어로 돌아가 따뜻한 가정을 꾸리기로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퍼는 필리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약 운반책으로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감생활을 베렌과 엄마와 자유를 향한 기다림으로 하루하루 채워간다.
세상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을 껴안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코피노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을 읽으며 이때까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단절과 편견으로 상처받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물론 주인공 하퍼의 아버지가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아이와 아내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무책임한 인물은 아니지만, 부모 없이 혼돈스러운 땅에서 코피노로 살아가야 하는 그의 삶에 견뎌내야 할 몫이 많은 건 분명했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게 풀어갈 수 있는 그의 삶을 작가는 오히려 담백하게 풀어낸다. 하퍼의 아버지도 여느 코피노 아버지처럼 도망가게 할 수 있었지만 희귀병으로 일찍 죽었다는 설정이 이를 잘 나타낸다. 소설 속 유일한 악역 박사장 역시 악랄한 생각과 행동을 일삼긴 하지만 작가 특유의 덤덤한 문체 때문인지 그저 악역의 역할을 성실히 맡아내고 있는 느낌이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하퍼와 베렌도 패배감에 길들여진 모습이 아닌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인물로 그려낸다. 이외에도 하퍼를 친동생처럼 보살피던 한국인 누나와 비록 오랜 시간 단절된 채 살았지만 하퍼와 베렌이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엄마와 새아버지의 모습은 그들 역시 사랑받아 마땅한 우리의 이웃이며 동생이며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특별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기보다는 그저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두 주인공을 맡겨 놓은 듯한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역시 특정 결말을 맺기보다는 그들의 현실을 그저 덤덤히 적을뿐이다. 냉혹한 현실과 그 현실에 놀랄 만큼 성숙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되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소망이 있는 자에겐 기약 없는 기다림도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끝을 믿는다. "사장님, 리스트의 베렌을 어떡하라는 겁니까? 설마." "설마 뭐, 인마." "죽이라는 건 아니겠죠?" "베렌을 잡아와야 해." 사장은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넌 이제부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어." / 55쪽 할아버지는 흰밥을 마치 우유를 씹어먹는 것처럼 음미하며 천천히 삼켰다. 말을 할 땐 밥을 씹지 않았다. 사께는 딱 한잔 마신 뒤 잔을 엎어두었다. 엄마는 운전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다다미방에 앉아, 나는 우리 네사람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베렌과 엄마가 나란히 주방에서 밥을 짓고,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둘러 앉는다. 음식이 식탁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식탁을 규정한다. 가족 중 누군가 잔소리를 하거나 참견할지 모른다. 밥을 먹었으면 즉시 설거지를 해야지. 담배 좀 밖에 나가서 피워.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169쪽 "두렵게 하기 위해 너를 쫓은 게 아니라고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이젠 알아들을 거 같아. 박사장이나 너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에 대한 두려움이었어." "......" "내가 망가지는 모습에 대한 두려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잊어먹기 전에 이 말부터 해둘게. 언제부턴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곤 했어.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지 못한 일은 늘 끝이 안좋았으니까. 예를 들면, 유후인에서 토리뗀을 먹은 건 순전히 가이드 추천 때문이야. 세부시티에서도 늘 먹는 게 닭고기잖아. 다른 걸 먹어야지 하다가 익숙한 쪽으로 선택을 한 거야." /172쪽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살아 있어서 고마워. 엄마랑 살고 싶어. 당장이라도 엄마가 뒤따라올 것 같았다. 엄마가 응답했다. - 나도 고맙다. 언젠가, 꼭 같이 살자. 나는 핸드폰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화면에 나타나는 확인 버튼에 엄지를 갖다댔다. 물방울 무늬 치마를 상상하던 나는, 굵은 다리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베렌이 내 무릎에 얼굴을 포갰다. /225쪽 베렌이 꿈틀거린다. 팔베개를 해주며 베렌을 곁으로 끌어당긴다. 단단하고 물렁한 베렌의 머리가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항상 가까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와 베렌, 애처로운 가족들과. (...) 잠시 침대에서 떨어졌음에도 베렌이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베렌의 손을 잡고 흠들었다. 살아 있다. 곁에 있다. /238쪽 |
|
창작과 비평 창간 50주년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 금태현 작가의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선입견이 하나하나 깨지는 경험은 꽤나 즐거웠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에는 가볍고 재미있는 라이트노벨인 줄 알았고, 특별공모당선작인 줄 알게 되었을 때는 작가가 젊은 줄 알았으며, 작가의 사진을 보고 나서는 오래전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모두 틀렸어요. 이 책은 코피노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며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마치 독자들이 그런 오해를 할 줄 알았다는 듯, 작가는 신부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신부는 코피노를 보고 '하루에 몇 끼를 먹느냐'며, '성당에 오면 공짜로 밥도 주고 글도 가르쳐준다'고 하지만, 주인공은 십대에 참치맛을 알았습니다. 여자를 꼬시기도 하고, 소매치기를 하기도 하고, 뭐 다양한 일을 전전했긴 하지만요. 그리고 마지막 한 방. 저는 망고스퀘어가 가상의 공간인 줄 알았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JBL이 나오길래, 혹시나 해서 '망고스퀘어'를 검색했더니 실제로 세부에 있는 광장 이름이더라고요. 그 외에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과 인물은 실제였습니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미스 유니버스 메건영도, 세부에 위치한 바 JTV도,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의 내용도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디테일한 내용을 서술한 작가 금태현 씨는 이 소설을 울산의 태화강을 걷다가 훌쩍 떠난 일주일동안의 여행에서 탈고했다고 해요. 그 사이 가족들은 금태현씨가 태화강에 빠졌는 줄 알고 신고를 할 정도였는데 말이죠. 소설도 재밌지만 창작 뒷이야기도 재미있어서 책의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작가 인터뷰를 한 강영숙 씨도 금태현 씨와의 인터뷰 중에 몇 번이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를 생각한 걸 보면 범상치 않은 분인 것 같긴 합니다. 아내와 아들과 노모가 있는 상황에서 10년간 소설만 썼고, 바로 출간할 수 있는 작품도 몇 편이 된다니 저 역시도 그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거든요. 언젠가 작가가 된다는 생각으로 행동을 늘 조심하고 절제했다니, 그야말로 꿈을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주는 작가랄까요? 그런데 작가와 달리 주인공은 '남의 실패를 모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그로 인해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작권을 어겨서 경고 메일을 받기도 하고요. 하지만 크게 미래를 계획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바로바로 삭제하고 또 남의 영상과 사진을 훔쳐 새로 만듭니다.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기도 하고요. 그러다 주인공의 약점을 잡은 '박사장'으로 부터 '베런'을 찾으라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화자와 시간의 시점이 좀 들쑥날쑥해서, 흐름을 놓칠 때가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그걸 제외하고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이 베런을 찾고 동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자꾸 저의 선입견에 대해 지적해주는 기분이에요. 분명 사회고발 소설이었는데, 추리 소설이 되는 듯 하다가, 로맨스로 흐르며 마무리될 것 같았던 소설은 마지막에 뒷통수를 치며 마무리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반전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말 현실적인 마무리라는 생각입니다. 그 끝은! 소설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
그 때나 지금이나 세부섬은 달라진 게 없다. 파리, 모기 한마리까지 우리를 뜯어먹으려고 안달이다. - p. 59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자기중심적일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척하면서 결국을 자기 맥락을 찾다 소멸하는 대화도 있을 수 있다. - p. 64 특별한 인격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계기판은 운전자의 상심을 몰라준다 - p. 71 난 20년 뒤 일흔살쯤에 결혼할 생각이야.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있잖아. 살면서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 죽으면서 아이를 낳는 추세로 변하고 있는 중이야. 바퀴벌레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 p. 96 또 내 이야기만 했군. 사람들을 만날 때 미리 생각해두곤 하지. 이번에는 제발 내 이야기는 삼켜두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자고. 10분쯤 말을 듣다보면 끼어들고 있더라구. 나중엔 다른 사람 입을 막을 정도로 내 이야기만 하고 있어. - p. 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