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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미국의 정치 문명』 2008. 잎이 떨어지는 달. 첫 번째 주. Book Review #1. 우리 교수님의 표현을 베껴오자면...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특히 인문학도라면 양서를 많이 읽어야 한다. 맛있는 것을 먹어본 사람이 무엇이 맛이 있는지, 맛이 없는지 가릴 수 있는 것처럼, 양서를 많이 읽어본 사람이 무엇이 좋은 책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권용립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서 낸 것이다. 그리고 이 박사학위 논문이 우리나라의 박사 학위들 중 탑 클래스에 속할 만큼 잘 쓰인 것이라고 했다. 그럴 만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이 무척 가깝다. 즉, 읽기가 편하고 흐름이 매끄럽다는 것 이다. 문장 하나하나는 잘 다듬어져 있어, 더 이상 감하고 가할 것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 속에 담긴 사유의 밀도가 높다. 이 책은 그야말로, 권용립 교수의 미국에 대한 통찰을 촘촘하고 튼튼하게 엮어놓은 하나의 완벽한 구조물과도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언급되는 ‘보수적 아메니카니즘’과 관련된 문장들이 거슬릴 때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정치 문명이라는 큰 얼개를 짜 내려가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이므로, 즉, 이 책에 담긴 통찰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계속해서 반복해 강조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나같이 머리가 안 좋은 사람으로서는 명료하게, 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핵심 키워드를 제시해주고 통찰 과정, 즉 미국 읽기 과정을 드러내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푸코의 ‘성의 역사 - 앎의 의지’를 읽을 때에는 나름 긴장해 가면서 열심히 읽었음에도, 다 읽고 나서는 ‘그래서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게 대체 뭐야, 어쩌자는 것인가’ 할 정도로 자기 통찰을 얘기하면서 그에 수반될 반론도 이야기 하고, 또 애매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 등,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부족함 때문이다. 비록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현기증과 심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는 매력덩어리이다. #2. 그래서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 한국에는 미국에 관한 책이 사실상 넘쳐난다. 나도 고등학생 때, 『미국분, 미국인, 미국놈』이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그 찝찝함....... 그렇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미국 관련 서적들이란 일방적인 애정이나 반감에 쩔어 있는, 미국 기행문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미국 보기’ 책이다. 내가 읽었던 책 역시, 편협적이고 일방적인 미국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으면서, 이를 토대로 미국의 멋진 이미지 밑에 깔린 부정적인 면을, 실제로 자신이 겪었던 에피소드 정도를 폭로하는 식이었다. 거기에는 그러한 성향이 도대체 왜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통찰이란 없었고, 그저 얘네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같더라, 라는 식의 철저히 자신의 편협한 입장 하에 바라본 미국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일방적인 애정이나 반감을 품은 단순한 미국 체험기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미국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할 수가 없다. 미국이 우리가 사는 시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아주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권용립 교수의 책은, 일방적인 애증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미국이 그리는 그 자화상을 토대로 외부인의 시선에서 꽤나 냉철하고 예리하게 미국의 정치 문명을 통찰해내고 있다. 즉, 이 책은 미국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3. 미국 읽기
그렇다면 권용립 교수가 미국을 읽어내는 틀은 무엇이냐. 간단히 표현해 보자면, 고대 공화주의와 근대 자유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캘빈주의의 삼박자가 융합하면서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은, 미국적 보수주의, 미국의 보수주의, 그리고 미국의 자유주의까지 모두 포괄하는 말로, 결국 미국의 정치와 외교 성향에 있어서 나타나는 양상을 모두 아우르는 말인 것이다. 앞서서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 만들어지게 된 것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캘빈주의의 ‘융합’ 때문이라고 언급했었는데, 이 융합이라는 말은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융합은, 완전한 일체나 조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은 이것들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긴장과 모순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의 정치와 외교에서 나타나는 모순적인 태도, 한 가지 예를 들면 외교에 있어서 ‘개입주의’와 ‘고립주의’의 일정 주기적 반복 같은 것이 결국엔 다 하나의 미국적 성향을 토대로 나타난, 동일한 태도에서 나오는 다른 양상, 방식일 뿐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역사적 특성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그 근본이 서유럽에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성향이 같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유럽의 경우 오랜 시대를 거쳐서 ‘역사적’으로 결성되었지만, 미국의 경우 ‘이념적’으로 합의하여 결성된 인위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국민들을 뭉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건국이념, 헌법 제정을 돌아보고 신성화한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 때문에, 미국은 자신의 이상을 과거에 두고 있다. 즉, 그들의 진보나 개혁이란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미국의 좌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은 보수나 진보를 모두 아울러, 기본적으로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 보수나 진보 모두의 기반은 결국 건국이념, 헌법제정에 있는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 과거의 이상적인 토대에서 벗어나는 것, 즉 타락을 언제나 경계한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반감, 즉 보수성과 과거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외부의 것에 대한 반감은 결국 미국의 정치 외교적 태도에 반영이 되는데,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반공주의와 같은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와 같이 항상 외부의 적, 좀 더 정확하게는 미국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을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그를 통해 미국 제국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비미국적인 것에 대해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해서 단죄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캘빈주의’서 오는 선민사상, 우월의식, 소명의식과 같은 것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상당히 두서없이 이야기를 써내려갔으므로 다시 정리한다. 미국의 정치 문명을 이루는 토대는, 공화주의, 자유주의, 캘빈주의의 융합으로부터 나온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라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해를 통해야, 미국의 어찌 보면 모순적일 수도 있고 엉뚱하다 싶을 수도(가장 진보적이고 자유적인 것을 표방하면서도, 상당히 보수적인 정책을 취하는 식의)있는 정치와 외교에 있어서의 정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의문점 사실 나는 미국 사회의 구조의 실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미국에는 현재 WASP 외에 수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와 이미 상당한 사회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사회 기득권층을 획득하였고, 실제로 미국의 정치 외교를 움직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 그들의 힘을 무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의 미국 읽기의 토대를 통해서 봤을 때, 유대인과 같은 외부 세력의 존재는 분명 미국으로서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프로테스탄티즘이 배격하는 대상이며, 그들이 지켜야 할 WASP의 순수성을 해치는 존재이며, 미국의 공화주의적 이상이 타락하게 만들 수 있는 비미국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이 미국의 기득권층에 올라서 있고, 현재 미국 정치와 외교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이 틀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홀로코스트에 관련한 미국 내 유대인들의 전략 덕분에 그들이 미국 사회에서의 기득권과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최호근 교수님의 논문인데,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경우만이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는 걸까? 분명,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느냐에 관해서만도 이슈화 되는 현 상황을 봤을 때 미국에서의 인종주의는 아직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좀 더 생각해 봐야 하겠다. |
| 본 저서는 미국에 대한 기존의 입장들, 예를 들어 선망과 두려움이 섞인 통속적인 시각과 지나치게 개별 현상들의 분석에만 치우친 실증적 시각, 혹은 좌파 쪽의 경제환원론으로부터 한 발 벗어나서, 미국을 하나의 독특한 정치적 문명으로 보고자 한다.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미국은 그리스-로마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구 서구세계와 연관되지만 혈연, 영토, 민족, 역사, 계급 등과 같은 요소보다는 독립 초기의 정치적 담론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나라란 점에서 구 서구와 다르며,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으로 명명된 그 독특성은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 외교 정책의 근본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나에게 저자의 이러한 논지는 애국주의적 미국 예외주의가 외부자적 시선으로 변형된 또 다른(애국과는 상관없는) 예외주의(나는 이를 '자폐증'로 부르고 싶다)로 보였다. 미국의 보수적 애국주의자들이 미국을 타락한 세계로부터 예외적인 것으로 분리시켰다면, 저자는 미국을 그 독특성으로 인해 자폐증에 걸린 나라 쯤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자폐증적 현상은 일방주의가 거친 방식으로 준동하는 미국의 현 상태와 자주 오버랩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부분적으로만 우리에게 유용한 것 같다. 유용한 부분이 있다면 미국의 정치인들이 자국민들에게 행하는 정치적 담론들 속에 나타나는 반복적 행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느는 점이다. 이런 반복을 통해 미국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반복 확인하고 미국적인 것과 비미국적인 것을 분리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시각은 미국 내 정치적 선전(및 담론)이 내부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는 유익하다. 반면 이런 시각은 자칫 미국에서 있었거나 있을지도 모를 유의미한 변화의 조짐들 마저 거의 원형론적 틀 속에서 질식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