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전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여자인것이 한없이우울하고, 아무리 똑똑하고 아름답고 명석해도 단지 남편 하나 잘못만나면 인생 나락으로 떨어지고, 게다가 하나남은 아들마저 망나니짓을 하다 죽지만 남겨두고 간 손녀 보면서 삶의 마지막 위안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보는 내내 우울함과 쓸쓸함이 가득했다. 테스를 읽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
| 이 책은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여중고생들이 읽으면 얼마나 여자의 삶이 비참해지고 처절한지를 느끼게 해주고 그것에 그칠까봐 나는 겁이 날 정도이다. 왜 여자들의 삶은 이래야만 하는가..우리나라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투쟁을 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역사를 그리기보다는 그냥 순수하고 청순가련형인 여자들이 처음에는 멋진 남자를 만나서 아름답고 이쁘게 살것처럼 보이다가 그 이면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데서 그치는 것 같아서 나는 언제나 그것이 불만이었다. 조금 더 투쟁적이고 진취적이고 할말은 멋지게 해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런 이상적인 여성상은 문학에 없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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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최초의 장편 <여자의 일생>은 작가의 처녀 장편소설답게 결점이 눈에 띈다. 객관적 묘사의 장점도 있으나, 묘사 중심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주체, 즉 인물의 생동감 결여의 결과를 가져온다. 소설 진행에 있어서도 주로 외부적 상황에 휘말리는 주인공 잔느의 수동적 반응과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앞서의 묘사중심의 방법과 함께 이중의 인물의 생동감 결여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지루함이다.
소설은 일인칭과 삼인칭 시점이 조화를 이룰때, 소설의 특성인 객관성과 주체의 의지인 주관성이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이중의 객관적 시각이 반영된 이 소설은 활력과 생동감이 저해됨으로써 지루함을 낳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 <벨아미>에서는 주인공의 역할이 소설진행의 주된 동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인물의 수동적 성격이 극복되어짐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소설의 재미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는 처녀작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번역은 좋지못한 걸로 보인다. 직역투의 문장이 안그래도 지루한 작품에 몰입하는 데 어려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여자의 일생>을 제외한 단편 중의 빼어난 작품은 단연 <비계 덩어리>라 할 수 있다.단편 소설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머지는 10페이지 정도 분량의 소품들이어서 그 의미를 깊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21편이나 이런 소품들을 이 책의 후반부에 넣었어야 했는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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