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흔히 정의하는 만화는 십대소녀들의 유치한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학원물이나, 죽기 직전 또는 죽을 때까지 때리고 부시고 결국은 지구를 구하거나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는 요리사, 스포츠맨, 기업인의 삶을 plot으로 하여 300원에서 500원 사이에 하룻동안 집에 가져가서 킬링타임용으로, 혹은 안구운동용으로밖엔 쓸 수 없고, 아니면 만화방이라는 어둠의 소굴에서 동네 양아치, 무슨 무슨 중학교-고등하교의 어떤 어떤 파 애들과 옹기 종기 모여앉아 라면을 간식삼아 엄마 눈 피해가며 앉아서 낄낄거리는 그런 '것'이다. 만화는 문학의 장르가 아니며, 고로 만화가는 문학, 예술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등등. 우리가 만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 사회에서 만화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대충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럼 이건 만화가 아니다. 김혜린은 만화가가 아니다. 불의 검은 우리가 만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고정관념의 틀에도 끼어맞출 수 없는, 김혜린이라는 artist가 혼을 불어넣고 숨을 쉬게 만든 이 시대의 살아있는 work of art이다. 웃기지도 않은 사람들이 할 말 있다고 펴내는 게 에세이집이고, 유행가 따라 부르는 감성으로 펴내는 게 시집인 요즘 세상에 김혜린의 만화가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도 커서 솔직히 별로 강조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 이 책에 대해 그다지 말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사서 읽고 직접 느끼기 전엔 만화에 대해, 김혜린에 대해 논하지 말라. 김혜린의 만화는 '고전'으로써의 가치가 충분히 있기에 다들 죽기전에 한권씩은 사서 자손에게 물리도록 하자. 체홉과 헤세와 셰익스피어를 인류가 전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라 할치면 이건 우리가 다음대에 물려줄 유산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내 오만한 논리가 아니꼬운 사람들은 김혜린 책을 한 권쯤은 산 다음에 비판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