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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수많은 다른 책으로 이끈다. 결국 수도없이 끄덕이다가, 형광펜과 언더라인으로 끝이나버린다. 나는 변했는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볼 참고서 같은 든든한 느낌. 결국 또 밑줄들만 옮긴다. p.33 "그때 난 했는데 지금 넌 왜 못해?"하고 충고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현실적 조건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도덕을 강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라는 현실은 ‘인간이 어떻게 사아야 하는가’라는 이상과는 다르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만을 고집만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만 할 것을 하지 못하는 현실적 조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자기 믿음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기어코 드러낸다. ... 미덕의 핵심은 베풂이다. 그렇다면 악덕의 핵심은 무엇일까? 모든 독점은 악덕이다. 공로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자랑하지 말라. 오직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공로를 잊지 않는다. - [도덕경]중에서 p.47 <중용>에서 말하는 ‘성誠’이 바로 진정성으로서 진실을 의미한다. 진실함을 말한다. ... 진실이란 내면에 간직한 어떤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수행되어 타인에게 전달되어 형성되는 공감의 믿음이다. p.69 맨얼굴이 진심이고 가면이 거짓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은 심오한 마음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향해 어떤 가면을 어떻게 왜 써야 하는가의 문제다. 그것이 가면의 윤리성을 구성한다. ... 누구나 정직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 표현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꾸밈이라는 표현의 형식을 고민하는 이유다. 가면의 꾸밈은 맨얼굴의 진실만큼이나 중요한 형식의 문제다. 과도하게 말하자면 어쩌면 형식이 진실 그 자체일 수도 있다. ... 적절한 거리란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뿐만 아니라 타인의 폭력도 방어해야 한다. ... 무례한 사회다. 무례한 상대에게 도덕적 우월감에 가득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만이 진실을 표현하는 최상의 방식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필요한 것은 맨얼굴의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예의의 합리적인 마땅함이다. 진실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삼고 정직을 기강으로 삼으며 합당한 예禮와 마땅한 의義로 꾸민다. - [순자]중에서 p.153 바르트의 자서전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서는 ‘형용사’를 노골적으로 혐오한다. “형용사화 되고 마는 관계는 이미지의 영역에 속하고, 지배와 죽음의 영역에 속한다.” ... 바르트가 말하는 형용사란 대상을 정의하려는 언어적 규정이다. ... 사랑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랑의 명백함을 가로막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오히려 형용사로 규정해서 스스로 만든 환상의 유희들이다. ... 오히려 상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이 사랑을 가로막을 수 있다. 배움을 연마하는 것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며, 도를 수양하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것이다. -<도덕경>중에서 p.195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많은 사람들은 기업 경영에 이 논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그 어떤 일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를 성취해야 한다. 사소한 요소일지라도 실패하는 영역이 있다면 성공할 수 없다. 과연 그럴까? 시각의 문제다. ... 오히려 불행의 요소가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있다’가 아니라 ‘없다’이다. 차이가 있을까? 태도의 문제다. ... 행복의 요소를 성취하는 데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의 요소가 싹트지 않도록 돌보는 데에 행복이 있다. 돌보지 않으면 썩는다. ... 오히려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의 싹을 돌보는 친절한 자기헌신이 필요하다. 그것조차도 연습이 필요하다. p.202 '초정상 자극 Supernormal Stimulus'이란 것이 있다. 인간의 성적 본능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포르노, 자극적인 정크 푸드와 패스트푸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환상을 자극하는 매체들 등 삶의 영역에서 인지 기능을 혼란시키는 것들을 말한다. 미각도 예외는 아니다. ... 이 시대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배고픔의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 과잉의 불안을 채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인간적 허기를 채우려는 사회적인 욕망이다. 이 은폐된 사회적 욕망의 결핍을 풍요로운 음식으로 꾸역꾸역 채우라고 부추기는 기만적 호들갑이 먹방의 실체다. p.217 굳은살은 집중된 열정과 치열한 외로움이 누적된 훈련의 결과다. 그래서 굳은살에는 외로움과 더불어 어떤 집요함과 아픔이 묻어 있다. p.257 17세기 이탈리아 음악가들은 감동적인 연주를 위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강조했다. 데코로decoro,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그라지아grazia. 데코로는 준비와 노력을 의마한다. 스프레차투라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쉬운 것처럼 세련되게 해내는 것을 뜻한다. 스프레차투라는 데코로 없이 불가능하다. 데코로와 스프레차투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자연스럽게 우아함이 드러난다. 그라지아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위장의 기술이 스프레차투라다. ... 스프레차투라 정신이 발휘되어야 할 곳은 오히려 중년들의 삶이다. ... 잔머리나 꼼수나 대박을 바라는 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스프레차투라의 우아한 기술이 부족한 허접한 모습일 뿐이다. 우아한 행위 뒤에 가려진 자기 통제의 힘든 노력 그 자체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하는 것이 스프레차투라다. p.269 천 길 낭떠러지에 서 본 일이 있는가? 낭떠러지에서 우리는 현기증을 느낀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현기증의 정체는 두려움이 아니라 불안이다. ... 내가 스스로 절벽에서 몸을 던지지 않을까를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허약함을 의식하고 그에 저항하기보다는 투항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 하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주 대로에 쓰러지고 방바닥에, 땅바닥보다 더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이다. -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중에서 니체는 19세기 유럽의 민주주의와 부르주아적 속물성을 지적하며 ‘말인末人,last man’을 경멸했다. ‘말인’이란 현실에 안주하면서 오직 가련한 안락만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열정도 헌신도 없이 세속의 안락만을 살핀다. ...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인 ‘말인’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자이기도 하다. 스스로 경멸하지 못라기 때문에 스스로 몰락할 줄 모른다. 현기증에는 예감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 예감된 미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 의식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 진정으로 강한 것은 나약함이 전혀 없는 단단함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로 몰락하여 타인에게 다가설 수 있는 담대함이다. 상처받을지라도 자신의 나약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되묻고, 그 생각의 논리가 가진 한계와 의도가 가진 진정성이 까발리면서 비판될 수 있고, 그 의도에 감추어진 무의식적 영역까지도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과 위험에 자신의 생각을 전적으로 내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용기가 아닐 수 없다. ... “우리는 우리 삶의 시인이 되려한다.” 니체의 말이다. ...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하는 임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