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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에 그나마 '신경'을 써야 할 건덕지라도 있는 처지의 (남)녀에게, 뭘 해야 한다느니 '숙제'라도 만들어 주는 관습은 물론 일본에서 상술의 일환으로 지어낸 것이지만 밸런타인 데이 자체는 서양의 세시 풍습 중 하나이다. 받은 게 없이 큰 사람은 남한테 베풀 줄도 모르는 법이지만, 화이트데이(급조한 티가 너무도 나는, 이름부터 어색한 '데이'지만 일단 현실에서 남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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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에 그나마 '신경'을 써야 할 건덕지라도 있는 처지의 (남)녀에게, 뭘 해야 한다느니 '숙제'라도 만들어 주는 관습은 물론 일본에서 상술의 일환으로 지어낸 것이지만 밸런타인 데이 자체는 서양의 세시 풍습 중 하나이다. 받은 게 없이 큰 사람은 남한테 베풀 줄도 모르는 법이지만, 화이트데이(급조한 티가 너무도 나는, 이름부터 어색한 '데이'지만 일단 현실에서 남들 하는 대로 즐겁게 어울리는 게 또 뭐 비난할 일인가)에 일거리가 생긴다면 그건 지난 '무슨 데이'에 뭘 받아챙긴 구석이라도 일단 있긴 했다는 소리다.

인생의 어떤 고비에서 관계에 이상한 신호를 안 받게 처신을 잘 하는 인성을 갖추려면, 아무것도 아닌 듯해도 남들 해 보는 것 때 안 놓치고 한번씩은 다 해 봐야 한다. 안 그런 사람은 반드시 엇박자를 내고, 그런 게 누적되어 조직(심지어 가족)으로부터 도태되는 것이다. 이런 걸 만회하려고, 혹은 티를 안 내려고, 터무니없는 데다 과도한 찬사를 갖다붙이며 관계의 결핍을 메꾸려 드는데, 본인은 남 보기에 그게 얼마나 어색한지 자각을 못 한다.

이 영화는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와 함께 이른바 트위스팅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요즘은 어째 많은 이들 사이에서 잊혀진 듯하다. 이무렵의 니콜 키드먼은 전년도에 <물랭 루즈>를 찍었고, 전성기를 살짝 지났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은 매력을 뽐내며, 한편으로는 그녀가 커리어의 어느 시점에서도 유지하는 '무대 배우처럼 열심히, 기본기에 충실한' 연기에 몰입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기도 하다.

리뷰에서 뭐가 반전인지를 알리는 건 테러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이런 잘 알려진 히트작 리뷰를 쓸 때에는 이런 점이 어렵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워낙 많은 유저가 한 마디씩들을 하고 있으며, 예컨대 나무위키 같은 데서는 다수의 사용자들이 여기저기서 퍼나른 정보를 가득 한 곳에 모아 두고들 있다. 그러니 그런 데서 전혀 언급 안 한 포인트를 내 리뷰에, 그것도 시간적으로 한참 지난 뒤에 쓰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뭐든 간에 '최초'가 된다는 미덕이란 이런 이유에서 의외로 중요하다.

이 영화만 해도, 나는 개봉 당시에 상영관에서 봤지만 아직 리뷰를 안 쓰고 있었는데, 늦게나마 뭐라도 적어 보려 하니 이미 남들이 다 한번씩은 짚은 포인트라는 게 사람 김을 새게 할 뿐이다. 평소에 B급이나 망작 리뷰가 많은 것도, 그런 영화에 대해서는 유저들이 좀처럼 언급을 안 한다는 장점이 있어서이다. 아 물론, 이상한, 어디서 실직 루저 같은 찌질한 감상. 낙오자의 감정이입 지점을 짚어내는 게 아니라, 감독이 분명 의도했으나 비평가들이 못 잡아낸 그런 미학적 포인트를 지적한다는 뜻이다.

영화 시작에서 대뜸 그레이스 스튜어트 부인이 '나치가 점령했을 무렵의 이 섬은...' 운운하는 게 많은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만하다. 1차 대전 당시 참호에서 그렇게나 끈덕지게 싸웠던 프랑스였건만, 기세 좋게 선전포고까지 해 놓고도 계속 간만 보다가 적 측의 천재적인 전술에 허를 찔려 불과 며칠 만에 백기를 들고 만 상황. 대륙에 유일하게 그래도 동맹국이라고 믿고 있던 이 '대국'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나마 잔여 병력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퇴각을 완수하는 데에 자축, 자족해야 했던 영국측으로선 이만한 치욕이 또 없었을 것이다. 여튼 이런 영국도, 본토(래봐야 섬이지만)의 일각조차 점령 당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현재까지도) 자부심의 본체를 이룬 사실이었는데, 지금 스튜어트 부인이 '피점령의 추억'을 논하는 이 섬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감독, 각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세팅을 이곳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다. 남들 다 격렬히 저항할 때 도피 혹은 순응을 선택한 것도 '극한의 소외'를 느낄 만한 상황이고(배신자도 아니고 패배자도 아닌, 차라리 어정쩡해서 더 수치스럽고 혼란스러운), 적이 탐했을망정 아군(조국) 측에서는 '없는 셈 친다'는 듯 무시당하는 입장이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남편 찰스가 '남들 다 숨죽여 살 때 구태여 싸워 보겠다고' 가족을 떠난 건, 이 섬에 산다는 자체가 치욕과 좌절의 한 심정적 근원이 될 만한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으로 이해되고도 남는다. 아내 그레이스(키드먼 扮)가 이런 남편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건, 아내로서의 내 존재감이 얼마나 없었기에 저런 추상적인 동기에 더 크게 끌려 남편이 가정을 버리기까지 하나 같은 아픈 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내로서 남편에게 어느 정도 정겹고 충실한 배우자였는지는 이 극 중에서야 알 길이 없고, 남편 찰스가 '그 결단' 이전엔 성실한 남편 구실을 했는지도 단서가 없다. 다만 이렇게 해석해야 부인이 왜 극단적 선택(스포일러)를 했는지, 플롯 정당화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조국으로부터 버려진 것인가, 아니면 영리하게 승전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 나름 유용한 구실을 하는 중인가? 그레이스 스튜어트 부인은 '주부, 아내, 어머니'로서의 정체감에 주로 혼란을 겪었으나, 명시적으로 의식을 했든 못 했든 그녀가 겪은 극한의 방황에는 어쩌면 채널 제도 주민 전체를 대변하는 이런 고민이 마음 한 자락에서 상처가 곪는 한 몫을 했지 않았을까. 나의 이런 추측을 방증하는 다른 단서로는, (지금부터 스포일러) 죽은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언제나 이 집에 터잡고 살면서(살면서... 라고?) 마치 동시대인인 양 '연기'하는 두 노인의 존재가 그렇다. 이들은 스튜어트 부인이 겪은 극단의 비극과 맞먹을 만한 무슨 한이 남아 채 죽지도 못하고 저택을 배회하는 것일까? 답은, '채널 제도 주민'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던 결핍의 정체성이, 결국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저런 서글픈 운명을 낳았다는 쪽이다. 심지어 이 두 노인은 양차 대전을 겪어 보지도 못한 '옛날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리뷰의 결론은 뭐라는 것? 발, 화 데이 제대로 못 즐겨 본 이들은 죽어서 죽지도 못하는 귀신 된다는 소리?ㅋ)

s****o 2023.04.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