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에 널리 회자된 푸르트뱅글러를 무턱대고 아무 음반이나 접하다간 십중팔구 오해하기 마련이다. 지휘계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푸르트뱅글러, 그의 "진짜 연주"가 뭔지 절반이나마 즐긴다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자주 호사가들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것도 당연하단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얌전하고 재미없는 '스튜디오 녹음'(그것도 모노)들만 접하면 과연 푸르트뱅글러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는 커녕, 오히려 형편없는 지휘자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건데 ? 도이치 그라모폰이 푸르트뱅글러 한정세트를 발매한다고 하였을 때 "구하기 어려운 전쟁 녹음"이 최신음질로 리마스터링되어 끼어있겠구나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고로 여기에 수록된 녹음들은 힌데미트 작품만 빼놓고는 모두 감상해본 것들이다. 푸르트뱅글러 연주의 기준은 역설적이지만 전시(戰時) 녹음이냐 아니면 전후(戰後) 녹음이냐이다. 카라얀이나 토스카니니라면 상황에 관계없이 변함없는 품격을 유지하겠지만, 푸르트뱅글러는 똑같은 작품도 하루차이로 판이하게 해석하는 것이 특기였으니까. 그의 진가는 '전시' 녹음이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가 압권인데 히틀러 생신 축하 기념 연주회의 9번 연주를 들으면 희망을 노래하는 그 교향곡이 절망으로 달려가면서 극도로 광포해지는 데부터 분노와 진노가 무언지 가늠할 수 있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과 9번,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번, 브루크너 교향곡 5번, 바그너 서곡의 실황연주들‥ 질좋은 오디오로 들어보면 그 지겨운 모노음질 속에서 '현대'에선 찾아볼 수 없는 조화로운 부조화에 가슴이 떨릴 수연들이다. 고전성을 지키면서도 그 형식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푸르트뱅글러의 해석이 전쟁이란 상황 때문인지 정신없이 질주하는 광기와 만나 마치 폭격기 같은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폭발하는 광경들‥ 영상물을 보면 알겠지만 전시연주의 관객들은 애꾸눈이거나 기브스를 하는 등으로 막 전장에 다녀온 부상병들, 공장에 강제동원데 노역하는 일꾼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총체적인 '작품'을 감상하면서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그렇다고 전후녹음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EMI에서 GROC로 발매 중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 베토벤 교향곡 9번, 1952년도에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1번(베를린필), 1947년에 베를린필 복귀 때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5번, 1948년에 연주한 격정적인 브람스 교향곡 4번, 그리고 DG 오리지널 시리즈로 발매된 슈베르트 교향곡 9번과 슈만 교향곡 4번 등은 각 작품의 '필청반'이자 '애청반'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째서 이 한정반 세트에는 그런 명연들은 수록되어있지 않단 말인가 ? 특히 브람스 교향곡 1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경우는 동곡 최고의 연주로 손꼽히면서도 시중에서 음반으로 구하기 어려운 경우인데 이를 끼워넣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 결국 일본에서 로컬발매한 비싼 음반으로 구해야한다는 얘기일까 ? 푸르트뱅글러의 진수와 정수를 느끼고자한다면 - 필시 전쟁녹음시리즈를 구하시길 바란다. 최근에 나온 엽기적인 레이블 XXCM의 음반들도 음질이 다소 떨어져도, 이렇게 알맹이 빠진 전후녹음 시리즈보단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바다. 단적으로 말해 이 세트에서 건질 것은 "바그너"와 "차이코프스키" 밖에 없다. 참고로 yes24 클래식 코너에서는 푸르트뱅글러의 정수가 담긴 음반을 고려해주셨으면한다. 예컨대 일본 현지에서 자체적으로 리마스터링하여 로컬발매한 음반을 수입한다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