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이 책의 저자인 로완 제이콥슨의 글쓰기를 칭찬하며 리뷰를 시작하여야겠다. 환경이나 과학에 대한 비문학쪽의 저술들 중에 일부는 자칫 딱딱해지거나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스스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글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핵심을 전달하면서도 독자들의 흥미를 유지시켜나가는 글쓰기 능력을 가진 과학저술가는 정말이지 다재 다능한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잣대로 보면, 이 책의 저자의 글쓰기는 특이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수준있는 단어들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군더더기 없이 전하고 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리처드 도킨스는 달변의 정치가라 할 것이고, 르완 제이콥슨은 훈훈한 옆집 아저씨라 할 수 있다. 헌데 그 옆집 아저씨가 한가로운 주말 저녁에, 흥미롭고 가슴 아프기까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자연의 먹이사슬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예는 실로 많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태학적 경고는 무수히 많았고, 그런 경고가 인류의 복지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대표적인 예가 지구 온난화일 것이다. 부시 정권이나 2MB 정권과 같이 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나가는 정부에서는 환경에 대한 경고는 일종의 걸림돌일 수 있다. 단기간의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해 내어야 할 희생정도 일 수도 있다. 단지, 긴 기간동안 이루어진 자연의 변형이 자연 자체의 복원력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용수철의 탄성계수가 생각난다. 일정한 힘 이상이 가해지면 용수철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부시나 2MB 의 증손자, 손녀 정도의 세대에서 그들을 비난하게 될 상황이 닥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삶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북극곰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눈에 잘 보이는 동물이고 친숙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북극곰에게 맞춘 자연의 감시 기능을 벌들에게 맞추고, 최근 전세계적으로 벌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심도있게 진단하고 있다. 얼마전에 언론을 통해 접한 뉴스가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걱정도 있었는데, 그 뉴스가 바로 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계기도 그 뉴스였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벌들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아직도 과학계가 통일된 이유를 밣히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허탈하기도 하지만, 양봉 산업의 유지를 위해 철저히 자본주의식 논리로 접근한 연구나, 순수한 의도에서의 연구나 모두 벌들의 사회인 봉군 붕괴 현상에 대해 한 명의 범인을 잡는 것에 실패하였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고로 간단 명료한 것을 선호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뉴튼이 바라 본 세계가 실제로는 틀렸지만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을 뉴튼의 물리학으로 바라 보았을때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오차뿐이라는 사실과,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사실때문이다. 하지만, 물리학의 실체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양자 역학이듯이, 봉군 붕괴 현상의 원인도 그리 간단하지 만은 아닌 것이다.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한 과도한 살충제 사용, 기생충 및 바이러스의 발현, 유산균과 같은 긍정적 균류의 파멸, 지구 온난화, 기업형 양봉이 가하는 과도한 스트레스등의 제반 원인들이 각각의 근거와 함께 제시되는데 어느 것 하나도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벌들의 면역 체계는 약해지고만 있다는 것이다. 힌트가 되는 것은, 인간이 고안한 벌통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벌통 구조를 사용할 경우, 극적으로 벌들의 상태가 양호해진다는 사실인데, 이는 수지에 맞는 대량 생산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선택될 수 없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더 나아가 보면, 벌을 걱정할 것인지, 벌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유산균류의 소멸을 걱정할지, 해당 유산균의 건강을 지탱하는 벌의 먹이들의 건강 상태를 걱정해야 할지(이는 대부분 살충제에 노출된 꽃가루등이 원인이 된다) 이야기가 결론이 안나고 만다. 그만큼 자연은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고도의 시스템이라서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사실, 그런 시스템일수록 어는 정도의 부분 복원력이 있는 법인데 지금 인류가 가하고 있는 대량 생산이 요구하는 압박은 복원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듯하다. 공룡의 멸종을 야기한 운석에 의한 지구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낸 멸종의 속도보다, 최근 100년 동안 인류에 의한 멸종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적으로 이런 멸종은 눈에 보이는 생물체에 대해 국한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균류, 곰팡이류, 곤충류와 같이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생명체까지 포함한다면, 인류가 야기하고 있는 파괴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가 될 것이다. 미래 어느 시점에 우리의 후손들이, 과일과 곡류, 견과류가 없는 또는 수십만원 하는 사과가 1개 있는 아침 식사(벌이 사라짐으로 도래한 결말)를 하면서, 우리를 원망하며 나약한 육체로 비참한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최근 벌이 겪고 있는 비참한 징후들을 지금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결말을 저자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냄으로써, 책의 목적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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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관련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양봉이 하고 싶어진다. 꿀은 물론이고 단 음식은 무조건 싫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꿀이 넘치는 달달한 식사가 떠오른다.
벌은 그저 성가신 곤충에 불과했다.(내 생각에는;;) 그것들이 모든 박과 채소와 과일과 아몬드, 즉 가루받이하는 모든 식물의 결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신선한 정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놀랐다. 나는 신기할 정도로 무신경하게 그 작은 동물을 봐왔던 것이다. 그냥 벌하면 꿀, 꿀하면 곰, 곰하면 푸우~ -0-
꿀벌의 실종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꿀벌이 실종되고 있는 현상황을 말하고 있다. 어느날 때로 죽어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 어느 날 갑자기 벌들이 사라진 것이다. 성실하게 일해온 벌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황.
그 상황은 양봉업자에게 절망이고, 그 절망은 단순한 양봉업자의 파산이 아니라 농업을 흔들리게 하고 가격경쟁력을 무너뜨리며 우리밥상까지 위협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환경오염, 살충제, 외국에서 옮겨온 바이러스., 꿀벌 응애. 모든 것은 그럴싸해 보이고 모두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일 정도로 치명적인 것은 없다. 모든 요인들이 다 꿀벌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며, 아몬드 경작을 위해 수 킬로를 달려오는 꿀벌의 피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피곤한 벌에게 인간은 꿀을 숨기고 옥수수 시럽으로 배를 채우게 한다.
이러한 꿀벌의 실종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 것이다.
대안은 없는가
저자는 꿀벌실종이 가지고 올 위협과 현재 꿀벌이 없어 사람이 직접 가루받이를 하는 상황들, 삭막혀버린 밥상을 이야기한다. 몇 몇 양봉업자들은 심각한 지금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이득을 잠시 잊고 벌과 함께 공존하는 행복한 지금의 모습을 유지기위해 연구한다. 그 대안으로 러시아벌을 연구하기도 하고, 여왕벌을 연구하기도 한다. 또한 벌통 구조를 바꾸기도 하고, 먹이를 바꾸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벌이 스스로 상황에 맞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하고 벌의 특성을 이해해 벌의 일상에 무리가 되지 않게 해야한다.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가장 희망적인 연구는 벌의 특성을 알고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벌을 키우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난 생각은 벌을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생할하고 삶의 섭리를 따라 행동하는 벌을 가까이 두고 취미 양봉을 하고 싶다. 우리 집은 아파트 단지인데.. 단지 뒤 뒷산을 따라 올라갔다가 산책로를 벗어나 고개를 넘으면 양봉업을 하는 아저씨가 산다. 직업이 뭔지는 모르지만 조그맘게 양봉업을 하신다.
그런 양봉업. 자연과 공존하는 매력적인 취미가 아닐까. 책의 말미에는 취미양봉을 위한 팁들이 나온다. 엄마가 시골에 땅을 사서 몇 년 후에 귀농을 하신다는데 양봉업을 추천해야겠다. 나도 같이 내려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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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으로서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는지 모른다. 그저 삶의 터전과 수단, 나와 공생하는 무생물의 대명사 정도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 치열한 삶을 사는 나에게 안락함을 가져다준다. 하물며 주변에 사는 나비, 잠자리, 벌, 사마귀, 무당벌레 등의 곤충의 하찮음을 말해서 더 무엇하랴.
음식을 위해 집단으로 부엌구석에 등장하는 개미는 처단의 대상이고, 밤불의 향에 몰려드는 나방, 각다귀, 하루살이들도 마찬가지. 전기로 태워 죽이는 장치가 사람들에게 편안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벌집이라도 생기면 119를 불러서 제거해야 마음이 편하고, 파리모기는 집안에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집 주변까지 단속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아야 마음이 편안할 정도다.
내가 사는 이곳 농촌에서는 이런 곤충류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다. 작물을 재배하는데 필연적으로 이놈들과 마주치게 되고 ‘돈’이 될 귀중한 작물을 나누어 먹자고 덤비는 놈들은 반드시 박멸해야 속이 시원해진다. 마치 그들과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약통’에 약을 장전하고, 마스크와 모자를 둘러쓰고 밭으로 향한다.
벌레가 잘 죽지 않는 것 같으면 약을 ‘독하게’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분명히 100배 희석해서 쓰라고 해도 농민들은 미덥지 않다. 50배, 30배로 희석해서 강력한 효과를 원한다. 하지만 가만있을 ‘벌레’도 아니다. 몇몇 생존자들이 ‘내성’을 가지고 번식하면 그때엔 그 약으로 효험이 전혀 없다. 이 때 사용되는 것이 죽음의 ‘독약 칵테일’이다.
농민들은 그냥 약을 섞는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생태계 영향과 효과가 전혀 검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운기에 여러 약을 들이 붓고 넓은 밭에 뿌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막막해진다.
2006년 11월 플로리다의 한 양봉농장의 벌들이 사라졌다. 이어서 이런 ‘사라짐’ 현상이 미국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2007년 봄까지 북반구의 꿀벌의 1/4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양봉가들은 대개 심한 자책을 해대며 맨 처음에는 자신이 게을러서 응애 예방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응애가 봉군에 들끓었다면 죽은 꿀벌들이 벌통 문 앞에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쓰러져 있어야 옳다. 애벌레 방에는 응애가 가득하고 벌집 바닥에도 응애 시체가 흩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죽은 꿀벌은 없었다. 그는 바닥에 손을 짚고 무릎을 꿇은 채 양봉장 바닥을 기어 다녔다. 땅에 얼굴을 바싹 대고선 조그만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벌’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자. 지구상의 식물들은 매년 자신의 자손을 번식한다. 이때 식물의 종류에 따라 열매 맺는 과정에 차이가 있는데,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실어서 암술에 묻게 만들거나, 곤충이 꿀을 먹기 위해 자신의 몸에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옮기면서 수분을 하거나, 많지는 않지만 새가 도우미가 되는 경우와 흐르는 물에 의한 경우 등이 있다.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정확한 매개체는 곤충, 그 중에서도 부지런하고, 같은 종의 꽃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며, 자신의 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곤충이 바로 ‘벌’이다.
우리가 먹는 과일, 곡식, 채소류의 대부분이 벌이 없다면 먹기 힘들어진다. 지금 우리나라 과수농가에 가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이 인공수분이 이루어진다. 애초에 인공 수분하던 것들이 아니다. 전에는 대부분 벌이 일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수원과 벌을 키우는 양봉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벌이 집단으로 죽어나가는 일들이 벌어지자 점차 유기농을 하고 있는 한적한 농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이제는 양봉업의 규모도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다시, 플로리다의 벌들의 집단 사라짐으로 돌아가서, 이를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연구가 이루어 졌다.
피의자로 등장한 것은 휴대전화(전자파의 영향), 유전자 조작 옥수수, 초단파 송신탑, 지구 온난화, 오존층의 구멍, 살충제와 항생제(벌에게 설탕과 항생제를 먹인다), 꿀벌 응애, 영양실조? 자 이렇게 난무하는 원인들로 오히려 더 복잡한 듯 느껴진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펼쳐지는 책의 내용은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의문의 죽음, 사라진 사체, 세기말적 분위기, 그리고 계속 드러나는 범죄자들.’ 저명한 과학자가 수사를 시작하면서 이 미궁에 빠진 사건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나, 정황과 일부 유전자로 판명된 바이러스성 질환 때문이라는 결론도 다른 근거에 의해 반박되면서 유야무야 흘러 간다.
반면, 양봉업자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원인은 살충제였다.
‘이미다클로프리드에 대한 연구가 왜 이토록 많이 이루어질까? 년 프랑스에 가우초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프랑스 꿀벌들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이 되자 150만 개였던 꿀벌 봉군이 100만개로 줄어들었다. 이 살충제를 만든 바이엘 사 과학자들이 내놓은 설명을 들어보면 께름칙하기 그지없다. “ 이 사태의 특징은, 벌들이 무기력해져 움직이지 못하고 벌통 바깥의 땅으로 모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벌들이 경련을 일으키고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방향감각을 잃는 바람에 개체 수가 줄어든다. 병에 걸린 벌이 돌아오더라도 입구를 지키는 벌에게 공격을 받는다. 형태학상으로 볼 때 병든 벌은 뱃속이 시커멓게 손상되어 있다. 꿀벌 봉군 3분의 1이 이런 증상을 보인다.’
이미다클로프리드는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살충제의 주요성분이다.
‘이미다클로프리드가 성공을 거둔 이유에는 체내 침투성 살충제라는 점이 한몫을 했다. 식물 속으로 스며들어 줄기, 잎, 뿌리 등 식물 조직 전체에 퍼지기 때문이다. 이 식물을 먹은 벌레는 죽는다. 이 물질은 비가 내려도 씻겨 내려가지 않고, 게다가 농작물에 뿌릴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씨앗을 담갔다가 파종을 한 식물이 자라나면 그 속에 약품 성분이 가득 들어차게 된다.’
책을 읽다가 나는 위의 대목에서 지뿌러진 미간과 함께 ‘윽’하게 되었다. 작물을 심기위해 사게 되는 대부분의 종자는 붉은색의 약제로 ‘소독’이 되어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신경쓰지 않았다. 썩지 말라고 해 놓은 것일까 정도 였다.
심고 나서 완전 ‘유기농’으로 키웠기 때문에 식물체에 대한 그 어떤 의심도 해 본적이 없었다. 다만 혹여 땅이 오염되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곤충에 대한 원천봉쇄를 위한 ‘독약’이었다니. 이런 침투성 약제의 문제는 식물체 전체에 스며 있고 심지어 꽃가루에 까지 농축된다고 한다. 이를 먹은 곤충 뿐 아니라 벌들(벌은 꿀만 먹는 게 아니다)도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럼, 사람은? 그 약을 만든 회사에서야 아무런 해를 미치지 못하는 미량이라고 하나 사람도 그 식물과 과일을 먹고 몸 안에 축적되는 약제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는 것 아닐까. 충분히 의심은 해 볼만 하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CCD가 발생한 벌통, 대조군 벌통, 과수원의 사과를 가루받이 한 벌통에서 나온 꽃가루와 밀랍 시료들을 분석한 결과 193개의 시료에 살충제가 남아 있었다. 43개 종류의 살충제가 발견 되었으며, 5가지 물질대사도 있었는데 이 물질은 살충제가 분해될 때 생긴 물질로 살충제의 독성보다 더 강력하다고 한다. 화학약품도 있는데 침투성 살충제가 14가지, 곰팡이 제거제가 14가지 , 그리고 제초제가 6가지 였다.
“알고 보니 벌은 그런 화학약품을 잘도 집어삼켰습니다. 벌의 몸속에 들어간 살충제 가운데 일부는 이미 오랫동안 뿌려지지 않았던 성분입니다. 어떻게 흡수했는지가…….흥미롭습니다.”
‘흥미롭다’기 보다는 ‘경악스럽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하다.
‘바이엘, 바스프, 다우, 몬산토, 듀폰, 신젠타 같은 화학약품 재벌사들은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이 회사들에는 자사 신제품이 자연 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른 독성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검사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 상호작용에 관한 검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데서도 안 한다.’
슬슬 조바심이 난다. ‘침묵의 봄’이 경고한 새조차 울지 않고 곤충과 나비가 없는 시절은 다행히 아직 오지 않았다. 그녀가 경고한 DDT등의 약제사용을 금지했지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독약’들이 도처에 존재하고 ‘자연’을 통해 확장되어 가고 있다. 점점 축적되고 있는 위험이 한꺼번에 우리를 수렁에 빠지게 하지는 않을까.
‘독약’에 대한 경고를 넘으면 단일경작에 대한 위험성, 유기농 재배지역의 불안정하고 비경제적인 것 같지만 장기적인 건강함을 사례를 통해 이야기 한다. 벌로 대표되는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오만이 우리 스스로를 파멸의 길에 들어서게 할 수 있음을 나지막이 경고하는 저자는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 자연과학 소설을 보는 듯 세련된 문장들로 나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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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상자텃밭에 상추와 함께 고추를 심었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자랐던 상추와 달리 고추는 비실비실 거렸다. 꽃이 피나 싶었으나 열매가 달리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매만져 줘야만 했다. 그조차도 효과가 미비했으니, 겨우 달렸던 고추는 성장을 거부한 채 메마르기에 바빴다. 아파트 베란다였으니 비 바람을 곧이곧대로 쐬는 노지에 비해 환경이 열악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비나 벌 등의 도움이 전혀 없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부터 곤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곤충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온갖 결실도 가능하단 사실을 배웠다. 어린 시절 벌에 쏘여본 바 있는 사람으로서 벌의 존재가 달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눈앞에서 알짱거리거나 귓가에서 ‘윙’ 소리가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는 한다. 그렇지만 벌, 그 중에서도 꿀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와 닮은 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느 개체보다도 꿀벌 집단은 체계적인 분업 모드를 갖추었다. 여왕벌은 후대를 위한 생산 활동에 열을 올린다. 애벌레를 양육하는 데 전적으로 힘을 쏟는 집단이 있고, 향긋한 꿀이 있는 장소를 향해 날아다니는 벌들도 있다. 서로의 역할은 각기 다르지만 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의외로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의 생존은 개별 개체 차원이 아니다. 제멋대로 날아오르는 것 같아 보이는 활동으로부터도 조금만 눈여겨본다면 일종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모습에 반해서 양봉 산업에 뛰어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적잖은 돈을 벌 수 있는 꿀을 얻기 위해 벌을 기른다. 꿀이 양봉 산업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면 열매를 맺는 작물을 기르는 과수원의 입장에서도 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벌들이 오가며 꽃가루를 날라 옮겨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식탁은 각종 인스턴트식품만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단다. 건강한 애벌레들이 벌집 안에 가득함에도 주변에 벌들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응애에 의한 피해인줄로만 짐작했다. 1990년대 꿀벌 응애가 기승을 부려 봉군을 싹쓸이 했던 바가 있으니 이는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는 짐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었다. 만약 응애가 범인이었다면 죽은 꿀벌의 잔해가 벌통 근처에서 발견됐어야만 한다. 꿀벌은 죽은 게 아니라 증발했다. 대체 무엇이 원인이란 말인가. 저자는 꿀벌이 사라진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 짚어본다. 언급된 대부분이 인간의 인위적인 조치였다. 꿀벌이 보다 빠르게 성장해 직접적인 꿀 생산에 가담할 수 있게끔 만들고자 했던 영양제 등이 꿀벌 말살(!)의 원인으로 의심을 받았다. 기생충 제거를 위해 사용했던 강력한 살충제가 꿀벌에게도 위해를 가했을지 모른다는 주장 역시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였다. 아직까지는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다양한 유전자변이 제품들에 대한 의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결정적인 확신을 주진 못했다. 원인을 알지 못하니 해결책의 도출은 요원했다. 결국 꿀벌은 멸종하고, 우리는 삭막한 식탁 앞에 앉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만난 커크 웹스터라는 인물로부터 희망을 발견했다. 사실 웹스터의 방식은 너무도 고전에 가까웠다. 그는 꿀벌의 생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인간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한 아무런 시도도 행하지 않았다. 그의 벌통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제거하고자 했던 응애가 존재했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라면 그의 방식에 반기를 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자연의 약육강식은 인간의 방법과는 많은 측면에서 달랐다. 개체수가 잠시 줄어드는 듯도 했지만, 응애로부터 살아남은 꿀벌은 건강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개별 꿀벌이 건강했기에 집단으로서의 꿀벌 역시 건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인류는 과도한 발전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너무도 지나치게 발전을 지향하다 보니 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를 방증하는 것 중 하나가 꿀벌수의 감소이다. 인간의 도움이 없어도 이미 꿀벌은 여느 종보다도 높은 생산성을 지닌 종이다. 그런 꿀벌에게 인간 특유의 과도한 생산성을 강요한 결과 인류는 농업 전반에 걸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다행이도 아직 늦지 않았다. 의미도 모른 채 무작정 돌아가기에만 바쁜 쳇바퀴의 속도를 조금은 늦출 때가 도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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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의 종이 1종이라고 한다. 대량생산을 위해 단일종(그로미셀) 광작하게 되면서 치유불가능한 전염병인 파나나병이 발병하여 카리브해 연안국에서 재배하던 그로 미셀이 전멸하였고 이후 대만을 중심으로 그로 미셀보다 맛도 없고 영양가도 떨어지지만 파나나병에 내성을 가진 캐번디시 단일종 재배를 하여 또 다시 변종 파나마병이 발병하여 대만에서 70%가 전멸하였다고 한다. 언제 바나나가 사라질지 모른다. 아무리 강하고 유전조건이 우수하다 해도 종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질병에 적응할 짝이 없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20초마다 1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고 한다. 생물종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역시 다양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한번 사라지면 복원이 불가한 것들, 세계 도처에서 위기의 징후가 포착되고 있으나 아직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멸종의 속도를 지연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휴대폰을 벌집안에 넣었을 경우 벌의 GPS기능이 마비되어 집을 찾지 못하는 벌이 늘어나는 것은 확인되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군집붕괴현상(봉군붕괴현상, 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의 근본 원인이 전자파는 아니라고 한다. 휴~ 휴대폰 없는 세상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러나 사용을 자제하는 것도 꿀벌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현실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치료방법이 없는 낭충봉아부패병(囊蟲蜂兒腐敗病)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토종벌의 90%이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무척추동물인 벌은 수명이 짧은 곤충인 탓에 후천적 면역을 갖추지 못해 치료제 개발조차 불가능하다. 단지 예방적 치료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니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미국 플로리다의 양봉농장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는데 일시적인 사건이라 여겨졌지만 세계 각국에서 이와 유사한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 목격되면서 다양한 원인을 두고 연구를 했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플로리다에선 세계 아몬드 공급량의 70% 이상을 단일 경작하고 있으모 화분 매개를 위하여 미국 전역의 양봉가들이 집결하는데 이곳에 다녀온 벌들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업과 생태계에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식물 중 40% 정도가 곤충이 수분(受粉)을 해주는 충매화(蟲媒花)이고, 이중에 80% 정도를 벌이 담당하고 있는 관계로 벌이 화분(花粉)매개를 하지 않으면 기형과일이 열리거나 농작물 수확량이 급격하게 줄어 과수, 채소, 화훼농업에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희망적인 사실은 연해주에서 들여온 러시아벌을 활용하여 문제해결책을 모색하는 양봉 전문가의 접근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몬드 수분을 위한 벌의 집단 장거리이동에 따른 스트레스, 식물이 흡수하고 토양에 남아 있게 되는 살충제 등이 누적되어 상승작용을 일으켜 군집 붕괴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많이, 보다 편리하게를 외치며 살아온지 100여년이 흘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겉모양 생활은 더 나아졌을지 몰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이 생물종이 사라지는 지구,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구로 변하게 만들고 있다.
아침 방송에서 배 과수원을 하는 젊은 농부가 인공 수분을 위해 일일이 배꽃을 먼지털이개 비슷한 기구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아몬드 재배지역이 확대되는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화분 작업을 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통당 비용을 지불하여 전국의 양봉농가를 모아서 처리하는 것을.. 개미와 꿀벌을 연구한 과학서를 보고 참 대단한 군체동물이란 생각을 하였는데 1억년 이상 식물과 공진화를 하고 있는 곤충들 특히 꿀벌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곤충에 의해 화분을 하지 않는 식물도 있겠지만 그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갖가지 문제점을 보았지만 곤충이나 꿀벌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생각되니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존경스럽다. 단일 농작물 재배가 더 확산되고 종의 다양성 파괴가 더 심각하게 확산된다고 하니 심히 우려스럽다. 오늘 식탁에 풍성하게 오른 과일, 채소가 꿀벌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 이상 꿀벌들이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대안적인 농법, 대안적인 삶의 자세를 실천하며 살아야겠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없다. 물론 혹자는 인간의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한번 사라진 생물종은 두번 다시 복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역사가 에베레스산에 잠깐 내린 눈이 쌓이는 정도의 시간이지만 그 폐해는 실로 말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의 저변에 우리 인간이 자리하고 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꿀벌이 모두 사라지면 인간도 지구상에 발딛고 살아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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