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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가정에서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아마 하숙생이란 말이 가장 맞을 것 같다. 아침 일찍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고, 또 대부분의 날들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잠들어 있기 일쑤이다. 가장의 책무가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이란 명제에 밀려 오늘의
아버지들은 그저 돈을 버는 기계로 변해버린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희미하기만
하다. 어쩌다 시간이 난다 하여 아이들과 놀아보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의 마음 속에 아버지의 존재는 함께 놀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닌, 돈을 버는 사람으로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이 있지만 외로워하는 아버지들이 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외로워지는 아버지, 그리고 한없이 추락하기만 하는 아버지의
위상 앞에서 우리는 '아버지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의 아버지들에게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저자가 조선의 아버지들에게 시선을 돌린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선의 아버지들이 모든 사회문제를 가족의 윤리,
즉 아버지와 아들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풀려고 했고, 또 하나는 그들이 남긴 그러한 유품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선의 아버지들을 추상적으로 알고 있다며, 그는 열두 명의 조선의 아버지들을 통해 그 답을 찾아 나선다. 그가
찾아나선 아버지들은 성리학자인 김숙자, 유계린, 김장생, 박세당, 퇴계 이황과 김인후, 임진왜란
당시의 충무공 이순신과 이항복,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그리고 영조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길어지자 두 아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아내가 보낸 낡은 치마폭을
잘라 만든 서첩 <하피첩>에는 이런 아들들에 대한
걱정이 담긴 편지가 들어있다. 그는 효제를 신신당부하였으며, 근검한
생활을 강조했다. 특이한 것은 서울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강조한 대목이다. 형편이 어려우면 서울근교에서 살아가라고 한 것은 아마 자신이 유배지에서 느낀 문화수준 차이를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다산의 편지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가
아들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여느 아버지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퇴계 이황은 살림살이와 공부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말기를 아들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거듭 타이르고 훈계하였는데, 주로 편지를 이용했다고 한다. 대놓고 하면 잔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있기에 아마 편지를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아내가
죽고 자식들이 어머니의 묘소를 지키고 있을 때 예법보다 자식들의 건강을 먼저 챙기는 박세당의 편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최고의 스승이자 세상에 다시없는 친구로 서로에게 공경과 예의를 다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딸
들에게 하염없는 사랑을 준 김인후, 자식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이순신 등, 책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선비들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과 집안의 명예를 지키며, 세상일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는 고금의 차이가 없음을
조선의 아버지들은 보여주고 있다. 현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주로 편지를 이용했으며, 그리고 훈계보다는 자신이 몸소 실천을 함으로써 모범을 보이고자 했다.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들을 보면서 세상일을 배웠고, 자신에게 닥친 세찬 시련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면서 자신이 받은 교훈을 세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조선의 아버지들은 결코
시대의 과제를 회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가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벼슬살이에 연연해 하지도 않았고, 목숨을 내놓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한 그들의 당당한 태도가
아들들에게 크나큰 교육이 되고,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그들은 공(恭)과
경(敬)을 실천했다. 공은
자신을 낮추고, 경은 남을 높이는 것이다. 밖에서는 물론이고
집안에서도 아내와 자식, 심지어 노비 등에게도 그러한 삶의 자세를 견지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을 포함한 일체의 사물에 진심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갑자기 불어 닥친 풍랑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부장적 사회구조였던 조선시대의 아버지들은 한없이 엄격하고 권위적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아버지들 역시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자식들을 잘 키울지에 대해 성찰했다. 결국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우리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낸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내가 하고 있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는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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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버지'라는 이름은 꽤나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단어는 존경의 대상이자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처가 되는 말이기도 하고 심지어 지긋지긋한 단어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아버지가 다르기에 복잡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부자관계만을 살펴보더라도 여전히 복잡한 게 사실이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어릴 때에는 종종 아버지와 충돌했다. 특히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도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나도 40에 가까워지면서 정면 충돌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이제 시골로 돌아가셔서 농사를 짓고 불을 때는 아버지를 보노라면, 이전과는 다르게 아버지를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짠한 감정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여전히 짜증이 날 때도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다행히(?) 그 짜증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기에, 나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께 상처를 드렸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그야말로 '무난한' 관계로 접어들고 있다. 어쨌거나 개인차를 고려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아버지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2017년의 아버지는 어떤 단어인가? 여전히 '권위'라는 단어는 떼어놓기 힘들 것이다. 다만 그 권위의 맥락이 단어 그대로가 아닌, 부정적인 의미에서 쓰일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아버지들의 어깨는 항상 무언가에 짓눌려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가정 안에서조차 존경을 받고 있지 못하는듯 하다. 자식을 따뜻하게 안는 법,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는 법을 배울 수 없었던 많은 아버지들은, 외롭다. 그렇다. 오늘날 아버지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가장 대표적인 감정은 '외로움'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자주 드리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아버지께는 그만큼 연락을 드리진 못한다. 대체 왜?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가부장제의 권위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그 이야기는 다시 또 조선의 부자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교 사회의 엄격한 수직적 부자관계. 그 '전통'이 현대사회의 아버지들을 외롭게 만들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아버지라고 해서 무조건 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인간이었기에, 형식은 조금 다르다하더라도 자식 걱정을 하고, 또 자식의 모범이 되기 위해 나름 몸가짐을 바로 잡았다. 이 책은 조선 시대 12명의 아버지를 살펴본다. 우리의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잔소리꾼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걱정이 많기도 한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면서,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저자의 내공 덕에 생각보다 접근하기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매우 쉽고 재미있게 조선의 아버지들과 만날 수 있다. 꼭 아버지라는 키워드가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양반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접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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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 " 이벤트에 당첨되서 받은 책이예요!! 배송이 좀 늦어져서 많이 기다렸던 책이예요~ 책을 받고 나서 딱~ 뜯었는데 강렬한 주황색이 눈을 사로잡았어요 사실, 이 책을 받기 전에는 "하얀색"의 표지를 상상했었어요 ㅋㅋㅋㅋ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는게~ 아 이렇게도 자식들을 사랑하고 정말 자나깨나 자식 걱정인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는 즐거움이! 근데..참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책에 있는 조선의 아버지들.. 아마 그 아버지들이 이야기를 귀 기울이고 따르려고 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상호 작용이라고 할까요?? 근데 지금은 그런 신뢰자체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아마도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닮은 듯하면서도 많이 달라서 그렇겠죠..;; 그 시절에는 해야할 일도 한정적이고 자녀의 교육이나 그런 부분은 거의 다 집에서 이루어지고 같이 있는 시간도 많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많았던것 같아요... (이것도 그냥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제일 힘든 시간 속에 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지금은 어렸을때부터 공부에 쫓기고 우리의 삶을 제대로 고찰할 시간도 없고..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더더욱 (사실 어렸을때도 항상 늦게 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렸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신뢰가 없이 일방적인 관계가 되 가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더 더욱 멀어지게 되고.. 이 책을 읽어보니 예전의 아버지는 인내심이 깊었던 것 같다.. 뭔가 자녀들의 잘못된 점을 교정하려는 것보다는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려주는 것 같다.. 아마 자녀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런거 아닐까? 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들에게 대하면 변한다는.. 부럽다.. 그런 신뢰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결론은.. 결국 행동인것 같다.. 말보다는 그 사람을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그 대로 행동하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 정말 말 그대로 자신에게 충실하도록" !!!! 이게 최고의 조언이었던 것 같다~ 이 책 자체도 너무 고압적이지 않고 조용하게 그 당시의 상황과 그 사람들이 처했던 그 상황등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 그 속에 사랑을 가득 담고 있는 것 같다!! 오랫만에 마음 따뜻해지는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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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아버지는 말보다는 묵묵하게 그 그림자로써 우리를 대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무뚝뚝함으로 자체를 인정할수 밖에 없이 과거의 오랜 시간동안 남자들을 그렇게 배워온 둣 하다. 말보다는 침묵으로써 자녀를 대하고 늘 모든 양육의 주권은 어머니란 존재속에서 살아숨쉬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게 한다 하지만역사속에서 진정한 아버지다움인 뭔지 궁금하게 된다 요새는 놀이를 즐겨하는 아버지가 대세이기에 그러한 아버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직장에 쫏기듯 다니어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행복과 많은 기준을 제시하는 그 무언가는 개인차가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선시대에서도 아버지들은 사회와 가정생활속에서도 그들의 위치에 불안암과 유기적인 관계를 통감했기에 보다 본질적인 역활을 넘어서 유교적 시대에서 벗어나지않으면서도 아이와 유대관계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였던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이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우린 기존에 양육을 어머니들께 몰아주지 않았나 싶지만 아버지도 나름 양육을 했던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이책속에 인물들을 제시해서 본격적으로 역사속 탐구를 할수 있다.
이책에서는 열두명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잘한 아버지도 있었다면 처음으로 아버지를 하다보니 실수도 하고 잘 하지 못하여 관계가 망쳐진 아버지도 등장한다 아버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
우리가 익히 조선의 유별난 아버지라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정약용이라고 할수 있다.유배지에서도 부인과 아들들에게 꾸준히 편지를 통해 아버지의 역활을 한 인물로써 많은 것을 가르치고작 노력하게 만들고자 하여 많은 이야기를 편지로 오간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을 넘어서 이황과 그리고 박세당과 그 당시에도 이혼을 한 김숙자와 스승의 역활과 아버지의 역활 그리고 친구같은 역황르 해낸 김장생부터 우리가 영웅이라 칭한 이순신의 아버지로써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비극적인 부자의 삶을 살았던 영조까지 좋은 본보기부터 이렇게 해서는 안돼는 아버지까지 조선시대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 속에서 아버지의 상을 찾아내고자 했다. 역사속의 뒷이야기처럼 그들의 숨은 고뇌와 역사의 일로만 알고 있는 그들의 가정사까지 조금씩 들어내다본 그들의 아버지의 역활은 짠내가 나도록 슬픈 이야기도 있다. 유배를 가서도 놓을 수 없는 자식교육, 사화와 당쟁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자식의 앞길을 걱정하는 우리의 조선시대의 아버지 모습을 보니 역사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가능성을 넘어서 이러한 부성애가 알지 못하고 유교 사관속에서 그들이 사회아 맞닥들려서 싸우면서도 고뇌속의 인생살이를 볼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버지라고 생각할수 있는 상황을 역사속에서 풀어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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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빛낸 효성스러운 아들딸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눈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의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먹을 것이 떨어지자 제 살을 베어 부모를 먹인 자식,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 년 동안 묘를 지킨 자식의 이야기는 동네마다 집안마다 하나둘씩 있다. 조선을 빛낸 아들딸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율곡 이이와 이매창 등 조선을 대표하는 관료와 예술가를 키워낸 신사임당,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라'는 말을 남긴 한석봉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에 반해 조선의 아버지들 이야기는 들어본 것이 없다. 있다 한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불행한 부자 관계뿐이다. <조선의 아버지들>을 쓴 과학기술교육대학교 교수 백승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왕따'에 가까운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울 것을 제안한다. 물론 모든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유교 원리를 지배 체제로 택한 조선 사회에선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아야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심청전>을 보더라도 심 봉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꽃다운 딸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심판을 받지 않았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만을 감시하고 자식에게만 효성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15세기 성리학자 김숙자와 유계린, 16세기 성리학자 이황과 김인후, 명장 이순신과 명재상 이항복, 17세기 김장생과 박세당, 18~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이익, 정약용, 김정희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11인의 아버지들과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행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영조의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이 책에 소개된 아버지들은 조선 시대 선비 하며 떠오르는 엄격하고 고루한 이미지와 다르게 자상하고 다정하다. 이황은 자녀들에게 잔소리 대신 편지로 가르침을 전했고, 김인후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딸을 위해 비통에 찬 시문을 남겼다. 이항복은 아들과 손자가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친히 작성했고, 박세당은 병약한 아들이 눈에 밟힌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익은 자식들이 자신의 제사에 지나치게 공들이는 것을 염려해 검소하게 제사 지내는 법을 유언으로 남겼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며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정약용은 아내가 보낸 낡은 치마폭을 잘라 <하피첩>이라는 서첩으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의 교훈을 전했다. "하늘은 게으른 이를 미워하여 벌을 내린다.", "의복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족하다.", "음식은 목숨만 연장하면 된다." 등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지는 교훈 중에서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마라"는 교훈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죄인이라서 벼슬을 못한다고 시골로 내려가면 '문화(文華)'로부터 멀어진다. 지금은 폐족이지만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도모하라는 정약용의 당부가 애처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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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교 사회였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의 행동만 감시했다. '효성을 다하는가?' 이것만 문제 삼았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과 무책임 따위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많았다. 엄부(嚴父)가 넘쳐났고, 자부(慈父)는 드물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자녀에게 존경 받았던 아버지들이 있었다면 믿겠는가?
저자 백승종님은 조선의 아버지들을 대표하여 12명을 소개한다. 완벽학 아버지상은 아니다. 남다른 자녀에 대한 사랑을 지녔던 이들이다. 물론 지나친 사랑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아버지 영조는 빼고.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황에게 중국 사신이 물었다. "조선 성리학의 계통은 어떠합니까?" 이황의 대답은 이러했다. "정몽주는 길재에게 전하고, 길재는 김숙자에게 전하고, 김숙자는 그의 아들 김종직에게 전하고, 김종직은 김굉필에게, 김굉필은 조광조에게 전하였습니다."(93)
김숙자는 15세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들 김종직은 아버지를 깊이 존경했다. 아들이 존경하는 아버지다!
구두쇠에 가까웠던 이익. 그는 일체의 오락을 피했다. 담배 피우는 것도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며 당연히 반대했다. 그의 아들은 이맹휴, 이병휴가 있었고 손자 이삼환은 실학을 집대성한 이다.
사화를 통해 가문이 초토화되었던 유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가십훈'을 통해 자녀들을 올곧게 키웠다. 유희춘이 그의 아들이다.
천재 예술가 김정희는 서자 김상우를 특별히 아꼈다. "난을 치는 법은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우니라.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제대로 되는 것이다." 독서와 학문이 부족하면 그림에든 글씨에든 선비의 기상을 담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정희의 난을 치는 삼전법은 아들 김상우와 집안 조카인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을 통해 후세로 이어졌다. (165)
이순신은 탁월한 문장가였다. 18세기 북학파 이덕무는 그를 조선의 명문장가라고 했다. 이순신는 자녀 양육관에 대해 이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식을 가르치려고 들다 낭패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순신은 결코 그런 적이 없었다.절조를 지키며 몸가짐을 꼿꼬사게 견지했다. 이순신의 자손들 가운데서 나라의 동량(棟梁, 대들보)이 여럿 나왔다. (189~190)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는 이순신이 큰 그룻임을 알아본 재상들이 있었다. 유성룡, 이원익, 정탁, 김명원, 이항복 등이 그를 전후좌우에서 발탁하고 지지해주었다.(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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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빛낸 효성스러운 아들딸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눈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의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먹을 것이 떨어지자 제 살을 베어 부모를 먹인 자식,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 년 동안 묘를 지킨 자식의 이야기는 동네마다 집안마다 하나둘씩 있다. 조선을 빛낸 아들딸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율곡 이이와 이매창 등 조선을 대표하는 관료와 예술가를 키워낸 신사임당,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라'는 말을 남긴 한석봉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에 반해 조선의 아버지들 이야기는 들어본 것이 없다. 있다 한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불행한 부자 관계뿐이다. <조선의 아버지들>을 쓴 과학기술교육대학교 교수 백승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왕따'에 가까운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울 것을 제안한다. 물론 모든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유교 원리를 지배 체제로 택한 조선 사회에선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아야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심청전>을 보더라도 심 봉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꽃다운 딸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심판을 받지 않았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만을 감시하고 자식에게만 효성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15세기 성리학자 김숙자와 유계린, 16세기 성리학자 이황과 김인후, 명장 이순신과 명재상 이항복, 17세기 김장생과 박세당, 18~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이익, 정약용, 김정희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11인의 아버지들과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행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영조의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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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식당에 갔을 때 아이들이 뛰거나 떠들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왜 그런가, 서양 학생들보다 우리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하는데 왜 국가경쟁력은 뒤처지는가, 우리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도대체 왜 일본을 그리 미워하는가, 좌파나 우파에게 상대방은 일본과 비슷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런 감정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의 답은 교육이다. 나도 그 답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떤 방식의 교육 때문인지 원인을 몰라 답답하다. 우리는 그런 (좋은 면에서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확신이 없어 우왕좌왕한다. 식당에서 조용히 해야한다고 가르치지만, 이러다가 아이 기 죽이는 건 아닐까, 자신의 교육 방식에 의심이 드는 순간 모든 게 흐지부지된다. 아이들은 부모 언행의 세밀한 변화를 눈치채고 덩달아 불안해 한다.
<조선의 아버지들>이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까, 이런 기대감을 가졌다. 물론, 단 한 권의 책이 의문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런 책이 있다면 성경 못지 않게 많이 팔렸을
것이다. 책은 고추 모종 지지대처럼, 생각이 쓰러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의 아버지들>은 교육에 대한
생각 정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일찌기 맹자는 좋은 부자관계가 되는 법에 대해
충고했다. 아무리 가까운 부자간이라도 '책선(責善)', 즉 좋은 일을 행하라고 상대에게 권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군자가 자기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가?"라는 제자 공손추의 물음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현실적으로 안 되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올바른 것을 가르치는데, 자식이 올바른 것을 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될 것이며, 화를 내면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식이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나에게 올바른 일을 하라 하시면서 아버지 자신은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않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부자간에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이보다 더 큰 불상사가 없다."(233쪽)
이것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답이 아닐까. 옛날
선비들은 자식을 맞바꾸어 친구의 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자식 교육에도 마찬가지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 인물의 자식들은 아버지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역사 인물들은 자기 자식이 자신보다 더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였겠지만,
'강약약중강약' 어디선가 들은 말처럼 만사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 게 자연의 섭리인 모양이다. 세계를 통틀어 부모와 자식이 대통령을 지낸 집안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그건 교육이 아닌 시스템의 덕분이 아닐까.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재미난 공통점을
발견했다. 열두 명 중 세 명을 빼고 모두 장수했다는 점이다. 그 세 명도 유계린, 이순신, 김인후이다. 모두 열심히 일하고 책도 많이 보았을
텐데도 그 당시 평균 수명을 훌쩍 넘은 것을 보니 몸과 머리의 사용은 수명과 별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의 뇌를 해부해보았더니 절반은 치매에
걸린 뇌 상태였다는 연구결과를 들은 적 있다. 하지만 그 절반의 사람들이 모두 치매를 앓은 것은 아니었다. 지성의 힘과 의지만으로도 치매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독서하고 고민하는 것이 자식교육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첩경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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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역사와 특히! 조선시대에 관해서 관심이 많고, 특히 '조선의 아버지들'이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유명한 정약용부터 훌륭한 위인들, 그리고 마지막의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역시 마지막부분의 영조의 이야기는 정말 다시 읽고 많은 생각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처음에는 영특하고 다음 차기 왕으로 손색이 없을정도였는데,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도 사도세자 만큼은 안다고 할 정도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은 정말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그의 이름에 사도가 붇었고, 또한 그의 죽음을 어린시절 지켜보았던 아들 정조 이산이 훌륭한 왕으로 손꼽힌다. 사실 역사를 아는 누구나 영조의 출생신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서 오랫동안 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왕이며, 또, 극악무도한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의 내용이나 역사를 잘 몰라도, 특히 영화로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있는 '사도' 영화를 보면, 사도세자의 어린시절부터, 영조의 기대와 그리고 실망감 등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기 떄문에, 사도와 영조 그리고 아들 정조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이 책을 읽으면 확실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나 또한 많은 생각을 느끼게 했던 영조의 이야기였다. 사도세자의 불우한 인생과 아버지 영조의 살해계획, 그리고 힘든시절을 보낸 아들 정조 이 3대의 이야기는 비극적인지, 극적인지 딱 한마디로 표현을 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흥하기 힘들어지고, 점점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어 결국 정신병도 오게되고, 세자로서의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자, 이러한 부분을 보면서 영조만이 아닌 사도세자 본인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 짐작이 가게 되었던 것 같다. 영조 또한 친아들을, 그리고 첫째가 죽은지 8년만에 태어난 아들을 죽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할 수 없는 그의 선택이었고 이 또한 최선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예전에 알고있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영조가 무조건 옳다고 명확한 해답을 내리기도 애매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독할 수 있어서 좋은 도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