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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으나 너무 먼 위대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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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슬픈 열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그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자신감은 없으나 많이 감탄하고 놀라웠던 느낌은 지금도 갖고 있다. 내가 그 책의 무엇에 감탄했던 것일까 새삼 생각해 보니, 기득권자라면 당연히 가지게 마련일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대한 나의 편견에 충격을 받았다는 점과 이런 사람이 인류의 사상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에 괜히 내
"가까이 있으나 너무 먼 위대함에 대해" 내용보기
오래 전 '슬픈 열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그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자신감은 없으나 많이 감탄하고 놀라웠던 느낌은 지금도 갖고 있다. 내가 그 책의 무엇에 감탄했던 것일까 새삼 생각해 보니, 기득권자라면 당연히 가지게 마련일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대한 나의 편견에 충격을 받았다는 점과 이런 사람이 인류의 사상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에 괜히 내 마음이 든든했다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 비롯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어떻게 하여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책의 소개글에 마음을 빼앗겼던 탓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레비스트로스와 디디에 에리봉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레비스트로스가 어떤 집안에서 자랐으며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좋아하였는지, 또 부모님이 어떤 분이었고 어떤 동료와 어떤 선생님들을 만났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한 사람의 위대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배경들이 필요한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라면서 갖게 되는 색다른 지적 호기심이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게 여기는 엉뚱한 호기심에 그 사람만의 독특한 자질과 능력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남들과 차별적으로 대우받았던 경험 또한 레비스트로스에게는 삶의 새로운 방향 하나를 제시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실패와 좌절들도 레비스트로스에게는 실패와 좌절로 남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경험의 극복 과정이 레비스트로스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할 수 있는 삶과 학문 세계로의 길은 온전하게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이름으로만 들었던 세기의 지성인들과의 만남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읽을 때면 읽고 있는 내 자신이 그저 대견스러울 따름이었다. 공부를 한다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더없이 큰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정말 이런 분들에게는 공부할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 가장 큰 안타까움이리라.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뿌듯한 것일 테다.

[인상깊은구절]
대혁명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가 추상적인 사상에 의해 지배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사실은 습관과 관습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습관과 관습을 이성의 맷돌에다 갊으로써 오랜 전통에 의해 형성된 삶의 방식들을 분쇄해 버리고, 개개인을 상호 교환적이며 익명인 원자 상태로 환원시켜버렸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의 구체적인 내용밖엔 가지고 있질 않아요. 그것은 소규모의 소속과 소규모의 연대 사이의 균형에 의해 형성되어 있어요. 이성적이라 불리는 관념은 이에 끈질기게 대항하고 있어요. 이론적 관념이 극한에 이르고 나면 상호간에 파괴하는 일만 남게 되지요.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3.06.28.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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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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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송태현 /도서출판 강   현대 구조주의의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프랑스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기자이면서 여러 지식의 매개자 역할로서 잘 알려져 있는 디디에 에리봉과의 대담집이다.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레비스트로스의 인생 회고록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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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송태현 /도서출판 강


  현대 구조주의의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프랑스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기자이면서 여러 지식의 매개자 역할로서 잘 알려져 있는 디디에 에리봉과의 대담집이다.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레비스트로스의 인생 회고록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은 그의 논문집인 『멀리서 본 시선』이라는 논문집에서 따왔다고 보여지며

그 논문집의 제목은 일본의 전통 연극인 노(能)의 창시자인 제아미 모토키요의 글에서 빌려왔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제아미 모토키요는 말하길,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관객이 연기자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른바 “멀리서 본 시선”이란 표현을 사용했어요.

평생을 민족학에 열정을 바치면서 일관되게 유지해온 ‘멀리서 바라보기’라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기까지 두 번씩이나 채용 시험에서 낙방을 하는 과정을 비롯한 여러 여정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치열한 논쟁거리가 되었을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난날의 물음에 답하는 형식을 빌어, 이제는 웃으면서 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인양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여러 평가에 대해서는 ‘돈키호테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박해받는 자들의 옹호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나는 돈키호테주의의 본질이 현재 너머에 있는 과거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끈덕진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훗날 레비스트로스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혹 존재한다면, 난 그에게 이 열쇠를 제공하고 싶군요.


  우리는,

그를 인류학자로서 분류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인류학자가 아닌 민족학자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민족학자로 부름 받기를 원할 정도로 민족학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슬픈 열대>나 <친족의 기본 구조> 등을 말할 때에도 그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와는 전혀 다른 민족학적 관점에서 씌어졌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이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면서도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남미 브라질 여러 지방들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하고 또 여러 자료를 채집, 수록, 분류, 편집하였던 사실들을 환기시키면서

도서관의 여러 자료들을 참고 삼아서 학문을 개척해 나가는 역사학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민족학에 대한 긍지는 다음의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씌어진 증언에 의거하고, 따라서 의식적인 표현에 의거하고, 민족학은 관찰한 실제 생활의 배후에서 이를 지배하는 매커니즘을 발견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함께 역사가의 비판을 의식하여, 민족학자의 연구대상이며 역사가 없는 곳인 차가운 사회와 역사가의 연구 대상인 뜨거운 사회라는 개념을 따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차가운 사회는 무질서를 거의 초래하지 않고 원래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사회로서 역사도 진보도 없어 보이는 사회이며 뜨거운 사회는 이와 반대 개념으로서 현대 서구사회가 그 전형이다.


  그는 역사의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부정하면서 간접적으로 역사학에 대한 그의 인식을 말하고 있다.

역사는 늘 인간들이 예측하고 추정한 것과는 별개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변수와 매개 변수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신적인 오만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된 이래 1982년 퇴임하기까지 평생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온 몸을 바쳐 왔으며

프랑스 지성계에서 루소 이후에 가장 박식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레비스트로스가 철학사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유럽 전역에서 탈구조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각국에서는 그의 연구들이 재평가되면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것은 그가 이룩한 업적들이 지닌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그는 평생을 몸 바쳐 연구했던 그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 곁에 또 다른 신화가 되어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1.07.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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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탐구의 열정적 관찰자 레비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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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탐구와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열정적인 노력가 레비스트로스.. -인류학이 마치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기를 바랬을지 모르지만, 정답은 그게 아니라고 담담하게 속삭여주고 있는, 관습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구열정을 가진 레비스트로에 대한 회상은 어떨지요? 야생적 사고와 슬픈 열대의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하듯이 문자없는 사회의 종교행위(사회존속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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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탐구와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열정적인 노력가 레비스트로스.. -인류학이 마치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기를 바랬을지 모르지만, 정답은 그게 아니라고 담담하게 속삭여주고 있는, 관습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구열정을 가진 레비스트로에 대한 회상은 어떨지요? 야생적 사고와 슬픈 열대의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하듯이 문자없는 사회의 종교행위(사회존속유지)의 해방구로서의 민족의 다양성과 상대주의에 대한 환멸감으로 인해서 바로 몇십년후 속히 도래할 산업화에 따른 자멸처럼 말이지요. 정보화 산업화로 개별적 특성의 문화가 자꾸 자멸하는 것으로 간다면 안될 것이라.‘구조인류학’에 대한 대중적인 의미보다는 전문가그룹이 사회와 폭넓은 연대를 가져와서는 철학가들과 사회학자들, 역사학자들이 주목하고 해석하였듯이, 현재의 국가, 사회조직체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석과 반응(종교적인 의미까지 확장될 수 있는 방어적인 행위들-예를 들면, 좌우대립에 의한 이념가치 도치, 빈부격차로 인한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 진보를 가장한 비인간적 전체주의, 쇼비니즘과 같은 단견적인 행위)들의 확장사태에 대하여 어두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자못 두려운 여운이 남게 합니다..

[인상깊은구절]
... 그러나, 푸코에서처럼 자신이 증명하는 바를 미리 선지하고서 사상사학자적 입장에서 그 주장을 입증할 내용자료를 탐구하는 듯한 그런 자세와 레비스트로스는 달랐지요. 왜냐하면 그는 한 사회만을 연구한다거나, 서구세계 몇세기만을 개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서구세계와 다르고 멀리 떨어져있는 문화의 경험을 연구하기를 갈망하였던 사람이었고, 그에 반해 미셀 푸코는 그가 속한 문화, 그것도 과거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리고 프란츠 보아스의 문화적 상대주의와 지적 엄숙주의에 대하여 레비스트로스는 생각을 달리하였으나, 그에게서 나온 頭지수의 환경적 영향의 작용이란 형질인류학의 지적과 민족집단 사이에 해부학적 차이들이 점차 사라지고 어린이가 성장하는 속도의 리듬의 차이도 마찬가지라고 밝힌 것은 획기적인 것이며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보아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어요. 언어학면에서도 비인도유럽 언어를 인도유럽 모델에다 결부시키려는 시도가 헛된 것임을 이해하게 된 것도 다 프란츠 보아스의 덕택이라고 하지요. 또한 소쉬르가 견해로 표명한 것이 아니라, 보아스에서 간접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 ‘언어의 법칙은 무의식 수준에서 발화주체의 통제바깥에 존재 작용하며 그 법칙들을 다른 사회적 사건을 대표하는 객관적 현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도 그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요. 문화들에 대하여는, 특히 진보 개념과 문화상대주의를 화해시키고자 레비스트로스는 어떤 시기와 장소에 어떤 문화들은 ‘움직이고’ 이에 반해 다른 문화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움직이는 문화들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상황들이 불평등이 아닌(불평등하다고 선언해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 서로 다른 문화들간의 협력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붙입니다. 그리하여 문화들이 서로간에 차용하고 애써 대립하면서 움직여 문화들이 서로 풍부해지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주장합니다. 단일문화란 말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그런 사회가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태초의 시간에서부터 모든 문화는 끊임없이 섞이고, 빌려오고, 혼합하면서 형성된다고 하지요.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그는 얘기합니다. 정교한 예술과 잔인한 풍속이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는 인류사에서 수많은 예를 찾아낸다 하여도 인류학이 그에 대한 모든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고. 아마도, 우리가 화두로 붙잡고 계속적으로 생존하며 연구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레비스트로스의 회고록;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중에서
YES마니아 : 플래티넘 l****8 2006.08.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