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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이 소설같지 않으랴. 더욱이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에 붙인 제목이 [누더기]라니, 너덜너덜 하고 구질구질한 느낌을 주는 제목을 택한 이유가 무얼까. 이 소설이 장장 12년에 걸쳐 탄생됐다 하니 내 안의 물음표는 자꾸 커져만 갔다.
1부는 어머니의 생을, 2부는 나의 생을 그렸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삶을 던져 놓고 관찰하며 바라보는 듯이 서술한 시선은 2인칭 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참 특이한 형식이다. 1부 어머니의 생에서는 어머니가 감내하며 살아내야 했던 모든 삶의 모순들이 지나치리만치 적나라하게, 그러나 잔잔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녀 안의 세세한 감정들, 그 미묘한 변화들이 읽는 내내 내 심장을 파고 든다. 그녀의 아픔이 곧 내 것이 되고, 금새 벅찬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그녀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처했던 환경이 만들어 내는 삶은 곧 족쇄이자 잃어버린 꿈의 파편이 된다. 가난한 농가에서 첫째 딸로 태어난 '어머니'는 그렇게 원치않는 삶을 살다 원치않는 죽음을 맞게 된다. 2부에서 그려지는 그의 모습 역시 아픈 그림이다. 태어나 한 달 만에 친엄마의 손을 떠나게 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게 되지만 끊임없이 사랑에 목말라 하며 혼자임을 못견뎌 한다. 방황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애틋함으로 다가온다. 그를 바로잡아 숨쉬게 만든 건 문학에의 갈망이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원했던 배움에의 갈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 모두 그에게로 스며들어 되살아난다. 그가 만약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렇고 그런 가난한 여인네의 삶을 답습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가 아들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 그로인해 어머니의 삶이 다시 살아나게 됐으니 말이다.
2인칭이 주는 생소함도 잠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나는 이 [샤를르 쥘리에]라는 사람의 글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앙드레 지드]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나쁜 문학을 한다' 고 [샤를르 쥘리에]를 조롱했다 한다. 삶이 곧 문학이며, 문학이 곧 삶이라는 [샤를르 쥘리에]의 작품에 들어가 보니 이 작가 참으로 진지하다. 적어도 삶이라는 주제 앞에서 참으로 완강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어느 작가가 삶의 치열함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생의 시와 같다. 이 소설이 아름다운 운율을 가지고 있고, 내 심장은 뛰고 있어서, 그 운율에 맞춰 내 심장의 울림이 머리로 전해진다. |
| 책에 대한 광고나 소개에 현혹되어 충동구매를 자주 하는 편인지라 이번에도 역시 한국 출판계 현실에 다시금 쓴맛을 다셨다. 일반 책 크기로 편집했다면 100페이지면 족했을 분량을 크기를 줄이고 여백을 늘려 200페이지로 늘리고 하드 케이스를 씌워 책값을 올린다. 이제는 직접 책을 보고 살 수 없는 인터넷 서점에서 계속 구입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는 갈등에 사로잡히게 된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소설이라는 광고에 비해 작가의 자전적 내용을 다루었다는 이 소설은 극히 평범해 보인다. 문학 작품에서 2인칭 시점을 흔히 볼 수 없다는 점과 작가가 그 나라에서 얻고 있는 명성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출판되었겠지만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12년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를 이 짧은 소설에 형상화하였다지만 참혹한 전쟁을 겪은 우리 나라의 불쌍한 전쟁 고아의 스토리에 비하면 작가는 복받은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이 이 책에 100% 몰두 할 수 없는 빌미를 제공하는지도 모르겠다. |
| 수많은 외국소설들 중에서 왜 이 소설을 번역하여 출간했는지 알 수가 없다. 출판사에서는 샤를르 쥘리에라는 작가가 프랑스 문단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작가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데올로기나 작가의 문체나 전달하는 정서나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소설의 특징으로는 2인칭 화법으로 쓰여졌다는 것 뿐인데, 누보로망 계열의 미셸 뷔토르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 비하면 별 의미 없어 보인다. 소설의 그 비극적 내용이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라지만, 독자에게 전달되는 비극성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번역문이기 때문일까? 역자의 거슬리는 번역투 때문에 감성적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모든 외국소설들의 번역하여 소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국내에 소개하는 소설들은 어느 정도 독자를 배려하는 출판사의 원칙이 필요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