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 (Jacques Lacan)의 유일한 논집 <에크리 Ecrits>를 바탕으로 인간 욕망을 분석하는 책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
![]()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그 결여를 분리하여 자신에게 고백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 책 속에서
![]()
![]()
"인간이 죽음을 넘어서 주체를 욕망한다는 것은, 죽음을 생명으로 살리려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주체가 요구하는 인간의 삶은 수많은 거세를 거쳐 존재하는 삶을 알게 한다. 그 느낌의 주인이 되려면 나르시시즘의 욕망을 거세해야 한다." - 책 속에서
![]()
![]()
![]()
![]()
|
|
(서평)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 윤 정 지음 성경 말씀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는 말씀이 있습니다. 웬일인지 얇은 분량의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잠이 와서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이 힘들고 어려워서라는 것은 아니다. 난 이 책을 읽으며 정신분석학적 사랑에 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윤정’은 자기소통상담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며 심층심리분석가입니다. 대학에서 법을 배우고 성직자로 있다가 사임을 하고 다년간 상담을 통해 가장 근본적이고 솔직한 의사 표현은 언어보다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해체심리학과 상실철학을 창안해 냅니다. 그가 말하는 상실철학은 상실당한 상처를 찾아 사랑으로 수용하고 스스로 상실시킨다는 주체적 상실(Losing myself)의 해체구조라고 말합니다. 상실당한 성처 속에 내담자의 진실한 감정이 마물러 있기에 감정과 사건을 정신분석학으로 분리하여 상담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자끄 라깡(Jacques Lacan)’은,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골라주 스따니 슬라스에서 고전과 인문학 교육을 받고 빠리 의과 대학에 들어가 1932년 망상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4년 국제정신분석학회로부터 제명을 당한 후 빠리 프로이트 학파를 창설하였고, 과학과 철학을 넘나들면서 진리를 욕망하는 주체에 대한 윤리적 대안의 정신분석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 윤정은 이런 자끄 라깡을 정신분석의 사상가라 칭한다. 이 책은, 총 134쪽의 비교적 짧은 책이다. 서문에서 “나는 50여 년간 신앙 생활을 해 오면서 생(生)의 롤 모델인 예수를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라깡을 강의 하면서 그 생각에 대한 윤곽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예수가 왜 인성(人性)에서 신성(神聖)이 되었는지를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구성은, 낙원(Paradise), 거세(Castration), 나르시시즘(Narcissism), 승화(Sublimation), 동일시(Identification), 초자아(Superego) 여섯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 각 부분마다 말씀, 분석, 욕망, 성찰, 묵상으로 되어 있다. 말씀의 부분은 성경 말씀에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부분을 선택하였고, 그 말씀을 통해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거쳐,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성찰과 묵상을 통해 예수의 사랑에 관해 설명해 가고 있다. 거세(Castration)의 정의를 “거세는 죽음 속에서 태어나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삶을 통해서 자아의 주체를 요구하는 세계이다. 거세는 상처를 통해 자아의 주체를 사랑할 삶을 욕망하는 원인이다”라고 한다. 창세기 3:2~7까지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자아를 최초의 자아라고 정의 하고, 욕망은 비밀과 진리와 구조가 같다. 드러나지 않는 삶의 욕망만이 욕망에 머물고, 드러난 요강은 소외와 결여를 일으켜 또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의 주체가 욕망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다. 라고 말한다. 진실한 사랑은, 소외와 결여로 주체를 욕망한다는 것이다. P. 27에 등장하는 거세에 관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탯줄거세(탯줄을 끊는 것으로 탯줄의 상흔과 태반의 상실을 지닌 거세)를 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구강거세, 항문거세, 성욕거세, 언어거세, 죽음의 거세를 겪는다고 말한다. 이 거세 중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거세는 탯줄거세와 죽음거세라고 한다. 이 두 가지 거세를 어떻게 전달해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라깡과 저자의 정신분석학이라고 밝히고 있다. P. 36에서 탯줄거세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탯줄거세로 인해 엄마로부터 떨어진 아이는 두려움 속에서 선악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엄마 젖을 좋은 것과 나쁜 젖으로 양분해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구강거세부터 아이의 관심이 엄마에게서 타자로 향하게 되고, 스스로 배설의 욕구를 해결하면서(항문거세) 엄마와의 분리가 더욱 강화된다고 여긴다. 이 항문거세를 거치면 이제부터는 품안의 아이를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할 때라고 한다. 이 부분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드의 발달이론, 즉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성기기 등을 다른 측면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게 된다. P. 47에서 마태복음 4:1~13까지에 등장하는 예수의 세 가지 시험을 이겨냄을 통해 먹고 싶은 욕망, 성스럽다는 욕망, 세상의 욕망을 거세시킴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를 통해 형성된 주체가 세상 속에서 진실한 사랑을 증거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시험 받음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성경신학적이라기 보다는 예수를 그리스도가 아닌 참된 인간으로 바라봄으로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P. 116에 정신분석학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고백한 예수의 삶을 분석한다. 예수는 성령의 탯줄거세와 성욕거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와 나르시시즘 유혹의 거세를 통해 욕망의 주체를 사랑으로 선언하고 있다. 언어의 의미를 거세시키면서 영원한 생명이고 싶은 사랑을 회복시키고자 하며, 마지막 거세인 죽음의 거세를 통해 생명을 욕망하는 하나님 사랑의 완성을 보여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를 말하고 있지만, 지극히 신학적이 아닌,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예수를 말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바라 본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사랑이 왜 아름다운 것이며, 왜 사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자끄 라깡과 윤정의 정신분석학적 인간분석의 예수, 그리고 그의 사랑, 왜 예수는 그렇게 사랑을 욕망하는 가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욕망은, 진실한 만족을 추구하는 힘으로 그 힘이 구조물을 짠다. 예수는 근원적인 힘을 진실로 본다. 예수는 진실한 주체를 가지기 위해서 나르시시즘의 상상적 욕망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상징계의 세상에서 진실한 삶의 모습을 빛과 소금처럼 보여주고자 하였다. 빛은 영원하고 소금은 부패한 것을 처리하는 방부제이다. 예수는 세상 속에서 상처 받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랑의 생명을 만날 수 없음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랑을 말하기 위해 예수의 삶은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정신분석학의 진리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말해지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가세 앞에서 생명을 요구하는 예수 사랑은 죽음이 생명이고 싶은, 인간의 간절한 욕망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의 사랑은 생명의 주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완전한 표상인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적 측면으로 바라 본 예수의 사랑에 관한 연구는, 참 새로운 시도요, 신선한 발상이었다고 여겨진다. |
|
자크
라캉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가 프로이트, 구스타프 융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해 말하고 연구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의 저서에 대한 책소개가 많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런지, 슬라보예 지첵과
같이 자끄 라깡에 대한 연구에 몰입하는 이들을 통해서 자끄라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되고, 그의 삶을 투영하게 된다. 또한 그가
정신분석 학회에서 제명당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
이 책은
시인이며 심층심리 분석가인 윤정의 책이다,
그전에 저자의 책, <4박5일 감정여행>을 의미있게 읽었기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이 <정신분석학이 사랑의 존재를 답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내용 그대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예수가 왜 인성(人性)에서 신성(神聖)이 되었는지를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는 말이 그 부제를 뒷받침한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14개의 글로 이루어졌는데, 성경 말씀을 한 가지 뽑아낸 다음 그 말씀에 대하여 ‘분석’하고 ‘욕망’하고, ‘성찰’의 과정을 통하여 ‘묵상’에 이르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욕망’이란 과정이 특이한데, ‘정신분석학에서 욕망이란 진실하게 만족하는 것이고, 결여와 소외를 사랑으로 채우고자 하는 생명의 힘’이기에, 저자의 글 중에서 의미있는 부분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한 나의 투쟁
저자의 전작 <4박5일 감정여행>을 아주 의미있게 읽었던 것이 탈이었을까? 그것도 싑게
이번 책은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 어렵고, 길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게 된 것은, 나의 독해력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글, 어찌 어려운지, 나의 독해력을 넘어서는 글을 많이 보았다.
해서 여기 이 책에서 투쟁적으로 읽었던 몇 개의 문장을 소개한다.
<자신을 사랑할 자아의 주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14쪽) - 문장 B
이 문장이 앞의 문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단서가 없어서 더 어렵다.
앞의 말은 이거다.
<선악이라는 이원적 구조에서 자신을 억압하거나 타자를 억압시키는 분열된 구조 속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 문장 A
문장을 다시 순서대로 읽어보자.
<선악이라는 이원적 구조에서 자신을 억압하거나 타자를 억압시키는 분열된 구조 속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 문장 A
<자신을 사랑할 자아의 주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14쪽) - 문장 B
그렇게 두 개의 문장으로 분리 되어 있으니, 이해가 어렵다,
차라리 두 문장을 섞어서 이렇게 했더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선악이라는 이원적 구조에서 자신을 억압하거나 타자를 억압시키는 분열된 구조 속에서는 자신을 사랑할 자아의 주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기에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다른 문장을 살펴보자.
<인간의 법은 억압당한 억압에 불과한 상처받는 사랑의 욕망이다.> (25쪽)
이게 무슨 뜻일까?
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일단 이렇게 읽어보았다.
문장 가운데 수식하는 부분 -억압당한 억압에 불과한 상처받는- 을 제외하고, “인간의 법은 사랑의 욕망이다.”라고 읽었다.
그렇다면 ‘사랑의 욕망’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무엇을 욕망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을 욕망한다’는 말인가
그게 우선 어렵다.
그리고 문장 중간에 있는 부분 -억압당한 억압에 불과한 상처받는-을 생각해 본다,
우선 ‘억압받는 억압’이란 무슨 의미일까
억압이 억압받는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또 ‘억압당한 억압에 불과한 상처’는 무슨 의미일까?
상처를 주어로 읽어 본다면, ‘상처는 억압받는 억압에 불과하다.’라는 말인데, 무슨 의미인가
또다시 그 말이 ‘사랑이란 말을 수식하니까,
‘사랑은 상처에 불과하다.’ 라고 이해가 된다,
따라서 전체 문장을 읽어보면
“인간의 법은 욕망이다.”
“그 욕망은 사랑의 욕망이다.”
(그런데 그 말은 사랑을 욕망하는 것인지, 사랑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불명확하다.)
“그 사랑은 상처받는 사랑이다,”
“그 상처는 억압받는 억압에 불과하다,”
아. 정말 어렵다,
이런 문장 하나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으니,
내가
이 정도 독해력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래도 이런 문장은 이해할 수 있으니, 고맙다,
<나르시시즘의 유혹은 주체없는 자아를 만들어 자신과 타자를 거세하는 순환적 구조를 만들어 세상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52쪽)
“나르시시즘의 유혹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나르시시즘의 유혹은 세상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어떻게
주체없는 자아를 만들어, (또한) 자신과 타자를 거세하는 순환적 구조를 만들어, 세상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책 한 권으로 독해력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여기저기 있으니, 저자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 책이 영성을 다루고 있는데, 내가 그 정도 영성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 영성을 다루고 있는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 보게 된다.
하여튼 그런 독해력의 한계 때문에 저자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
|
기존의 심리학적 계보 또는 정신분석학의 계보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타의 추종을 자끄 라깡은 프랑승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로 프로이트의 계승자라고 불리기도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존재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하신 이러한 성경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분석과 하나님과 인간으로서 갖는 욕망을 우리가 더하여 자끄 라깡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분석해 낸 측면의 결과를 만나볼 수 |
|
얇고 자그마한 사이즈의 책이지만... 내겐 내용이 너무 무거웠다. 아니,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내 그릇이 작은 탓도 있고... 종교단체와 너무 멀어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 얇은 책을 단숨에 읽어내리지를 못 하고... 읽다 두다 다시 읽다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애초 자끄 라깡이라는 인물에 혹하여 읽게 된 책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읽었던 심리학 서적을 통하여 자끄 라깡이란 인물에 대하여 알게 된 영향도 컸다. 이 책,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는 심리학과 종교적 성찰을 합한 듯... 하다. 성경 말씀 부분의 경우... 너무 멀리 온 탓에 거부감부터 일었지만 분석과 성찰 부분은 읽을만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도 그 부분만을 따로 읽어도 충분한 가치는 있어 보였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탄생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끝없는 장벽에 부닥친다고 한다. 이 장벽을 정신분석학에서는 거세라고 하는데 시간 순으로는... 탯줄거세-> 구강거세 -> 항문거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거세 -> 성(聖)욕거세-> 언어거세 -> 죽음거세 등 일곱 단계이라고 한다. 아동에 대한 책을 읽으면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 거세단계가 건강하게 적절한 시기에 이뤄진다면 정신적인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 책은 예수를 신적인 존재에서 인간으로... 인간의 본능을 극복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신분석학에서 분석한 예수사랑은 숙명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이 거세들을 통해 승화되면서... 사랑의 존재로 거듭남을 욕망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에까지 사랑으로 승화하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자인 자끄 라캉을 통하여 예수의 말씀을 성찰하고 분석하며 모든 이의 삶을 사랑하며 상처도 수용하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너무 바쁜 탓에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삶도 제때에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삭막하고 삶도 피폐해진다. 우선 내 이웃에 누가 사는지 제대로 아는가를 예로 들 수가 있다. 이처럼 상처를 받기 쉬운 팍팍한 삶을 사랑으로 나도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가 있도록 이 책은 설파하고 있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으로 인하여 상처를 준다는 이 책에서의 말이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고 할까?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얇은 두께에 비하여 너무 깊은 내용이 나를 당황하게 만든 책이었지만...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는 물론이요. 죽음의 태도도 달라짐을 알게 한 책이다.
|
|
저자
윤정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예수 사랑에 대한 성경말씀의 분석과 욕망 성찰, 묵상이라는 단계를 통해 이야기를 펼치는 독특한 책인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를 독자앞에 선보였다. |
|
책 제목이 참 독특하다.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 』 책 제목은 이런 짐작을 가능케 한다. 이 책은 라깡의 정신분석학으로 예수 사랑을 바라보는 책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끄 라깡, 솔직히 잘 모른다. 그저 정신분석학자라는 정도. 저자는 라깡이 ‘정신 분석의 사상가’라 불린다고 말한다. ‘사상가’란 칭호에서 느낌이 온다. 어쩜 이 책, 머리가 지끈지끈한 내용일 것이라는. ‘정신 분석의 사상가’라는 라깡이 예수 사랑을 욕망한단다. 정신분석학도 머리 아플 텐데, 거기에 ‘사상가’란 칭호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어려운 말들이 가득할까 걱정이 든다. 혹 머리에 쥐가 나면 안 되는 데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책을 읽어본다.
책은,,, 휴~ 어렵다. 물론 누군가는 쉽다 말하겠지만, 난 어렵다. 그러니, 이건 전적으로 나의 무지 탓일 게다. 라깡을 잘 모른다는 사실, 게다가 기독교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 책을 더 힘들게 만든다. 아마도 영성의 색깔이나 신학의 색깔의 다름이 더 힘들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저자는 신학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지만, 결국 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신학이 될 수 있기에 이런 독특함은 오히려 선지식과 충돌하며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니, 결국 책이 어려운 이유는 전적으로 독자인 내 탓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레 저자 탓으로 돌려본다면,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친절한 설명보다는 때론 비약과 때론 배배 꼬인 장문으로 내용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쩌면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행간을 뛰어넘는 듯한 표현들이 제법 많다. 물론, 이것 역시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미천한 책읽기의 수준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저자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의 롤 모델인 예수를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예수가 왜 인성에서 신성이 되었는지를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고 말이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을 통해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고. 이것을 탯줄거세, 구강거세, 항문거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성욕거세, 언어거세, 죽음거세, 이렇게 일곱 단계로 말한다. 이런 각각의 단계를 성경구절과 예수 사랑으로 투영하며 풀어나간다. 여기에 시인답게 묵상의 시 한편으로 각 단원을 마치고 있다.
태어나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자연스러운 장벽들, 이로 인한 거세 즉 상실들, 이러한 상실은 삶에 상처를 낳게 되고, 이런 상처를 외면하기보다는 상처를 바라보며 상처를 껴안을 때 자신을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역설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아울러 사랑받으려는 욕망보다는 사랑하려는 욕망이 될 때, 우리의 인생이 사랑에 머물게 되고, 이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내 삶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가 된다고도 말한다.
솔직히 저자가 말하는 모든 내용이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 힘이 되는 것은 삶에 상처가 없는 인생은 가짜인 듯 말하고 있다는 점. 게다가 이런 상처를 오롯이 보듬어 안을 때, 그 안에서 자신을 사랑할 힘이 솟아난다는 점. 이런 대표적 예가 바로 예수였다는 저자의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신앙인인 나에게는 알 수 없는 힘이 됨이 사실이다.
우린 세상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가.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상처 없는 인생인양, 쇼윈도 행복을 만들어간다면 오히려 우리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파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상처를 솔직히 인정하고 직시할뿐더러 소중하게 끌어 안음으로 예수 사랑을 욕망하고, 그 예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인생이 된다면. 그렇게 함으로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를 내 삶의 공간으로 끌어와 하늘나라를 살아낸다면. 이런 인생, 이런 상처, 사랑스럽지 않을까 싶다.
혹,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부족함 탓이다.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 이해하지 못했으면 또 어떤가. 그 안에서 뭔가 내 삶에 힘이 될 몇 가지 얻었으면 족하지 않을까.
얇은 책자라고 얕봤다가 이 책 읽느라 제법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소비했다. 피곤하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상실, 또 하나의 상처일까
마지막으로 저자의 후기 가운데 한 구절을 적어본다.
사랑은 사랑받고 싶은 상처 속에 머물기에, 그 상처를 사랑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은 진리를 깨닫게 하고 자유함을 준다. 그 자유는 충동적인 쾌락이 아니라 고통을 딛고 선 생명이다. 그 생명은 사랑이기에 죽음마저 생명이고 싶은 욕망이다.(125쪽) |
|
인간 예수, 왜! 신의 사랑이 되었는가?, 정신분석학이 사랑의 존재를 답하다. 등 책 표지에 실린 문구들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 그 내용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적지않이 걱정되었다.
정신분석학은 문제의 본질을 분리시켜서 결여되고 소외된 자신을 발견하게 하기에 마음공부에 최적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정신분석학의 기능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아닌가 싶다. 진정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부. 그런 공부라면 누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이야기가 무엇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저자는 낙원, 거세, 나르시시즘, 승화, 동일시, 초자아라는 제목 하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왜 신성의 예수님인지를 들려주고, 예수님의 죽음이 결국은 생명이라 말하면서 그 생명의 이름이 바로 ‘사랑’임을 증명한다.
저자는 각 꼭지별로 먼저 성경 말씀을 제시한 후 그 내용을 분석, 욕망, 성찰로 나누어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묵상이라는 글로 마무리한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한 번 읽어서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한 꼭지, 한 꼭지 읽어가면서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모습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각 내용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을 정리해서 한 줄로 보여준 부분이 책 전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저자의 설명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뭐랄까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랄까? 예수님의 사랑이 죽음 너머 주이상스를 향해 생명을 욕망한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죽음 이후의 부활을 다루지 않아서 그런가, 무언가 가슴에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앞서 말했듯이, 한 번 읽고 바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책이다.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인간 예수님의 사랑이 신의 사랑의 되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