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5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김완하 시 두 편
"김완하 시 두 편" 내용보기
1. 사랑         그 꽃 다 지고 나서야   지름길을 알았다     그대에게 가는 길   - 김완하, 「동백꽃」     동백꽃은 때가 되면 온몸을 기꺼이 땅으로 떨어뜨린다. 여느 꽃처럼 하늘하늘 꽃잎이 흩날리지 않는다. 자기 신념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선각자 같다고나 할까. 땅에 떨어져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백꽃을 보면,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일이 얼
"김완하 시 두 편" 내용보기

1. 사랑

 

 

 

  그 꽃 다 지고 나서야

  지름길을 알았다

 

  그대에게 가는 길

  - 김완하, 「동백꽃」

 

 

동백꽃은 때가 되면 온몸을 기꺼이 땅으로 떨어뜨린다. 여느 꽃처럼 하늘하늘 꽃잎이 흩날리지 않는다. 자기 신념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선각자 같다고나 할까. 땅에 떨어져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백꽃을 보면,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된다. 꽃이 떨어진 다음에야 꽃이 피어날 수 있다. 꽃이 피어야 꽃이 진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꽃이 피는 일과 꽃이 지는 일은 다르면서도 같은 일이다. 꽃이 피는 일도 자연이고, 꽃이 지는 일도 자연이다. 꽃은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자연과 더불어 죽는다. 자연은 꽃이 핀다고 자랑하지도 않고, 꽃이 진다고 서러워하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꽃을 떨어뜨린다. 사람들은 이 자연에 인위적인 의미를 덧붙이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에 새로운 의미가 덧씌워지지는 않는다.

 

시인은 그 꽃 다 지고 나서야/ 지름길을 알았다라고 선언한다. 어디로 가는 지름길인 것일까? 2연에 그대에게 가는 길이라는 시구가 나와 있다. 그대에게 가는 지름길을 시인은 동백꽃이 지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사랑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만큼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감정이 어디에 있을까? 자연은 어느 경우에도 생명에게 들뜬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자연은 때가 되면 생명을 살리고, 때가 되면 생명을 죽인다. 불쌍하다고 생명을 살리고, 어여쁘다고 생명을 살리지 않는다. 생명이 태어났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생명이 죽었다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기쁨과 슬픔은 인간이 내보이는 감정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활짝 웃는 연인을 떠올려 보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서글프게 우는 연인을 떠올려 보라.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이전에 감정적인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 감정으로 해서 인간은 헤어 나오기 힘든 고통에 빠진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는 만큼 인간은 한 생명이 죽는 것을 못 견디도록 슬퍼한다. 오죽하면 멜랑콜리와 애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멜랑콜리는 이별한 사람에게 집착한다. 이별한 사람을 상상 속에 묻어 놓고 끊임없이 이 세상으로 되불러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다. 이미지로 현실을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은 이미지로 현실을 대체하려고 한다. 이별한 사람을 어떻게든 현실에 붙들어 매려고 한다. 현실에 없는 것을 붙드는 것만큼 허망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은 우울증을 일상처럼 앓을 수밖에 없다. 타자가 사라진 흔적에 매인 사람이 이르는, 피하지 못할 병이라고나 할까.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이 이별한 사람에 집착한다면, 애도하는 사람은 이별을 이별로써 받아들이는 특징을 내보인다. 그에게 이별은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 사람은 이미 저곳으로 가버렸다. 일상을 살려면 저곳으로 간 그 사람을 잊어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반드시 저곳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애도하는 사람이 이별이라는 상황에 맞서는 방식이다. 동백꽃이 온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닮지 않았는가. 시인은 동백꽃이 지는 장면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대에게 가는 길에 드리워진 자연을 깨닫는다. 자연은 살려야 할 생명은 살리고, 죽여야 할 생명은 죽인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고, 미래를 꿈꾸지도 않는다. 자연은 다만 현재를 산다. 꽃을 피워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인간이 사는 삶의 법칙이라고 이런 자연과 다를 리 없지 않은가.

 

시인은 동백꽃이 떨어지는 자연의 이치에서 그대에게로 가는 사랑의 길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자꾸만 집착을 사랑으로 오해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구속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때린다고 그들은 말한다. 참으로 묘한 말이 아닌가. 사랑하는데 왜 상대를 구속하는가? 사랑하는데 왜 상대를 때리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순간, 사랑이라는 행위는 상대를 빼앗는 싸움이 되어버린다. 누군가가 굴복을 해야 끝나는 싸움. 오로지 인간만이 이런 사랑을 한다. ‘이성을 지닌 인간만이 왜 이런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자꾸만 자연을 벗어나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떨어질 때가 된 동백꽃은 결코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연 법칙을 따라 떨어질 때가 되면 그저 떨어질 따름이다. 자기애에 빠진 인간은 결코 갈 수 없는 길을, 시인은 동백꽃을 통해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허공

 

       

  새들의 가슴을 밟고

  나뭇잎은 진다

 

  허공의 벼랑을 타고

  새들이 날아간 후,

 

  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

  그곳을 따라서

  나뭇잎은 날아간다

 

  허공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쌓여 있다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나뭇가지는,

  창을 연다

  - 김완하, 「허공이 키우는 나무」

 

 

나뭇잎이 떨어지는 허공을 시인은 새들의 가슴이라고 표현한다. 새들의 가슴을 밟고 나뭇잎이 떨어진다. 새들이 내놓은 길로 나뭇잎이 떨어진다는 의미일까? 새들은 온몸으로 허공에 길을 낸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새들의 눈에는 허공에 난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나뭇잎이 진다. “새들의 가슴2연에서 허공의 벼랑으로 변주된다. 허공을 벼랑을 타고 새들이 날아간 후 또 다른 허공이 열리는 장면을 시인은 보고 있다. 허공은 허공으로 이어져 있다. 허공이 끝난 자리가 과연 있기나 할까? 허공이 끝난 자리는 이 세계의 끝일 것이다. 이 세계의 끝이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지만, 허공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이 허공의 끝을 절대로 엿볼 수 없다. 만약 그 끝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허공을 사는 존재가 더 이상은 아닐 것이다.

 

허공을 새들이 날고, 새들이 낸 허공의 길을 따라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를 다시 새들이 날면 그곳으로 또 하나의 허공이 열린다. 새로 열린 허공을 따라 날아가는 나뭇잎에 시인은 눈길을 고정하고 있다. 허공 바깥에는 또 다른 허공이 있다. 수없이 많은 허공 길을 따라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허공이 열리면 다시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날아간다. 허공이 있어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떨어져서 허공이 있는 것일까? 허공이 또 다른 허공을 열려면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떨어져야 한다. 허공을 허공으로 만드는 게 새들과 나뭇잎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허공은 아무것도 없기에 허공인 게 아니다. 허공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허공이다. 허공은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로 늘 꽉 차 있다는 역설.

 

시인은 허공이 내보이는 이 역설을 허공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쌓여 있다는 진술로 표현한다. 나뭇잎만 쌓여 있을 리 없다. 새들도 쌓여 있을 것이다. 물론 그네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허공은 이 흔적들로 또 다른 허공을 열어젖힌다. 허공 속에 나뭇잎이 쌓일수록 허공이 차지하는 면적은 그만큼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나 할까? 허공을 가득 채운 이 흔적들을 보며 시인은 허공이 허공을 낳는 시적 역설과 마주한다.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허공이 생긴다. 허공은 온몸으로 사물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허공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든다. 허공 속에 나뭇잎이 쌓일수록 허공이 넓어지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허공은 새에 집착하지 않고, 나뭇잎에 집착하지도 않는다는 것.

 

시인은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창을 여는 나뭇가지를 본다. 새들이 날아간 쪽은 물론 허공으로 펼쳐져 있다. 나뭇가지는 허공으로 제 몸을 뻗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라는 시 제목에 나타나듯, 나뭇가지는 허공으로 뻗어 나무가 설 공간을 비로소 만들어낸다. 이리 보면 허공은 나무가 자라는 자궁과 같다. 허공이라는 자궁에서 자라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새들이 그렇고, 나뭇잎이 그렇다. 허공을 떠도는 온갖 것들이 허공에 젖줄을 대고 또 다른 허공을 열 준비를 한다. 지상에 있는 나무 또한 허공에 젖줄을 대고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나뭇가지를 뻗는다. 허공은 제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생명들이 스스로 길을 내도록 한다. 어디를 가든 길이 생긴다. 허공 자체가 길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이만하면 생명들이 살 터전으로는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나무는 그렇게 허공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이다.

    

    

 

 

 

 

o*****s 2019.10.0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람 타고 놀아 보렴 (허공이 키우는 나무)
"바람 타고 놀아 보렴 (허공이 키우는 나무)" 내용보기
시를 노래하는 말 258바람 타고 놀아 보렴― 허공이 키우는 나무 김완하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7.9.5. 7000원  꿈에서라면 얼마든지 바람을 타며 놀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자리에서마저 바람을 못 탈 수 있어요. 삶에서도 꿈에서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닐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삶에서나 꿈에서나 늘 바람을 타며 날아다니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수
"바람 타고 놀아 보렴 (허공이 키우는 나무)" 내용보기

시를 노래하는 말 258



바람 타고 놀아 보렴

― 허공이 키우는 나무

 김완하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7.9.5. 7000원



  꿈에서라면 얼마든지 바람을 타며 놀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자리에서마저 바람을 못 탈 수 있어요. 삶에서도 꿈에서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닐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삶에서나 꿈에서나 늘 바람을 타며 날아다니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수 있어요.



나란히 선 두 그루 은행나무 / 서로 닿으려 팔을 뻗고 뻗어도 / 닿지 못하던 거리. / 비로소 하나 되어 누웠네 / 그늘 속에서 몸을 섞었네 (한쪽 어깨를 밀어 주네)


잠시 멈추었던 / 풀벌레들 다시 목청을 세워 / 숲 속을 한껏 돋운다 / 그때 수세미는 주렁주렁 / 수직으로 제 그리움을 매단다 / 박주가리 열매 속에는 / 가을볕이 꽉꽉 쟁여 있다 (가을 수목원)



  김완하 님이 빚은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천년의시작,2007)를 들여다봅니다.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집입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숲을 바라봅니다. 도시를 바라보고 자동차를 바라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자전거를 바라보다가는, 아이를 바라보고 멧새 노랫소리를 바라봅니다.


  바라보려 한다면 하늘빛도 바람결도 바라볼 수 있어요.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하늘빛은커녕 바람결조차 못 느끼고 못 보고 말아요. 바라보려 하기에 사랑스러운 이웃하고 동무를 살가이 느끼며 마주해요. 바라보려 하지 않기에 우리 둘레에 이웃하고 동무가 살가이 있는 줄 못 알아채기 마련이에요.



아버지의 삼천리표 자전거, 장에서 돌아오며 짐받이는 항상 고등어자반 뻥튀기 호미 낫 농기구로 가득했다 어느 날 내 흰 고무신 사오기로 하고 아버지 밤늦도록 오지 않았다 아침에 깨보니 고무신 내 가슴에 안겨 온기로 따뜻해져 있었다 (미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에 나무가 자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에 아이들이 뛰놀면서 자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풀도 숲도 싱그럽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마을마다 고운 숨결이 퍼집니다.


  늦도록 저자마실을 하던 아버지가 새 고무신을 장만해 줍니다. 이 따스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를 새롭게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넌지시 흐르는 사랑이고, 가만히 지켜보는 사랑입니다. 도시에서 부는 바람하고 시골에서 부는 바람이 언제나 똑같은 줄 느끼는 눈길이라면,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살림을 정갈하게 짓는 손길을 그릴 만합니다.



놀이터 미끄럼틀 옆 / 아이가 세워놓은 세발자전거 / 작은 바퀴 달리던 길 잠시 쉬는 사이 / 세상은 통째로 자전거 앞에 놓여 있다 (바퀴 앞에서)


뻐꾹새 소리 따라 걷는다 / 산 속 들어도 / 뻐꾹새 보이지 않고 / 소리만 환하게 산을 울린다 (산길)



  밤이 깊어 별이 밝습니다. 밤이 깊어도 전깃불이 환하면 별이 어둡습니다. 해가 높이 뜨며 풀잎하고 꽃잎이 기지개를 켜요. 해가 뜨고 지면서, 별이 돋고 저물면서, 하루가 흐르고 삶이 흐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꽃도 나무도 모두 바람을 타면서 차츰차츰 자랍니다. 이 바람을 보기에, 이 바람을 사랑하기에, 이 바람을 온몸으로 마시기에,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아름다운 넋으로 이 땅에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2016.1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h*******e 2016.1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