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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데미안, 모모, 어린왕자, 벽오금학도 등의 작품이 줄곳 생각났다. 이산하 님의 글에서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지루한 수식어를 보기 어렵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긴장해서 한 단어 한 단어에 대한 작가의 선택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한 인간이 깊은 성찰을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기 까지에는 사람마다 어떤 계기와 때가 있다. 또 많은 이들에게는 문학작품 속에서 그 모델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것이 때로 그의 인생의 큰 이정표가 되기도 하다. 내 인생에 큰 방향타가 되었던 상기 작품들 처럼, 이 작품을 대할 수 있었음이 참 고마운 일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열린 자에게 세상은 온통 스승이다" 이를 나는 작가의 인생 선언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시각을 가진 이에게는 생이 그야말로 소중한 예술품 아닐까, 그런 시각을 가진 이는 내공의 깊은 자신감이 충만할 것 같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 사물, 사건과의 만남에서도 참으로 치밀하고 지혜롭게 이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말은 착하게 살아야 함을 단순히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착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작가의 선언은 서릿발 같은 경계를 일으킨다. 작가의 치밀한 분석과 각오가 타산지석이 된다. [인상깊은구절]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정의로운 창이 되고 구부리면 밭을 일구는 호미가 되고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는 대나무처럼 네 몸과 마음을 항상 걸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네가 어디에 있든 작고 낮고 가볍고 그리고 느린 것들의 두 손을 번쩍 들어주며 그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사람이 되거라. 절대고독의 중심에 우뚝 선 자. 그가 곧 수도자요, 작가가 아니겠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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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그리고 양철북(작가- 이산하)을 읽다
모두 다 성장소설을 표방하는 소설이다.
완득이는 그 왕성한 광고덕으로 알게 되어 읽었고
양철북은 제목의 동일함 덕으로 도서관 서가에서 내 손에 들리게 되었다.
완득이는 그옛날 읽었던 얄개전을 연상시키는 구조....거기에 요즈음 유행이라는 다문화 가정을 살짝 얹은 듯한
내용이지만...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만한 작자의 글 솜씨에...
가끔 코끝을 찡하게 하는 양념까지 ........보태져 오랫만에 책을 읽고 "흐뭇함'을 만끽한 책이었다.
양철북, 맨 처음에 그라스의 이름을 거명하고 들어가니 일단 제목의 동일함에 대한 훌륭한 면피는 했다 싶다.
그리고 조금은 지루한듯하지만
뒤에 가면 찡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이다.
그중에 한가지.......고은 선생이 <독서신문> 에 연재하던 소설 <선재동자>를 언급하던데
내가 고등학교 때 독서신문을 읽으며 선재동자, 를 열심히 챙겨읽던 기억이 떠올라
그 주인공과 조금 감정이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사족 하나
180쪽에 보면 애이불상(哀而不傷)이란 말이 등장한다.
< 인간사를 '슬퍼하되 결코 감상에 젖지 않는다' 라는 노자님의 말씀이니라>고 주인공 법운 스님의 입을 빌어 말하는데
노자가 말했다면 분명 도덕경 어딘가에 있어야하는데
내 기억에 없는 말이라, 조금 수고하여 찾아 보니 노자말씀이 아니라 공자말씀이었다.
그 의미도 <슬퍼하되 감상에 젖지말라>,가 아니라 < 슬퍼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몸이) 상하지는 않게 해야 한다>가 맞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