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일요일 오후 하루종일 따뜻한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읽었다. 책장의 귀퉁이를 수도없이 접어가며 읽고 또 읽는다, 지금도. 그렇게 오늘도 위로받는다. 돌아온 시인에게선 체념이 아닌 평온함이 느껴져, 주린배를 움켜쥐고도 당당하게 순대국밥을 후루룩!! 소리내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 |
![]()
나는, 그리고 나를 대변하는 나의 글은, 어쩔 수 없이 여성적 유약함과 어두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우울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유형의 글을 폄하하면서도 좋아한다. 나는 밝고 활기차고 평안한 글은 절대 쓰지 못하리라. 그럴 땐 글을 잊고 사니까. 나는 너무 우울해 나를 위로하고 싶을 때 말이 많아진다.
그런 여성 작가가 몇 있다. 최영미도 어쩌면 그런 작가 중 하나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내가 분류한 유형. 예전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들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와는 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시를 접고 싶지만 접을 수 없는 숙명, 그리고 늘 느껴지는 그녀의 고독. 그녀가 24살에 이혼한 이후 현재 독신이라서? 인생의 고비를 맛보면... 그냥... 왠지 예술가의 삶은 늘 평탄치 않아야 한다는 편견. 그러나 정말 그래서 더 글이 잘 써질 거 같다는 느낌... 속한 곳이 없으니 더 자유롭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때로 너무 솔직한 글은 의도치 않게 곁의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한편 그러나 이제는 여자의 삶을 경탄하기보다는 엄마의 삶을 경외하는 것 같기도 한 그녀의 시선. 그냥 마냥 사랑스럽게 조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내가 엄마라서 그런 시각으로 보게 된 것일까? ㅎㅎ 나이 들면서 좀 더 부드러워진 듯한 기분.
<다시는, 사계절의 꿈, 타인의 시, 나쁜 평판, 어떤 동문회, 나는 시를 쓴다.>
이 시들이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다. 정말 간만에 시집을 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갔고, 그래서 간만에 나도 그동안 잊었던 글을 좀 끄적여봤다. 그러면서 조금은 평안해졌고, 그냥 무심해지고 결국 다 부질없다 뭐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정말 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에게 쫓기고, 학생인 내가 시험을 망치고, 직장인인 내가 기한을 넘기고, 그래서 어쩌지 뭐 이런 걱정들에 시달리는 악몽을 꿨다.
예전 그녀의 시집들을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그땐 잘 이해되지 못했던 것들이 현재 서른을 훌쩍 넘겨 마흔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선 다시 어떻게 와 닿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땐 정말 그냥, '아, 정말 제목 잘 지었구나. 여자인데 과감하구나.' 뭐 이런 감상 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긴. 그때 내 나이 고작 17살. 인생의 어느 면을 알기엔 너무 어린, 무리인 나이.
|
|
2010년 1월 어느날, 우연히 시집코너에서 최영미의 '도착하지 않은 삶(2009년, 문학동네)'이라는 시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그녀가 쓴 '내가 사랑하는 시'라는 책을 발견하고 좋아했는데..그녀의 시집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산다.
'서른, 진치는 끝났다'라는 시와 시집으로 유명한 그녀, 대학교 때 몇 번이고 읽고, 책 앞장 마다 그녀의 시를 써 놓았던기억이 있다. 어떻게 해서 그 시집을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교 입학 전후해서 산 것 같다. 한용운 , 윤동주, 김소월, 서정주, 김영랑, 김수영, 박목월, 정지용, 김춘수 등등의 수능준비용 시들(물론 이러한 분들의 시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한 작품이 많다)과는 사뭇 다른.. 감각적이고, 모던한 언어로 채워진 그녀의 시들은 참 맛이 있었고, 대학생이면 뭔가 지적이고, 비판적이고, 모던한 걸 추구 해야 한다는 어설픈 생각에 젖은 나에게 딱 좋은 시집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돼지들에게', '꿈의 페달을 밟고' 등 그녀의 시집을 모두 사서 보았다. 관념적인 언어보다는 일상적이고 존재하는 언어들을 굴려 그렇게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다니... 역시 그녀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버린 신을/아시아의 어느 뭉툭한 손이 주워/ 확성기에 쑤셔 넣는다' - 일요일 오전 11시 - '...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시작됐어!/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 가까이 코를 갖다 댄다/그렇게 학대 했는데도/ 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 중년의 기쁨 -
그녀의 시는 우선 세상에 대한 보이지 않는 비판을 읽을 수 있다. 가령 이번 시집의 첫 장에 나오는 '일요일 오전 11시'에서는 종교(기독교?)에 대한 많은 비판을 떠올릴수 있다. 단 3줄 뿐인데도...흔히 볼수 있는 일요일의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우리나라 기독교의 세태에 한방 먹였다.... (내가 이런 짧은 시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무리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후에 나오는 세계적 현상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견지의 시를 보면 이 시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중동의 전쟁이라던가, 중국의 화려한 올림픽에 대한 비판 등 글로벌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 담긴 시가 이번 시집에 많이 실렸다)
'중년의 기쁨'에선 그녀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는 '놀라운' 세월의 흐름과 중년까지 오면서 겪게 된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변화, 암울한 80년대를 보낸 세대로서의 세상의 변화에 대한 비주류적 적응... 젊은날의 긴 방황(그렇게 학대 했는데도...)을 읽는다... 그녀는 8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겪은 통증이 있는데..난 어떤 통증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시라는 것은 운율과 은유로써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녀의 시는 정형적인 틀 없이, 길고 짧음을 걱정함이 없이, 독자들이 겪어야할 숨은 비유 찾기 고민에 대한 걱정 없이 일상적인 생각, 통증, 성, 방황, 추억, 도시문명 등을 여과 없이 압축한 점에 매력이 있지 않을까 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경험한 젊은 날, 그 이후의 좌절, 많은 책을 읽었을 지성, 현상에 대한 예리한 시각 등에서 나오는 많은 생각들을 그때그때 떠오르는 솔직한 언어들로 압축한 그녀의 시는 내가 겪어온 생각들을 투영하는 것 같아서 맛이 있다(내가 그러한 경험을 했다거나, 그녀처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다만 생각의 방향이 비슷하다는 뜻). 세상에 대한 비판을,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아픔을, 젊은날 겪은 가치관의 방황을, 그러한 언어가 아닌 밥먹는 일에서,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산에서, 외국의 어느 미술작가의 작품 이름에서, 신체적 변화에서, 연관된 언어로 쏟아내듯 표현하는 그녀의 감각이 좋다.
그런 이유로 정확히 외울 수는 없지만 그녀의 시는 나도 모르게 일상에서 내 시야에 투영되어 세상이 보여질때가 있다...
안정을찾아야 하는데 나의 삶은 무기력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무기력을 극복할 수 없어서 현실적인계획은 올해도 미루지만,, 올해 만큼은 책을 많이 읽겠다는 목표는 다시금 세워 본다...
그 목표의 첫걸음으로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주말이었다.. 글을 쓰는 솜씨가 없어서 그녀의 좋은 작품을 멋지게 소개할 재주가 없는 것이 아쉽다.... 많이 읽고 쓰다 보면 글도 좋아지겠지.. 최영미 같은 작가 처럼 자유로운 감각을 가지고 길고 짧을 걱정없이 살았으면..............좋겠다..
*10년도 더 된 그녀의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다시 한번 훑어 보았다... '사는 이유', '혼자라는 건','한 남자를 잊는 다는 건' 등 을 읽노라면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어지럽도록 화려한 도시에서 나약한 몸부림으로 살아온 동질감이 느껴진다...
-사는 이유 -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한 남자를 잊는 다는 건- 잡념처럼 아무데서나 돋아나는 그 얼굴을 밟는다는 것 .... 논리를 넘어 시를 넘어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과일가게에서 -
사과는 복숭아를 모르고 복숭아는 사과를 모르고...
밀고 당기며 붉으락 푸르락 한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는구나 ,,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혼자라는 건-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
|
시인 최영미의 계속되는 삶과 시
지난 시집 <돼지들에게>에서 최영미의 지나간 과거와 세상에 대한 두려움, 조롱을 느꼈다면, 이번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에서는 그 반대의 정서를 느꼈다. 미래에 대한 기대, 현재의 삶 속에서 느끼는 희망, 어린이를 바라보는 순수함과 같은 단어들로 이 시집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시인 자신에 대해 이야기고 있다. ‘할머니를 따라 주기도문을 외는 장밋빛 입술’에게 종교도, 신도, 여성도, 집도, 노래도, 지구도, 최루탄도 모두 떠나야 할 대상일 뿐이다.
2부에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48쪽의 「여기에서 저기로」에서 ‘아침에 빠져나온 잠자리를/ 밤에 들어갔을 뿐인데,/ 여행의 끝이 보이네//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 않은 삶./ 여기에서 저기로,/ 이 남자에게서 저 여자로 옮기며/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 젊음./ 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네.//’를 보면 그녀가 후회할 시간도 없이 생을 보내고 시를 쓰고 희망을 기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옆의 시 「한가한 오후」에서 아파트 관리실의 아이를 찾는 방송을 듣고 다들 웃음보가 터진다. 사람 사는 즐거움을 느끼며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거대 담론의 고민은 잠시 잊혀지고, 그녀의 삶을 위로한다. 「2008년 6월, 서울」은 20년 전의 6월 항쟁과 2008년의 촛불집회를 비교했다.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 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 그녀는 더 이상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친구들과 식사를 즐긴다.
3부에서는 시인으로서의 그녀를 털어놓는다. 한시를 읽으며 거룩한 선비들의 뜻을 되새기다가, 결국 ‘내일은 번잡한 시내의 한복판에서 초콜릿을 핥는, 고런 재미로 산다.’ 그녀의 어머니는 시를 뜯어먹으며 사는 딸을 자랑스러워 한다.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조카는 이모랑 술래잡기도 하고 체스도 하며 영화도 같이 보며 행복을 나눈다. 좋아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다 않을 시인은 「청동정원」에서 그녀의 꿈을 그린다.
4부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쓴 시들로 엮여 있다. 교토의 바위정원 속의 유토피아의 감옥에서 흑백으로 동화되는 모습, 4월의 알리칸테와 태양을 즐기는 모습, 잠시 비를 피했던 파리의 어느 추녀 밑, 고대의 기와가 발굴되던 현장, 3대가 살았던 그녀의 기찻길 옆 고향, 동문회 등. 그녀가 다녀왔던 이국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고향과 동문회, 예술가들의 모임, 연인과의 이별들을 통해 그녀의 인생 여정은 결국 시를 통해 위로받고 부끄러움이 사그라든다.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는 자들은 삶을 살면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낀다. 세상은 쉽게 바꾸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믿음을 통해 위로하고 부지런히 시를 쓴다. 나도 그런 믿음에 동조한다. 직선적이고 여성스럽고 솔직하게 그려낸 우리나라, 세계, 역사,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 시집에서 주장하는 사랑과 행복이 온 누리에 밝게 퍼지리라 믿는다. |
|
시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시인들은 특별한 사람인가 고민했다. 시를 알기 위해서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가 싶었다. 시는 마치 풀지 못하는 수학공식마냥 어려워보였다. 그러나 최영미는 말한다. 시는 그리 별난게 아니라고. 내 삶의 한 장면이,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습이 모두 시라고. 그저 산문 읽듯 편하게 흘러가는 그녀의 시들이 그걸 증명해보인다.
독특한 이력의 이 시인, 최영미가 <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2009)을 통해 부르는 노래들은 우리의 모습이다. 난해하게 풀 필요 없이 그저 주는대로 받아먹으면 되는 이야기다.
[화장실을 나오며 나는 웃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시작됐어!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 가까이 코를 갖다댄다
중년의 기쁨 中]
여자들이면 으레히 찾아오는 한 달의 한 번 마법을 이렇게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가 또 있었을까. 꾸밈없이 일상을 열어보이는 발랄한 감성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시에는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진짜 감정은 깊숙이 숨겨놓고 이리도 저리도 해석되도록 장치를 해 놓는게 시라 알고있었다. 그러나 다시 시를 찾게 된 그 연유를 시인은 숨김없이 내보인다.
[시를 쓰지 않으마 불을 끄고 누웠는데...... 옆으로, 뒤로, 먼지처럼 시가 스며들었다.
...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떠나지 말라고 내 손에 꽃을 쥐여주며
다시는 中]
그 어떤 단어가 찾아와도 연필을 쥐지 않던 시인을 다시 부르는 목소리, 그게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상관없이 그 부름을 쳐내지 못한 최영미는 다시 시로 돌아온다. 매몰차게 돌아서지 못하고 다시는, 이란 맹새를 깨뜨리고 시에게 돌아온 그 사연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참, 인간다운 고백.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세상이 참 막연히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뭘 하며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끝없는 막연함에 마음까지 서늘해지는 순간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 天地間에 곡예하듯 사반세기를 흘려보내고 게으른 생애가 지나가고
내 뺨에 닿는 차가운 아침의 칼날 얼음처럼 낯선 지금 이 순간.
얼음처럼 낯선 전문]
과격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표현이지만, 그래서 읽는이를 더 동감의 전율에 몸서리치게 하는 짧은 기록. 8줄 짧은 시가 순간의 고통을 몸으로 불러들인다.
그런가하면 세상이 주는 잠깐의 유머러스함이 최영미의 시에는 유쾌하게 녹아있다. '한가한 오후'의 관리실에서 내보내는 아이를 찾는 방송, '행복'이 보여주는 이모와 조카간의 달콤한 대화들은 평범한 오후를 '졸깃졸깃'하게 만드는 생의 선물들이다. 이렇게 급작스레 찾아오는 즐거움으로 시인은 위로를 받는다고 고백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살게 하는 힘도 이 작은 삶의 유머들이 아닐까.
[오- 인생, 너는 엉뚱한 곳에 시를 감춰두고 실패한 자의 오후를 위로하는구나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한가한 오후 中]
그러나 최영미는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에만 몰두하는, 세상을 피해가는 시인은 아니다. '내일을 위한 기도', '글로벌 뉴스', '2008년 6월, 서울', '지상 최대의 쇼'를 통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난 세상의 불합리함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이러지 않길 바란다고, 소극적이지만 강한 어조로 주장한다. 여기 진실을 바라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고 소리친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란 제목을 보고 왠지 허무함이 담긴 조용한 시를 만나게 될거라 예상했다. 나의 예상은 기분좋게 비껴갔다. 시라면 어렵다며 질색을 표하는 사람, 진지함 속에 일상의 쾌활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해주고 싶은 시집이다. 난, 몇 편쯤 외워서 졸깃한 오후,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말랑말랑 씹어먹어야겠다.
|
|
시란 늘 복잡하고 심오해서 어렵다,는 편견에 대해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는 시를 마주한 기분이다.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솔직한 마음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시가 맞나..? 시인의 일기는 아닐까? 시인이라서 일기도 시처럼 쓰나보다 이런 마음이 들 정도로 시인의 시어들은 솔직하고 담백하다.그러나 그런 솔직함에 읽는 나도 충분히 공감 할 수 있었다.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어렵지 않게 공감하기란 사실 쉬운일이 아닐터. 그렇게 한편한편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도착하지 않은 삶'이란 제목이 노래 후렴구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오래전 시인이 노래한 <서른잔치는 끝나지 않았다>의 그 말처럼 시인이 노래한 일상들은 현재완료형도 아니고,미래형도 아닌 현재진행형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를 꿈꾸며>를 읽으면서도 도착하지 않은 진행형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광장을 지나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체념한 과거형이 아닌,현재진행형의 내 삶을 마주하고 있었다.아니 마주 해도 되는 거구나 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친구는 <그 여자>가 좋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중년의 기쁨>이 가슴에 꼬~옥 와 닿는다고했다.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공감하기가 결코 쉬운일이 아닐텐데,시인의 일상은 결코 시인만의 특별한 일상이 아니었음을 시인의 이야기 곳곳에서 공감 할 수 있었는지 몰르겠다. 강화도의 아름다운 낙조를 볼때마다 함민복 시인과 김혜순시인이 떠 올랐던 것처럼, 살아 가고 있는 내 삶의 하루하루가 외롭고 퍽퍽하고 때론 고단하고 누군가 수다가 떨고 싶을때 최영미시인의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읽으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당신만 외로운 것도 아니며, 당신만 세상의 고민을 모두 떠 앉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 해 줄 테니까...
|
|
같은 시대에 비슷한 마음으로 살았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위안일까, 서글픔일까. 나도 그때 그런 마음이었는데, 너도 그때 그런 마음이었다니. 그때 그렇게 내가 속상하고 억울하고 분노하고 지친 마음이었을 때,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절실하게 내 마음처럼 울었다니, 모르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면서 느끼는 그때 그대로의 이 기분은 참담함일까, 서글픔일까.
어떤 기억은 고스란히 떠올렸을 때 행복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 기억이 많은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겠지. 그런데 어떤 기억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음에도 자꾸만 되살아나 마음을 쓰리게 하기도 한다. 그것 또한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고?
그녀의 글을 읽은 게 꽤 오래된 모양이다. 처음에는 좀 낯설었으니. 페이지를 넘기면서 예전 풍경을 만났다. 변해야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풍경들, 그래서 더 속상하고 가슴 아픈 삶의 조각들. 그때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살았으니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싶었으나 여전히 우울하고 절망적인 표정들. 왜 싸웠던가, 싸우기는 했던가, 싸움을 하기는 했어야 하나, 아직도 싸워야 하나, 싸우면 언젠가는 나아질까, 나아져야 할 텐데... 가녀린 꿈들 점점이 끊어지지 않고 있기는 했지만.
시를 쓰면 쓰기 전보다 마음이 맑아지는 시인과 시를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마음이 밝아지는 독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를 쓰는 일이 내내 고통스러웠을 작가가 가엾고 시를 읽어도 힘을 얻지 못하는 내가 서글프다. |
|
|
시인의 이름에 앞서 많은 이들은 아마도『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기억할 것이다. 서른을 멀리 바라보았던 시절, 나는 그 시집을 서른에 가까이 있었던 큰 언니에게 선물했었다. 그리고 서른을 만났을 때도 서른이 지났을 때고 그 시집을 정독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하게 서른이라는 단어 어디에서든 시인, 최영미를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인은 대단한 시집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서른을 오래전에 지나왔고 마흔을 넘어 멀리 삶이라는 그곳을 향하는 우리네 모습과 닮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경험할 삶을 만나지 않을까 했다. 그랬기에 이 시(중년의 기쁨)를 만났을 때 반갑기도 했고 우울하기도 했다.
화장실을 나오면 나는 웃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시작됐어!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 가까이 코를 갖다댄다
그렇게 학대했는데도 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p 17 <중년의 기쁨 전문>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를 살고 있는 내게 젊음이라는 단어는 때로 생경하다. 그러나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이름은 젊음이라는 말과 상통하기도 한다. 그네들에게 나는 젊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은 나이인 것. 나의 육체에 비해 나의 정신은 너무도 빨리 가고 있는게 아닌지. 이 시를 만나면서 젊다고 자위한다.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시가 많다. (언제 시를 쓰세요?/- 내가 시인임을 잊었을 때/어디서 시를 쓰세요?/-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 일부) 시인이기에 이런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이제 질문은 그만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시다. 하릴없이 집 안을 서성이는 시인을 그리게 하는 (수도꼭지를/ 올렸다/내리고/ 또 올렸다/ 내리고, - 온종일 집에서의 일부),시를 쓰는 딸을 둔 어머니에 대한 애정(아픈 아이들의 서툰 숟가락질을 시중들며/ 조각상처럼 꿋꿋하게 칠십 년/ 밥상을 지킨 당신. - 한여름, 부엌에서 일부) 시인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 자리 잡은 조카와의 일상을 담은(이모! 언제 우리집에 올 꺼야?/언제 가면 좋겠니?/ 수요일에 와, 알았지?/수요일 언제?/잠깐만, 그건 나중에 정해 - 행복 의 일부) 시를 읽으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밝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p 16 어느새 전문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감정도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그러워진다고 믿고 살았다. 그것은 부질없는 욕망을 줄일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느라 바빠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커녕 감정초자 돌아볼 여유가 내겐 없었다. 가만 돌아보면 미움만이 자리잡은게 아닐까 싶어 두렵기도 하다. 삶은 때때로 나의 영혼을 짓누를 때, 육체뿐아니라 몸까지 연약한 나는 그저 허탈감과 우울감에 허덕인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을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렵혀진 입술을 닦기 위해
젊은 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질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듣지 않는 컴푸터에 복수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으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p112~113 나는 시를 쓴다 전문
시인은 내 가슴속에 남은 불씨들을 지펴, 혹은 서늘한 얼음덩이를 녹여 문자를 복원하며 나는 다시 시인이 되었다. 라고 말한다. 도착하지 않은 삶, 열심히 살아내야 할 삶을 위해 시인은 시를 쓰고 힘겨운 삶에 지친 우리는 그 시를 읽는다. 그리하여 삶에 위안을 얻고 그 어딘가 도착점을 향해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