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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저린이라 불리는 귤나무조차 살아가기 힘든 척박한 땅 그 속에 존재했던 14살의 한 남자아이를 통해 사람들이 청소년 성장기속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만날수있는 모든 상황을 접한듯하다. 청소년기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시간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자아로인해 실수가 있기 마련이 시기이기도하다. 또한 그 순간을 어떻게 현명하게 보내고 정체성을 다져가느냐에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갈라지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도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동생 폴, 미식축구계의 차세대스타로 인정받는 형 에릭 그리고 그 두형제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 이웃의 눈에 한없이 단란하고 행복해보이기만한 피셔가정의 내면속으로 들어가보니 문제는 아주 심각했다. 진실을 왜곡한채 모든것을 가리고 가식적인 모습으로 전진해가는 가정의 모습과 함께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파괴되어가는 환경까지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주 범하고있지만 묻혀버린 진실들이었다. 그것을 폴이 찾아주고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며 흔하게 접하는 모습들속에서 어른들조차 빈번하게 실수를 저지르는 부분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있었다. 그랬기에 어른도 아이들도 모두 읽어야할 이야기였다.
피셔가족은 형 에릭의 대학진학과 미래 스포츠 스타로의 희망찬 포부를 위해 플로리다주 탠저린으로 이사를 오게된다.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조성된 고급주택단지로 레이크윈저다운스였다. 그리고 감귤통장이 즐비한 시골마을인 탠저린과 인접해있다. 레이크윈저다운스와 탠저린은 같은 공간속에 존재하고있건만 생활환경과 패턴 누릴수있는 권리에는 많은 차이를 안고있었다.
모든것의 중심에 형이있는 집 성공가도를 달리는 엄마아빠 그속에서 그림자일수밖에 없는 시력장애아 폴은 부자연스러운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흑니불과 번개로 대변되는 플로리다의 자연재앙은 싱크홀까지 일어나며 그러한 폴을 구제해주고있었으니 탠저린중학교로 전입하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수있는 기회를 얻은것이다.
탠저린 아이들조차 인정할수 없었던 폴의 선택,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했고 그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속에서 형 에릭과 친구 아서의 비열함을 이겨내고있었다. 엄마 아빠의 동조없이 자신의 생각은 무조건 무시당하고 차단당하는 현실,소통이 단절된 가정의 형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 생각하며 진실을 외면하는것이 바로 어른이었으며 그렇게 어른들이 묵인하는사이 문제아는 더욱 큰 문제아로 성장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폴은 거칠고 무서운 탠저린 아이들의 틈바구니속에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다가감으로써 친구를 만들고 인정받는 한 아이로 성장해간다. 자칭 자신이 우월하단 생각으로 무시하려하는 그들의 삶에는 적어도 따뜻함과 진실이 담겨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축구를 향한 자신의 꿈을 실천하고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스포츠 이야기인가 하는 순간 형제간의 갈등으로 전환되고 자연재해인가 느끼는순간 인간에 의해 파괴된 환경고발성을 띄고있었다. 그리고는 사회적 잣대속에 가리워진 외면하고 감추려했던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형식으로 맺고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진실로 인해 한 가정이 새롭게 태어나고 한 마을이 새로운 이미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있었던 이야기만큼이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읽는내내 긴장감은 고조되고 참 많은 반성과 생각들을 하게만든다. 어린시절의 잘못을 그냥 덥어버리기에 급급했던 부모로인해 형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반성할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우수한 성적에 가리워 왜곡했던 진신들이 어떤 결론을 맺고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고있었다.
처음부터 나쁜사람일수도 처음부터 연쇄살인범일수도 없는게 사람이다. 실수를 가장한 범죄를 드러내고 치유하기본단 무조건 감추려고만했기에 무마되며 커져버리는것 일것이다. 우린 청소년 범죄가 발생할때마다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일을 할 애가 아니예요 뭔가 착오가 있어요라는 주장하에 피해자를 한번 더 죽이는 가해자 부모를 쉽사리 만날수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의 잘못을 나무라는 참된 부모가 되는길이 참으로 멀고 힘든것이다. 나를 돌아보고 부모의 길을 다져보고 내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는 그런 시각을 키워주는 탠저린 모든 부모에게 아이들에게 강추하고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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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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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저린'. 막연하게 제목이 주는 묘한 끌림에 읽게 된 책! '탠저린'이 과연 무슨 뜻일까, 어떤 내용일까 막연하게 궁금해 하며 책장을 펼치니 채 몇 장을 넘기지 않고도 그 의미가 확실하게 전해온다.
첫 번째는 플로리다 주의 탠저린 카운티 (6쪽)라고... 솔직히 정말 플로리다 주에 있는 카운티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두 번째는 '귤'이란 뜻(15쪽)이란다.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탠저린'에 시작부터 더욱 흥미롭다.
시작부터 심장치 않은, 주인공 폴과 엄마의 태도가 여느 모자母子의 모습과 다르게 다가온다. 이미 아빠와 형 에릭은 텍사스를 떠나 플로리다에 가있고 뒤늦게 출발한 엄마와 폴이 마침내 그들의 새 집에서 만나는 장면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그들 가족간의 묘한 거리감과 긴장감. 주인공 폴은 과연 어떤 아이일까? 그리고 그의 형 에릭과는 어째 물과 기름같은 느낌일까? 그들의 엄마와 아빠 역시 어떤 사람들일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폴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왠지모를 에릭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에 대한 불신같은 것이 느껴져 마음 한 켠이 답답해져 온다. 도대체 폴이 그들 가족에 속하지 않는 것같은 것은 무엇때문일까......
오로지 에릭에 대한 기대로 꽉 차 관심이라고는 온통 에릭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아빠와 왠지 모르게 그다지 친근하지만은 않은 엄마 그리고 보통 형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에릭에 대한 폴의 이야기에 계속 궁금해져 책장이 빠르게 넘겨진다.
흩어진 편린들을 퍼즐조각처럼 맞춰가는 주인공 폴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억과 함께 답답했던 의문의 해답이 보일듯말듯 펼쳐지는 사이, 폴과 가족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사건들이 한때의 희망이었던 탠저린(귤)이 꺼지지 않는 흑니 불과 함께 땅 속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주인공 폴이 잊혀졌던 과거의 한 조각을 되찾음으로써 가족들이 애써 잊으려 했던 사건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는 곳이자 아서 바우어의 희망이었던 '탠저린'은 그 자체로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레이크 윈저 고등학교의 스타 쿼터백 안톤 토마스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비롯한 모순된 사회의 단면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탠저린...... 자신의 불확실한 기억과 싸우는 듯한 소년 폴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어느새 탠저린은 새로운 희망과 진실의 의미로 새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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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저린이란 '귤'을 뜻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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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저린은 귤을 가리키면서 지명으로 쓰인다. 예쁜 지명이다. 이름만 들어도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귤 밭이 눈에 선하고 어디선가 귤 향긱 그윽하게 풍길 것 같다. 이 작품의 핵심 열쇠를 지니고 있는 폴은 축구만이 전부인 아이다. 시각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축구를 향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간다. 하지만 폴의 가족 이면에 숨겨진 비밀들이, 폴이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나갈 때마다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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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제목이었지만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성장소설이란것은 언제봐도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귤을 뜻하는 '탠저린'이라는 곳으로 이사가면서 이 소설은 시작하게 된다. 개발이란 명목하에 귤나무를 갈아 엎어 신도시를 건설하게 되는 레이크 윈저 다운스에서 중학교를 새로 시작하는 일기형식처럼 기록한 폴 피셔의 이야기는 가볍지만은 않다. 작가의 첫 소설이라지만 내가 느끼기엔 노련한 작가의 글처럼 느껴졌다. 쉽게 읽혀지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영화 '2012'를 봤기 때문일까. 귤나무를 갈아 엎은 것 때문에 생기는 흰개미들과 흑니 불(식물들이 퇴적되어 부패하여 만들어진 유기질 토양인 흑니 층이나 그 아래에 난 땅 속의 불을 말한다. 대개 땅에 번개가 칠 때 흑니 속의 갈탄에 불이 붙어 땅 속에서 며칠, 몇 주, 몇 달에 걸쳐 계속 타면서 지상으로 연기를 뿜어낸다) 때문에 연기가 피어 오르는 걸 보고 환경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 그것에 대한 더한 피해가 있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미식축구를 잘하는 형 에릭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부모에게 얘기를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도 축구를 좋아하는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폴의 우정이야기. 아이들 중에도 특히 남자아이를 키워보니 유달리 운동을 좋아하는 걸 발견했다. 학교 과목 중에서 체육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아빠 마져도 에릭형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폴에게는 무관심할 뿐이지만 축구를 할 수 있는 탠저린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어 그곳에서 비록 후보선수지만 축구를 하고 축구로 인한 친구들과의 우정을 나누는 것을 보고 남자아이들을 다시 보고 느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하며 친구들에게 많은 역할을 했던 루이스 형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형의 잘못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를 그려낸 이야기는 여운을 남겨준 글이었다. 그러고 보면 청소년의 시기는 외국 청소년들이나 우리나라 청소년들이나 방황하는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나보다. 그리고 부모는 바깥에서의 자녀들의 생활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잘하고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것도 같다. 또는 무슨 일이 발생했을때 기본적으로 믿는 것에 대해서는 같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도 조금씩 틀린것 같다. 내가 보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내 아이가 그럴리가 없다. 얼마나 착한데,,,,,, 이런 말을 많이 하는 걸 봤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를 믿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도 있겠다. 그런 반면에 외국의 부모들은 내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는 걸 보고 역시 문화가 달라서 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처럼,,,,,, 파란 바지를 입고, 흰 셔츠에 파란 넥타이를 매고 간 세 번째 학교 세인트 앤서니 중학교에서 폴은 과연 행복했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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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근무지를 따라 캘리포니아 탠저린 카운티로 이사온 폴 피셔는 전학 간 중학교에 축구부가 있다는 소식에 반색한다. 법적으로 장님판정을 받을 정도로 시력이 나쁜 폴, 하지만 그 장애도 그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친구들이 외계인이라 놀려도, 대기 선수로 벤치에 앉아 있어도, 함께 축구를 할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폴의 간절한 바람은 장애인은 축구부 가입이 안 된다는 학교 규정에 막혀 좌절되고 만다. 한편 그가 살게 된 탠저린 카운티는 (귤을 의미, 작가가 오렌지 카운티를 패러디함.) 한때 과수원이었던 곳을 무자비하게 갈아엎어 세운 곳으로 겉으로 보기엔 부촌이었지만 안으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땅이 가라앉고, 저절로 생겨난 들불은 검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대며, 날마다 벼락이 치는데다, 흰 개미가 떼거리로 공격을 하고 , 보석 도둑이 판을 치는등 마을은 늘 사건 사고로 소란스럽다. 땅이 가라앉는 바람에 교실이 없어진 폴의 중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전학을 허용하게 되고, 폴은 기회는 이때라면서 근처 탠저린 중학교로 전학을 간다. 라틴계열의 빈촌 아이들이 다니는 탠저린 중학교는 갱단과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주위의 편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 학교에 등교한 폴은 그곳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착하다는걸 알게 된다.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탠저린 축구부에 가입한 폴은 시합을 계속하면서 실력을 점차 쌓아나간다.
한편 고교 미식 축구계의 스타로 부모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형 에릭은 새 고등학교에서도 인기를 몰고 다닌다. 에릭이 명문 대학에 스카웃 되기 위해 작전까지 짜가면서 뒷바라지는 하는 아빠, 폴은 그런 아빠와 에릭이 다 못마땅하기만하다. 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환영에 시달리는 폴은 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의아해한다. 어릴적 사고로 눈을 다친 폴은 그것이 에릭이 연관되어 있을거란 추측은 해보지만 기억이 나질 않자 답답해한다. 잔인한데다 제멋대로인 에릭은 집에 놀러온 폴의 친구를 가난한 동네 애들이라면서 괴롭히지만, 폴은 그가 두려운 마음에 맞서지 못한다. 그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폴, 부자인 너희들은 너희들끼리 살라며, 넌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자신은 에릭과 다르다면서 항의를 해보지만, 그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탠저린 카운티에 한파가 몰려오자 탠저린을 살리기 위해 폴은 자진해서 농장으로 간다. 탠저린의 미래를 위해 인생을 건 친구의 삼촌을 존경스럽게 바라보던 폴은 며칠뒤 그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다. 그의 죽음에 에릭이 관련되었다는 걸 알고 있던 폴은 이번만큼은 입 다물고 있지 않겠다고 이를 앙 다무는데...
마치 잘 된 영화를 보는 듯 속도감있게 잘 쓴 성장소설이었다. 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환각에 시달리는 동생 폴, 그런 동생을 애벌레 보듯 경멸하는 형과의 갈등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소재를 쓰고 있음에도 그걸 어찌나 자연스럽게 풀어내던지 마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는 듯 생생하기만 했다. 단순하지만 모순없는 캐릭터 선정, 스포츠를 둘러싼 암투와 열정, 자연스러운 상황전개, 이야기를 더 설득력있는 만드는 뒷 배경과 속도감있는 전개, 군더더기 없는 묘사,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리한 구성등으로 단숨에 읽어치울 수밖엔 없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다. 제목만 보곤 별로일거라 짐작한 나로써는 뜻밖의 수확이었으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성장 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밤을 꼴딱 샜다. 무엇보다 재밌다. 즐거움과 감동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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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는 늘 의외의 진실이 숨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재삼 하게 됐다. 시력에 심각한 장애를 지닌 중학생 폴 피셔의 시각을 따라 동네, 학교, 가정, 그리고 이웃, 친구, 가족을 관찰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환경, 도시, 개발, 폭력, 교육 등등의 문제들이 하필 시각 장애를 지닌 소년의 눈에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은, 시각 장애를 지니지 않았으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과의 대비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싶다. 눈에 보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 사이에 놓인 강은 생각 이상으로 깊다.
피셔 가족은 플로리다의 탠저린 카운티로 이사를 한다. 이들이 살 곳은 귤밭을 없애고 그 자리에 들어선 고급 주택가 레이크 윈저다. 인근에는 여전히 귤나무와 더불어 삶을 영위하는 더 가난한 마을도 있지만, 레이크 윈저에는 이미 귤밭이었을 때의 향기는 남아 있지 않고, 태워 없앤 나무들의 잔해만이 남아 땅 속에서 흑니불로 꿈틀거리거나 싱크홀 같은 재해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미식축구계의 꿈’으로 찬란히 빛나는 폴의 형 에릭 피셔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야말로 스타로서만 살아가는 고등학생이다. 마치 태워지고 묻혀 버린 귤밭 위에 새로 생긴 최신 고급 주택가의 이미지 그 자체이다. 깊숙한 내면에 무엇이 있건, 그 내면이 어둡건 말건, 그야말로 빛나는 존재. 에릭과 폴 사이에는 마치 고급 주택가와 귤밭처럼 근본적인 이질감이 존재하고, 아무리 덮어도 해소되지 않는 흑니불같은 비밀이 열기를 내뿜고 있다.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폴의 시각장애뿐 아니라 사람이 죽는 일까지 피셔 가족의 비밀과 상관이 있다는 암시가 책을 손에서 놓게 하지 않는다. 책의 말미에서 마침내 드러난 비밀은, “세상에!” 보다는 “과연 그랬군.” 정도의 충격일 뿐이지만 많은 상징을 담고 있어서 묵직하게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