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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하루키는 수필에서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번역도 손수 하곤 함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카버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니 역시 하루키가 좋아할만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든다. 압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단편소설에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다루고 있는 소재가 비슷하고 미국인 작가이다보니 미국적 색채를 많이 띄는 하루키 소설과 분위기도 비슷한 것 같다. 천진난만하고 해맑은듯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다루고 있어 매력적인 소설들이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코끼리"와 "비타민"이었다. "코끼리"는 가난한 가족들이 주인공에게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기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주인공을 보며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생각한다. "비타민"은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바람을 피우려던 남편과 비타민 파는 부인이 겪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카버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게 마련이고 그것이 안좋은 일이라면 어떻게든 둘 사이의 균열을 만들어 낸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말고 누가 또 이 침대에 누웠을까"는 요즘 일정 연수 강의 시간에 생명윤리- 존엄사(불필요한 연명 치료 중단 문제) 시간이 생각나는 내용이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부부라는데,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고 동시에 죽을 확률이 희박한 상황에서 부부 중 상대방이 먼저 죽음을 앞두고 연명 치료를 하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죽음이라는 문제는 이렇게 살아있을 때는 자발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힘들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꺼림직하게 생각하게 마련인데 막상 존엄사에 대한 화두가 떠오르고 나니 죽음과 연명 치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강의 시간에 존엄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불필요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설 등장인물들처럼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배우자에게 미리 이야기해두고 싶다.
카버는 단편소설의 특성들을 잘 살려 많은 단편소설을 쓴 것 같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 속에서 독자는 마음 깊이 울리는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레이먼드 카버 소설 시리즈' 중 1권인데 2, 3권도 나와있다고 하니 계속 구입해서 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