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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프랑스 ‘케 데 브륌 서점’의 개점 20주년을 맞아 단골 고객들에게 감사하는 행사를 위해 쓴 글이다. “책과의 교제는 일관성과 용이성이 보장된다. 책은 나의 일상에 늘 함께하면서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나이가 들고 고독한 나를 위로해준다. 지루하고 게으른 시간의 무게를 덜어준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적마다 나를 거기서 빼내준다. 극심한 고통의 매서움을 완화시킨다. 귀찮게 들러붙는 공상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책에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책은 아주 손쉽게 내 주의를 끌어서 쓸데없는 공상을 날려버린다. 보다 현실적이고 활기차고 당연한 다른 어떤 재미가 없을 때에만 책을 찾는다고 해서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책은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몽테뉴의 말은 책과의 지극히 개인적인 교제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책은 읽는 이에게나 쓰는 이에게나 이중적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면서 타인을 지향하기도 한다. “책은 본보기나 모방자 없이도 스스로 사유되는 하나의 계획을 설계한다. 그 자체로 온전하고 충족된 사유를 남에게 전달하거나 또는 자기 자신에게 전달하는 것이지, 결코 정보 전달이나 재현, 상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책은 동요와 불안 속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펼쳐지고 진정되기를 갈구하며 스스로를 찾아나가는 어떤 한 형태가 발효되어 탄생하는 것이다.” 말라르메는 「책에 관하여」에서 책을 “순수하고 투명한 덩어리”라고 했다. 책은 각각의 독자에게 “상형문자의 비밀스러운 의미(10쪽)”로 남을 것이기에 그 말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 책을 단순히 쉽고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아주 가벼울 책이 누군가에겐 심오한 뜻을 전달할 수도 있다. 낭시는 이를 두고 ‘책의 이데아의 전달’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티에리가 언젠가 프낙에서 책을 구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서점 바닥이나 통로에서 다리가 저릴 정도로,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책을 읽었던 내 지난 추억이 스쳐 갔다. 온몸으로 글을 쓰는 거라는 말처럼 온몸으로 책을 읽어 나갔던 그 시절, 서점은 내개 궁전과 같았다. 많은 오프라인 서점들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책은 보물로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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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TENAION , 기대 ATTENTE, 유혹 TENTATION 쪽에 있는 것은 열에 들뜬 의지이다. 책은 언제나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샘처럼 솟아 흘러나오는 책은 단연코 어디에도 없다. 누구도 편지나 소논문, 비방문 식으로 소책자를 쓰듯이 저서를 집필하지 않는다. 책은 본보기나 모방자 없이도 스스로 사유되는 하나의 계획을 설계한다. (-12-)
플라톤의 책은 대화이다. 누구든 그것이 대화의 '형태를 취한다' 고 말할 것이다. 대화라고 하는 것이 여러 가지 형태들 가운데 하나의 형태, 하나의 장르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사실,대화이건 디알로지이건 그것이 책의 정수를 제공한다. (-21-)
편집자는 책의 불가독성을 이미 읽은 사람이다. 그느 그것만을 읽는다. 그는 텍스트에 감춰진 고유의미를 읽는 자이다. 편집자는 책보다는 저자와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다. 이때 저자가 책을 쓰도록 지지하고 이끄는 것은 슬쓰기의 동력인 사유이며, 저자는 그 동력이 무엇인지 본인도 잘 모르기도 한다. 편집자는 이러한 일탈을 동반하고 그것에 출구를 마련하며, 그것을 잡아채기도 하고 동시에, 앞으로 이어질 것을 향해서가 아니라 이미 선행했던 것을 향해 떠나가게 방치하기도 한다. '대중'이 없다면 말을 거는 제스처도 글쓰기의 설계도 없을 것이다. (-41-)
밀랍, 목재, 파피루스 양피지, 독피지, 스크린은 모두 부드러운 소재로 두껍지 않아 펴거나 줄일 수 있는 유연성을 지녀서 절단과 인쇄가 가능하며 표식을 감수하거나 흔적을 담아놓을 수 있고 (총서, 선집, 명상록) 동시에 이행성 혹은 잠재적 소멸성이라는 성격(도피성, 망각성, 허약성)을 일부러 떨쳐내지 않는다. (-64-)
난해함은 책의 과잉이며, 전달은 책의 결핍이다. 책은 그래서 항상, 과도한 동시에 부족을 호소한다. 책의 이데아 역시 ,항상 과도하고 부족한 방식으로, 오로지 바로 그와 같은 상태에서 재현될 수 밖에 없다. 책의 단적인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은 과잉과 결핍 사이를 걸어 다니는 미지의 그림자가 제 지적인 자락을 길게 늘어뜨리는 처소다. (-90-)
종이책이 사라질 거라고 믿는 21세기 한국에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 독립서점은 그래서 아름답다. 책과 독자가 만나는 방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보려는 독립서점은 책과 독자의 미래를 담보하려는 용기의 소산이다. (-94-)
어제도 독서를 했고, 오늘도 독서를 했다. 마치 습관처럼 읽게 되는 책에는 생각과 사유, 자가의 의도와 편집자의 편집 패턴이 잘 드러나고 있다. 책에는 여러가지 상징과 은유, 비유가 있으며, 연역법, 귀납법, 귀추법을 총동원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을 담아내고 , 캐치할 수 있다. 핵심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환 독서라는 행위는 상당히 어려운 고급 습관이며,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조선 시대 이전에는 책을 가지고 있거나, 책을 읽는 독서 습관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에게 발에 채이면 , 굴러다닌다고 말하는 책의 정체는 지금이 특이하며, 이상한 사회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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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크에 위치한 '케 데 브륌 Quai des brumes' 서점 개점 20주년을 맞아 단골 고객들에게 감사기념으로 기획된 도서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에는 애서가를 위한 도서 애찬론과 서점의 의미에 대한 소개가 가득 담겨있다. 저자인 장-뤽 낭시 Jean-Luc Nancy 가 철학자라서 그런지 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빗대어 도서의 의미에 대해 다채롭게 소개한다. 그중에서 책을 열고 닫는 행위에 대한 애찬론이 인상적이었고, 독자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의 세계이고, 이 세계는 독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여러 개의 세상과 섞인다. 독서는 여러 세상과의 접전이고 생성 중인 혹은 고통스럽게 꿈틀대는 우주의 탄생이다. p 033, 034 ㅡ 끝나지 않을 책읽기 라는 글귀가 애서가로서 멋지게 느껴져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철학적인 내용과 조금은 추상적인면도 있어 난해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애서가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행위에 대한 애찬론이 가득한 도서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를 읽어 보길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p.s. Love and Community 2001 ㅡ 장-뤽 낭시 Jean-Luc Nancy ============================== 책의 고유한 특성, 그것의 실용적 가치 혹은 마법적 힘 아니면 책성?性 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마땅할 그것은 달리 어디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책이 열리는 지점과 닫히는 지점 사이, 그것이 조직하고 유지하는 관계 내부에 존재한다. 자고로 문이란 열려 있지 않으면 닫혀 있게 마련이라는 서양 속담과 달리, 책은 펼쳐져 있거나 닫혀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책은 항상 그 둘 사이에 놓여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늘 옮아 다닌다. 닫힌 책이 열리는 것과 똑같이 펼쳐진 책은 닫히기 때문에, 이처럼 계속되는 행보, 끊임없이 되돌아가기를 반족하는 이 행보로인해 책은 단순히 '저장 용기'로 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저장 내용' 으로 간주될 수 없다. 책은 우리가 책장에 정돈하거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오브제가 아니다. 종잇장 위에 인쇄된 상태의 텍스트는 더더욱 아니다. 책은 차라리 열림과 닫힘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아니면 그 둘 사이의 긴장감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책은 그 긴장의 끈을 풀기도 하고, 그것을 촉발하기도 하며, 책장이 넘어갈 때에는 쉬지 않고 그것을 유지한다. 책은 긴장을 늦추기도 하고 진정시키기도 한다. 독서대에 책을 내려놓을 때처럼 긴장감을 책의 용적 volume 에 맡기는 식이다. p 011, 012 ============================== 긴장, 기대, 유혹 쪽에 있는 것은 열에 들뜬 의지이다. 책은 언제나 바로 거기에서 시작한다. 샘처럼 솟아 흘러나오는 책은 단연코 어디에도 없다. 누구도 편지나, 소논문, 비방문 식으로 소책자를 쓰듯이 저서를 집필하지 않는다. 책은 본보기나 모방자 없이도 스스로 사유되는 하나의 계획을 설계한다. 그 자체로 온전하고 충족된 사유를 남에게 전달하거나 또는 자기 자신에게 전달하는 것이지, 결코 정보 전달이나 재현, 상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책은 동요와 불안 속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펼쳐지고 진정되기를 갈구하며 스스로를 찾아나가는 어떤 한 형태가 발효되어 탄생하는 것이다. p 012 ============================== 책은 수단을 설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책을 목적성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는 사살상 어렵다. 저 자신 밖에 설정된 목표를 가지지 않는다면, 어떤 작용을 하건 간에 책은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다. p 014, 015 ============================== 플라톤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이데아는 어떤 사물이나 현실의 정수로 이루어진, 실재하는 그리고 지각할 수 있는 '형태 Forme' 이고 (말하자면 인간의 이데아, 돌의 이데아, 도마뱀의 이데아처럼), 책의 이데아는 이데아의 전달 livraison d'une ldee 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책이 전달하는 것은 ㅡ 책이 인도하고, 해방하며, 전시하고, 소개하며, 표시하고 드러내는 대상은 ㅡ 본질적이며 독점적인, 모방할 수 없고, 경험적이지 않은 순수 형태이다. p 017 책의 이데아와 특성 ============================== 책은 대화이다. 책은 대화의 특징을 이데아에다 부여한다. 그만큼 이데아는 그 특징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데아는 그 자체로 말걸기의 특수한 흔적이다. 이데아와 형태는 이 지점에서 매우 정확하게 말걸기의 형태, 나아가 말걸기로서의 형태를 지칭한다. p 021 책의 이데아와 특성 ============================== 책에 대한 관념은 그 자체로 절대성, 완결성의 관념이다. 따라서 개개의 책은 경전만이 세상의 유일한 책이라는 점을 부인하고, 반대로 스스로를 성스러움의 연마과정이라고 여긴다. 이때의 성스러움은 의미부여의 가능성을 무분별하게 찾는 일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매 순간, 두루마리 책에서, 제본된 책자에서 의미의 광채가 빛을 발하고 또 사그라진다. 그렇게 점점 더 멀리, 책에서 책으로, 타 비블리아 ta biblia('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는 이편에서 저편으로 무한히 되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매번 유일한 것이 된다. 또한 책은 단순히 소통의 수단도, 소통을 표현하는 매체도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책은 중간매체가 아니다. 그 자체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자 거래(교제 commerce) 이다.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거래 속으로 들어갈 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책은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풍자문' 이나 '논문'과 확연히 구분된다. 감히 말하자면 책은 스스로 직접 나서서 자신과의 소통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p 024, 025 책 본연의 궁극성 ============================== 책의 열림과 닫힘은 안쪽이 끊임없이 바깥쪽을 지향하는 지형地形 처럼 드러난다. 모든 책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그 자체로 보면, 책은 끝이 난 것이면서도 끝이 없는 것이고, 어느 면에서 보아도 비결정적으로 완결된 것이다. 매번의 책장에서는 새로운 여백이 열린다. 하나하나의 여백은 점점 넓어져 보다 많은 의미와 비밀을 품을 수 있게 된다. p 025 책 본연의 궁극성 ============================== 읽기는 책 고유의 특징을 파악하는 일이다. 역으로 책은 특성을 반죽하고 변조하는 일을 한다. 책의 특성은 수많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저자의 이름으로 드러나고, 혹은 장르를 지칭하는 제목에서, 혹은 어떤 스타일로, 어떤 타법으로, 어떤 표현법으로, 어떤 방식이나, 내가 위에서 말한 '목소리'로, 혹은 내가 뒤에 가서 힘이나 매력으로 부르게 될 것으로, 혹은 세기나 강도로 표시될 것이다. 그러한 표식의 총체적인 이상성이 정확히 책이다. p 029 경전의 백성들 ============================== 위대한 책은 특성의 자기 기록이다. 그 기록은 유동적이어서 잘 떨어지며 고정된 것이 아니다. 저자도, 장르도, 스타일도, 에너지도 고정된 것은 없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모든 정보인식과 인식명령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책의 특성이 ㅡ 그 특성이 곧 책이라는 점에서 ㅡ 윤곽을 드러낼 뿐이고, 그렇게 그어진 흔적은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올 때 비로소 끝이 난다. 책을 음악의 특성으로 정의한다면 다 카포 Da capo('처음부터 반복해서' 를 의미하는 연주 기호) 에 해당한다. 독서는 끝이 없다. 끝없이 다시 시작하고, 되풀이되고, 되살아난다. 글쓰기는 오로지 되풀이되고, 후렴처럼 반복되고, 영원히 되돌아오는 것 말고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p 030, 031 경전의 백성들 ============================== 독서는 큰길로 내려와 운행한다. 도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 순간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어지럼증을 애써 잊으려 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해석함' 혹은 '판독함' 은 글자를 의미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어느 암호를, 모든 암호를, 글자의 모든 암호를 재조합하는 것을 뜻한다. 봉투 속에 담긴 의미를꺼내는 것이 아니다. ㅡ 그러면 곧바로 내팽개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ㅡ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싸개 enveloppement 를 풀어내는 것이다. 펼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자기 쪽으로 펼쳐진 것을 끊임없이 다시 접는 것이다. p 032 경전의 백성들 ============================== 독자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의 세계이고, 이 세계는 독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여러 개의 세상과 섞인다. 독서는 여러 세상과의 접전이고 생성 중인 혹은 고통스럽게 꿈틀대는 우주의 탄생이다. 잠재적 potentiel 이고 급격한 exponentiel 그러나 언제나 점근 漸近 적인 asymptotique 특성화 작업이다. 책의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책과 그 시대의 ㅡ 글이 쓰인 시대이거나 혹은 책을 읽는 시대 중의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책이 '수 세기를 지나며' 만난 수많은 다양한 시대들 가운데 어느 하나 ㅡ 우주 형상 사이에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접합점을 특성화하는 것이다. p 033, 034 끝나지 않을 책읽기 ============================== 각각의 책은 이데아의 성격을 특징짓는다. 뒤틀리고, 불분명하며, 선으로 그어져 있으되 이어지지 않는, 단편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자기 안에서 다수가 되어 그 안에 박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끝날 줄 모르는 도안을 새롭게 펼쳐보려는 노력을 되풀이한다. 그렇다고 해도 ㅡ 혹은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ㅡ 각각의 책은 상형문자 모음집, 신성한 문자들의 총서, 아이콘과 상징의 조합물로서, 이들은 해독하기 어렵게 조합된 암호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독자 개객인은 다른 코드의, 재창조된 신화의 열쇠를 가지고서 그것을 재구성하기를 시도한다. 도서관과 서점은 그러한 보물 상자들을 보관하는 저장소이며 진열대이다. p 036, 037 끝나지 않을 책읽기 ============================== 우리는 대중 public 을 위해서 출판한다 publier. '출판하다' 라는 것은 발설하기가 아니다. 대중화하기도 아니다. 그것은 상상 가능한 책의 내밀함, 친밀함 혹은 독점권으로 봉인된 것을 폭파하는 일이다. 마침내 진정으로 읽을거리를 내밀어주는 것이다. 조판과 페이지 설정, 인쇄, 제본, 운반, 책장이나 테이블 진열은 사유의 거래에 들어서는 첫 작업을 이룬다. 사유의 거래에서 진정한 교환가치는 일반적으로 교환가치는 법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만큼, 등가의 화폐가지 문제로 축소되지 않고 그 본연의 가치가 문제 된다. 가치화한다는 말은 곧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해 셈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유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위해서만 셈을 하며, 타자를 위해서만, 타자에 의해서만 그리고 타자의 안에서만 계산이 된다. 서점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된 장소이다. 그곳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저자에서 독자로, 편집자에서 저자 혹은 독자로, 저자들 간의, 서적상에서 책으로, 책에서 독자에게로, 혹은 한층 더 나아가 책을 읽지 않는 이들에게, 하지만 오래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엔가 단어들, 표현법들, 말하거나 생각하는 이러저러한 방식들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게로 지나가는 통로로 채워져 있다. 그러한 언어와 사유 방식이 이곳에서 출판되었거나 발표되었기에, 팔리거나 사들여졌기에, 제창되거나 선택받았기에, 대면과 대처가 일어났던 곳이기에, 무시되었거나 잊혔기에, 각각의 방식은 (불)가독성이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동시에 그 바깥을 점유한다. 과거에 '서적상 libraire' 은 편집자, 인쇄업자이자 서점 경영인이었고, 저자와 작품과 독자의 친밀한 정령이었다. 그는 여전히 책의 곁을 떠나지 않는, 책을 만들고 진열하는, 무한히 자신과 세계를 향해 책을 접었다가 다시 펴기를 반복하는 삼중의 정령이다. p 041 ~ 043 미간행 출판본 ============================== 독서는 매번 책의 성격을 다시 특징짓는다. 독서는 어느 면에서 책을 다시 인쇄한다. 책을 다시 편집한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독서는 매번 새로운 비용으로 새로운 관건으로, 새로운 의미로 혹은 사라진 의미를 가지고 책을 다시 연결하고 다시 읽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펼쳐야 한다. 열기와 닫기의 유희를 흔들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주체로서의 책은 독서의 대상이 되어 진정한 힘을 얻는다. 그러나 책을 구매한 사람이 집으로, 서재로 혹은 작업실로 돌아온다고 해서, (요즘에는 거의 드물어졌지만) 접혀서 제본된 책장을 페이퍼나이프로 자른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펼침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책의 열림은 이미 편집자가 책을 서점으로 보낼 때 시작된다. 혹은 자동 배송으로 혹은 다른 여러가지 정보를 통해서, 편집자의 설명이나 신문 서평, 전문 비평을 통해서, 혹은 소문이나 전파를 통해서 보내질 때 일어날 수도 있다. 여러 지수와 지표, 독서 제안이나독려가 벌써부터 제공된다. 호기심, 바람, 기다림이 일어난다. 독서의 약속, 초대, 권고들이 나타난다. 서적상은 초월적인 독자이다. 그는 고객이 책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고객들은 서적상의 독서를 읽는 독자이며 동시에 그에게서 구매한 책들을 읽는 독자이다. 서적상의 독서는 모든 책의 모든 페이지를 오롯이 해독해내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독서는 '읽기' 이면서 동시에 '선택하기' 이다. 선택한다. 책에 나온 생각들을, 책이 본래 지니고 있는 이데아에 따라서, 책에 따라서, 독서에 따라서, 독자에 따라서, 그리고 편집자들에 따라서 제안해야 할 생각들을 선별하거나 수집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내가 상품에 대해 환기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서적상은 단순히 책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추호의 모호함도 없이 말해보자면, 서적상은 서적 전달자이다. 서적을 가져오고 전시하고, 서적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즉각적으로는 그는 두 번째로 책을 연다. 마찬가지로 책은 그를 위해 혹은 그에 의해서 전시되고, 보이기 위해, 초대받기 위해 펼쳐져 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의 손가락 사이로 열림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선별, 소개, 논증이나 수사, 백과사전적인 온갖 장치들 (이들이 움직이는 실제적인 기구가 바로 서점이다.) 이 모든 것은 미래 독자의 제스처를 유도한다. 서적상들은 서점의 천부적 영혼이다. p 049 ~ 051 미간행 출판본 ============================== 리브라리움 librarium : 책을 정리해 두는 상자나 단지. 리브라리우스 librarius : 글을 아는 노예를 이르는 말. 큰소리로 책을 낭독하거나 필사하며 서재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일을 맡는다. ![]() p 052 서점의 향기 ============================== 책의 복부와 흉부, 즉 내부가 벌어진다. 책장 사이로, 책장마다 혹은 낱장마다, 낱장에서 낱장으로, 되는대로 보이는 대로 눈이 좇아간다. 이것을 '훑어보다 feuilleter' 라고 말한다. 서점에서 독자는 읽지 않는다.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다만 훑어본다. 대중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핀다. 그는 내용물을 탐독하지 않는다. 맛보고 들이마시고 냄새를 맡고 핥는다. 서점은 향수점이다. 고기구이집이고, 제과점이다. 맛과 향이 그윽한 가게이다. 그 맛과 향을 통해서 책의 향기와도 같은 어떤 것, 냄새와도 같은 어떤 것을 짐작하고 추측하며 예견할 수 있다. 거기에 몸을 내맡기거나 아니면 책의 이데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그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 그와 유사한 어떤 것, 혹은 그것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잇다. 책은 아마도 우리가 찾는 것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해줄지도 모른다. p 052, 053 서점의 향기 ============================== 서점은 은밀한 시선, 강렬한 조명, 탐문, 조사, 선별, 추출이나 발췌 등 모든 종류의 열림이 있는 보편적 장소를 독자에게 열어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관계를 풀어주고, 숨을 돌리게 두었다가, 잠시 몸을 흔들어대는 것, 책이 가진 충족성과 정합성을 소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책은 민첩하게 혹은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서 말고는 다른 어떤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만지기만 해도 책은 독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무게, 입자, 부드러움을 통해서 책이 전하는 목소리의 변화나 심정의 동요를 식별해낼 수 있다. p 054, 055 서점의 향기 ============================== 서점은 떠돌이 장사꾼이자 이야기꾼이다. 유랑 시인이다. 행상인, 싼값에 책을 파는 외판원이다. 들판이나 모래 언덕에서,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신작로를 다니는 책방이다. 서점은 언제나 대로변에 있다. 그것은 책에서 책으로 말고는 어느 곳으로도 통하지 않는 길이며, 그 자신에게만 이어지는, 무한히 재인쇄되는 흔적과 활자만을 따라가는 길, 그 길을 따라가면 감동적이면서도 섬세한 사유의 거래가 끊이지 않는 큰길이 있다. 그 안에서 바로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것의 순수하고도 언제나 새로운 형태가 요약되거나 소진된다. p 061 사유의 거래 ============================== 책은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책은 엄숙한 분위기의 도서관 서가에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서로의 뒤를 잇기도 하고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책은 인쇄 1세대의 고서 초판본이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며 또 난해한 것이기도 하다. 책은 불에 타기 쉽지만 동시에 소진되기 어렵다. 물질로 표현하자면 책은 우리의 사유이다.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 손 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비밀에 가린 사유,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가 바로 거래 자체이자 약속이다. p 064, 065 책의 소재 ============================== |